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카파도키아

류귀숙 2014. 10. 21. 23:41

      카파토키아

 아름다운 하늘을 이고 푸른 풀밭에서 풀 뜯는 말떼들이 평화스럽게 보인다. 신기한 돌들은 초가지붕에 눈이 쌓이듯 볼록볼록 솟아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앞에서 그 솜씨에 찬사가 절로 나온다. 어쩜 이런 바위들이 있을 수 있을까. 고개 들어 위를 보고 발아래도 굽어본다. 늦가을 햇살이 명주실처럼 가닥가닥 내리 비치는 가을 날 오후다. 눈부신 햇살아래 속살을 드러낸 대자연의 신비 앞에서 떨림을 감추지 못한다.

 햇살이 내 키를 한자나 키워준 오후. 신비한 자연 속에서 나를 따라붙는 큰 키의 나를 데리고 고개를 휘돌려 본다. 꼭 새송이 버섯을 닮은 바위들의 군무를 보며 나는 동화 속 공주가 된다.

'말이 서식하는 아름다운 땅'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카파도키아.' 성경 속에 등장하는 꿈의 도시 카파도키아에 왔다. 몇 달을 벼르고 별러서 여기까지 왔다. 신비한 자연의 모습에 놀라며 창조주의 깊은 뜻에 감사드린다.

로마 박해 시절 이 땅에 은신처를 마련해 주신 건 그 분의 뜻이었을 것이다. 돌덩이들이  물러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신 것을 보면...

 아주 먼 옛날 이 땅의 깊은 곳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사방이 용암으로 뒤덮여 지질이 변하고 지형이 변했다. 또다시 오랜 세월 갈고 다듬는 연단의 시간을 풍화작용에 맡겼더니 이렇게 멋진 경관이 연출됐다.

 이곳이 단연 터키의 백미다. 자연과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대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놓은 곳이 바로 이곳 카파도키아다. 이 곳은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위치에 있어 동서양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대상들이 이곳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쉼을 얻었을 것이다. 또 이곳은 동과 서를 잇는 무역 로의 역할 외에도 기독교의 중심지였다.

 로마 때 잔인한 박해를 받던 기독교인들이 이곳으로 몰려왔다. 당시 기독교인들의 박해는 우리나라 조선 말기의 신유박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야수의 가죽을 기독교 신자들에게 씌우고 사냥개를 풀어 물어뜯게 했고, 십자가에 못 박아 매달고는 불에 태워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게 했다. 잔인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박해를 이겨낸 믿음의 조상들이다. 여기서 고난의 역사 한 자락을 펼쳐보는 계기가 됐다. 이런 고난 사를 디딤돌로 삼은 우리들은 지금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오늘 그 박해 당시의 처절했던 현장의 모퉁이에 왔다. 로마황제의 잔인한 박해를 받던 기독교인들이 이 카파도키아를 찾았다. 주께서 피난처 되시니 이 땅의 돌들을 무르게 하시어 쉽게 팔수 있게 하셨다. 이 돌들은 응회암이라 팔 때는 쉽게 팔 수 있으나 공기와 접촉하면 단단해지는 특징이 있단다.

 '데린구유'라는 지하도시는 그 이름이 깊은 우물을 뜻한다. 이곳에 기독교인들이 지하8층까지 파 내려가 단속의 눈을 피했다. 허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숙여 그때 그 믿음의 선배들이 드나들었던 문으로 들어간다. 밖에서 보면 몸 하나도 겨우 들어가는 작은 문이지만 그 속은 엄청나다. 현재까지 발견된 지하도시만 해도 40여개가 되며 그 크기 또한 다양하다. 그 중 가장 큰 지하도시가 바로 데린구유다. 1만 명을 수용했다고 한다.

 이 속에는 대형 집회장, 교회, 마구간, 와인을 만드는 와인너리, 종교학교, 대피소, 등 다양한 공간이 있다. 인간 개미가 되어 굴을 파고 숨어 지내야 했던 그분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불안했을까. 햇빛 한줌이 그리웠을 것이다. 지하 굴속이라 온 몸에 습기가 달라붙는다. 희미한 전깃불만이 희미하게 갈 길을 알려 준다. 이 때 정전이 된다면 어떨까? 그러지 않아도 그걸 대비해서 벽에 홈을 파서 짚고 나올 수 있게 해 두었다. 전기가 없었던 그 당시는 어떻게 불을 밝혔을까? 생각해 본다. 어느새 내 몸도 촉촉이 젖고 눈가에도 이슬이 맺힌다.

 이런 곳에서도 짐승을 키우고 자녀 교육을 시켰으며 환기구를 만들어 통풍을 시켰단다. 인간 세상이 아닌 듯하다. 이런 곳에서 대를 이어 생명을 유지했다니 그 지혜와 인내가 놀랍다. 

 또 괴레메 골짜기에는 원추형의 바위 속에 동굴을 파서 교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승인으로 지하에 숨어있던 기독교인들이 빛을 보며 자유롭게 생활하게 됐다. 그러자 점차 신앙의 강도가 떨어지게 됐다. 그 옛날 어둠 속에서 신앙을 지켜왔던 그 때를 생각하며 영성을 다지고자 이 골짜기에 석굴 교회를 세워 예배를 드렸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교회와 수도원들이 있다. 멀리서 보면 원추형의 바위들이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이렇게 기독교인들이 벌처럼 개미처럼 집을 짓고 신앙을 지켜냈던 고난의 현장에 서니 내 작은 믿음이 더욱 작아진다.

 최근에는 이 석굴을 카페로, 식당으로 또 호텔로 이용하는 곳이 많이 있다. 우리 일행도 지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식당에서는 항아리 케밥과 구수한 녹두스프를 먹으며 색다른 분위기에 젖었다. 이날 저녁은 석굴 호텔로 숙소를 잡았다. 방에 들어가니 벽은 자연 그대로의 흰 돌벽이고 침대랑 욕실 등은 현대식으로 꾸며놓았으나 특유의 냄새가 났다. 하루 저녁이야 어떻겠는가! 좀 눅눅하면 어떻고 추우면 얼마나 춥겠나. 그래도 온수가 나오고 전깃불이 낮처럼 환하니 지낼만했다.

 이번 카파도키아 여행은 내 인생에 다시없을 큰 경험이었다.

 자연의 경이로움, 그 자연을 이용한 인간의 지혜,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잔인하게 괴롭히는 인간성의 악랄함을 똑똑히 보았다.

 다음에 한 번 더 오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