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무를 기르듯이

류귀숙 2013. 7. 31. 13:16

 

      <나무를 기르듯이 >

 난장판이 된 방을 정리하면서 울컥 치미는 화를 삼킨다.

 딸아이가 아무렇게나 밀쳐놓은 이부자리랑, 뱀 허물처럼 벗어 놓은 옷가지며 양말, 침대 밑의 쓰레기까지…. 다 치우고 나니 조금은 화가 가라앉는다.

 이렇게 매일 치다꺼리한 것이 30년이 다 돼간다. 이제는 잘 할 나이가 됐는데, 아직도 제방 정리 하나 못하는 딸애들을 생각하면 한 대 쥐어박고 싶다. 

 딸아이만 탓하고 화를 삼키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불쑥 내가 저지른 과오들이 번개처럼 스친다. 그 죄목을 들추어보니 혼자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내 주지 않은 것이다. 밤늦도록 공부하는 게 안쓰러워서,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시키면 잘 못하니 답답해서 등의 핑계를 만들어 놓고 딸아이의 영역을 침범했다. 아이가 장성한 지금은 간섭과 잔소리가 되어 아이의 발목을 잡고 있다. 

 모두들 현 시대의 교육이 잘못됐다고 입을 모운다. 지나친 학벌 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사교육비가 증가함은 물론이고, 인성 교육의 부재가 버릇없는 아이를 양성해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사 교육비 조달을 위해 부모들은 수입의 대다수 분량을 교육비로 지출하고 있으니, 힘겨운 소리가 아우성이 되어 들려온다. 또  십대 소년이 노인을 구타하고 부모님을, 스승을,  자신들과 동급인양 욕하고, 대들고, 때리기까지 하니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주범 가운데 내가 포함됐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을 무분별한 사랑으로 길러 예의 부족, 참을성 부족, 자립심 부족 등의 결핍증 환자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 영향이 지금 위력을 발하고 있다.

 우리가 양육한 아이들이 결혼해서 그들의 2세를 양육하고 있는 지금은 한 술 더 떠서 지식이라는 영양 섭취를 위해 아이들을 각종 학원으로 내몰고 있다. 그러니 이전의 결핍증에 지식의 과부하라는 병명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됐다.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여러 형제들과 밤낮으로 부딪치고,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꾸중 듣기는 예사고, 심지어 매까지 맞아가며 자랐다. 그런 우리 세대들이 맞고 자란 것에 불만을 가진 탓일까? 아님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오로지 자신의 자식은  공부 잘해 사자 돌림의 이름을 달고 살기를 바라서 일까?

 자신의 자식을 왕자 모시듯, 공주 대하듯 하고 있으니….

 어떤 교육이 더 좋은지는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교육엔 왕도가 없다.'라고 답을 피해 가나 보다.

 중국 고사에 <곽탁타>라는 곱사병을 앓아 등이 굽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낙타 같아 <탁타>라고 부르게 됐다. 그는 나무를 심고 기르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인데 그가 나무를 옮겨 심고, 기르면 무성히 잘 자라 빨리 열매가 많이 열렸다. 이에 그 까닭을 묻자, 그는 특별한 비법이 없다고 사양하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의 비법은 나무의 본성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나무의 본성은 그 뿌리가 뻗어 나가기를 바라고, 그 북돋움은 고르기를 바라며, 흙은 옛 것을 바라고, 다짐은 치밀하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부할 일은 최적의 조건을 준 후에는 건드려도 안 되며, 걱정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 가장 중요한 한마디를 힘주어 말했다. "나는 절대로 나무의 자람을 방해하지 않습니다."라고….

 다른 사람들은 나무를 심어 놓고 걱정돼서 아침에 물주고, 또 저녁에 와서 물주고, 흔들어 보고, 살았는지 확인하려 긁어보고,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니 나무는 견디다 못해 죽어버리는 것이다.

 <탁타>가 나무를 기르듯이 자녀 교육도 그 자녀가 나아감에 방해가 되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는 것이 자녀에게 자생력을 길러 주는 것임을 알게 됐다.

 나무 기르기에 실패한 자처럼 자녀 교육에도 부모의 사랑이 지나쳐 걱정하고 잔소리하고, 또 간섭하게 되면 자녀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이런 간단한 이치를 간과하고, 나는 세 아이를 기르면서 큰아이 둘은 너무 엄하게 길러 마음에 상처를 주었고, 막내는 지나친 관심으로 자신의 방도 정리 못하는 결핍증 환자로 기르고 말았다.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사회에 전염병처럼 번진 나약함이 문제를 저지르고 있다. 자녀들의 결혼 기피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유인 즉 결혼하면 힘이 드니 혼자 살겠단다. 놀랍게도 그 숫자가 4명 중 1명꼴이란다. 그게 어디 독립하겠다는 소린가? 부모의 품을 놓지 않겠다는 즉 캥거루족이 되겠다는 것이지.

 결혼한 자녀조차도 처자식 데리고 노부모 품에서 기생하고 있는 캥거루족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왕도는 없지만 고사에 나오는 <곽탁타> 이야기가 현시대 교육의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나무를 기르듯이 어른들은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임무이고, 또 그 자람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임무이다.

 나무를 심듯이 나무를 기르듯이 자식을 양육한다면, 건강한 젊은 세대의 숲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