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류귀숙 2015. 2. 5. 08:23

          길

 모처럼 8차선 넓은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마라톤 경주라도 하듯 옆 차선의 차들과 어깨를 겨누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질주하는 재미도 꽤 괜찮다. 짜릿한 스릴과 가슴으로 스며드는 시원함이 막힌 하수구가 뻥 뚫린 듯하다.

 90을 넘긴지 몇 년이 지난 친구 시모의 문상을 가려고 나서는 길이다. 부음을 받고 장례식장에 가는 길인데도 슬픔보다는 고요한 평화감이 고개를 살짝 내민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며느리인 친구를 힘들게 했던 그 앙금이 사라진 탓인가? 아님 90을 넘긴 노인이라 소용가치가 없어졌기 때문인가?

 연세가 80이 넘은 사람이 돌아가셨을 때는 '호상'이라며 슬픔보다는 오히려 시원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쨌든 한 인간이 태어나서 적멸로 가는 길인데  마음속에 슬픔과 아쉬움이 없다니 씁쓸하다.  오죽하면 '축 사망'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나도 머지않은 날 그 길을 갈 것인데 나 역시 이런 존재가 아닐까! 내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된다.

 90수년을 이 땅에 족적을 남기며 험난한 길을 걸었음이 짐작되는 망자다. 그런 망자이기에  염치없는 나의 감정은 양심의 찔림을 받았다. 이때는 연기가 필요하다. 속마음을 감추고 얼굴에 슬픈 표정을 덧칠하고 상주를 만나야한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나와 같은 감정의 배를 탄 문상객들이 식장 안을 메우고 있었다. 모든 문상객들의 인사가 '수고했어, 이제 편히 좀 살아야지.'였다.

 장례식장 분위기도 어느 어르신의 생신 잔치라도 된듯 화사한 웃음꽃이 봄 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 인생이 왔다가 마지막 길을 떠나는데 후련한 분위기라니….

 적당한 때 떠나지 못해서인가. 아님 자신의 욕망만 붙들고 주위를 힘들게 한 족적 때문인가.

 내 마지막 길도 이렇게 한 송이 낙화만도 못한 가치 없는 존재로 떠나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또 다른 분위기다. 깜깜한 도로엔 가로등이 하나 둘 일어나 별빛처럼 반짝인다. 여기다 자동차들이 내 뿜는 불빛까지 합세해 어느새 별이 빛나는 밤이 되고, 나는 차 안에서 우주선을 탄 기분을 맛본다. 구름 속을 둥둥 떠서 은하수를 건넌다.

 찬란한 빛을 받으며 출발했는데 돌아가는 길은 달빛 없는 어스름 밤이다. 한껏 부풀었던 가슴에는 어느새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겠다는 불안감이 스멀댄다. 내비게이션을 켜 놓고 정신을 바싹 차리고 앞을 응시한다. 나를 인도하는 건 이제 내비게이션뿐이다. 그것을 등대삼아 조심을 두 팔에 얹고 두 눈에는 신경을 곧추세운다. 드디어 길잡이의 멘트가 나온다. '100m전방에서 서울 부산 방면 고속도로 입구로 진입하세요.'

 이정표를 보니 서울 부산과 함께 광주 마산이 모두 떠 있다. 드디어 광주 마산이 나오고 서울 부산이 다가 온다. 내 머리는 방금 길을 하나 지났으니 두 번째 순서는 서울 부산이리라 생각하고 그 길로 들어섰는데 '아차!' 간발의 차이로 실수하고 말았다.

 이제는 목적지와 반대방향인 광주로 향해  달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쭉쭉 뻗은 직선 도로가 이렇게 위협적일 수가 없다. 한때는 시원스럽게 느꼈던 고속도로가 나를 알지 못하는 나락으로 이끌 것만 같다. 최첨단의 길라잡이도 이때는 나를 인도하지 못했다.

 이제 어쩌나, 불안하다. 아차! 실수의 결과는 엄청나다. 안내 멘트는 유턴이라는 소리만 지껄여 댄다. 난  아예 그것의 입을 막아버렸다.

 지름길을 놓치고 에둘러 힘겹게 가야할 일만 남았다. 한 번 잘못된 길은 얽킨 실타래처럼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방향을 잡아보자. 이 때 머리 속을 맴도는 생각은 '북쪽으로 가자'였다.

 북극성을 보고 방향을 가늠했던 옛 선조들의 지혜가 생각났다. 이제 조급함과 불안을 내려놓는다. 느긋한 맘으로 북쪽으로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에둘러 가는 길이 더욱 운치 있는 길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옛 선조들이 별을 길라잡이로 삼아 길을 찾았던 그 지혜를 빌리기로 맘먹었다.

 이제 직선 도로는 끝나고 좁고 굽은 곡선 길을 만나도 두렵거나 초조하지 않다. 굽은 길은 어느 동네

 앞을 지나면서 불빛 비치는 창가를 엿보는 즐거움도 안겨 줬다. 거기에는 단란한 가족의 실루엣이 언듯언듯 비친다. 그리고 고양이와 개들의 속닥임도 보인다. 직선 길이 지름길이라면 곡선 길은 에둘러 가는 길이다.

 우리 삶에도 어디 직선 만 있겠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곡선 보다는 직선을 고집한다. 나 또한 직선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지름길을 찾으려고 아득바득 살아 온 날들이 스쳐지나간다. 그 곳에는 온통 욕망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직선만 고집하다 긁힌 수많은 자국들을 헤아려 본다. 인생길에는 직선 뒤에서 숨죽이고 있는 또 다른 길이 있다. 수많은 곡선들이 얽히고설켜서 우릴 인도하지 않았던가.

 한동안 내가 잊고 살았던 그리움의 길이 생각난다. 그 길은 치맛자락을 휘어 감듯 산기슭을 에두르고 샛강을 따라 자연의 순리를 범하지 않는 꼬부랑길이었다. 봄에는 가지마다 조롱조롱 매달린 벚꽃이, 가을엔 노란 은행잎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이런 길이 아름다운 길이며 이상적인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쁜 숨 가다듬고 이제 욕망도 살짝 내려놓고, 자연이 도로를 품고 있는 고즈넉한 오솔 길을 걸어보는 게 어떨까 싶다.

 골목 길 벗어나 돌고 돌아 얼마를 지났을까 드디어 우리 집에 도착했다. 지름 길 놓치고 안타까웠던 마음은 이제 고향을 다녀온 듯한 뿌듯함이 자리했다. 내일도 또 모래도 내 눈 앞에는 많은 길들이 다가올 것이고, 나는 또 하나의 길을 택해 걸어갈 것이다. 그 길이 비록 가시밭길이거나 질척이는 진흙길이라도 앞만 보고 나아갈 것이다.

 지름길만 고집했던 욕망을 살짝 내려놓으면  오솔길도 유익이 있다. 오솔 길 속에는 낭만이 있고 여유가 있다. 인생의 참 진리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내가 마지막 길을 떠날 때는 나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쉬움 한 점 남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마지막 순간 돌아 본 나의 족적이 그래도 타인에게 부담은 주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하지 않겠나.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적멸의 순간까지 내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이 되고 싶다.

 남은 길이 쭉쭉 뻗은 고속도로든  산기슭 오솔 길이든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이제 내가 길이 되어 나만의 길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