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곁눈질로 본 일본

류귀숙 2015. 6. 21. 22:29

   곁눈질로 본 일본

 '일본이 우릴 받아들일까?' 이렇게 '메르스' 확진 환자와 사망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데...

 두 달 전에 이미 오사카 여행을 계획했기에 그때는 '메르스'라는 복병이 밀려 올 줄 몰랐다.

 출발 날짜는 다가오고 메르스의 기세는 더욱더 힘을 뽐내고 있었다. 여행사로 부터 취소 통보가 날아들까 조마조마했다. 왜 하필 그놈의 메르스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담! '이번 여행은 날아간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까다로운 일본이 메르스 발병국가인 우리들을 받아들이겠단다.

 이건 무엇을 뜻하는가? "너희들이 겁내는 메르스를 우린 겁내지 않는다."라는 교만인가? '아님  이 기회에 돈을 좀 벌어보자는 건가?'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가 한국전쟁으로 몸살을 치르고 있는 틈을 타서 돈을 왕창 벌어들였던 일본이 아니던가? 그때를 생각하니 오라는 것도 별로 고맙지 않다.

 혹시 발병 당사자국인 우리에게 공항에서 까다롭게 검색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본 공항에 내렸다. 당사국이니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겠다 싶어 마스크 눌러 쓰고, 입은 다물고, 곁눈질만 하면서 검색대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열재기도 없었고, 메르스와 관련된 어떤 까다로운 절차도 없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수월하게 통과시켰다. 일단 출발은 순조로웠다. 이제 색안경은 벗고 곁눈으로 일본을 보기로 했다.

 김해 공항에서 1시간 20분 걸려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지척에 있는 이웃이다. 우리나라의 제주도에 가듯이 일본 땅에 내렸다.

 바다 위에 상판을 깔고 공항을 건설했다는 간사이공항부터 기를 꺾었다. 일본 기술의 우위에 부러움 반 얄미움 반의 마음으로 공항을 돌아보며 눈을 흘겼다.

 '고베'의 바닷가 '하버랜드'에서는 19세기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민족이 하역 인부가 되어 일했던 부두를 상상해 본다. 지금은 현대식으로 말끔하게 정비돼 있으나 그때는 창고가 즐비한 부두였단다. 이곳에서 고향 떠나 노동했을 우리 조상들의 애가(哀歌)가 귓전을 울린다.

 오사카시로 들어가 '도톰보리' '신사이바시'의 번화가를 걸어 본다. 복닥거리는 게 꼭 서울 동대문 시장에 온 것 같다.

 거리 곳곳, 상점 곳곳을 가득 메운 중국 관광객과 작은 자리를 차지한 우리 관광객, 그리고 물건을 파는 일본인들로 거리를 메우고 있다. 지금은 3국이 한자리에 모여서  매매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숫자적으로도 우세에 있고, 돈까지 물 쓰듯 하는 중국 관광객을 상대로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두 나라를 곁눈으로 슬쩍 본다. 나도 몇 가지 물건을 사려고 시도를 했는데 일본어를 모르니 힘이 든다. 대부분의 직원이 중국인이라 한국 직원 찾기가 어렵다. 상품 라벨에 한국어나 중국어, 영어 등 외국어는 하나도 없다. 오직 일본글 밖에 없다.

 겨우 소화제와 마스크 그리고 멀미약을 샀는데 설명서에도 일본어만 있다.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 선진국이라는 나라가 타 민족에게 이렇게까지 배려를 않는다니! 속이 부르르 끓어오른다.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으나 관광지 어느 곳에도 한국어 설명서나 한국어 안내판이 없다.

 대조적으로 유럽은 곳곳에 한국어로 표기된 안내문과 한국어 설명서가 있었다. 물건을 살 때도 한국말로 하면 즉각 한국 직원이 온다.

 여기서 일본인의 돼먹지 못한 오만에 눈을 한껏 흘겨본다.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는데,' 일반 슈퍼에서는 물건을 사지 말고 면세점에서 고가의 물건만 사라는 뜻인가?

 이번 일정에 포함된 문화재 관광은 오사카 성과, 교토의 청수사, 나라시의 동대사가 대표적이다. 오사카 성은 일본의 3대 성의 하나로 그 규모가 장대했고, 성의 안팎 둘레에 해자(垓子)를 파 놓고 적의 접근을 막았다. 중요한 것은 그 해자의 물을 인부를 통해 길러다 부은 것이라니 착취의 현장을 보는 것 같다. 또 성을 쌓을 때 우리나라 기술자들을 끌어들여 쌓았다고 한다. 이래서 이웃끼리는 싸우면서도 영향을 주는 관계인 셈이다.

 일본의 전통 거리는 목조 건물로 자그마한 규모에 아기자기하게 정리된 물건들에 정이 갔다.

 또 일본은 잡신들이 득세하는 나라다. 청수사 가는 길 곳곳에 조그마한 돌 신을 모셔놓고 미신적인 금줄을 쳐 놓았다. 아직도 일본인은 보잘 것 없는 잡신에게 치성을 드리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00년 전에나 있음직한 모습이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불안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주문을 적어 놓고 소원을 비는 모습이 그것이다. 이런 모습은 중국에도 있었는데 일본이 더하다는 생각이다.

 이 두 나라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영혼이 가장 맑고 사고가 합리적이다. 기독교나 불교, 유교 등의 우수한 종교가 바탕에 깔려 있어 미신 등에 의지하지 않는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청수사는 깎아지른 절벽에 139개의 기둥을 세워 절벽위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간사이공항을 물위에 띄운 기술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이렇게 과학기술이 발달한 나라가

 나약한 모습으로 미신에 기대는 것을 보면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민족이다.

 또 일본의 잔인성을 들 수 있다. 옛날 사무라이들의 할복은 익히 들어 그 잔인성을 알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청수사 절벽아래에 있는 마지막 계단 밑에 뾰족한 대나무를 박아놓은 것을 봤다. 이는 청수사에서 기도를 마친 성도가 뛰어내리는 풍습이 있는데 십중팔구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요행히 살아남은 사람이 굴러 내려오면 마지막으로 대나무에 찔려 죽게 해 놓았다. 잔인하기 짝이 없다.

 내가 본 일본인은 잔인하면서도 그 마음속에 불안을 안고 나약한 모습으로 신에 의지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본인의 이중성을 곁눈질 하며 내려갔던 자존심을 세워본다.

 그래도 일본은 과학이 발달했고 기술이 우수하여 그들이 만든 물건은 믿을 만하다. 그러니 이웃나라 일본을 어찌 미워만 하고 있겠나. 그들이 앞서가면 바싹 쫓아가며 앞지르기를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