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징검다리
신경숙 소설집 '풍금이 있던자리'를 읽고.
<추억의 징검다리>
추억의 편린들이 징검다리를 건너와 지금의 동네에서 오롯이 피어났다.
과거와 현재의 두 친구가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인생길을 동행하는 모습이 보인다.
급박한 현실에 밀려 저 만치 물러났던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한발 앞으로 다가와 아련한 꿈에 젖게 하는 이 소설 '풍금이 있던자리'는 비슷한 종류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으로, 잠재의식 속에 내재한 의식 위주의 소설이다.
그림 그리듯 시를 쓰듯, 아름다운 필체는 이 소설의 곳곳에서 읽는 이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데 한 몫을 했다.
소설 전반에서 시냇물이 흐르듯 담담한 분위기가 느껴졌으며 고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참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표제작 '풍금이 있던 자리'는 편지글 형식의 독백으로 사랑과 현실의 굴레에서 방황하는 한 여인의 심리 묘사가 잘 되어 있었다.
이린 시절 어머니를 몰아냈던 아버지의 여자에 대한 추억이 회상 되면서 내가 취하고자 하는 사랑의 부도덕성을 인식하게 된다.
주인공은 모처럼 얻은 사랑을 포기함으로써 나로 인해 상처받은 여러 사람들까지 나의 상처로 껴안게 되어 한층 더 승화된 사랑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책에 실린 '신경숙' 소설의 대부분이 사건의 형상화 보다는 의식의 내면화에 더 치중했다고 본다. 작가도 말했듯이 비사회성이 짙게 깔려 있었고 비논리적인 면도 많아 작가의 의도를 쉽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인물 '이숙'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숙'이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과거에 사로잡혀 현실에서 밀려난 아버지를 보며 자란 그녀는 현실에 대한 공포증 때문에 몸부림 쳐야만 했다. 그래서 사라진 것을 동경하게 되고 거대한 공룡이 살았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현실에 적응 못하고 주변으로 떠도는 현 시대 젊은이의 표상이 바로 '이숙'같은 인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젊음의 터널을 넘기지 못하고 좌초해 버린 '이숙'을 보며 우리 인간의 잠재의식 속엔 '이숙'과 같은 의식이 내재해 있지 않을까? 텅 빈 현실 힘겨운 현실에서 원초적인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심리 말이다.
그러나 '이숙'은 죽어 이름을 남겼으며, 그의 존재는 산 자에게 큰 의미를 주었다.
'새야 새야'에서는 벙어리 형제가 겪는 현실 부 적응을 나타냈다. 사랑에 배신당해 죽음을 택한 형과 거지 여인을 얻어 가까스로 사랑을 찾은 동생. 그러나 그 사랑도 버려야만 하는 현실에서 오는 절망감. 소외감. 그래서 그는 어머니의 무덤을 택해 안주 했다. 어머니의 자궁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리 또한 '이 숙'의 죽음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어머니의 무덤을 파 해쳐 걸인 여자와 모태 속으로 잠적하는 행동은 너무나 비현실, 비논리적이라 볼 수 있겠으나, 인간의 의식 저 쪽에서 부르는 소리는 이런 것이 아닐까?
'멀어지는 산'은 현실에서 멀리 떠난 중동의 사막에서 방향을 잃고 소멸해 가는 인간의 고뇌를 그렸으며 '저 쪽 언덕'은 개를 화자로 등장시킨 독특한 소설로 종가 집 며느리와 그 딸이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모습과 딸만이라도 이 현실을 벗어나기를 바랐으나 도중 하차하고 만다.
이와 같이 여러 작품의 주인공들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루어 인간의 가슴 속에 잠재한 고뇌를 잘 표현했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의 또 다른 의식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현실에 적응하려는 진취성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본다. 그래서 좀 더 진취적인 심리성도 다루었으면 좋겠다. 고뇌를 극복한 인간의 모습을 만나고 싶다.
이 소설의 전 편을 흐르는 분위기는 과거의 의식이 원인이 되어 즉 그 과거가 쇠사슬이 되어 현실을 묶어버리는 행동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과거의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하게 되었다. 지금의 현실이 미래의 과거가 될 것인 즉 현실을 잘 살아야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모처럼 의식의 내부까지 조명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