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대를 건너뛴 사람

류귀숙 2015. 10. 17. 03:00

   시대를 건너뛴 사람

 가지런한 사고와 판에 박은듯한 정갈한 행동은 상대방에게 안정감을 준다.

 보편적인 사고를 가졌다는 건 대중적이며 흐름에 순응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지배자의 입장에서나 부모의 입장에서도 그저 그만이다. 시냇가의 자갈돌 같이 둥글게 사는 인생은 물을 거스르지 않는다. 물길을 터주고 물과 같이 어울려 바다로 가는 순간까지 회오리가 없다.

이 와중에 순리를 거스르는 모난 돌이 있다면 어떻겠는가? 아마 좌충우돌 부딪힐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니 외로울 것이다. 그러나 물 흐르듯 흘러가는 역사를 보면 그 속에서 물길을 바꾼 사람도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네모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를 타고 조금만 멀리 나가면 낭떠러지가 있어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는 어부나 상인들이 원양항해를 하지 않고 조심하는 추세였다. 그런 환경 속에서 '코페르니구스'는 지동설을 주장했고, 바다 끝에 낭떠러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전환코자 했다. 모두들 그 말을 믿지 않고 비웃었을 때 콜럼버스는 굳게 믿었다. 그리고 실천할 계획을 세워나갔다. 배를 타고 멀리 인도나 중국 등의 아시아권 나라로 가 보려고 했다. 이어서 세계 각국에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신앙심도 일어났다.

 그는 대서양을 바라보며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수평선 위의 둥근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끝없는 반대쪽 땅을  바라보며 원양 항해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는 지도 그리기를 연구했고, 배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나갔다. 만약을 위해 스페인어를 배우는 면밀함도 보여줬다.

그가 항해에 대한 논문을 '살라망카' 대학에 제출해서 심사를 받았는데 역시 채택되지 않았다. 포르투갈, 프랑스, 이태리 등 유럽 각지를 돌며 후원자를 찾았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러나 그를 알아준 단 한사람이 있었다. 그가 곧 스페인 '카스티아'왕국의 이사벨 여왕이다. 그가 바로 천리마를 알아준 백락인 셈이다.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의 무모한 도전에 기름을 부어 드디어 실천에 옮기게 했다.

 당시로 보면 그건 정상이 아니었다. 아마 보편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의 시각으로는 미친 사람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람브라스 거리를 걸어본다. 마침 오늘이 10월 12일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첫 발을 내 디딘 날이다. 이 나라는 이 날을 국경일로 정해놓고 그날을 기념하며 자축한다. 그러니까  콜럼버스의 공적이 하늘을 찌르는 날이다. 람브라스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이 손에 국기를 들고 "에스파냐"를 외치고 있다. 콜럼버스 기념탑 앞에 서서 대서양을 향해 오른 팔을 번쩍 든 콜럼브스 동상을 올려다본다. 저렇게 높은 이상과 꿈으로 먼 곳을 바라본 그가 스페인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든 영웅이 아닌가! 시청 앞 광장에도 또다른 시가지의 광장에도 스페인 국민들이 모여 각종 행사에 들떠 있다.

 여기서 나는 3.1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던 우리 민족이 떠오른다. 민족이 하나 되어 나라 위해 뭉쳤던 그 힘이 오늘 이 시간에 내 피부를 스치는 것은 웬일인가! 아마 내 몸 어딘가에 애국심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이 아닐까!  콜럼버스라는 인물 하나가 디딤돌이 되어 해가 지지 않는 강대국이 된 나라에 대한 질투심인가? 아니면 오늘 이들이 나라에 대한 자부심으로 설치고 다니는 모습이 언짢아서인가? 부러움 반 허전함 반으로 거리 끝에 있는 지중해 연안으로 가서 바닷물에 발을 담가 본다. 그리고 우리도 만만치 않은 나라라고 마음 속으로 외쳐본다. 방금 몬주익 언덕에서 황영조 선수의 기념비를 보면서 긍지를 느끼지 않았는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1992년 열렸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올림픽을 완벽하게 잘 치렀는데도 한국의 88올림픽에는 못 미쳤다고 생각한단다. 이 소리를 듣고 자부심을 가졌었다.

 

 스페인 젊은이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열광하고 있다. 요즈음에 와서 경제가 침체됐다지만 국민들의 열기를 봐서는 또다시 그 옛날의 영광을 찾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비정상적인 생각이 또 무모한 도전이 스페인 역사를 바꾸었고,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전 세계에서 콜럼버스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세계 교과서에 모두 콜럼버스의 업적을 실었을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남아메리카 대륙이 식민지의 멍에를 짊어진 것도 있지만 이 나라 입장에서는 영웅임에 틀림없다. 이 나라 곳곳에 콜럼버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세비아 대성당'에 가서 '산크리스토발' 문으로 들어가면 대성당의 보물이라는 콜럼버스 묘가 있다. 가장 중요한 위치에 4명의 조각상 즉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 등의 4왕국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콜럼버스 관을 받쳐 들고 섰다. 그의 아들도 귀족의 신분으로 이 성당 마당에 안치돼 있다. 성당에 매장 될 수 있는 자격은 주교나 교황 등의 종교지도자가 아니면 묻히기 어려운 곳이다. 이 파격적인 대우를 받은 콜럼버스는 바로 그의 빛나는 업적 때문일 것이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평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대 스페인 제국의 귀족이 되고 신대륙의 총독이 됐다. 이런 획기적인 대우를 받게 된 데는 본인의 진취적인 사고와 노력이 있었고 그를 알아준 여왕이 있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가호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진작부터 신대륙에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스페인을 둘러본 후에 내 머리 속에 각인된 세 사람의 인물이 현실처럼 나타나 우뚝 서 있다. 모두가 시대를 건너뛰면서 보편적인 사고의 틀을 깬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로 콜럼버스, 이사벨 여왕, 건축가 가우디이다. 그 중 콜럼버스는 신대륙 발견으로 스페인에 부와 영광을 가져다주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다. 거기다 이사벨 여왕은 뛰어난 안목으로 콜럼버스를 발탁했고 이베리아 반도를 기독교 나라로 자리 매김 하는데 공을 세운 사람이다. 또 가우디는 자신이 만든 건축물이 여섯 점이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됐다고 한다. 그러니 관광 수입이 얼마인가!  가우디의 작품을 보고자 세계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다. 그는 현대에 와서 스페인의 자존심이 됐다.

 이 나라에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 나오는 것은 단순히 이 나라의 복인가? 아님 환경인가?  인물의 홍수 속을 헤매다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본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인물은 나오기 마련이다. 다만 그 인물을 알아주는 지도자가 없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도 무수히 많은 영웅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영웅들 대부분이 빛을 보지 못했다. 당시는 중국의 영향으로 인문학을 중시하다 보니 과학 기술 분야의 인재를 천시했다. 이 때 이사벨 여왕 같은 사람이 있어 실학자나 과학자를 등용했더라면 어땠을까?

 많은 것을 머리에 담아 돌아오지만 어느 사이 그것들이 내 머리를 비집고 나올 것이다. 이 기억들을 잡아둘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