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반란

류귀숙 2015. 2. 18. 11:02

            반란

 갑자기 입이 '딱'하고 벌어지더니 눈앞에 번갯불이 '번쩍'하고 일어났다. 이게 웬일인가! 앉았다 일어서려는데 체중을 지고 일어서야할 기둥이 말을 듣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 만해도 시내를 내 집인 양 누비고 다니다 시삼촌이 계신 요양병원까지 다녀왔는데….

 정말 모를 일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시삼촌의 처지나 내 처지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중요한 역할을 맡은 다리가 설을 이틀 앞둔 시점에서 왜 반란을 일으키는가! 일단 덜컥 주저앉아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눈앞이 캄캄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벼락이라도 내리친 듯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에라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벌렁 드러누웠다. 한 숨 돌리고 대책을 세워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누워서 내 몸 구석구석에서 들려주는 항의의 소리를 들어본다. 제일 먼저 허리가 나에게 경고했었지. 그때가 벌써 2년 전이었다. 구부리는 자세는 자제하고 근육운동과 뼈를 위한 섭생을 좀 하라고 했었다. 그러나 내 입맛이 시키는 대로 단 것만 먹으며 골 감소 작전에 동참했다. 2년 사이 키가 2cm 줄어들어도 끄덕도 안했다. 의사선생님도 골 감소에 돌입했으니 섭생을 잘 하라고 했으나 그 말도 흘려보냈다.

 수시로 허리는 살려달라고 요통을 무기로 보챘다. '그래 좋아! 좀 쉬면되겠지.'라고 맘먹고 빈 깡통처럼 드러누워 이리저리 뒹굴며 T.V를 향해 해바라기를 했다. 그러나 그건 순간일 뿐 자존의 갈기를 꼿꼿이 세우고  들 말처럼 내달으며 그들의 항의에 답했다. '설마 강하게 나오면 수그러들겠지.'하는 생각으로 강하게 밀어 부쳤다.

 

언제부턴가 늙어가는 노인들을 보면 나는 저 부류에 들지 말아야지, '저렇게 추한 모습은 나에게 용납할 수 없다.'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들은 또 나의 욕심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편과 같이 평생 대학에 다니자는 것도 뿌리치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되도록 기피했다. 미래의 내 모습을 바라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 기웃거리다가 탁구 클럽과 중국어 회화 반을 선택했다. 

 내가 다니는 탁구 클럽과 또 중국어 반에서는 대부분이 나보다 10년 이상 아래의 연령이다.

 그들과 보조를 맞추자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내 나이는 버리고 그들 따라 탁구 레슨을 시작했다. 남이 격렬하게 뛰면 나도 뛰었고, 상대를 공격하려고 공격 연습에 매진했다. 좀처럼 뚫리지 않는 성벽을 향해 욕심으로 깁스한 팔로 스매싱 연습에 강도를 더해갔다.

 어느 날부턴가 오른 팔이, 뒤이어 어깨가, 왼팔까지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래도 내딛은 발을 멈출 수가 없었다.

 며칠 전에는 중국어 반에서 산행을 갔는데, 젊은이 둘은 다리가 부실하다고 등산은 못하고 개울에서 쉬는 도랑조가 되었다. 그들의 겸손을 본받지 않고 도리어 보란 듯이 내가 앞장서서 올라갔다. 젊은이들 앞에서 주눅 들기를 두려워했던가? 아님 젊은이들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한 발악이었는가?

 오늘 다리의 대 반란을 당하고 보니 이제는 백기를 들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내 몸에 가해한 해악들을 되짚어 본다.

 교만과 과욕의 갑옷을 입고, 자존의 투구를 눌러쓰고, 흐르는 세월을 거슬러 오르며 세월에게 칼날을 휘둘러 도전했던 죄목이 수면위에 떠오른다.

 수시로 일어나는 반란군들과 적당히 협상을 했어야했다. '살려 달라는 반란군의 아우성에 좀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하고 후회를 해 본다.

 참다못한 그들은 한 통속이 돼서 최후의 통첩을 보내왔다. 아예 기둥뿌리를 흔들어 바깥출입을 못하게 하겠단다.

 이제는 패배를 인정하고 분수를 깨달아야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패배자에게는 변명이 필요 없고 말없이 인정하는 길만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일을 피하는 길이다.  반성과 겸손으로 현실을 직시한다면 또 다른 길도 있지 않을까.

 지금에서야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아픈 다리를 두 팔로 끌어안고 태아처럼 오도마니 앉아서 말년을 보냈던 어머니의 모습이 내 모습위에 오버랩 된다. 어머니의 삶은 골격이 약한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보여주는 산 증거요 역사다. 무리한 가사일로 인해 40대에 벌써 관절염 판정을 받은 어머니다. 그 삶을 옆에서 지켜보고서도 이렇게 미련을 떨었으니 아둔하기 짝이 없다.

 82세에 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다리를 펴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어 말년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 진통제가 아니면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 부작용은 더 큰 부담을 주었다.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얼굴이 붓고, 또 모세 혈관 팽창으로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꼭 술에 취한 것 같아  흉하게 보였다.

 어머니는 나에게 한 말씀을 남기셨다."넌 나를 가장 많이 닮아 뼈가 약하니 조심해라."라고 경고 하셨다. 이런 어머니의 산 역사와 경고를 무시하고 천방지축으로 날뛴 죄목도 떠오른다. 남편과 딸아이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병원 문을 열었다. 이젠 의사의 처분만이 나를 구해 줄 동아줄이다.

  아픈 다리를 내어 놓고 순한 양이 되어 기다렸다. 다리를 이리 저리 돌리고 또 엎드려 뒤 부분까지 속속들이 조사했다. 6장의 사진이 내 무릎을 증언하리라.

 판사 앞에 선 죄수처럼 초조한 맘으로 판정을 기다렸더니 의사의 미소가 보인다. 안심해도 된단 말인가? 수술은 안 해도 되겠지. 생각하며 의사의 입술을 주시했다. "슬개골이 이탈 됐습니다. 상부 슬개골이 왼쪽으로 틀어져 있어 치료하지 않으면 관절염이 됩니다." 이는 무릎관절의 상부에 있는 관절이 옆으로 틀어졌다는 말이다.

 놀란 가슴이 조금은 진정됐다. 그럼 수술은 안 해도 된단 말 아닌가? 치료하면 걷는데 지장이 없을 수도 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무지몽매한 나를 그래도 버리지 않으셨다는 생각이 든다.

 "무리한 운동은 안 됩니다. 등산, 계단 오르기, 등은 더욱 안 되고요. 조심하지 않으면 재발의 위험이 있으니 깁스를 하고 3개월 간 조심 하세요." 의사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이제는 잘 지켜 보겠다고 순한 어린아이처럼 대답했다. 약봉지 받아들고 의사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그 말씀대로 따르리라는 맹세도 덧붙였다. 가장 먼저 탁구장에 전화를 걸어 레슨을 포기하겠노라 알리고, 내 몸을 편한 이불위에 뉘어 본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반란의 소리 하나하나에 귀 기울일 것을 약속했다.

 이제 오만과 과욕, 자존심 등을 이불위에 살짝 내려놓고 모처럼 평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