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류귀숙 2015. 12. 29. 14:54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오늘의 중요 뉴스가 T V 화면위에 꽉 차오른다. 황사 주의보에다 미세먼지 주의보가 겹쳐서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미세먼지 농도가 253마이크로그램이라고 위협을 한다. 외출할 때는 마스크를 꼭 착용해야 한다고 가족들을 향해 명령했다. 벌써부터 목이 칼칼하고 눈이 따갑다. 이런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니 말만 들어도 몸이 먼저 반응하나 보다. 아침부터 기분이 영  찝찝하다.

 그것들이 무엇이 관대 수시로 찾아들어 그 위력을 발하는가? 그들은 어디서 왔으며 또 어디까지 갈 것인가?

 걸핏하면 찾아드는 반갑지 않은 그 손님의 정체를 추적해 본다. 그들의 고향은 사막이고 그들이 하는 일은 중국 북동부의 공장지대를 떠돌고 있는 오염된 먼지들을 데리고 바람 따라 떠도는 것이란다. 그들이 가는 곳은 가장 가까운 한반도를 돌아 바다로 진출하기도 하고 더러는 일본 땅까지 날아간다고 한다.

 거대한 타클라마칸과 고비 사막을 품고 있는 중국이 진원지라고 하니 어쩌겠나!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고스란히 덮어쓸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이웃 잘 못 만난 대가인가 보다.

 

 얼마 전 그 진원지인 사막의 한가운데 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생각난다. '실크로드 천산북로'코스를 가게 됐는데 그 길이 사막을 넘어야하는 길이었다. 이 코스는 사막을 지나고 만년설을 덮어쓰고 있는 천산 산맥을 돌아서 유럽으로 가는 길이다. 비단길이라는 이름만 듣고  낭만을 잔뜩 기대하고 떠났다. 그 길에서 우리들을 마중 나온 게 바로 사막이었다. 같이 갔던 대원들의 입 속에선 "괜히 왔다."는 말이 곰삭아서 "내 이럴 줄 몰랐다."로 바뀌어서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천지 사방에 깔려 있는 것은 흙먼지요, 돌산이요, 비포장 도로였다. 눈을 들어 앞을 보고 고개 돌려 옆을 둘러봐도 흙이고 돌이다. 생명체는 눈을 부릅뜨고 봐야 겨우 땅바닥에 달라붙은 작은 풀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그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모진 목숨 붙들고 땅바닥에 붙어있었다. 적의 침공에 대비하려는 지 그 작은 몸에 가시를 달고 있는 녀석과, 잎 속에 한 방울의 물이라도 저장하려 물주머니를 달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우리 일행은 해가 뜨면 비포장도로를 달려 5∼6시간이 지나야 겨우 마을을 만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차창 밖은 온통 흙과 돌산들만 지루하게 나타났다. 비단길이라는 이름값은 애초에 기대할 수가 없었다. 어떤 날은 11시간을 사막의 한가운데서 미아가 된 적도 있었다.

 

 또 T V화면에선 사막 같은 깡마른 소식을 전하고 있다. 11살 소녀가 친부와 동거녀에게 학대를 받다가 탈출했다는 이야기다. 어린 딸을 세탁실에 가둬 놓고 구타하고 굶기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11살 아이의 체중이 16kg 이라고 하니 5살 정도의 체중이다. 얼마나 굶주렸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슈퍼에서 과자를 훔쳐 먹고 있는 아이의 영상이 비춰졌다. 소말리아 아이들의 굶주려 깡마른 모습과 흡사했다.

 인륜을 저버린 아비라는 자나 동거녀는 바로 사막이다. 인정이 마르고 도덕이 실종되고 그래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의 모습이다. 짐승도 새끼는 돌보거늘….

 흙먼지 보다 더 오염이 심한 컴퓨터 게임에 이 아이의 아비가 중독됐다고 한다. 인간이 이성을 잃어버리게 되면 어떤 모습인지 잘 보여준 한 사례일 뿐이다.

 사막 같은 인간은 도처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부모를 구박하고 팽개치는 자, 이웃에게 칼을 들이대는 자 의붓딸에게 성폭행하는 자 등 악행의 바람을 일으키는 자는 인간 세상을 사막화 시키고 있다.

 배산임수에 자리 잡은 마을에 햇살이 비친다. 그 곳에 나지막한 초가집을 짓고 살았던 모습이 희뿌연 먼지 속으로 떠오른다. 그때는 물질은 부족해도 인정은 흘러넘쳤다.  그때의 그 인정과 낭만은 어디가고 흙먼지 가득 실은 바람만 휘몰아치는가!

 

 그때 사막 길을 사흘 쯤 달리니 눈앞에 오아시스가 펼쳐졌다. 창밖 세상은 온통 별천지였다. 끝없는 목화밭이 눈 쌓인 벌판처럼 신기루가 되어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순 백의 향연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대원들의 입에선 탄성이 흘러나왔다. 곧이어 '오기를 참 잘했다.'는 말도 여과 없이 흘러 나왔다. 목화밭 다음으로 대추밭이 나왔다. 주렁주렁 매달린 대추 열매를 보고는 모두들 대추밭으로 뛰어들었다. 마침 정부에서 방풍림으로 심은 대추라는 설명을 듣고는 거리낌 없이 한 움큼씩 땄다. 더러는 먹기도 하고 더러는 귀한 보물인양 주머니 속에 넣기도 했다. 뒤를 이어 나타난 포도 밭은 더욱 장관이었다. 청포도 밭과 자색 포도밭이 교대로 나타나며 사막의 다양성을 보여줬다. 옥수수 밭에서는 기쁨이 최고조에 달했다. 수확한 옥수수를 말리는 장면이 줄줄이 이어졌다. 온 땅이 노란색으로 물든 모습과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옥수수 낟알은 우리들을 놀라게 했다. 대추, 포도, 옥수수 고추 모두가 우리 것보다 서너 배는 크고 당도도 높았다. 일조량이 많으니 당연한 이치리라. 

 이 사막 어딘가에 샘이 흐르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 끝없는 사막에도 샘은 있었다. 땅 속 깊은 곳에는 마르지 않는 샘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아도 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성경의 사건이 떠오른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해서 가난 땅으로 가는 길에 광야가 가로 놓여 있었다. 먹을 것과 마실 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밤은 춥고 낮은 뜨거웠다. 이곳에서도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길을 인도 하셨고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을 주셨다. 이 민족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꿈에 그리던 가난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광야가 바로 사막 아닌가? 이곳에서도 샘이 넘치게 하셨다. 이 사막 깊은 곳에 흐르고 있는 샘은 어디서 발원한 것인가? 물론 태초에 창조주께서 만드신 샘이 있었고, 거기다 인간의 노력을 더해 샘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사막을 떠돌던 민족들은 천산산맥의 만년설을 예사로 보지 않았다. 그 설산의 물을 끌어들여 지하 용수로를 만들었다. 이 일이 이미 수나라 때 이루어졌다고 하니 1,500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넘겼다.  지금도 그때 그 수로가 남아있어 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모래 땅, 마른 땅으로 명을 다할 사막에 샘이 넘치게 했다. 내가 거쳐 갔던 신장 지역엔 군데군데 오아시스 도시가 만들어져 번창하고 있었다. 마르지 않는 설산의 물을 끌어들여 사막에 샘이 흘러넘치게 한 것이다.

 뒤를 이어 들리는 소식은 친부에게 학대당했던 소녀에게 후원금이 속속 들어온다는 샘물 같은 소식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엔 인정이 마르지 않았다는 증거다. 어떤 할머니는 폐지를 주워서 모은 돈을 몽땅 성금으로 내 놓았고, 구세군 냄비에도 익명으로 거금을 투척했다는 훈훈한 소식이다. 이들의 선행은 광야 같고 사막 같은 이 땅에 희망이 되고 등불이 될 것이다.

 머지않아 이 땅에도 사랑의 온도가 펄펄 끓어 넘치게 되리라. 이 열기가 광야 같이 메마른 자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언젠가는 황사나 미세먼지 소식이 사라지고 꽃향기가 바람 따라 날아올 것이다.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는 이상 숲이 우거지고 새가 우짖으리라.

 "사막이 꽃동산 되리…." 복음 송의 한마디를 흥얼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