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세월호

류귀숙 2014. 4. 21. 14:30

                <세월호>

 시종일관 모르쇠 작전이다. 엄청난 양의 보물을 꿀꺽 삼키고도 시치미 떼고 있는 저 뻔뻔함이라니......

 밀물 되어 들어오는 바다에게 묻는다. "내 새끼 어쨌느냐?"고

 넘실넘실 혀를 내밀며 무섭게 위협할 뿐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다. 발을 구르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절규하는 자식 잃은 자들의 안타까움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썰물 되어 밀려가는 바다에게 부탁한다. "내 자식 좀. 제발 좀 찾아달라고."

 표정 없는 바다는 가족 잃은 자의 타는 가슴까지 훑고 지나친다.

 배 안에는 우리의 꽃다운 열일곱 청춘이 갇혀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을 바다 밑으로 끌어내렸는가?

 통 큰 배짱 앞에서 종 주먹을 날려 보지만 꿈쩍도 않는다.

 온 국민이 원망의 눈으로, 안타까운 가슴으로 바라본 바다는 물결만 일렁일 뿐 우리와는 대거리를  않겠단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온갖 장비를 들이대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달려들어도, 좀처럼 가라앉은 선체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수 백 명이 선체에 갇힌 채 깊은 바다에 침몰돼 있는 위급한 상황이다.

 가라앉은 선체 주위를 맴돌며 굳게 닫힌 성벽을 뚫어보려 안간힘을 써 본다.

 과학이니, 문명이니, 하며 인간의 머리로 만든 모든 기구를 동원해도 아까운 목숨을 한 명도 더 살려내지 못했다.

 자연 앞에서 망연자실 넋을 잃은 사람들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방법이 없다.

 퉁퉁 불어터진 시신만이 희망 앞에 절망으로 돌아왔다.

 세월 따라 물결 따라 순풍에 돛 단 듯 흘러가겠다는 뜻을 담고 이름도 '세월 호'라 짓지 않았을까? 그 '세월 호'가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벌렁 나자빠졌다. 일렁이는 물결이 두려워 방향을 잃은 것인가.

 그 안에는 석류 알 같은 영롱한 눈빛이 하나 가득 들어있지 않았던가! 아직도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300송이를 넘는다. 또 듬직한 가장에, 자상한 스승에, 환갑 여행 가던 젊은 할아버지들에, 아직도 젖내 나는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가득 담고도 모자랐나 보다. 욕심의 더께만큼 켜켜이 화물을 싣고, 또 실었으니 어찌 견딜 수 있었을까.

 인간들의 욕심이다. 어른들의 교만이다. 지도자들의 안일함이다.

 정도이상의 물건을 실은 욕심 덩어리가,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버린 교만함이, 위기를 준비하지 못했던 안일함이 똘똘 뭉쳐 한통속이 된 것이다. 눈과 귀를 막고 살아가는 인간의 무지함이 살 수 있는 길을 외면했다.

 멋모르고 당한 건 17세의 꽃다운 우리의 아이들이다. 금쪽같은 자식과 우리의 젊은 선생님들이다. 그리고 각각의 사연을 담고 있는 귀한 생명들이다. 이들이 100M의 바다 속에 갇혀버렸다.

 가슴이 숯덩이가 된 유족들 앞에서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무리들이 서성인다.

 언론이, 공무원이, 승무원들이, 책임자가, 서로에게 손가락 세례를 퍼 붓는다. 여기에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네티즌들이 아니다. 그들은 각종 인터넷 매체를 동원해서 말장난을 퍼질러댄다. 그 말들이 비수가 되어 상한 자들의 가슴에 내리꽂힌다.

  만약 높은 산에 올라가 맞은편을  향해 욕을 한다면 그 욕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 욕은 메아리 되어

 바로 내 가슴을 파고들 것이다.

 재난을 당할 때마다 상대에게 손가락질만 한다면 또 다른 손가락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지 않겠나?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쓰나미'라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도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위기를 극복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질서를 지키고, 상대를 배려하는 수준 높은 국민성에 경의를 표했다. 미국에서도 9.11테러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당했는데도 일치단결하여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우리들도 300명이 넘는 인명 피해를 입은 이 위기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 당한 일인데 어쩌겠는가. 이성을 가지고 사건의 수습을 우선순위에 두었으면 좋겠다. 비난과, 처벌, 비판은, 다음으로 미뤄도 늦지 않을 테니까.

 앞서서 수습하는 사람들에게는 격려와 아울러 협조도 아끼지 않는 차원 높은 국민의식이 요구될 때다. 우리 아이들이 아직도 수중에 있는데, 그들을 밖으로 구출해 내야하는데, 힐난의 손가락질은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우리 집 아래채에 불이 났는데 그때가 섣달그믐 날 밤이었다.

 객지에 나갔던 오빠가 돌아왔다. 부모님과 나 그리고 동생이 밤새워 도란거리며 모처럼 정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아래채가 환했다. 우지직 타는 소리가 뒤따랐다. 놀라 뛰어나갔더니 불길이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래채에는 돈사가 있고, 그 옆 칸에는 재를 모아두는 잿간과, 목재 쌓은 더미, 그리고 사료용 건초 등이 쌓여있었다. 아마 그 잿간에서부터 불이 난 것 같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다 이웃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소리를 지르려 해도 목소리는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바로 뒷집 아지매를 불렀다. 마침 잠 들지 않았던지 신속하게 마을에 알려 주었다.

 이 때 상황을 지휘해야할 아버지는 불 낸 사람을 찾느라 어머니를 붙들고 원인을 밝힌다고 야단이었다. '재는 누가 쳤느냐?' 며 호통을 쳤다. 불 끄는 일은 뒷전이었다.

 오빠는 아버지를 제치고 동네 사람들을 불 난 곳에서 개울까지 죽 줄을 세워놓고 릴레이로 물을 나르게 했다. 그때 마침 살얼음이 얼어 개울물 긷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 당시는 불이나면 소방차가 아닌 동네 사람들이 불을 끗다.

 오빠는 적당한 곳에 물을 퍼 부어 물의 낭비를 줄이고 순식간에 불길을 잡았다.

 오빠의 침착함과 동네 사람들의 협조로 50마리가 넘는 돼지가 안전했으며 아래채 지붕의 일부만 타고 진화되었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분기탱천하여 엄마 꾸짖기를 그치지 않았다.

 지금의 세월 호 침몰 사건을 보면서 그때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손을 모아 함께 기도할 때다. 서로가 서로에게 돌팔매질을 하지말자. 채 피기도 전에 떨어진 꽃봉오리들에게 부끄러운 짓은 더 이상 하지말자.

 막막한 대해의 깊숙한 곳에서 몸부림쳤던 우리의 희망이여! 눈물이여! 어서 광명의 세상으로 나오너라. 울부짖어도 말이 없는 우리의 아들딸들이여!

 '제발 대답이나 좀 해다오.'

 바다도 목이 메어 울부짖는다. 해맑은 영혼들의 눈물이 비가 되어 쏟아진다.

 이미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을 더 튼튼히 고쳐 다음번에는 절대로 아까운 소를 잃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은 저 바다를 보면서 우리 모두가 죄인 된 맘으로 산화된 영혼 앞에 사죄드리며 고인의 명복을 빌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