수필

밥하기 싫은 여자

류귀숙 2013. 7. 30. 08:00

 

      <밥하기 싫은 여자>

 오늘 반찬은 뭐하지? 국은 또 뭘 하고? 이것이 매일, 매끼 하는 걱정이다.

 한국음식은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밥 한 끼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밑반찬이 준비된 경우라도 먹던 반찬만 올릴 수 없어 최소한 한 두 가지는 더 준비해야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요즈음은 편리한 주방기기가 있어 간편해졌는데도 그렇다.

 내 어릴 적 어머니나 할머니들은 밥 짓느라 허리가 휘어졌고, 눈물 섞은 밥을 지었다.

 가옥구조부터 전형적인 한옥으로 허리를 굽혀야만 하는 부뚜막이 싱크대다. 연료는 나무를 때서 무쇠 솥에다 밥을 했다. 지금 프라이팬으로 가스레인지에 올려서 부쳐 먹는 부침은 솥뚜껑을 뒤집어 프라이팬 대용으로 해서 부쳐 먹었다.

 우리 아버지는 나물 반찬은 물론 된장도 잡숫지 않고, 오직 고기반찬에 이밥을 요구하셨다. 채소반찬으로 유일하게 아버지께 선택된 반찬은 가지반찬이 전부다. 부추, 상추, 배추 ,시금치 등은 소나 먹는 꼴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의 출타 계획을 통보 받은 어머니는 '한 이틀 정도 밥하는 고통에서 해방되겠구나.' 라고 생각하시고 평소에 내가 해달라고 조르던 호박죽을 끊이셨다.

 그 규모는 호박 여러 개와 듬뿍 넣은 콩과 찹쌀가루로 큰 무쇠솥에 하나 가득했다. 해방된 어머니는 이웃을 불러 놓고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귀가하신 것이다.

 놀란 어머니는 부엌에 남은 식은 밥과 남은 반찬으로 저녁상을 차렸는데 반찬이 신통찮으니 호박죽으로 인해 그리됐음을 짐작하고는 냄비에 담겨있던 호박죽을 마당으로 날려버렸다.

 그때의 두려움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그러니 우리어머니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 시골에서 고기나 생선 반찬을 구하기는 무척 어렵다. 더군다나 여름철엔 더욱 더 그랬다. 어머니에게 밥하는 일은 바로 고통을 의미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지혜롭게 대처했다. 즉 닭을 많이 사육해서 때때로 닭을 잡기도 하고, 부족분은 계란으로 보충했으며, 멸치젓갈을 많이 담아서 비상시를 대비했다. 장날이면 생선을 많이 사서 소금 독에 묻어두는 지혜도 발휘했다.

 아버지는 농사일은 뒷전인데 이 고기반찬 준비에는 적극 참여했다. 걸핏하면 몇 명이 계를 모아 돼지를 잡았다. 그 일은 우리 집 마당과 우리 집 가마솥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와 어머니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돼지 잡는 참상과 그 고기를 삶는 냄새에 질려 버린 것이다.

 우리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 집을 비운일이 있는데 어머니는 그 여자를 찾아가 쌀 한말에 찹쌀과 팥을 곁들어 주고, 밥을 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왔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동네에서는 우리어머니를 마음이 바다보다 넓은 사람이라고 칭찬했단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지 않은 이야기 같으나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종종 들었던 이야기이다. 오죽 밥하기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얼마 전 퇴직한 남편과 하루 종일 같이 생활하는데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게 세끼 밥이다. 밥 먹고 돌아서면 다음 끼가 걱정이다.

 항간에 떠도는 말로 집에서 밥 먹지 않는 남편은 '영식님' 한 끼 먹으면 '일식 씨' 두 끼 먹으면 '이식이' 세 끼 먹으면 '삼식 놈' 이란다. 난 최악의 경우이니 오늘도 어찌 지낼까 걱정이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도 여행 중에는 밥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니, 그 기간이 길면 더욱 좋다

 비행기가 이륙 할 땐 밥걱정 공중에 날리고 편안한 행복감에 젖는다. 반대로 돌아 올 때는 어질러진 집과 반찬 생각으로 머리가 아파온다.

 오늘도 점심 걱정을 하며 '우렁 각시'를 생각한다. 밖에 갔다 돌아오면 밥상 차려놓고 기다리는 '우렁 각시'가 그립다.

 그러나 세상이 오염 되었으니 그 우렁 각시가 있을 리 없다. 그러면 '도우미'가 어떨까? 그건 비용이 만만찮고 퇴직해서 단출하게 사는 주제에 언감생심 도우미라니!  그럼 뭐가 있을까?

 로봇! 그게 좋겠다. 이왕이면 노랑머리에 파란 눈의 아가씨면 더욱 좋겠다.

 밖에서 돌아오면 '주인님 밥상 차려 놨습니다.' '다음엔 또 무슨 일을 할까요?' 이렇게 말하는 로봇이면 좋겠다. 과학이 발전하고 있으니, 거기에 기대보자.

이제 로봇이 나의 고민을 해결 해 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니 남편의 공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 위해 헌신한 훈장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한 수고가 고스란히 남아서 나의 노년에 청신호를 보내지 않는가!

 기분이다. 그렇다면 남편을 승격시켜 '삼식님'이라 모시고 그 기념으로 맛있는 요리로 보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