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갑오년 새해에는

류귀숙 2013. 11. 21. 18:37

       <갑오년 새해에는>

 갑오년의 찬란한 태양이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어제도, 오늘도, 백이십년 전 갑오개혁 당시에도, 또 내일도 영원히 태양은 우리들의 머리 위를 밝히며 희망을 줄 것이다.

 새해 첫 태양은 여느 태양과 다르다.

 오늘의 태양은 벅찬 설렘과 한없는 기대를 가지고 눈부시게 다가왔다.

 새벽어둠을 가르며 태양을 맞이하려는 행렬이 성스럽다. 모두가 가슴엔 소망과 새 각오를  품고 태양 앞에 섰다.

 입시를 앞 둔 수험생에게는 합격의 모습으로, 승진을 갈망하는 직장인에게는 승진의 모습으로, 투병 중인 환자에게는 완치의 모습으로 다가와 두 손 꼭  잡아준다.

 새해의 태양은 희망으로, 사랑으로, 빛으로, 환희로, 우리들이 원하는 무엇이든 해 주겠다고 한다.

 120년 전 갑오년에도 일제에 억눌리고 신분의 굴레 속에서 억압 받던 민초들이 새해를 여는 태양 앞에서 우리처럼 빌었으리라.

 그 때 그 태양은 민초들에게 크나 큰 선물을 주었다. 인신매매가 금지됐고, 노예제도가 폐지됐으며, 과부의 개가를 허용했고, 고문과 연좌법도 폐지되게 해 주었다.

 인간대접 받지 못하고 대를 이어 종살이해야 했던 노예가 해방되고, 청상과부도 희망을 가지게 됐으니 그 태양의 힘이 어둠을 몰아 낸 것이다.

 어둠을 걷어내고, 절망과 슬픔을 물리치고, 솟아오른 태양을 보면서 새해에는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겠노라 다짐해 본다.

 생각해보면 어제의 태양과 내일의 태양이 다르지 않지만, 새해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은 그 해가 아니다.

 365일 떠오르는 해 가운데 하나일 뿐일지라도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 순간 하나의 희망이 되고, 하나의 신이 된다. 눈부신 태양 앞에서 두 손을 모은다.

 '부끄러운 지난날을 반성하고, 어제까지의 내 삶들과 이별하고 싶습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어제를 돌아본다.

가까운 사람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생채기를 낸 것이, 이웃의 고통은 나와는 별개라 여기고 등을 돌렸던 일들이 스쳐간다.

 나의 편협함을 덮으려고, 변명에 급급했고, 내 상처를 감싸려고 남에게 도리어 상처 입혔던 어제 일이 생각난다.

 이제 다시 한 번 태양 앞에 서노니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에는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주소서.

 찬란한 태양 앞에서 지난해를 반성하고, 새 해엔 정말 사람다운 삶을 살아 보겠노라 다짐했다.

우리에게 소중한 건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요, 내일이니까!

 두 손 모아 새 소망을 빌어본다.

 새해엔 정녕 이 땅에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

남과 북으로 편 가르기 하는 놀이는 이제 그만 끝내고, 북에서 굶주리던 자가 행복 찾는 파랑새가 되어, 동토의 땅을 벗어났으면 좋겠다.

 반목질시를 종결짓는 정치권이 됐으면 좋겠다.

허공을 맴도는 말장난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국민이 원치 않는 정치는 생명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굶주린 자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북한은 물론이고 지구촌 곳곳의 기아들이 굶주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병든 자가 치유 받기를 원한다.

육신의 질고로 고통 받는 자에게 치유를,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자들은 안정을 얻었으면 좋겠다.

 나도 올 한 해 남을 위해 무언가가 되고 싶다.

 내가 쓴 글귀들이, 나의 손길이, 다친 마음을 치유해 주는 진정제가 되고 싶다.

 순 백으로 더러움을 덮어 주는 흰 눈같이 남의 허물을 덮어 주는 자가 되고 싶다.

 결과 보다는 과정을 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주위에도 눈길을 돌릴 줄 아는 자가 되고 싶다.

 올 해는 특별히 육십갑자 중 가장 먼저 시작되는 말의 해이다. 그런 만큼 새해 첫 날부터 말의 기상처럼 진취적으로 나아가야겠다.

 첫 날 다짐하고, 계획 하면서 올해는 꼭 실천하겠노라 다잡아 보지만, 늘 계획은 허공을 맴돌고, 실천의 자리엔 공허만 남아 후회를 거듭했다.

 하지만 올 해는 다르다. 처음 시작되는 말의 해이니, 말의 활동적이고 민첩함을 닮아야 하지 않겠나?

 오늘 첫 날 이 산행을 계기로 이틀에 한 번씩이라도 산행을 해서 우선 건강부터 다지고, 다음으론 내 영혼을 살찌우는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며, 가능하다면 수필집도 내고 싶다.

남을 위한 봉사도 올해는 실천으로 옮겨야겠다. 둔한 재주지만 주님께서 주신 재능이니, 나를 필요로 하는 이에게 재능 봉사를 할 것이다. 또 물질적으로도 작으나마 밥이 되고, 연탄이 되는 일에 적극 나설 것이다.

 노마십가(駑馬十駕)란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재주 없이 둔한 사람도 꾸준히 노력하면 천리마에는 못 미치겠으나,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에 힘이 붙는다. 나이는 한살이 포개졌지만, 노마십가란 고사 성어도 있지 않은가?

 돌아오는 즉시 창문을 열어 젖히고 대 청소를 시작으로 한 해를 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