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같은 사람
산 같은 사람
내겐 산이 하나 있다. 너무 높아 힘겹지 않고, 너무 낮아 만만치 않은 그런 산이다. 그 산에 오르면 가슴이 트인다. 그 산에는 사시사철 그늘이 있어 양산처럼 뜨거운 태양을 막아준다. 그 산에 오르면 하루 종일 지쳤던 심신이 쉼을 얻는다. 때로는 손수건이 되어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고, 의자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남편이란 앞산처럼 늘 가까이서 무수히 많은 길을 내어 내 앞길을 인도한다.
인연이란 정말 예측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이라는 전환 점에서 참 인연을 만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그때는 자유를 깨고 구속으로 향한다거나, 혼자에서 둘이 되는 문으로 들어서기가 망설여졌다. 이 사람 저 사람이 인연의 줄을 이어주려 했지만 선듯 줄을 잡기가 두려웠다.
그런 찾기 어려운 인연이 정말 거짓말 같이, 도둑 같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때는 그게 인연인 줄 몰랐다. 다만 어느 줄이라도 붙들어야할 시점이었다. 그래서 등 떠밀리듯 잡은 줄이 바로 남편과 맞잡은 인연의 줄이 되었을 뿐이다.
부담 없이 밥 한 그릇 먹자기에 부담 없이 그 곳에 갔었다. 그때 그 점심 한 그릇이 인연의 굵은 동아줄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혼자의 길을 포기하고 동반자와 동행하는 길을 엉겁결에 선택하고 말았다.
그래도 그때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마음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혼과 동시에 무지개 빛깔이라 믿었던 환상이 착각이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실은 서슬이 퍼렇게 칼자루를 흔들며 위협했다. 현실에 끌려 끝없는 미로 속을 헤매기도 했고, 안개 속을 앞 뒤 분간 없이 걷기도 했다. 수시로 풍랑과 폭우가 몰아쳐 고통의 쓴 맛을 안겨 주기도 했다. 외나무다리 같은 아슬아슬한 곳에 올라 곡예사가 됐던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제야 알게 됐다. 결혼은 사랑의 종착점이 아니라 된서리 내리는 냉랭한 현실이란 것을….
이 때 손잡아 함께한 남편이 내게 산이 되었다. 이 산은 나를 이끌고 산꼭대기를 오르며 좌절을 극복하게 했고, 희망의 약을 처방하기도 했다.
상처 많은 도마에다 수심 깊은 칼금을 그어댈 때마다 넓은 바다의 세계도 보여줬다. 처음엔 시행착오로 천방지축 날뛰다가 엎어지고 넘어졌던 때가 얼마든가? 그 처음이 연륜에게 자리를 내 주고 부터는 한 숨 돌리는 여유가 생겼다. 버겁기만 하던 짐들이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하던 때라 기억된다. 많은 세월동안 내게 산이 되어 이끌어 주었던 그 손이 하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꼬질꼬질한 감정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더니 뒤집힌 고집과 아집이 거품을 물고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자꾸만 쌓여가는 미움의 높이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왔다. 이래서는 동반자 관계조차 위협 받는 게 아닌가 싶었다. 생각 끝에 그 번들거리는 묵은 때를 세탁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세탁기의 스위치를 누르고 덕지덕지 앉은 욕심과 아집과 교만, 자존심, 등의 묵은 때를 세탁기 속으로 밀어 넣었다. 우르르 물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묵은 때를 보며 조금씩 가슴을 열어갔다. 그러나 악착같이 달라붙은 상처들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이것들은 표백제를 넣고 푹푹 삶아 깨끗한 물로 여러 번 헹궈냈다.
세탁된 남편 옷과 내 옷을 빨래 줄에 가지런히 걸어 본다. 옷과 옷이 훨훨 날개 짓하며 펄럭인다. 서로에게 무수히 해댔던 못질을 생각하며 결 고운 햇살 속으로 상흔을 날려 보낸다.
철없던 젊은 시절엔 스스로의 껍질에 자신을 가두고 상대를 향해 손가락을 겨냥했었다. 그 길이 꽃길인지 가시밭길인지도 모르고 담쟁이처럼 위로만 오르려고 했다.
눈 깜짝할 사이 갑년이란 세월을 훌쩍 떠나보내고 거울 앞에 선 서정주 시인의 누님처럼 거울을 본다. 이젠 좌회전이든 우회전이든 유턴이든 한 번은 왔던 길을 되짚어봐야겠다. 의사가 청진기를 대고 진단하듯 걸어온 발자취를 진단해 본다.
손잡아도 아쉬운 삶인데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응답이 돌아온다. 한 번 생각하고 두 번 생각하고 세 번 참는다면 갈등으로 얽긴 실타래가 술술 풀릴 것이라는 답도 찾아낸다.
버리고 씻어 내니 쳐다본 하늘이 높고 푸르다. 이젠 인연의 끈을 붙잡고 얼레를 당기듯 팽팽히 당겨보련다.
어느 가난한 부부가 밭을 가는데 소가 없어 아내는 소가 되고, 남편은 쟁기를 메고 밭을 갈고 있었다. 이들 부부가 밭을 갈 때는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집보다 쟁기 줄이 더 팽팽했다. 지나가던 행인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농부가 말했다. "나는 당기는 아내가 힘이 들까봐 있는 힘을 다해 쟁기질을 했고, 아내는 남편이 힘들까봐 죽을 힘을 내서 쟁기를 당겼다,"고 했다. 이 이야기가 바로 부부관계의 답이 아닐까? 부부십계명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가쁜 숨 몰아쉬며 달려온 길 헤아려 보니 40년이 다 돼간다. 이제는 허리띠 풀어 놓듯 다 내려놓고 남은 소풍놀이 시간을 즐겁게 보낼 일만 남았다. 우리 만남의 아름다운 순간들만 퍼 올려 남은 길은 꽃길을 걷듯 그렇게 향기롭게 살고 싶다. 산책길에서 만난 길모퉁이처럼 그렇게 가벼이 세상 소풍을 끝낼 수 있기를 바란다.
순간 번쩍하고 번연개오(幡然開悟)의 빛이 머리를 비춘다. '지금까지 살아온 여정에 남편은 내게 월척의 행운이었다.'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횡재수(橫財數)를 만난 것이다.'는 깨달음이다.
살아온 여정에서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할 뿐이다. 인간은 종국에 가서는 혼자겠지만 40년 가까이 거울처럼 마주보고 살아온 세월이 바로 행운이었다는 게 사실이다.
남편이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지금까지 산처럼 버티고 서서 바람벽이 되었다. 또 허전한 빈자리마다 남편이 채워주었다. 온 집안 꽉 차게 퍼지는 햇살을 가슴으로 받는다.
남편과 마주한 자리에는 은은한 국화차가 같이하며 말없이 눈빛만 주고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