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바람

류귀숙 2014. 1. 4. 17:24

      <바람>

  순한 양처럼, 부지런한 소처럼 꾸벅꾸벅 앞만 보고 걸어왔다. 직장과 가정의 레일을 단 한 번의 이탈도 없이 잘 버텨주었다. 남들이 볼 때는 좀 답답하기까지 한 남편이었다.

 어느 날 그 남편에게 폭풍이 불어 왔다.

 그동안 바람 한 점 일으킨 적 없이 오로지 바를 정(正)자 하나만 가슴에 품고 이순(耳順)의 강을 잘도 넘기더니….

 오는 세월 막을 수 없고, 정년퇴직이라는 벼랑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이 때를 기다린 듯 태풍은 어느새 회오리바람이 되어 남편의 몸을 싣고 낭떠러지로 향하더니 여지없이 패대기쳤다.

 정신 줄 놓고 앞, 뒤도 구분 못하는 경황 중에 대장암이라는 죄목을 단 남편은 들것에 담겨 수술실에 실려 갔다.

 그 동안의 평화와 고요는 무엇인가?

 태풍 전야의 고요를 우리부부는 평화라고 생각하고 무장해제 하고 살았다.

 태풍이 할퀴고 간 뒷자락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흙먼지가 일어나 눈앞을 가리고 머리를 어지럽혔다.

 암이란 수술자리가 아물었다고 치료가 끝난 게 아니다. 납작 엎드린 암세포는 개구리가 뛸 자리를 바라보고 눈을 굴리듯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뛸 궁리만 한다.

 뿌리 깊은 싹을 다시는 요동 못하게 내리 눌러야 한다. 독한 항암 약으로 주위를 초토화 시키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

 독한 약을 써서 적군을 굴복시킨 몸에서는 덩달아 짓밟힌 아군들의 고통소리 낭자하게 들린다. 처절하게 마비된 신경은 밥맛도 의욕도 모두 다 쓸어가 버렸다.

 그러나 태풍도 회오리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인 것을….

 바람은 머무를 수 없는 숙명을 타고났나 보다. 바람은 늘 주위를 서성거리다 마음이 빈틈을 노려 또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다. 바람은 형체도 없고 색깔도 없으면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훈풍이 돼서 마음을 들뜨게도 한다.

 지진으로 망가진 땅에도 샘이 솟고, 태풍이 지난 자리도 어김없이 새싹이 돋아나는  법이다.

 전쟁터로 몸을 빌려줬던 남편에게도 시간이 지나니 서서히 봄이 오기 시작했다. 밥맛도 돌아오고, 밥숟갈 뜨기도 힘들었던 팔이 이젠 번쩍 들어 만세를 부를 수 있게 됐다. 감각이 없어 신발을 신었는지 벗었는지도 모르던 발가락에도 조금씩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제 남편은 스스로가 바람이 되어 솔바람을 일으키며 바람처럼 쏘다닌다.

 노년기에 접어든 남자의 바람 소리를 들어 봤는가? 남편의 가슴에선 싱그러운 솔바람 소리가 들린다.

 오랜 시간 깊은 잠에서 허우적대더니, 올 봄부터는 봄바람 따라 밖으로 나오게 됐다.

 "평생 대학에 등록했어. 댄스 동아리에도 가입했고." 남편의 목소리는 갓 대학에 입학한 소년처럼 들떠 있었다. 얼굴엔 발그레 홍조까지 띠니 봄날의 복사꽃보다 더 싱그럽다.

 외롭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남편은 아마 외롭고 따분했던 모양이다.

 '이 나이에 웬 댄스? 워낙 몸치니 조금 하다 말겠지.'하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춤바람은 1년을 넘어 2년이 다돼간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나비처럼 나풀나풀, 잠자리처럼 빙글빙글 맴을 돌 때는 나이도 잊고 세상 시름도 다 잊는단다.

 오랜 공직생활에서 얻은 권위의 더께와, 긴장의 끈과, 피곤의 때를 모두 내려놓고, 그냥 한 마리의 나비인양 제비인양 누나뻘 되는 여자 파트너를 안고 스텝을 밟는 게 그렇게 재미있다니 나도 덩달아 즐겁다.

 잘 한다고 응원을 했더니 이제 남편은 청백 릴레이 선수라도 된 듯이 어깨를 으쓱인다.

 매일 대학에서 돌아오면 초등학생이 엄마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보고하듯 참새처럼 재잘거린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고 무슨 모자를 쓰고 갈까?' 외모에 대한 관심이 수위를 넘고 있다.

 어제 입었던 것 말고 다른 옷은 없느냐? 새로 산 T샤쓰는 어디 있느냐? 모자는 어떤 게 어울릴까? 아침이면 부산하게 몸치장을 한다. 그로 인해 아침공기가 물방울처럼 퐁퐁 튀어 오른다. 그리고 거울 앞을 서성이는 남자로 변했다.

 상실의 늪에서 디딤돌이 돼 준 댄스도 고맙고, 같이 파트너가 돼 준 동기생들도 고맙다.

 나이와 체면을 모두 벗고 춤바람을 일으킨 남편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친구들은 '다른 여자 붙들고 춤추는 것이 화나지 않느냐?'고 하지만, 진정으로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아픈 것보다는 춤바람이 훨씬 낫지.'라고 일축해 버린다.

 그야말로 바람 아닌가. 머무르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인 것을….  

 바람을 붙들고 안달복달하는 것은 세월을 붙들어 매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바람이 스쳐가고, 세월이 흘러가고, 강물이 내달리는 것은 자연의 이치요 순리가 아닌가?

 어떤 이는 남편의 늦바람을 질투의 대상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니 배신감이 들고 기분이 나쁘단다. 그 모든 것이 생각 나름 아니겠는가?

 남편의 춤바람은 전국을 돌며 치칠 줄 모른다. 춤추는 친구들과 전국 기행에, 맛 집 방문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신바람을 날리며 춤추고 다닌다. 만남 후에는 어김없이 한 곡을 추고 헤어진다니 늦게 부는 바람이 쉴 줄을 모른다. 폭풍과 회오리바람을 겪고 나니, 솔바람, 봄바람, 춤바람은 오히려 정겹다.

 바람을 몰고 바람처럼 달리는 남편의 바람이 언제쯤 잔잔해 질까?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이제 춤은 2년을 채우고 그만두고, 다른 대학으로 옮겨 탁구를 해야겠어."

 그럼 그렇지 그 바람이 언제까지 그를 잡을 수 있겠는가. 난 또 박수를 쳤다. 탁구 바람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탁구 라켓을 쥐고 반들거리는 눈빛으로 작은 탁구공을 응시하는 남편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을까. 강 스매시를 날리는 모습은 어느 젊은 선수 보다 더 용감하고 패기 있어 보일 것이다.

노년의 강을 건너는 남편에게서 20대의 정열을 볼 수 있어, 나 또한 젊어진 기분이다.

 한동안 침침하던 우리 집이 남편의 바람으로 인해 더욱 더 밝아지고 생기가 넘치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신바람, 긍정의 바람, 희망의 바람, 자신감의 바람, 건강의 바람이 우리 집을 중심으로 온 누리로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눈을 감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

언제든지 부르면 오겠다고. 희망과 행복을 바람에 실어 오겠다고, 귓전을 스치며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