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눈물
<대통령의 눈물>
눈물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가교가 된다. 또 감정을 정화시켜주는 청량제 역할도 한다.
뜨거운 눈물은 반가움과 진실을 담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억울함과 분노의 눈물은 자신의 울분을 알리기도 한다.
이런 저런 갖가지의 의미를 담은 눈물들이 말보다도 더 호소력이 강할 때가 많다.
눈물은 이런 개인의 갖가지 감정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개인의 감정을 뛰어넘어 더 큰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민족의 한을 가슴에 품고 바가지로 쏟아낸 장한 눈물이 바로 그것이다.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이국의 하늘아래서 땅을 치고 울었던 독립 운동가의 울음도 어느 눈물보다 값지고 위대한 용의 눈물이다.
나는 이번 뉴질랜드 여행에서 5천만 민족을 가슴에 품고 목 놓아 울었던 대통령의 눈물을 알게 됐다.
가난해서 헐벗고 굶주릴 수밖에 없었던 자식 같은 국민들을 생각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박대통령을 생각하며 나 또한 가슴으로 울었다.
보릿고개의 꼭대기에서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있는 자식들을 살려 내려고 잘사는 나라를 기웃거렸던 우리의 대통령이다.
그분은 권위와 체면과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았다.
남태평양을 건너 머나먼 나라 뉴질랜드를 노크했지만 닫힌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때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사정은 한국전쟁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인도 다음의 최빈국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누가 선뜻 돈을 꾸어주겠는가?
우리의 대통령은 전용기가 없어 이웃나라 비행기를 타고 잘사는 뉴질랜드라는 나라에 들이닥쳤다.
농부가 잘사는 나라,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을 초청 받지 못한 상태에서 체면을 내려놓은 채 찾아갔다. 그제야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국빈으로 우리 대통령을 맞아들였다.
내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에 50년 전 가난의 굴레를 쓰고 그 분이 찾아 오셨다.
오라는 초청도 받지 못했지만, 백성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체면 손상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신
분이셨다.
잘사는 농촌을 직접 보고 싶었던 대통령께서 축산 농가를 둘러보고 계셨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한참을 그러다 잠깐 차를 세워 달래서 차 밖으로 나온 대통령께서 드디어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 눈물은 바로 용의 눈물이었다. 폐부를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을 바가지로 쏟아내신 대통령이었다.
뉴질랜드 수상이 궁금해서 이유를 물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우유도 마음대로 먹고 잘 살고 있는데 한국의 국민들은 보릿고개를 넘지 못해 굶주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하셨다.
치미는 설움을 참을 수 없었던 울음보따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와 이 땅을 적셨던 그 때의 광경을 상상해 본다.
이를 지켜본 이 나라 수상이 우리대통령의 진심어린 국민 사랑에 감동 받게 됐고, 젖소 1000마리를 선물로 주었다. 거기다 젖소 관리사와 젖 짜는 기술자까지 보내주었다고 한다. 지도자의 눈물이 뉴질랜드 수상과 정부를 움직인 것이다. 그 이후 좋은 조건으로 차관도 받게 되어 우리 경제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 위대한 눈물의 씨가 경제대국의 밑바탕이 됐다.
이제 구걸하는 나라가 아닌 세계 10위권 안에 위치하는 당당한 경제대국이 된 것도 모두 그 분의 흘린 피눈물의 대가가 아닌가 한다.
나는 우리 대통령께서 흘린 눈물을 용의 눈물이라 말하고 싶다.
국민을 위해 흘리는 뜨거운 눈물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그때는 몰랐었다. 그 마음은 보지 못하고 티만 보았던 지난 일이 부끄럽다.
또 대통령께서 독일을 방문했을 때도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64년 서독을 방문해서 광부와 간호사들의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여러분이 탄광에서 흘린 피와 땀이 그리고 간병하느라 받아낸 똥, 오줌이 지금 대한민국을 잘 살게 만들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엔 가난을 물려주지 맙시다."
이 연설은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연설 보다 훨씬 더 심금을 울리는 연설이었다.
그분의 뿌린 눈물의 씨 값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지구촌 곳곳으로 관광 나온 한국인들이 넘치고 있음은 우리 경제의 힘을 말하고 있다.
곳곳의 간판에도 영어 뒤에는 한글이 씌어지고 그 뒤를 중국어와 일본어가 씌어져 있다.
이제는 최빈국이 아니라 경제 대국이다. 손에는 힘이 주어지고 어깨가 펴진다.
목장을 방문해서도 한국 유학생 목부의 안내를 받으며 뉴질랜드 땅에 "대한민국"을 소리 높여 외쳤다.
대통령께서 다녀가셨던 그 길을 차를 타고 가 본다. 그때 그 지도자의 지도력이, 국민 사랑의 따뜻한 가슴이, 없었던들 후진국의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 후손들은 앞서간 선조들의 뜻을 받아서 자신의 위치에서 임무를 다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여행은 그냥 즐긴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전진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 팀들은 박물관 대학에서 한국의 역사를 배운 지성인들의 모임인 만큼 내 집의 내 자녀부터 바른 삶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어느새 우리 대원들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돌아서는 발걸음에는 감사와 책임감도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