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 해를 보내며

류귀숙 2013. 11. 20. 18:54

         <한 해를 보내며>

 삭풍 앞에선 한그루의 나목(裸木)을 본다.

 자신의 존재 이유요, 젊음의 상징인 그 푸르던 잎사귀를 모두 버리고, 빈 몸 되어 칼바람을 맞고 섰다.

 간밤의 거센 바람결이 한 바탕 요동치더니, 아득바득 매달려 있던 몇 가닥의 잎 새마저 다 몰아가고 이젠 완전한 알몸이 됐다.

 찬란했던 지난날의 영광을 아낌없이 비워버린 겨울나무의 앙상한 모습은 집 떠난 수행자의 모습처럼 거룩하다.

 가을이 되어 일조량이 줄어들고, 기온이 떨어지면 엽록소가 파괴된 잎은 아름다운 단풍이 되는데, 이 때 나무들은 잎들을 떨어뜨려 수분의 증발과 영양분의 손실을 최대한 줄여야한다. 그래야만 겨울 삭풍도 견뎌내고, 새 봄엔 튼튼한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이다.

 남김없이 온전히 비운 나무는 모진 겨울바람 앞에서도 떨지 않는다.

 이 거룩하고 지혜로운 나무의 비우기를 나도 배우고 싶다.

 나무는 우리인간에게 비움의 미학을 가르치는 스승이요, 아낌없는 은혜로 덮어주는 성자다.

새 봄엔 연두 빛 어린 싹을 틔워 희망과 웃음을 주었고, 한 여름 뙤약볕을  온 몸으로 막아 쉼터가 되더니, 아름다운 불꽃으로 그리움도 남겼다.

 한 잎 두 잎 떨어뜨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비워서 내일을 여는 지혜를 온 몸으로 보여준 나무 앞에 서니 고개가 숙여진다.

이제 미련까지도 버리고 빈손으로 겨울 앞에 섰다.

  오리털 파카에, 털모자에, 마스크까지 끼고 겨울을 견뎌보려는 나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송구영신 예배를 시작으로, 아님 새해 첫 날 해맞이를 시작으로, 올해는 좀 더 남다르게, 보람되게, 뭔가를 하면서 살아보겠노라 다짐 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한 해라는 시간의 속도는 그 빠르기를 제트기에 비유할까?

 어느새 이 한해를 마무리하며 뒤를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나의 일 년을 돌아보면서 남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챙겨주지 못한 점을 반성해 본다.

 지금껏 누구를 위해 차가운 겨울 강에 놓인 징검다리가 된 적이 있는가?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한 장의 연탄이 된 적이 있었던가?

 한여름 땡볕에서 지치고 목마른 자에게 한 모금의 샘물이 된 적이 있는가?

 배고픈 자를 위해 따뜻한 한 그릇의 밥이 된 적이 있는가?

 길 잃은 사람에게 반가운 이정표가 된 적이 있었는가?

 단 한 번이라도 촛불이 되어 남의 기도에 귀 기울인 적이 있었는가?

 단 한 가지도 실천한 게 없으니, 나 역시 빈 가슴이요 빈손이다. 벌써 나무의 비움을 본받은 것인가!

 조용하고 적막하던 11월이 가고, 마지막 달인 12월이 오니,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엔 어김없이 구세군 냄비가 등장해 세모(歲暮)가 왔음을 알린다.

 여기저기서 송년 모임에 참석하라는 메시지도 당도했다.

 대형 식당은 예약이 이미 끝났고, 사람들은 이해를 떠나보낼 잔치 준비에 들떠있다. 하지만 송년을 먹고 마시는 잔치로 마무리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배고픈 이웃에게 밥이 되고, 헐벗은 사람들의 이불이 되라는 사랑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용서와 사랑을 베풀고자 하신 것이니, 구세군의 냄비 앞으로 모이는 일이 보다 멋진 송년 행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사리 어린 손이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고 돌아 선다. 어릴 때부터 남을 도우는 것을 가르치는 교육이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사람들일지라도 이때만을 캐럴송을 부르며 거리를 배회하는가 하면 선물을 주고받으며 어깨를 들썩이고 가슴을 풍선처럼 부풀린다.

 젊은이들은 연인과 또는 친구와 손에 손 잡고 거리로 뛰쳐나오고, 본이 돼야 할 어른들조차도 대형 식당마다 빼곡히 모여서 술판 노래판 벌인다.

 '가는 세월이 아쉬워서, 다음 해의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라는 핑계를 만들어놓고는 하는 짓은 '띵가띵가'다.

 먹고 마시고 고래고래 노래 부르고, 밤늦은 거리엔 술 취한 중년들이 추태의 물결을 이룬다.

 송 모임으로 먹고, 마시는데 소비하는 돈만 모아도 엄청날 것이다. 이렇게 낭비하는 돈들을 어려운 이웃에게 돌린다면 멋진 어른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광화문 광장엔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졌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사랑으로 마무리 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함께 힘 모아 온도계의 온도를 끓어 넘치게 한다면 이 땅에 진정한 사랑이 넘치지 않을까?

 내 어린 시절 시골 교회에서 성탄절 날 새벽에 집집마다 다니며 성탄캐럴을 부르고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때는 그래도 작은 것이라도 나눌 줄 아는 정이 흘러 넘쳤다.

요즈음은 공해라고 그것도 못하게 됐는데, 성탄절만 되면 그때가 생각난다.

 우리의 송년 문화도 좀 더 심도 있게, 격조 높게 변했으면 좋겠다.

 한 해의 잘못을 반성하고 친구나 이웃에게 상처를 줬으면 사과 하면서, 한해를 마무리한다면 좋지 않을까? 

  앞으로의 계획을 도란도란 나누는 모임이 여기저기 퍼져간다면 얼마나 멋진 송년 모임인가?

  조용하고 격조 높은 송년 문화를 유산으로 남겨, 젊은이들의 본이 된다면 우리의 앞날이 밝지 않을까?

 여기에는 따뜻한 차 한 잔이 준비돼도 좋겠고, 막걸리 한 두 사발에 배추전이라도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