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김장
들말처럼 들판에서 마음껏 자유롭던 녀석들이다. 푸른 하늘과 실 비단 햇살을 받으며 영글고 영글어간 그들이다. 때로는 몰아치는 폭풍과 송곳처럼 내리꽂히는 장대비도, 목이 타는 가뭄도, 참고 참으며 자존심 하나로 버텼다.
그들은 자신이 짊어진 숭고한 임무를 잘 안다. 그래서 한여름의 뙤약볕을 이겨내며 쉼 없이 영양분을 모아둔 것이다. 가을 햇살을 한 몸으로 받고부터는 그들의 가슴엔 식탁을 장식할 꿈 하나가 싹트기 시작했다.
배추는 인간이 불러주는 그 시간 이웃하며 자라던 무, 파, 등과 함께 손아귀에 덜미가 잡혔다. 곧이어 짐짝이 되어 트럭에 실리고 더러는 자동차 트렁크에 실려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됐다. 숨 막히는 고통을 참으며 한껏 상하는 자존심을 누르고 눌렀다. 동장군이 버텨 서서 사람들의 활동을 옥죄는 겨울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싱싱한 무, 배추를 골라 김장을 하게 된다.
얼어붙은 들판에서 채소를 구할 수 없는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 조상들은 늦가을에 채소를 거두어 김장이라는 채소 저장법을 찾아냈다. 김장 김치는 땅에 묻히어 이듬해 봄 새 채소가 나올 때까지 반찬이 되어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했다.
요즈음은 겨울 내내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채소들이 부족함 없지만, 어디 제철에 수확한 김장 배추에 비길 것인가! 저장 기술도 발달해서 가을 철 배추가 봄까지 있다고 하지만 그 맛은 적당한 시기의 맛에 한참 뒤쳐진다.
양은 줄었지만 그래도 때가 되면 집집마다 김장은 연례행사가 된다. 찬바람이 기웃거리고 된서리가 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주부들은 김장 걱정에 어깨가 무겁다. 마주 대하는 인사말도 '김장했습니까?'로 바뀌게 되면 괜히 몸과 마음이 바빠진다.
단단하게 알이 찬 배추를 반으로 쭉 자른다. 속이 노랗게 익어 고소한 맛이 묻어난다. 한 잎 쭉 찢어 된장에 찍어 맛을 보니 고소하다. 들판을 달리던 강인함과 한껏 세운 자존심 때문에 풀풀 살아서 뛰쳐나갈 기세다. 고삐를 잡아채듯 우는 아이 달래듯 소금을 뿌린다. 배추 잎 사이로 스며든 소금이 배추에게 타이른다. '이젠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라.'고.
처음엔 목이 곧고 뻣뻣하던 배추가 자존을 죽이고 넘치는 힘을 죽여 다소곳해지기 시작한다, 필요 없는 아집과 욕심의 물기를 적당히 빼내는 임무는 소금이 맡았다. 소금의 눈부신 활약으로 제법 모양새가 갖추어진 절인 배추가 됐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20대의 푸르디푸른 시절을 닮았다. 고비 풀린 말처럼 종횡무진 내달으며 이유 없는 반항으로 꼿꼿이 목깃을 세우던 모습과 흡사하다. 여기에 세월이 소금이 되어 30대를 넘기게 되면 취업과 결혼 또 출산 육아 등으로 숙일 줄 모르던 고개가 조금씩 숙여지게 된다. 곰삭은 젓갈처럼 절인 배추처럼 가슴이 넓어져 주위를 안을 수 있게 된다. 한껏 차분해진 절인 배추는 고향 친구인 무, 파 등을 안아 들이고 고추, 생강, 마늘을 불러들인다.
한편 바다를 무대로 물살을 가르며 은빛 비늘을 퍼득이던 멸치, 칼치, 새우 등이 중매자 소금을 만나게된다. 소금에 적당히 버물어진 생선들은 곰삭고 곰삭아 비린내 대신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젓갈이 된다.
그물에 걸려 은빛 비늘을 퍼덕이던 멸치나 새우도 작지만 그들 나름으로 콧대를 세웠다. 이때도 소금이 어르고 달래서 젓갈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 거듭나게 했다.
겨울 먹거리를 위해 들판이나 바다에서 자유롭던 이들이 김장이라는 이름 밑에 모여들었다. 한국에서는 반찬 중 반찬은 단연 김치를 꼽는다. 김치만 있으면 겨울 반찬은 걱정이 없다. 생김치는 생김치대로 아삭거리며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익은 김치는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김치 국에 김치 부침에 김치찌개까지 다양한 형태의 응용 반찬을 만들 수 있으니 이보다 더한 반찬이 어디 있을까.
많은 재료들이 이리저리 얽히고설켜서 만들어진 김치 맛을 본다. 이 김치 맛은 세계적이다. 중국인들도 일본인들도 우리 김치를 좋아한다.
일본에도 김치는 있지만 우리 땅에서 자란 채소와, 우리 바다에서 자란 어물과, 우리 손으로 만든 소금을 흉내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양념 듬뿍 넣고 버무린 김장김치 한 쪽을 베어물어본다. 잘 익은 홍고추가 눈을 즐겁게 하더니, 구수한 젓갈 냄새가 입안을 감돌며 알싸한 마늘맛과 생강 향이 코끝으로 스며든다. 듬성듬성 섞인 파와 양념과 함께 버무린 무채도 아삭한 맛을 내 준다.
이렇게 많은 재료들이 한데 어울려 맛의 합창을 하고 있다. 그럼 그 지휘자는 누굴까? 바로 소금이다. 함지박에 그득히 담겼던 소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맛있는 김치를 만들기 위해 배추 속으로 젓갈 속으로 스며들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역할을 해 낸 것이다. 소금이 있어 생선을 곰삭은 젓갈로 만들었고, 배추의 숨을 죽여 다른 재료들과 잘 어울리게 도왔다.
이렇게 많은 역할을 한 소금의 진가를 자칫 간과하고 배추나 고춧가루의 공으로 돌릴 뻔 했다.배추와 무가 아무리 우수하고 생선의 질이 좋다 하나 소금이 없으면 맛을 낼 수 없지 않은가? 또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김치가 몇 달을 견디고 생선이 젓갈이 되어 몇 년을 상하지 않은 것도 모두가 소금의 역할 때문이 아니겠는가?
인간도 이 세상을 오염시키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소금의 역할을 담당해서 이 부패한 세상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
각계 각 층에서 아직도 자존을 지키며 청렴하게 살면서 이 땅의 부패를 막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때문에 이 땅이 이 세대가 유지되는 것이다.
연말을 맞아 구세군 냄비가 곳곳에서 종을 울리고 있다. 그들도 이 땅에서 오몀을 막는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나는 가정에서 또 내가 속한 단체에서 내가 할 역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작으나마 화합하는 길로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길로 가야한다고 다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