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녹음이 주는 교훈

류귀숙 2014. 5. 10. 09:49

               <녹음이 주는 교훈>

 햇솜같이 포근한 봄볕아래서 갖가지 봄꽃의 향연이 벌어진다. 노란 개나리들이 뾰족이 주둥이를 내 밀었던 때가 어제 같은데, 이젠 복숭아꽃, 벚꽃, 진달래꽃들이 연달아 피어나서 재잘거린다.

 아침에 창을 열었더니 한줄기 라일락 향이 콧속을 파고든다. 곧이어 아카시아 향이 달려올 것이다.

 온 천지가 꽃 세상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가뿐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발걸음 따라 날아드는 향기가 코끝에서 너울거린다. 눈길 닿는 곳마다 '나 여기 있노라.' 꽃들이 손짓한다.

 이 감미로운 봄날 아침에 어디선가 내리치는 벼락소리 들린다. 놀란 가슴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그 소식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봄꽃보다 더 아름다운 우리의 아들딸들이 세월 호 따라 낙화 되었단다.

 시리도록 밝은 봄빛 아래서 피어보지 못한 꽃봉오리들이 천길 물속에서 산화 되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어쩜 이토록 잔인한 봄일 수가 있을까! 창밖은 봄이나, 마음속의 봄은 천길 나락으로 떨어져나갔다.  모든 국민이 봄놀이를 취소했다. 먹고 마시는 일도 조심스럽다. 가슴 속을 흐르는 눈물은 바다를 메우고도 남는다. 지천으로 피어서 자태를 뽐내는 꽃들의 미모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루 속히 봄을 떠나보내고 싶다. 봄도 사태를 알아채고는 봄비 따라 서둘러 떠나려나보다.

 온 천지가 놀라고, 모든 국민이 슬픔에 잠겼다. 희망이었던 봄은 이미 슬픔의 봄으로 막을 내렸다. 뒤쫓아 온 봄바람이 봄을 남김없이 쓸어가 버렸다.

 그러나 슬픔도, 원망도, 절망도 세월 앞에서는 조금씩 자리를 내 주는가 보다. 

 그 사이를 비집고 신록이 들어앉더니 이젠 온통 푸름으로 물들어 있다. 그들은 싱그러움을 분수처럼 뿜어낸다. 여름의 상징인 녹음이 그 푸른 기상으로 세상을 압도하고 있다.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씩씩하게 걸어가는 녹음의 행렬이 개선장군처럼 당당하다.

 점점 더 짙어지는 녹음과 여름으로 성큼 다가선 계절 앞에서 희망을, 용기를 본다. 놀람, 슬픔, 절망은 모두 가슴에 삭혀버리고 꿋꿋하고 당당하게 일어서는 녹음에 박수를 보낸다.

 태양의 정기를 두 손 가득히  받아든 푸른 나무다. 또 땅의 수분을 뽑아 올려 부지런히 영양분 만들기를 했다. 태양 앞에 우뚝 선 푸름이여!  젊음의 불꽃을 마음껏 쏘아 올려라.

 나는 거칠 것 없는 젊음의 숨길을 느끼며 초여름의 숲에서 힐링을 받는다. 지상을 향해 쏟아 붓는 은혜의 산소를 마음껏 마셔본다. 두 팔 높이 들고, 입을 벌려 녹음의 향기를 가슴에 안고, 입으로 깊숙이 들이마셔 본다.

 슬픈 봄에 겪었던 아픔을 이제는 내려놓고 짙푸른 녹음과 함께 '앞만 보고 내달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어디에 숨어 있다가 저토록 늠름한 기상으로 푸른 불꽃을 쏘아 올릴까. 신비스럽고 대견해서 찬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저 푸름 속에는 무수히 많은 인내와 고통이 담겨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몰아치는 폭풍도 견뎌냈고, 뜨거운 뙤약볕도 견뎌냈으리라. 하늘을 찌르는 저 힘을 얻기 위해 땅 속 어두운 곳에서 뿌리는 수분을 빨아올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을 향해 펼쳐진 잎들은 그들 나름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온종일 종종걸음으로 양분을 만들었으리라. 뿌리의 고통과, 아픔과 고독은 얼마이겠는가. 또 잎의 수고는 어떻고. 봄에 일어난 슬픈 사연을 간직한 저 푸른 나무들은 가슴으로 그 사연들을 품어 안고, 저렇게 의젓하게 서 있지 않은가.

 우리는 말없는 대자연을 보면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를 얻는다.

 자연과같이 살아가는 우리인간도 고단하고 쓸쓸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서러움과 외로움도 밥 먹듯 꿀꺽 삼키고 의연한 채 서 있어야할 때가 그 얼마든가. 때론 흔들리며 발밑이 무너져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절망감으로 실의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 천 길 낭떠러지에 서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다급함으로 가슴이 숯덩이가 되었던 적이 더러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하늘을 향해 간구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나 혼자만이 소외된 것 같고 불행한 것 같아 우울했던 날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짙푸른 녹음으로 뒤덮인 산을 보면서 저 녹음 속에도 슬픔과 고독과 절망이 감춰져 있음을 짐작한다.

 어느 생명인들 목숨 부지하는데 수월함이 없었겠는가. 보잘 것 없는 풀 한포기, 벌레 한마리도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쉼 없는 도전을 해 왔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니 불행은 나 혼자만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절망과 고독이 동반되는 것 아닌가. 행복의 절정에서도 불행의 그림자는 늘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슬픔 속에도 희망의 새싹이 숨겨져 있는 것 아닌가.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 불행의 뒤에서 쫓아오는 행복을 보면서 불행을 이겨내자. 분주히 힘을 발산하는 여름날의 녹음을 보면서 우리도 최선을 다해 힘을 모아보자. 슬픔의 시간들은 과거로 돌려보내고 희망의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 털고 일어나자. 아픔도, 슬픔도, 절망도 툴툴 털어버리고 저 푸르름을 향해 달려보자. 우리에겐 미래라는 희망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여름날의 녹음을 보면서 현재의 순간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본보기로 삼자. 온 세상을 덮어씌운 우울의 장막을 과감히 벗어던지자. 언제까지 한탄만 할 것인가. 저 싱그러운 녹음처럼 푸른 기상의 젊은이들이 당당하게 일어나야한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어머니께 여쭌 적이 있다. "어머니는 9남매를 낳았다는데, 5남매를 잃고 그 순간순간들을 어떻게 극복했어요?" 했더니 "그냥 앞만 보고 살다보니 조금씩 잊게 되고 또 살아지더라."고 하셨다.

 나 또한 극한상황을 맞아보지는 않았지만 인생살이에서 어려움이 없었겠나. 한때 절망의 수렁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처럼 별 생각 없이 앞을 보니 앞으로 가게 되었다. 

 옆과 뒤를 돌아보면 주저앉게 된다. 어려울수록 미래만 생각하고 앞을 보면서 꾸벅꾸벅 걸어가 보자.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불평도 모두 과거의 늪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푸르고 싱그러운 녹음을 보면서 우리 모두 그 기상을, 그 싱그러움을 쫓아가야하지 않겠나. 그들이 손짓하는 산으로 들로 나가보자. 그들의 품에 안겨 소리라도 질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