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그루터기
<남은 그루터기>
가녀린 두 줄기 잎을 제비 주둥이처럼 벌리고 힘겹게 고개를 내 민다.
누렇게 말라버린 몸뚱이 끌어안고 외줄 타는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옆에서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려 보지만 마음은 어느새 그 연약한 어린 싹으로
향한다.
일 년 전 거제도에서 난 농장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석부작(石附作) 蘭(난)이 생사의 귀로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싱싱한 푸름으로 내게 안겨서 기쁨과 희망을 주었는데, 무슨 영문인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그 짙푸른 잎을 다 떨어뜨리고 누렇게 검불만 남아 나를 외면하고 있다.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미안함을 담아 물을 뿌리며 보고 또 보았다.
이렇게 허둥대며 가슴앓이 한 게 며칠이던가!
어느 날 아침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분명한 푸른빛이 날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
난 그래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인사도 않고 가버린 그 토라짐을 알기에 아마 지난번 떨어지다 남은 잎사귀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쨌거나 다 좋다. 남은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살아있으면 되는 것이니까!
죽었다고 생각한 그 루터기에 아직도 도약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은 나를 기쁘게 했다. 잘 못한 부분은 진단 받아 치료하면 되는 것이니까......
보름달처럼 동그란 돌 속을 우묵하게 파내어 그 속에 난을 돌 부침한 것이다.
크기는 밥그릇만한 돌 화분이며 난 잎은 어린아이 머리카락처럼 뾰족뾰족 올라와 앙증스런 모습이 어느 꽃 못지않게 아름답고 귀여웠다.
진열대 위에 올려놓고, 아침저녁 문안 인사에, 시시 때때로 습기가 마를까봐 물을 뿌려 주면서 머지않은 장래에 꽃 한 송이 피워 줄 것을 희망했다.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날로 잎사귀가 풍성해지면서 윤기까지 자르르 흘렀는데......
하루아침에 추풍낙엽처럼 푸른 잎은 다 떨어지고 잎 떨어진 자리엔 변해버린 줄기들이 검불같이 달려 있다.
유난히 더웠던 날씨 땜에 더위 먹었나? 아님 고향인 거제도가 그리워 향수병을 앓았나?
'빠른 시일 내에 진단을 받아야지'하고 마음먹었는데 그래도 추석은 지나야 할 것 같다.
추석 생각을 하니 몇 년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은 시 숙부님을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추석 당일은 복잡할 것 같으니 미리 당겨서 다녀오리라 마음먹었다.
일 년 만에 찾아가는 이 길이 왜 이리도 불안할까? 잘 다니던 길인데도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헤매다 겨우 찾아갔다.
그 동안 잊고 지냈던 무관심이 죄송스러워 초인종도 용기를 내어 눌렀다.
버선발로 맞이하시던 작은 어머님부터 '다리가 불편하시다.'며 아픈 다리 끌며 맞아주셨다.
작은 아버님은 나무 등걸처럼 앙상하게 누워 계셨다.
목소리로 나를 알아보시고 힘없이 눈을 뜨시며 "그 동안 잘 지냈냐? 더운데 고생 많이 했지?" 하신다.
꼭 우리 집 난처럼 남은 그루터기 붙들고 악전고투 하는 모습이 패전 장군의 처절함으로 보였다.
손을 잡으니 싸늘함이 느껴진다. 뼈만 남은 다리 주물러 드리며 건강하셨던 그 때를 생각해 본다.
내가 시집왔을 때 작은 아버님은 자로 잰 듯한 바른 성품이라 집안에서는 조심스럽고 어려운 분이라는 평판이 돌았다. 그러나 유독 나는 그분이 다정다감하다고 느꼈다.
찾아 뵐 때마다 다정하게 손잡아 아랫목으로 이끄시던 그 손길 잊을 수가 없다.
어느 날은 내 손을 잡으시며, "나는 이 집안 며느리들 중에서 질부가 가장 마음에 든다. 서글서글한 성격이 나를 기쁘게 하는구나. 내 며느리도 꼭 질부 같은 며느리로 골라야 할 텐데."라고 하시며 전적으로 나를 지지해주셨다. 그런데 오늘은 그 목소리 그 눈빛이 검불처럼 말라버렸다.
따뜻한 아랫목으로 이끄시던 그 손길이 이젠 싸늘하게 시들어 오직 남은 그루터기에 생명 줄 걸고 마지막 힘을 쓰시는 듯이 보인다.
정녕 이대로 꺼지기만 기다려야 하는가? 치료해서 몇 년이라도 원기를 회복할 수는 없을까? 현대 의학으로도 속수무책인가?
생명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고 신의 능력인 줄 알지만 생명줄이 붙어있는 한 좀 더 질을 높일 수는 있지 않을까?
돌아서는 발길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집에 와서 혼자 힘겨워하는 난을 가지고 꽃집으로 갔다. 그분의 진단은 내가 물을 너무 많이 주었고, 또 물에 잠가서 듬뿍 주지 않고, 너무 자주 위에서 물을 뿌린 탓이란다.
원인이 밝혀졌으니 고치면 되고, 무엇보다도 남은 그루터기가 있으니 무성한 잎을 보는 건 시간문제다 싶어 안심이 됐다.
며칠 후 작은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작은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소변 주머니 차고 계시던 것 떼어 내고 몇 가지만 치료하면 혼자서 걸을 수 있고, 드시는데도 지장이 없겠다고 하신다.
수술 끝나고 다시 뵐 때는 보다 더 건강하신 그분을 뵐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남은 그루터기에 생명줄이 붙어 있는 한 생명체는 그 줄을 붙들고 일어나라라!
이 세상의 어둠과 절망도 남은 그루터기 같은 의인이 있어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성경 말씀에 "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하셨다.
이 땅이 오염되어 사악해지고,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효가 실종됐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남은 그루터기가 이 세상을 정화할 것이다.
이 땅 어딘가에 남은 자가 세상의 빛이 되고 있으니 어둠이 쉬 물러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