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에 두둥실
<창공에 두둥실>
'이 몸이 새라면 날아가리, 저 하늘 높이 뜬 흰 구름까지......'
인간의 날고 싶은 꿈은 하늘을 바라봄으로 이루어졌다. 지난 날 하늘에 떠 있는 별 하나에 꿈을 실어 날려 보냈다. 그 지난날의 허황된 꿈이 이젠 현실의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른다. 이역만 리 머나먼 길을 대형 날개에 안겨 두둥실 떠오른다. 처음엔 고층 빌딩들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더니 구름처럼 사라진다.
초등학교시절 선생님께 비행기를 타면 어떤 느낌이 드느냐고 여쭈어 본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은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면 높은 집들이 성냥갑만하고 사람은 개미처럼 보인다."고 하셔서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지금 내가 직접 비행기에 몸을 싣고 창공을 날아보니 그때 그 선생님은 비행기를 타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높고 큰 고층 건물이나 보잘 것 없는 오두막집도 아무런 차이 없이 번개처럼 시야에서 사라지는 건 마찬가지다. 이와 함께 인간사도 모두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 구름과 비, 바람조차도 내 발아래 엎드려 있다.
'단군께서 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 이 땅에 오셨다.'고 했는데 내가 지금 비, 구름, 바람을 거느리고 있다.
어린 시절 목이 빠지게 쳐다보았던 별나라, 달나라의 언저리를 날아가는 것 같다. 아마 천국도 이 하늘 어딘가에 있을 법한데 도대체 방향을 모르겠다.
발아래 뭉게구름이 목화 꽃처럼, 양떼처럼 떠 있다. 바람이 부니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나는 바람 따라 날아가는 한 마리 새가 된다. 커다란 어미 독수리의 품에 안긴 작은 새다. 커다란 날개 안에서 내 작은 날개를 파닥여도 본다.
모처럼 집을 떠난 한 마리 새는 남태평양을 가로질러 호주를 향해 날고 있다. 꿈이 현실로 다가오니 5대양 6대주가 내 품안으로 다가온다. 이제 날개를 달았으니 마음껏 날아보리라. 우리와 반대편에 있는 나라! 얼마나 매력적이냐! 계절이 반대고, 방향도 반대라는 말이네. 그 나라는 남쪽으로 창을 내지 않고 북쪽으로 창을 내겠군!
하룻 밤을 꼬박 하늘에서 보내고 드디어 남반부에 위치한 꿈의 땅 호주를 밟는다. 여행 다녀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었던 오페라 하우스! 얼마나 가 보고싶었던 곳이냐! 이참에 여기서 공연까지 한 프로 보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흰 날개를 펼친 학처럼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오페라하우스를 점령한다.웅장하고 화려한 실내 장식에 놀라며 양모로 만든 의자에 앉아본다. 특이하게 만들어진 화장실에도 들어가 보고, 손도 씻어본다. 손 씻는 세면기가 특이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페라 극장이라니 이름값을 하는구나!' 하고 감탄사를 뱉어낸다.
짙은 블루 색을 뿜어내는 계곡, 블루마운틴을 발아래 굽어보고, '유칼립투스'라는 신비의 나무도 만져 보고 냄새도 맡아본다.
예전에는 꿈에서 조차 그려보지 못했던 머나먼 나라에서 환영받는 관광객이 되어, 최고급 버스를 타고 가이드를 비서로 거닐어 본다. 시설 좋은 호텔에서 잠을 자고 격조 높은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가는 곳곳마다 발이 되어주는 버스에 오르면 외국인 기사가 냉큼 나와 가방을 실어준다.
역대 어느 왕조의 임금님이 이런 호사를 누렸을까? 군데군데의 절경들이 입을 벌어지게 만든다. 평생
먹어보지 못했던 진미를 맛본다. 이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어느 나라, 어떤 여행이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여행을 통해 생활의 활력소를 찾아내면 되는 것이니까.
낯선 거리에서 마주치는 외국인들도 정답고, 바다건너 이국땅에서 만나는 우리 조국 사람도 반갑다.
가난했던 누더기를 벗은 한국인이 지구촌에서 힘을 과시하는 자랑스러운 민족이 됐다.
공항 면세점에서도, 외국인 상점에서도 영어를 못한다고 주눅들 필요가 없다. 항시 한국인 직원이 대기하고 있으니까.
이제 어디서나 당당히 한국말을 쓰면 통하게 됐다.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한국인들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한국인 유학생이나 교민들이 없는 곳이 없으며 자신감 넘치는 그들의 표정이 싱그럽다.
세계 속에서 한국인의 힘을 과시하는 그들을 보며 노고와 성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작은 새장을 박차고 나간 어린 새가 이젠 독수리가 되어 세계 곳곳을 날고 있다. 지구촌 곳곳을 군림하는 한국인이 점점 더 늘어나기를 빌어 본다.
호주를 지나 이웃에 있는 뉴질랜드 땅에도 들어가 본다. 뉴질랜드 북 섬 하늘 아래는 대형 태극기를 펄럭이는 한국 식당이 있고, 한국인이 사장이 되어 수출 전선에 앞장서고 있는 양모 공장도 있다. 더 넓은 목장에서는 한국인 유학생이 목부로 있으면서도 두 어깨 당당히 펴고 일하고 있다. 그는 머지않은 장래에 이 넓은 목장의 주인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청년의 얼굴이 찬란한 태양빛을 받아 반짝인다.
우리 팀은 그 한국인 유학생의 선창으로 "대한민국"을 입으로 소리치고 손으론 박수를"따따따- 딴딴" 쳤다. 우렁찬 그 소리는 뉴질랜드 하늘을 날아 지구촌 곳곳을 떠다닐 것이다.
지금은 비록 짐승의 오물을 쳐내고 먹이를 주는 목부에 지나지 않지만 꿈을 가진 우리의 청년이다.
양모 공장의 사장님은 "우리 한국인은 어디를 가나 당당히 우리말을 쓰라"고 했다. 이렇게 많은 관광객을 배출하는 나라에서 당당하게 우리말을 써야한단다. 그래야만 불편한 저희들이 우리말을 배우든지 아님 한국인을 직원으로 고용하게 된단다. 그러면 한국인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우리의 지경이 넓어질 것이다.
이게 바로 애국하는 길이다. 어딜가나 우리 민족은 우수한 민족이요,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다.
내 나라를 떠나봐야 나라의 소중함을 안다고 했던가. 이렇게 지구촌에서 우리 대한의 위상을 높이는 자가 많다. 해외 동포들의 노고를 보면서 안방에서 안일하게 살아왔음이 부끄러워진다.
서푼어치도 안 되는 이익을 쫓아서 눈을 부라리는 자들은 이 기회에 반성해야할 것이다. 우리 여행자들도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담아 갔으면 한다.
11일 간의 여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른다.
덕지덕지 앉았던 아집과, 체면과, 욕심들을 이 창공에 뿌려버리고 정제된 깨끗함으로 돌아가야겠다.
오늘따라 뭉게구름이 더욱 아름답다. 지상의 모든 찌꺼기를 이 창공에 날려 보낸다.
내일 부터는 일상으로 돌아가 내 자리를 굳건히 지켜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