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
<손수건>
겨울의 초입에서부터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외투에, 모자에, 장갑에,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눈사람처럼 뚱뚱해진 몸으로 문을 나선다.
코에선 또 콧물이 줄타기를 한다. 얼른 주머니 속을 뒤져 보았지만 그 중요한 것이 없다.
나의 분신이 되어 나와 동행한 지가 까마득한데 오늘은 그것을 챙기지 않았다.
늘 주머니나 핸드백 속에서 대기하다가 나의 체면을, 위기를, 지켜주었기에 그 고마움을 잠시 잊고 소홀했던 것이다. 아마 때 묻은 손수건은 세탁기에 넣어두고 새것을 챙겨 넣지 않았나 보다.
급한 김에 끼고 있던 마스크로 위기를 모면하고는, 버스에 올라 손수건의 고마움을 더듬어본다.
손수건은 그 자체가 지극히 보잘것없는 헝겊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손수건 만드는데 드는 천도 한 마가 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값진 비단이나 모직은 더군다나 아니다. 그저 흡수가 잘 되는 면으로 된 천이면 족하다.
그러나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물건이지만, 손수건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면 막중한 임무와 함께 나름대로의 맵시까지 지니게 된다.
아름다운 여인의 핸드백 속에서 끌려나오는 손수건의 자태는 그 여인의 숨은 인품까지 읽을 수 있어 즐겁기까지 하다.
딱딱한 연회장에서는 품위 있는 손수건이 치마 입은 여인의 다리를 감싸주기도 하고, 식사시간엔 실수한 음식국물을 닦아주며, 재채기의 위기 속에서도 체면을 지켜주게 된다.
또한 신사의 양복 윗주머니에서 보일락 말락 하면서 매력을 한껏 뽐내는 손수건이야말로 손가락에 낀 반지보다도 더 빛난다.
이렇게 대수롭지 않은 물건이라 치부하던 손수건이 얼마나 공이 큰가를 별로 생각지 않고 지내왔는데, 오늘 그것이 없으니 그 가치가 새록새록 살아난다.
손수건은 작아서 가련하지만 너무나 벅찬 일을 해 치우기에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손수건이 해 내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모두를 열거 할 수 없지만 몇 가지만이라도 그 공을 들춰 본다면.
먼저 손수건은 신사 숙녀들이 생명같이 소중히 여기는 체면을 지켜 준다는 것이다.
성장한 예복을 입고, 뜨거운 국을 먹을 때 콧물이 흐르지 말라는 법이 없다. 흘러내리는 콧물을 소맷부리로 닦을 수도 없고, 치맛자락으로도 닦을 수가 없잖은가? 이 난처한 지경에서 손수건의 위력은 대단하다.
또 손수건은 여름 땡볕 아래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한다.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손수건이 아니면 누가 닦아주겠는가?
손수건은 슬피 눈물짓는 여인의 눈물을 받아주는 도구가 된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고독한 여인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위로해 주는 위로 자가 된다.
가끔 눈물짓는 여인에게 소리 없이 다가와 멋진 손수건을 쑥 내 밀며 위로해 주는 신사를 본다. 더러는 이 손수건이 다리가 돼서, 좋은 인연을 만들기도 한다.
손수건은 마음의 깃발이 되기도 한다.
부둣가에서, 정거장 플랫폼에서, 이별을 슬퍼하는 마음이 되어 휘날린다. 또는 공항에서 사람 찾는 신호가 되기도 하고, 여행 짐에 묶어 두면 내 짐이라는 확실한 징표가 된다. 산에서 길을 잃고 조난당했을 때는 구조의 신호기가 되기도 한다.
손수건은 이렇게도 사람들의 어려운 경우나 위태로운 상황에서 앞장서 치다꺼리를 하는 공로자다.
그런데 손수건의 미덕이란 이렇게 공이 크면서도 자랑하거나 공치사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늘 겸손하게 숨어만 있으려고 하는 점이다.
공으로 말한다면 족히 머리위에서 빛나는 모자에 매달려 있던지, 최소한 저고리의 옷고름에라도 매달려 있어야하지만, 늘 침침한 포켓 속이나 잡동사니들로 복잡한 핸드백 속에 있다.
만약 사람이 이렇게 손수건처럼 남의 더러움을 닦아주고, 슬픔을 위로했다면 공치사 늘어놓느라 바빴을 것이다.
나는 소지품들을 소중히 여기는 성미이긴 하지만 손수건 건사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손수건을 새로 장만했을 때의 기쁨도 크지만 잃었을 때의 허전함은 더욱 크다.
어떤 때는 내 손수건이 길에 떨어져 사람들의 발길에 채일 것을 상상하면, 마치 내 자신이 당하는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
또 때 묻은 손수건을 어느 낯 선 곳에 두고 왔을 때는 꾀죄죄한 내 몰골이 드러나는 것 같아 창피하다. 그래서 나는 늘 손수건도 깨끗이 빨아서 반반하게 다려서 쓴다. 이래야만 내 체면이 서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 곁에서 분신처럼 지켜준 손수건의 공로에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손수건에게서 본받고 싶다.
겸손한 자세로 남의 슬픈 눈물을 닦아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말없이 도움의 손길을 펴는 손수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따라 손수건의 공로가 더 새롭다.
손수건이 없으니 무기 잃은 병사가 된 기분이다. 그 동안 손수건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가를 깨우쳐 주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