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매미
가마솥처럼 푹푹 쪄대던 더위를 품었던 8월도 벼랑 끝에 섰다. 이제 아침저녁엔 열기를 뿜어댈 기력조차 잃었는가 보다. 더위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니 밤잠이 훨씬 수월해졌다.
간사한 사람들은 썰렁한 밤공기에 창문을 닫으며 말한다. "더위도 별 것 아니구먼.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래도 더울 때가 좋았지. 추위가 오면 어쩌지." 이렇게 엇갈리는 생각과 말로 떠나려는 더위의 뒷덜미를 잡고 있다.
아침에 창문을 여니 아파트 뒤쪽 숲 속에서 목이 찢어져라 울어대는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은 여름을 보내고 싶지 않은 대표적인 곤충이다.
나도 아침엔 꽤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그 녀석이 더 일찍 일어나 난리를 친다. 오늘은 여러 마리가 울어댄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소리의 높이와 양을 모두 쏟아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최후의 한 점 소리까지 다 소진해야만 그만둘 기세다.
여름의 곤충이라면 단연 매미가 으뜸이다. 매미의 노래는 누가 뭐래도 최고점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외모까지도 받쳐주고 있다. 아름다운 색깔의 날개로 꽃을 찾아 하늘거리는 나비의 몸매에는 못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매미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몸체에 잠자리 날개 같은 얇은 날개까지 있어 어느 곤충의 외모보다 더 아름답다. 또 깨끗하기 이를 데 없는 고상한 곤충이다. 가지런히 날개 접고 높은 나무 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모습은 우리네 선비들의 모습을 닮았다. 하이얀 두루마기 펼쳐 입고 까만 갓을 단정히 쓰고, 시조를 한 수 읊는 선비의 모습이다.
매미는 배가 고파도 인간의 밥상을 탐하지 않는다. 또 더러운 시궁창을 넘보지도 않는다. 오직 높은 곳에서 고운 목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워 주기도 하고 상한 기분을 풀어주기도 한다.
더운 여름 날 길을 가다가 매미 소리를 들으면 더위에 묻어있던 끈끈한 짜증이 날아가 버린다. 여러 매미가 여기저기서 한 성부인 소프라노로 울어대도 아름다운 하모니의 합창으로만 들릴 뿐 전혀 시끄럽지 않다.
무거운 눈꺼풀 비벼 뜨고 일찍 일어난 아침, 매미에게 또 선수를 뺏겨버려 억울했는데, 그 울음보가 내 억울함을 실어갔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라 기억된다. 목청 좋게 울어대는 매미를 내 손안에 넣고 싶었다. 마침 우리 집 감나무에서 매미가 울어대길래 그걸 갖고 싶다고 오빠에게 부탁했더니, "매미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라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는 갖고 싶은 것은 꼭 갖고야 말았다. 일이 풀리지 않으면 최후의 무기를 들이대는 수밖에….
징징 울고 찡찡거리면서 떼를 쓰는 게 가장 큰 무기였다. 이 무기를 들이대면 어쩌겠나! 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신경 사나워 견딜 수 없었으리라. 이 무기는 아버지를 제외하면 다 통했다.
한참을 실랑이하다 오빠가 드디어 백기를 들었다. "그래 알았어. 딴 사람은 못해도 이 오빠는 할 수 있어. 내가 잡아 줄께."라며 외양간으로 가더니 소꼬리 털을 몇 가닥 빼왔다. 가는 소꼬리 털은 가늘면서도 질겼다. 소꼬리 털로 올가미를 만들어 장대에 끼우고는 살금살금 감나무 밑으로 갔다. 한 창 우느라 정신 팔린 매미 한 마리가 올가미에 걸렸다. 손 안 가득 들어오는 그 매미의 손맛을 잊을 수가 없다. 동그란 두 눈에 파닥이는 날개, 징그럽지 않고 오히려 귀여운 몸매를 가졌다. 무기까지 들이대며 손에 쥔 보람이 있었다. 날개를 파닥이며 도망치려는 것을 오빠가 실로 묶어 주었다. 그런데 그 매미가 내 손에 들어와서는 울지 않았다. 오빠에게 또 우는 매미를 잡아달라고 하자, 매미 울음보를 건드려 울게도 해 주었다. 장난감이 귀하던 시절이라 잡힌 매미는 소처럼 끌려 다니며 하루 종일 장난감 노릇을 했다. 그때 나는 7살이었고 오빠는 고등학생이었다.
매미가 소리를 내는 게 울음이 아니고 아마 노래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운 여름이 좋아서 친구들이랑 모여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노래하며 즐긴다는 생각을 했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아무 걱정 없이 노래만 하는 매미가 한없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 삶의 무게나 부피 때문에 그 부러움마저도 잊고 살았다.
언젠가 그 소리는 노래가 아니라 피 울음이라는 것을 매미의 일생을 통해 알게 됐다. 매미는 15일의 삶을 위해 7년간 땅 속에서 애벌레 상태로 살아야 한다. 6년 동안 4번 허물을 벗고 7년 째 되는 어느 날 여름 6년의 어둠을 뚫고 땅 위 세상으로 흙을 헤치고 나온다. 그러니까 7년 만에 성충인 매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매미가 살아 갈 날은 15일 뿐이다. 이 시기에 짝짓기를 해서 후손을 번식시켜야 한다. 이 보름동안 짝짓기 상대를 찾기 위해 수컷 매미가 목청껏 울어대는 것이다.
어제 소낙비가 한줄기 내린 후 햇빛이 비치더니 이때다 싶었는지 매미가 울어댄다. 가는 여름을 붙잡고 울어 대는 저 매미는 아직도 꿈을 이루지 못한 모양이다. 3일 밖에 남지 않은 8월이다. 매미는 절박하다. 9월이면 가을의 문턱이니 갑자기 서리라도 내리는 날에는 그 꿈을 접고 적멸로 가야한다. 가는 세월을 붙잡고 아직도 못다 이룬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사나 별로 다를 게 없다.
결혼 적년기가 넘도록 짝을 찾지 못한 젊은이나, 일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는 구직자도 절박하기는 매미와 매 한가지다. 그 중에서 제일 절박한 인생은 노년에 접어들었으면서도 꿈을 이루기는커녕 덜컥 병마에게 덜미를 잡힌 자가 아닐까.
2주간의 삶을 알고서야 어떻게 매미를 함부로 잡을 수 있겠나? 어린 시절 매미 잡고 놀았던 추억이 죄스럽다. 그리고 매미에게 미안하다.
"우는 손" <유홍준>
오동나무 밑을 지나가는 데 아이 하나가 /다가온다.
동그랗게 말아 쥔 아이의 손아귀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얘야 그 손 풀어 매미 놓아주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평생 우는 손으로 살아야 한단다.
매미의 일생을 알고 나니 이 시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나도 그 때문에 우는 손으로 살고 있는 것인가!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내 몸에 남은 온기가 식기 전에 매미처럼 우렁차게 울면서 꿈을 찾아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