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그녀는 백락이었다.

류귀숙 2015. 10. 19. 23:38

   그녀는 백락이었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지중해의 파도가 달려든다. 투명한 코발트 빛 바다 물에 발을 담그고 하늘을 우러러 본다. 눈부신 태양과 철석이며 밀려드는 물결은 우리 해안과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러나 백사장 여기저기서 이국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온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말들을 뱉어내며 모래사장을 거닐고 있다. 손에는 인형 같이 귀여운 아이들이 한두 명씩 잡혀있다. 에스파냐 인들이 모처럼 국경일을 맞아 즐기려 나온 모양이다.

 시리도록 푸른 지중해를 향해 꿈을 키웠던 한 여인이 다가온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지혜와 명철이 번득인다.

 15세기 말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오늘 날의 에스파냐를 이루었던 여왕 이사벨 1세이다. 그녀는 이 땅에 마지막 남은 그라나다를 기어코 정벌했다. 그 후 남편과 함께 이베리아 반도를 평정해 강력한 스페인을 만들었다. 그것으로 원대한 꿈이 다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지중해를 향했던 눈길을 또다시 대서양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과 신의 도우심을 가슴에 새기고 전진했다.

 콜럼버스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면서 신대륙의 많은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았다. 비로소 대 스페인,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왕이 됐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녀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부왕에게서 바로 왕위를 물려받은 건 더더욱 아니었다. 이복 오빠 엔니케 왕에게 내침을 당해 천민의 신분으로 하락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내야했다. 포르투갈 공주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믿었던 전처 아들의 배신과 가난을 이기다 못해 급기야 실성한 사람이 됐다. 이 때 어린 이사벨은 실성한 어머니와 동생 알폰소를 돌봐야했다.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어린 이사벨은 좌절하지 않았다. 도리어 천민들에게서 생활의 지혜와 강인함을 배웠다. 또 주님을 의지하며 희망과 용기를 버리지 않았다.

 광야같은 인생살이에서 시시때때로 불어오는 광풍을 만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락의 길로 들게 된다. 잡초 같은 끈기와 용기로 인생을 역전시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재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를 세인들은 우러러보며 칭송해마지 않는다.

 이사벨 공주도 어린 시절의 수난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갔다. 이복 동생 알폰소에게 왕위가 갈 것을 염려하는 오빠 엔리케 왕의 심정을 꿰뚫어 보고는 스스로 인질이 돼서 왕궁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희생으로 동생 알폰소와 어머니를 구하고자 했다. 그것으로 그녀의 고생이 끝난 게 아니었다. 엔리케 왕은 이번엔 이사벨에게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수 있는 곳으로 정략결혼을 시키고자 했다. 또다시 찾아온 위기를 그녀는 젊고 장래가 촉망되는 아라곤 왕국의 왕자 '페르난도 2세'에게 도움의 손길을 펴서 위기를 모면했다. 두 사람은 이후 결혼해서 강력한 나라를 만들었다. 일촉즉발의 위기 앞에서 페르난도를 선택한 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그녀는 카스티야 왕국의 왕이 되고, 남편은 아라곤 왕국의 왕이 돼서 이베리아 반도를 서서히 평정해 나갔다. 두 나라는 마지막 남은 이슬람국가인 그라나다를 정복하기에 이른다. 두 나라의 연합군대는 그라나다를 맹 공격했다. 이슬람국가 역시 강하게 저항해 왔다. 이때 남편 페르난도 2세가 전쟁 도중 실신하게 됐다. 그러자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져 전쟁 터에서 위기를 맞았다. 이를 본 이사벨은 진중으로 달려 들어가 군사들을 격려했다.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전쟁은 매우 중요한 종교 전쟁입니다. 이번에 꼭 승리로 이끌지 않으면 안 됩니다." 라고 말하며 사기를 북돋우었다. 결국 이슬람왕은 알함브라 궁전을 지키기 위해 백기를 들고 물러났다. 드디어 이베리아 반도를 가톨릭 국가로 만든 순간이었다.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사벨 여왕의 어떤 면이 그를 높이 오르게 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녀는 위기 때마다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든 지혜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나는 그녀의 인재를 알아보는 통찰력을 높이 사고 싶다. 첫째로 남편 페르난도를 선택한 점은 탁월했다. 엔리케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도 남편의 도움이 컸다. 만약 이복 오빠의 뜻대로 결혼을 했더라면 이사벨 여왕은 없고, 스페인도 없었을 것이다. 결혼으로 인해 강대국이 되는 초석을 마련하게 됐다. 그녀는 귀족들이나 부리는 아랫사람까지도 그들의 능력을 파악해서 적당한 장소에 배치했다. 나는 그 중 가장 탁월한 선택은 바로 콜럼버스의 능력을 알아봤다는 것이다. 유럽 각 나라에서는 콜럼버스의 구원요청에 반대를 했다. 심지어 그녀의 남편인 페르난도조차도 콜럼버스를 미치광이 취급을 했다.

 그녀는 콜럼버스의 야망에 불타는 눈빛을 보았다 그리고 과감히 그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콜럼버스의 지나친 요구조건도 쾌히 들어준 통 큰 여장부였다. 콜럼버스는 자신을 알아주는 백락을 만난 셈이다. 그의 천리마 같은 천재성을 알아준 단 한사람. 이사벨 여왕 때문에 신대륙이 발견됐다. 지금까지의 진리가 깨지고 새로운 진리가 태어나게 됐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지름길을 알게 된 유럽인들이 앞 다투어 신대륙 탐험에 나서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중국 당나라 '한유'가 쓴 글에, '세상에는 백락이 있은 연후에 천리마가 있고,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여기서 백락(伯樂)이란 천리마를 잘 고르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천리마는 인재이고 백락은 그를 알아주는 군주나 지도자를 말한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인재들이 나타났지만 그때마다 백락이 없어 그 천리마가 버려진 때가 많이 있었다. 그 한 예로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서  많은 서양 문물을 접하고 돌아온 소현세자가 천리마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서양의 발달된 과학 문명을 접하고 우리나라에서 실천해 보려는 꿈을 가졌다.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죽음에 이르게 한 어리석은 임금 인조로 인해 근대화가 늦어졌다. 만약 그때 소현세자가 왕위를 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일본이나 중국보다 한 걸음 빨리 우리나라에 과학 문명이 도입되고 실학의 꽃이 피지 않았겠나? 그렇게 됐다면 일제 강점기도 없었을 것이고, 남과 북이 갈라져서 무모한 힘겨루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인재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사벨 여왕이 콜럼버스를 알아본 것은 바로 백락과 같은 통찰력 덕분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사벨 여왕을 백락의 자리에 올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