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를 바라보며
터키를 바라보며
정복자들의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모래바람 휘날리며 말을 타고 달렸던 그 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난 이맘때쯤 비단길의 한 토막인 천산북로 길을 갔었다. 그때 그 바싹 마른 땅을 밟으며 그 길을 지나갔던 대상들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했다.
어떤 이는 구도를 위해, 어떤 이는 장사를 위해, 또 가끔은 젖과 꿀이 흐르는 행복한 땅을 찾으러 말을 달렸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길과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던 첩첩 산길도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로지 앞으로 다가올 무지개빛깔 희망만 바라보고 고비를 넘겼다.
중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자는 또 얼마든가!
이번엔 그 고난의 길을 무사히 통과해서 축복의 땅을 밟고 승리의 개가를 불렀던 그 곳에 가 보려한다.
버스를 타고 달렸는데도 고난의 경험을 덤터기로 안겨줬던 사막 길이 아니던가!
고향 땅을 빼앗기고 정처 없이 떠돌던 돌궐족들이 그 땅을 차지해서 큰 나라를 이뤘다지 않던가.
그 옛날 우리의 머리맡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이웃으로 살았던 돌궐족이 세웠다는 터키로 간다.
'생에 단 한 번 해외여행을 한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터키'라고 당당하게 대답한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몇 달 전부터 차곡차곡 쟁여두었던 기대의 보따리가 이불 보따리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꿈속에서도 들리는 집시의 노래가 나의 그리움과 하나 되었다. 내 속에 잠자던 여행 바람이 솔바람을 일으키며 나를 몰고 다닌다.
도서관을 기웃거려 터키라는 이름의 책은 모조리 찾아냈다. 책갈피에 숨어든 아련한 옛 이야기가 반짝 눈을 하고 달려 나온다. 무지가 콩깍지처럼 덮여 있는 나의 눈에는 그 모습들을 다 담을 수 없다. 수시로 달아나는 기억들도 손으로 붙잡아 억지로 머리속에 가둬 둬야만 했다.
그래도 마음은 즐겁다 온 몸이 가볍게 떠다닌다.
이제 실크로드의 종착역을 보러 간다. 중국 서안에서 시작한 비단 길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끝난다고 한다. 이번엔 이 이스탄불을 찾아서 고난을 통과한 자들의 영광을 보고자 한다.
여행은 또 다른 거울이다. 이는 겉에 나타나지 않는 깊숙한 곳을 비출 수 있는 특별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낯 선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또다른 자아가 느닷없이 얼굴을 드러내곤 한다.
드디어 출발 날이다. 낙타 타고 장삿길 떠났던 그 길, 정복자의 말발굽이 찍혀있는 그 길을 나는 비행기를 타고 간다.
부푼 가슴을 비행기에 싣고 구름을 발아래 거느리고 터키 아타튜르크(이스탄불)공항에 사뿐히 내렸다.
기대했던 땅은 역시나 넓었다. 공항의 크기부터 우리 인천 공항의 3배는 될 것 같다. 20명 남짓한 우리 회원들 앞에 나타난 차 또한 와-- 입이 벌어지게 했다. 버스의 크기는 초대형에 공장에서 바로 빠진 듯한 새 차에 조금은 주눅이 들었다.
5성급 호텔이 우리에게 환영 인사를 했다. 호텔 로비로 들어서는 순간 나의 숨을 막고 있는 것이 있었다. 왠지 기분이 으스스하다. 호텔 로비의 넓은 벽면을 가득채운 유화는 예사 그림이 아니다.
짙고 두꺼운 느낌을 주는 검은색과 피 빛을 연상케 하는 붉은 색으로 특이하게 그려진 그림이다. 내용도 알 수 없고, 휘갈긴 붓 자국으로만 보이는 문양들이 빼곡히 들어있다. 자연과는 거리가 먼 색감과 내용이 여기가 이슬람권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게 했다.
객실에도 한 쪽 벽면을 가득채운 이상한 그림이 있고, 마주보는 벽면도 온통 붉게 물들인 작은 판넬 그림이 3점이나 걸려있다. 섬쩍지근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별로 느끼지 못했단다.
여기서 나는 바닥을 깔고 있는 믿음이지만 예수를 믿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거리를 걷다보면 차도르를 썼거나 휘잡을 쓴 여인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이곳은 이슬람 천국이다.
로마 시절엔 그리스도교가 주를 이루었기에 성 소피아 성당이 위용을 자랑했는데, 오스만 제국 이후 이슬람 국가가 됐다고 한다.
곳곳에 버티고 있는 문화재마다 기독교 문화위에 이슬람 문화가 시루떡처럼 포개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나라는 아름다운 자연과 넓은 땅을 가졌으며 조상의 빛나는 문화재도 덤으로 얻은 나라다. 부족한 자원을 만회해 보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 비해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이 나라는 개조차도 여유롭다. 사람들이 붐비는 문화재 앞에서도 네다리 쭉 펴고 단잠을 자고 있다. 발길질하는 사람이 없나보다.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개들도 목줄 없이 다니며 사람보고 으르렁대지 않는다. 사람을 따르며 호의적이다.
6시만 되면 가게 문을 닫는 다고 하니 국민들의 삶이 여유롭다는 것이다.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에 못
미치지만 부의 분배는 잘 되는 모양이다. 하기야 관광 수입이 얼마냐! 성 소피아 성당, 블루모스크, 톱카프궁전, 돌마바흐체궁전 등의 입장료가 각각 1만 5∼6천원 정도니 깨 쏟아지듯 하는 관광객들이 뿌리고 가는 돈이 어마어마할 것 아닌가! 조상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터키가 부럽다.
산맥을 넘고 사막을 건너 도착한 실크로드의 종착지 '그랜드 바자르'는 5000여개의 점포를 갖춘 대형 시장이다. 그 옛날의 영광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각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물건을 고르고, 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시장은 시끌벅적하다.
그 당시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 때는 어떤 언어가 통용 됐고, 어떤 화폐가 사용됐는지 궁금하다. 물론 물물 교환도 이루어졌겠지만 화폐도 쓰였을 것 같다.
터키는 한마디로 살아있다.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쏟아져 기름 솥처럼 들끓고 있다. 터키인들은 여유롭다. 그리고 다혈질이다. 거기다 인정도 많다.
내가 만난 터키 아저씨는 우리들이 자신의 올리브 밭에서 사진을 찍고 올리브도 몇 알 따고 있었는데, 가까이 오더니 한 줌을 더 따서 준다. 중국 여행길에서 목화밭을 만나 사진 찍고 목화 꽃을 만지다 야단맞은 일을 생각하니 대조적이다. 터키는 우리나라를 형제의 나라라며 각별하게 대접한다. 바자르에서 물건 살 때도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형제라며 악수를 청한다. 터키는 동 서양의 역사를 켜켜이 담고 있는 떡시루 같은 곳이다.
이번 여행길은 좀 더 많은 것을 담고 간다. 또다시 오고 싶은 곳 터키를 뒤로하며 다시 오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