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며
별을 보며
손바닥만한 하늘에 별들이 초롱거린다. 사각의 틀 안에 갇혀버린 날개 잃은 새의 눈에는 그 사각의 하늘이 전부다. 낮의 푸름보다 밤의 별빛이 더 정답게 다가온다. 언어와 이름, 꿈을 도둑맞은 20대의 꽃다운 청년 윤동주! 그는 절망적인 순간에도 시를 쓰며 별을 우러렀다.
그는 주권을 빼앗긴 조국의 현실 앞에서도 자존의 깃털을 꼿꼿이 세우고 침략자의 발굽에 무릎 꿇지 않았다. 하루하루 약물의 독성이 몸 안을 헤집고 다닐 때도 오직 밤하늘의 별을 보며 꿈을 키워나갔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는 시인의 꿈을 가졌지만 시대적 상황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문예지를 만들고 시집을 내려 했다. 또 자신의 원고를 영어 번역본으로 만들어 영국에서 출판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때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 불운을 맞게 됐다. 생전에 이루지 못한 시인의 꿈은 죽어서야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됐다.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유고집이 출간되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시보다 더 찬란했던 그의 청춘을 그린 영화 "동주"에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윤동주를 만나게 됐다.
그는 만주 간도 지방의 명동 촌에서 태어났다. 여기에 또 한사람의 인물 그는 동주와 동갑내기 청년 송몽규다. 동주와는 고종사촌으로 한 마을에서 친형제처럼 자랐다,
도전적이고 활달한 몽규에 비해 동주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차분했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울분과 미래의 꿈 사이를 오가며 속으로 삭이는 강한 내면 세계를 간직한 청년이었다.
두 사람의 미래는 일제의 칼날 앞에서 된서리 맞은 풀잎처럼 시들어갔다. 부모로부터 문학적 소질을 물러받은 동주와 몽규는 같은 곳을 보며 서로의 등을 토닥이기도 했고, 때로는 경쟁자가 되기도 했다. 진취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몽규는 언제나 앞서 갔다. 그가 대중들을 모아놓고 독립의 필요성을 연설하는 장면에서는 강한 카리스마가 넘쳐흘렀다. 동규는 몽규 잎에서 작아지는 자신을 느끼며 차분히 자신의 길인 문학의 길을 걷고 있었다.
시대의 엘리트인 두 사람은 명동 촌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 그들은 문학의 꿈 외에도 학문의 열망을 불태우며 당시의 명문대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됐고, 부모님의 자랑이 됐다. 그러나 그들 앞에는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참담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또 다른 길을 찾아나섰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 유학의 길을 택했다. 그들이 일본 말을 쓰고 이름을 바꿨다고 어찌 일본사람이랴!
이들은 일본에 와서 더욱 더 독립 의지를 불태우게 됐다. 몽규는 조선 유학생을 규합해서 거사를 하려다 발각돼서 옥살이를 하게 됐다. 또 동주는 어려운 현실에서도 시를 쓰며 시인이 되고자 했다. 그런 그를 침략자들이 그냥 둘 리가 없다. 몽규와 함께한 모임이 발각돼서 동주도 역시 옥살이를 하게됐다.
그가 남긴 영롱한 시들은 칠흑 같은 현실에서 영롱한 별빛이 되어 빛났다. 그가 따난 지 71년이 된 오늘, 그의 시는 민족의 가슴 속에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시인 윤동주는 70년이 지난 오늘 한 마리의 연어가 되어 고향 산천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차가운 일본의 감옥과 일본 경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드디어 조국의 가슴에 안겨왔다. 연어가 고향으로 회귀하듯 별 같이 반짝이던 그의 영혼은 이미 우리들의 가슴으로 돌아와 별이 되었다.
망명지에서 태어나 생의 전부를 타향에서 보낸 불우한 시인이다. 윤동주의 생애를 더듬어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죽음마저도 일본의 후쿠오카 감옥에서 무서운 약물 중독으로 생을 마쳐야 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광복을 6개월 앞두고 꽃다운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백골 또한 조국 땅을 밟지 못하고 망명지인 간도에 묻혀 있다. 그것마저도 오랜 기간 방치되어 망실됐다. 당시 유족들도 중국 땅은 들어갈 수 없는 시대였다. 그때는 중국이 개방되기 전이라 그 곳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이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와세다대 명예교수인 '오무라 마요스'교수가 1985년 망실 되었던 윤동주 시인의 묘소를 발견했다.
시보다 더 파란만장했던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놓치지 않으려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의 분노에 두 주먹을 쥐었고, 그의 아픔에 같이 눈물을 흘렸다. 시인은 과거를 벗어나 현실인양 우리들의 가슴에 다가왔다. 절망적인 순간에도 시를 썼던 민족 시인의 생애가 물결이 흐르듯 잔잔하게 펼쳐졌다.
영화 속 윤동주는 시대의 아픔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연꽃과 같았다. 암울한 현실에서도 시를 썼던 윤동주의 생애가 오늘따라 더욱 빛났다. 고교시절 무작정 외웠던 시인의 서시를 읊조려 본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길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가장 감동적인 구절로 기억된다.
요즈음 이슈가 되고 있는 일들 중 가장 안타까운 일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류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이 없는 현실은 젊은이들에게 크나큰 좌절감을 심어준다. 5명 중 1명꼴로 직장 구하기를 아예 포기해 버린다니 암담한 현실이다. 장래를 설계하고 가정을 이뤄야할 젊은 나이에 직장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결혼 문제, 자녀 문제, 노후문제, 건강문제, 등 문제투성이의 현실일지라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자. 굴욕과 좌절의 늪에서 몸부림쳤던 일제 암흑기의 청년들을 생각하자. 그래도 요즈음은 넓은 하늘이라도 있지 않은가? 그 많은 별들에 희망을 담아 보자. 윤동주 시인은 서시에서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했다. 우리도 주어진 길을 향해 걸어가야 하지않겠나?
오늘 올려다 본 하늘에는 별이 유난히 초롱거린다. 별을 보며 자유의 날개를 달았던 시인을 생각하며 현실과 마주한다. 주사기를 타고 들어오는 알 수 없는 약물은 한 발짝씩 죽음의 늪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일본 후쿠오카 감옥의 차디찬 바닥에 앉아 별을 헤아렸던 시인의 심정이 되어 본다. 날개 단 마음은 고향을 나른다, 고향 집 어머니도 만나고 고샅을 내달리던 친구도 만난다. 꿈 ,사랑, 이별도 생각한다. 위로 자는 오직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뿐이다. 별은 어느새 위로 자가 되고 친구가 된다.
암울한 현실에서 한 걸음씩 자신의 길을 걸었던 윤동주와 송몽규를 그린 영화 '동주'는 일제 암흑기에 꽃다운 청춘이 어떻게 이슬이 되었는지를 심도 있게 또 담담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해방을 6개월 앞두고 숨을 거둔 시인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두고두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현실도 젊은이들에게는 만만찮다. 그때마다 시인이 별을 보며 꿈을 잃지 않았던 그때를 생각하며 고개 들어 하늘을 보자.
윤동주, 송몽규의 생애를 통해 현실에서 좌절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