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 흙으로 돌아온 아들
<한 줌 흙으로 돌아온 아들>
포성 소리와 함께 떨어진 아름다운 꽃, 희생의 꽃, 숭고의 꽃.
그 꽃들은 영롱한 빛을 내며 한 송이 불꽃으로 산화됐다. 한국 전쟁의 포화 속으로 단숨에 달려온 젊음이여! 피 끓는 청춘이여! 이국 땅 먼 하늘아래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을 외면하지 않았던 터키의 아들들이여! 그들의 나이는 19세에서 20세를 갓 넘긴 꽃다운 나이였다. 한창 인생의 미래를 바라보며 무지개빛깔 꿈을 꾸고 있을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그 옛날 이웃하며 살았던 정을 상기 아니 잊었나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우리나라를 형제의 나라라 생각하는 마음을 쌓아두고 있었던 것 같다. 형제의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터키 정부는 그 옛날 고구려에 구원병을 보냈던 심정으로 기꺼이 응했다. 그 숫자도 아낌이 없다. 정말 통이 큰 나라다.
터키는 15,000명에 달하는 전투병을 파병했다. 그들의 용맹은 한국 전쟁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9.28 수복 후 북으로 밀고 올라가던 우리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위기에 처했다. 이 때 터키군은 전멸 위기에 처한 미2사단을 구하려 중공군 진지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착검을 한 채 "알라후 아크바흐"(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돌격하여 중공군을 혼내줬다.
이렇게 터키군이 중공군과 싸운 전투는 평북 군우리 전투로 가장 치열했던 전투였다. 미국, 영국 다음 3번째로 많은 군을 파병했다. 인구도 별로 많지 않은 나라에서 젊은이들을 총동원하다시피 해서 배를 태웠다. 터키는 종전 후에도 이 땅을 지키려 계속해서 1960년까지 병력을 보냈다니 놀라운 의리다. 그들은 형제의 나라가 위기를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동생을 도우려는 형의 심정으로 기꺼이 부산행 배를 태웠을 것이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있는 한국공원 문 앞에 섰다. 우뚝 솟은 충혼탑을 보며 그 때의 불꽃 튀기던 전쟁을 상상해 본다. 숙연한 자세로 충혼 탑 앞으로 다가간다.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무릎이라도 꿇고 싶다. 그들의 영혼이 천국에서 평화를 누리길 기도드린다. 동족끼리 피 흘리는 전투를 벌여 이웃나라 청년들의 목숨까지 희생시켰던 나라 국민이다. 부끄러움이 태산처럼 앞을 막는다. 터키 정부와 참전 용사들에게 면목이 없다. 보답하는 길은 우리가 잘 사는 길이다 그들의 피를 헛되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때 그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와 같은 처지의 나라를 도우는 일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탑을 감싸고 있는 담장의 4벽을 전사자들의 명단으로 도배를 해 놓았다. 생년월일과 전사자의 이름, 전사한 날짜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까지 적혀있다. 여기서 뿌리를 소중히 여기는 국민성이 우리와 닮은 것 같다. 4벽면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마지막 명단의 일련 번호가 765번이다. 전사자가 765명이라는 말이다. 그들의 생년월일은 대부분 31년생에서 30년 29년 28년생이다. 그러니 당시 50년에 전쟁이 났으니, 19, 20, 21 ,22살짜리의 젊은 청년인 셈이다. 그 외에 부상자도 실종자와 합쳐 3,000명 정도가 된다. 살아남아 귀국하는 병사들은 전우의 주검을 가져올 수 없으니 한국 땅의 흙을 한 줌씩 가져다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 정부에서는 1973년 11월 터키 한국 공원에 참전 탑을 세우고 이듬해인 1974년 9월에 경기도 용인시에 터키군 참전비를 세웠다.
참전탑 앞에 서니 귓속을 파고드는 그날의 포성과 꽃다운 청년들의 모습이 눈앞은 스친다.
우리가 이렇게 풍요를 누리며 머나먼 이국땅에 여행객으로 오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에 생존해 있는 참전 용사들을 한국으로 초대한 적이 있다. 그때 그 꽃다운 청년은 80이 넘은 노인이 돼서 전우를 묻고 온 한국 땅에 도착했다. 그리움 한 자락 품에 안고 전우의 이름을 불러봤을 것이다. 그 참전용사들은 폐허가 되었던 한국의 놀라운 발전을 보고 기뻐 뛰며 자신들의 수고가, 전우의 흘린 피가 헛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때 한국에 초대되었던 참전 용사들은 한국의 뉴스를 즐겨 본다고 한다. 한국이 잘 살기를, 좋은 소식이 들리기를 빈다니 이 또한 든든한 후원자가 아닌가! 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손 대대로 터키와 형제처럼 교류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포화 현장에서 숨져간 젊은 넋을 기리며 그들이 가져온 한 줌의 흙이 터키를 넘어서 세계로 뻗어나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계인의 도움으로 되찾은 평화가 아닌가! 잘 지키는 것만이 후손이 할 일이다. 이제 종북이니 친북이니 좌익이니 하는 단어들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날을 겪어 보지 못한 후세대들의 객기도 이젠 봐 줄 수가 없다. 온 국민이 하나 되는 것만이 살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