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가 잘한 일

류귀숙 2015. 12. 12. 15:27

   내가 잘 한 일

 "혀끝을 말아 올려서 발음 해 보세요. 종이 찢어지는 소리 비슷하게 나오면 바로 sh 발음이예요."

 "zh는 입을 옆으로 찢고 혀를 말아 올리세요." "(r)은 입을 모우고 혀끝을 더욱 말아 올려 목구멍에서 소리를 내세요."

 말귀는 잘 알아듣겠는데 입과 혀가 말을 듣지 않는다. 입도 혀도 뻣뻣하게 굳어 있어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입과 혀 때문에 여러 가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몰랐다. 그저 입만 열리면 소리가 나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건 처음 알았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소리샘을 찾아보려고 입을 벌리고 굳은 혀를 말아본다. 입을 하마처럼 벌리고 눈은 등잔처럼 부릅떴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생소한 소리를 낸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 한 사람씩 발음해 보세요." 먼저 앞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일어섰다. 잔뜩 주눅이 들어 늦가을 모기 소리처럼 기어 들어가듯이 소리를 흘렸다. 모두들 킥킥 거리며 소리를 죽여 웃는데 유독 큰 소리로 웃는 사람이 있었다. 소리를 뱉은 사람은 술 취한 듯 붉어진 얼굴로 쥐구멍이라도 찾을 기세다. 선생님의 눈길이 득달 같이 달려들어 웃는 자를 다음 주자로 지명했다. 순간 주위는 쥐죽은 듯 고요했고, 모든 눈길들은 기대를 담고 발음을 기다렸다. 그는 드디어 목쉰 황소울음 같은 소리를 토해내고 말았다. 장내는 웃음바다가 됐다. 숨죽여 웃던 자들도 박장대소하며 마음껏 웃어젖혔다. 여기에 선생님까지 "저 소리가 뉘 집 소 우는소린 고?" 라는 멘트를 날리시니 '까르르' 교실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이렇게 자신은 잘 할 것 같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이 발음이다.

 

 자녀들이 성장하고 집안 살림살이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느닷없이 중년의 딱지를 붙이고 보니 흘려보낸 시간들이 아쉬웠다. 돌아오는 시간만큼은 의미를 둬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솟아났다. 그때 발을 들이민 곳이 하필이면 중국어 교실이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중국 물결에 맞서 보겠다는 각오는 첫 단계에서 부딪치고 말았다. 우리 발음에는 없는 권설음 (혀를 말아 발음하는 sh, ch, zh, r)을 발음하면서 웃음바다가 됐던 것이다. 어느 코미디언이, 어느 개그맨이 이만큼 웃길 수 있을까! 가지각색의 발음들이 가관이다. 더 웃기는 것은 자신의 발음이 어디가 틀린지도 모르고 남의 틀린 발음만 듣고 웃어젖힌다는 것이다. 남의 발음이 틀렸다고 박장대소 하던 사람도 막상 자신이 하려면 목구멍이 막힌다. 어찌어찌하다 겨우 토해낸 소리가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다.

 

 손자가 첫돌을 지나고부터는 입을 달싹이며 쉴 새 없이 소리를 낸다. 더러는 말이 되고 더러는 옹알이가 된 소리들이 집안 가득 떠 돈다. 그래도 손자가 쏟아놓은 소리들은 소리마다 귀여움이 꼬리표처럼 달려 있어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 어린 것이 자신이 한 말이 틀린 지 맞는지도 모르고 쉴 새 없이 입술을 움직여댔다. 내가 중국어에 첫발을 디디고 부터는 손자의 그때를 생각하며 손자를 본받으려고 생각했다.

 섣불리 중국어 반에 들어왔다가 포기하는 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더러는 굳은 혀를 굴리지 못하겠다고 포기하고, 더러는 넘을 산이 높다 하여 포기 선언을 하고 떠났다.

 이렇게 포기 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80년대 초 중국어를 처음 접했을 때를 생각해 본다. 그때는 중국이 빗장을 열어젖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중국어가 생소했다. 그때 남편이 방송대학에 중문학과가 개설됐으니 중국어 공부를 해 보라고 했다. 중국어 책과 테이프를 사 왔기에  첫장에 나오는 발음 부분을 한 번 들어봤다. 그때는 그 소리들이  왜 그렇게도 이상하게 들리든지….

 꼭 꽹과리 울리는 소리 같아 시작도하기 전에 포기했다. 아마 내 마음 속에 중공이라는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중국 소리들이 귀에 거슬렸던 것도 그들이 공산당이라는 깃발을 들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때 일이 후회로 남는다. 늦었지만 이제 또 다시 포기는 없다고 마음을 다지며 산을 넘어가고 있다.

 시간은 나의 스승이 되어 주었다. 점차 뻣뻣하던 혀가 부드러워지면서 표준 발음에 근접해갔다. 이제 한 고비를 겨우 넘기고 뙤약볕에 등짐 지고 산을 오르듯 그렇게 한 걸음씩 힘겹게 오르고 있다. 산을 오르다 보니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니었다. 때때로 솔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 주고 힘을 주었다. 빨갛게 녹슬었던 머리도 자꾸만 풀무질을 해대니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공자님의 말씀이 딱 맞아 떨어졌다.

 중국어 배우기는 내가 한 일중 가장 잘한 일이다. 중국어가 끈이 돼서 멋지게 생긴 중국 유학생을 양딸로 맞이했으니 이보다 더한 횡재가 어디 있겠나! 그 애는 석사과정 공부를 위해 한국에 왔다가 나를 만나게 됐다. 중국어를 포기했더라면 이런 일은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딸로 인해 내 노년이 무지개 빛깔이 됐다. 다른 나라에 우리나라를 알리고, 또 그 나라를 알아간다는 것은 뜻 깊은 일이다.

  내게는  잘한 일이 또 하나 더 있다. 운동이라면 남의 뒤꿈치 따라가기도 힘겨운 나에게 그 어려운 탁구를 배울 기회가 왔다. 이 또한 많은 어려움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붙들고 있으니 잘한 일 아닌가?

 타고 난 능력이니 운동 신경이니 하는 것도 꾸준히 노력한다면 중간 대열에는 끼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생활에 찌든 때를 한판 스매싱으로 날려 보낼 때는 통쾌함의 극치를 맛보게 된다.

 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반 이상 남아있다. 여태 산중턱도 못 넘었다. 갑자기 중국 사람을 만났을 때 말이 생각나지 않아  벙어리가 되기도 하고, 중국 영화를 볼 때도  자막 없이는 보지 못한다. 탁구 또한 나의 낮은 수준으로 인해 짝이 피해를 볼 때가 많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다. 하지만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는 말을 어깨에 지고 간다. 오늘도 산꼭대기를 향해 한 걸음씩 발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