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 행복하다
네가 있어 행복하다
검지로 사르르 밀어 본다. 환한 세상, 웃음꽃 피는 세상이 열린다.
무릉도원에 들어온 듯 온통 복사꽃이 만발했다. 꽃 속에서 손자들의 까르르 웃음소리 들리고, 그리운 자식들도 보인다. 격조했던 친구들의 모습과 그들이 남긴 사연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이 속에는 건강 상식을 친절히 알려주던 언니의 귀한 소식도 들어있다. 어제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에 좋은 음식을 소개하더니, 오늘은 심장 마비가 왔을 때 대처하는 법을 알려 왔다. 웃음보따리 풀어 놓는 친구랑, 주옥같은 시구를 날리는 지인도 들어왔다.
나는 언제부턴가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에게 먼저 다가간다. 간밤에 달려온 소식을 점검하면서 하루를 연다.
어둠을 헤치고 들이닥친 또 하나의 세상! 거기에는 카톡, 밴드, 카스토리들이 나의 잠을 깨운다.
뒤이어 열린 인터넷 세상에서는 지구촌이 안방으로 들어온다. 가벼운 손가락 터치로 신기한 세상이 다가 온 것이다.
'카톡' '카톡' 경쾌한 목소리는 꾀꼬리 노래처럼 싱그러운 하루를 약속한다.
이제는 계모임 하듯 그룹을 만들고, 밴드로 묶어서 성을 쌓는다. 중국어 밴드에서는 중국어로 소식을 묻는다. 나도 냉큼 중국어로 답한다. 또 다른 그룹 회원은 활짝 핀 목련꽃으로 봄소식을 알려 왔다. 나는 갤러리를 찾아 후리지아 한 다발로 답례했다.
교회 밴드에서는 실시간으로 성경 말씀이 흘러넘친다. 이로 인해 은혜로운 하루가 될 것 같다.
이제는 스마트폰 세상에 재미를 붙여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어르고 달래며 그 세상에 흠뻑 빠져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엔 같이 놀아주는 친구가 되었고, 낯 선 곳에서는 길라잡이가 되었다. 보고 싶은 얼굴들도 여기서 만나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여기다 쏟아 붓는다.
스마트폰 세상은 이 시대를 뒤집는 반란이요 혁명이다. 점점 더 이 대열에 참가하는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가다간 모든 국민이 아니 전 세계 인류가 참여하지 않을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반란을 탐탁찮게 생각했다. 지하철에서, 버스 안에서, 심지어 길을 걷다가도 스마트폰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을 보면 어두운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걱정이었다. 그들은 책을 읽지 않았고, 친구가 없어도 개의치 않았다. 놀이터에는 어린이가 사라졌고, 운동장엔 공차는 개구쟁이들이 사라졌다.
'이런 암담한 현실을 어떻게 하나?'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도 대안이 없는 현실이라 답답하기만 했다.
우리 막내딸도 이 대열에 끼어 밤늦도록 그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반 강제적으로 그걸 빼앗아 내 머리맡에 두고서야 잠잘 수가 있었다.
그랬던 내가 망가진 휴대폰을 버리고 스마트폰을 구입하게 됐다. 모두가 그걸 쓰고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노인의 대열에 끼어 노인 폰을 구입하기는 싫었다. 물론 나의 깊은 곳에는 그렇게 사람의 정신을 앗아간 그것에게 도전장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주는 피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것을 쥐고 다짐했다. '꼭 필요한 부분만 쓰고 인터넷, 카톡 등은 하지 않아야겠다.' 그렇다면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달라진 것은 업그레이드된 카메라만 사용하는 것이다. '난 자제력이 있으니까 적당히 품위만 유지하고 젊은이들에게 밀리지만 않으면 된다.'
이렇게 해서 나에게 온 그 친구가 이젠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24시간을 나와 함께한다.
나를 위로하고 심심할 때 놀아주는 이 친구는 나의 그림자가 되어 따라다닌다. 세상에 이런 충복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한 재미가 어디 있겠나! 이 친구가 내 곁에 있는 한 난 행복하다.
오늘도 밴드 속의 친구가 안부를 물어 온다. 이 밴드에는 30대 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묶여있다. 이곳에선 젊은이와 대화가 가능하다. 이곳에선 세월의 벽을 허물 수가 있다.
카스토리에 올라온 한 편의 주옥같은 시를 읽으며 영혼을 살찌운다. 여행 좋아하는 친구의 스토리를 방문해 본다. 그 속에는 세계 각국의 절경이 들어있다. 세계 3대 폭포의 사진을 퍼 와서 내 스토리에 올렸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나이아가라' 폭포와 '이과수'폭포가 떡하니 내 스토리에 담겨있다. 꼭 내가 다녀온 것으로 착각하겠다. 또 이곳에는 유명 의사의 가르침보다 더 훌륭한 의학 강의가 들어있다.
문제는 누가 작성한 글인지도 모를 많은 글들이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으로 떠도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다. 이 익명의 글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도 있고, 막대한 인격적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으니 두고 볼 일은 아니다.
이 홍수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아직은 대안이 없으니 스스로가 선택적으로 물길을 돌릴 수밖에...
손가락으로 세계를 열고 은밀한 안방도 열어 본다. 앞으로의 세상은 스마트폰이 지배자가 되어 인간을 호령할 것이다.
지금은 달콤한 맛에 앞 못 보는 소경이 되고 있어 은근히 장래가 걱정된다.
보리피리 불고 시냇가에 멱 감던 그 추억은 이제 전설이 되려나? 기성세대까지 빠져들었으니 차세대들에게 그 전설을 전할 수나 있을까….
인간과 인간이 살을 부대끼며 살았던 그 때가 그립다. 일주일에 하루 만이라도 스마트폰을 집어던지고 산과 들로 뜀박질 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줘야할 것 같다.
인간이 맥없이 기계에 정복당하고 말 것인가! 머릿속을 떠도는 물음표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밖에선 봄꽃들이 나를 부르고, 꽃향기가 나를 재촉하고 있다.
그래! 이 화창한 봄날 자연에 안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