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스케치
목욕탕 스케치
이곳에는 진실만이 존재한다. 가면극의 주인공이 쓰고 있던 탈을 벗어던지듯 가식을 벗어던진다. 그야말로 자연인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이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던 아담 이브의 모습이다. 비록 한정된 공간이긴 하지만 높낮이도 없고 위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지위 같은 자격이다.
원시림 같은 이곳에 들어오면 옷이나 신발을 벗어던진다. 그들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다. 물론 향수를 뿌려 특별한 향을 내지도 않는다. 이곳에는 자연 냄새인 물냄새와 향긋한 비누 냄새가 후각을 사로잡고 있다. 오직 순수, 자연 등과 같은 고상한 단어들만 떠다닌다.
수증기 속에 감추어진 실루엣은 세세한 결점을 적당히 커버해 준다. 꼭 어스름 달빛 아래서 모두가 미인이 되어보는 기분이다.
나는 여기서 한 마리의 인어가 되어 유선형의 미끈한 몸을 물속에 담근다.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넓은 탕 안에 흥건히 녹아내린다.
어깨 너머로 보이는 출렁이는 바다 속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고기떼처럼 인간 물고기들이 유영을 한다. 그 뒤를 자유와 평안과 휴식이 따라붙는다. 고정된 틀 속에 있던 자신을 풀어헤치고 모처럼 무아의 경지로 들어간다. 따끈한 물속에 몸을 담그니 스르르 눈이 감긴다.
머리 속에선 한 마리 물새가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한참 만에 반 눈을 뜨고 목욕탕 안의 군상들을 살펴본다. 처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탕 밖에서 오이 마사지 하는 젊은 새댁, 우유로 온몸을 샤워하는 미끈한 몸매의 아가씨, 그리고 번데기 주름 같은 쪼글쪼글한 몸을 주체 못해 엉거주춤 앉아서 때를 미는 노인, 수영장에나 온 듯 물장구 치고 헤엄쳐서 앞으로 쑥쑥 나가는 아이들 등 가지각색이다.
누드가 되니 편하다. 무겁고 불편한 껍데기를 벗으니 비로소 존재감이 찾아온다. 비누로 온 몸을 헹구고 때 수건으로 때를 박박 밀어 본다. 덕지덕지 앉아있던 긴장이 떨어져 나가고 걱정 근심이 달아난다.
언제 부턴가 목욕탕이 초호화판으로 변했다. 여기에 들어오면 불편 없이 모든 것을 구할 수가 있다. 대부분 찜질방 까지 겸하고 있어 하룻밤 쉼터로도 충분하다. 한증막, 숯가마, 아로마 실, 소금 찜질 실, 황토방, 수면실, 휴게실, 등 등 헤아릴 수 없는 시설들로 손님을 부르고 있다. 이렇게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어릴 적으로 더듬어 올라 가 보면 그때 시골에는 공동 목욕탕이 없었다. 여름에는 개울에서 씻으니 별 문제가 안 됐지만 겨울은 큰 문제였다. 가을이나 봄은 따뜻한 날을 잡에서 가마솥에다 물을 데워 헛간이나 부엌에서 전신 목욕을 했다. 그러나 겨울에는 그럴 수 없으니 겨울 내내 얼굴이나 몸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아이들이 많았다. 이들의 손등은 까마귀처럼 새까맣게 때가 앉아 있었고 벌겋게 언 손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래도 부지런한 사람은 손발이라도 개끗히 하려고 소죽 끓인 솥에다 물을 붓고 데워서 조약돌로 손발의 때를 밀었다. 언젠가 조약돌로 때를 밀다 너무 세게 밀어 발등에 진물이 나고 껍질이 벗겨지기까지 했다.
그 당시는 아침 조회가 끝나면 '용의 검사' 시간이 있었는데 손, 발, 머리카락을 검사했다. 손발에 때가 덕지덕지 앉은 아이들은 선생님께 혼이 났다. 어떤 날은 개울로 쫓겨나 씻고 오기도 했다. 추운 겨울 찬물에 때를 씻을 수는 없는 일인데 어떻게 씻었는지 모르겠다. 혼을 내줘 다음부터는 잘 씻으라는 경고였을 것이다.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다. 난방 시설이 부족하던 그때는 얼마나 추웠던지 손발이 얼어 동상에 걸리는 아이들도 많았다.
겨울철 목욕은 설 무렵에 꼭 한 번했는데, 마을에 하나 뿐인 욕조를 차례대로 이용했다. 물을 길러다 붓고 장작을 때서 물을 데웠다. 불 조절이 제대로 안되니 수온 조절이 어려웠다. 너무 뜨겁거나 차가워 감기 걸리기 십상이었다. 다행히 몇 년 후 면 소재지에 공동탕이 생겨 편리하게 됐다. 이곳에서는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나는 이곳을 피해 버스를 타고 멀리 읍내 목욕탕까지 가서 목욕을 했다.
좀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 목욕 문화의 근원을 살펴본다. 목욕이야 오래 전부터 하지 않았겠나. 목욕재개하고 하늘 신, 땅 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니 고대의 목욕은 종교의식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현대식 대중탕은 1924년 평양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하니 100년이 다 돼간다. 그동안 많이도 발전했다. 그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으니 복 받은 사람이다.
40∼50년 전만 해도 아무리 대형 목욕탕이라고 해도 욕조가 하나뿐이었다. 물론 70년대 초까지도 온탕과 냉탕 정도 밖에는 없었다. 이제는 목욕의 개념에서 힐링의 장소, 휴식의 장소,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외국의 경우는 우리 보다 한 발 앞섰다. 스파르타 인들은 기원전 344년부터 열기 욕을 창안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그 유명한 로마 목욕탕이 탄생한 것이다. 로마 목욕탕은 청결의 의미를 넘어서 사교장의 역할을 했다. 내부는 휴게실 , 상점, 도서실, 체력 단련 실, 미술관 등을 고루 갖추었다. 현재의 우리 목욕탕에 비해도 손색이 없는 듯하다. 더욱 발전된 터키 목욕탕은 따뜻한 방, 뜨거운 방, 증기탕 등도 있었다니 놀랍다.
로마시대의 목욕탕은 나라가 망하는 원인이었다고 한다. 하루 종일 따뜻한 곳에서 즐기는 상류층을 위해 무한대로 늘어나는 연료의 수요를 충당하려면 무분별하게 벌채를 해야 했다. 이래서 장마철이 되면 토사가 밀려와 바다를 메우고 메워진 바다는 습지가 되어 모기 서식지가 됐다. 말라리아로 크게 인명 피해를 본 것도 목욕탕이 그 원인 중의 하나가 됐다. 아름답던 유럽의 자연은 무분별한 인간의 욕심으로 파괴되고 말았다.
팔, 다리, 온몸 구석구석의 때를 밀어낸다. 새로움을 위해선 옛 것을 떨쳐내야겠기에 한 점의 때도 남겨두지 않는다. 신분의 차이가 없는 이 알몸의 세계를 벗어나면 또 다시 세속의 옷으로 갈아입고 그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 그러니 여기서 때와 함께 마음의 고통까지 모두 씻어버리자. 그리고 새 마음 새 몸으로 밝은 내일을 향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