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부, 동부,캐나다 12박 15일
<미 서부, 동부, 캐나다 12박 15일>
*일시:2016년 4월15(금)∼ 4월29일(금)
*항공편:인천∼LA KE 017 15:00출발, 15일10:10분 도착(LA) *뉴욕∼인천 KE086 28일 00:50분 출발 29일 04:10 인천 도착
*경비:339만 :가이드비 160$(불 포함)
*여행사:참 좋은 여행 02-2188-4000(미 서부:아주관광(미팅 가이드 이준희:213-477-4597) 투어가이드(빌리박 213-215-0232) 아주관광(213-388-4000) *동부:푸른여행사:201-313-0899 담당 홍민정 차장:201-708-5050
*참석:이재준 이순자 김전 류귀숙(4명) + 안동팀 6명 제주도 송교장부부 2명 혼자 온 분1명 10명팀 모두 합쳐 23인 그리고 현지에서 합류하여 50명 이상 투어함
*시차:서부(16시간) 환산법 : 현지시간+4 에다 AM과PM을 바꾼다. *동부 13시간:현지 시간+1에다 AM,PM 바꾸기
*첫째날(15)
이번 여행은 한국 가이드 없이 자유롭게 출발해서 미국 LA에 도착한 후 현지 가이드와 미팅하는 상품이다. 이렇게 되면 출국이야 별 문제 없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입국심사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입국심사가 까다롭다니 걱정이 됐다. 이런 여행은 벌써 10년 전 막내와 태국 공항으로 갈 때 해 봤는데, 그때는 막내가 영어를 잘하니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4명 모두 영어실력이 바닥을 치니 은근히 걱정됐다.
참좋은 여행사와 공항에서 미팅했다. 여행확정서와 계약서 그리고 비행기 표를 받아 짐을 부치고 게이트로 들어갔다. 마침 대한 항공이라 안정감을 주었다. 오후 3시00분 인천 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KE017이 16시간을 벌어들여 역시 같은 날 오전 10시 LA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인종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에 나도 한몫 끼었다.
어린아이 정도의 영어실력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들이 무난히 입국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면서 불안이 스멀거린다. 염려는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입국 심사관 앞에 세관신고서를 제출했더니 'address(어드레스)' 하면서 서류를 밀치고 나가라고 했다. 난 주소가 자세하게 적힌 서류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기회도 주지 않았다. 도착지의 주소난이 아주 좁기에 호텔 이름만 적었더니 스트리트 넘버까지 적기를 원했나 보다. 그래서 호텔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은 서류를 제시하려 했으나 완전 무시당했다. 다시 옆 칸의 마음씨 좋아 보이는 젊은 직원에게 보여줬더니 통과시켜줬다.
갑질하는 미국인의 태도가 거만하기 짝이 없다. 상대야 급하던 말던 관심이 없고 그저 여유롭게 천천히 할 뿐이다. 대국의 국민이라 부러운 존재를 넘어 두렵기까지 하다.
가이드 미팅을 하고 오늘 일정인 할리우드거리를 걸어본다. 이제 미국 땅이라는 게 실감난다.
'할리우드'라∼ 많이 듣던 이름이다. 영화의 거리, 꿈의 거리인 할리우드 가에는 이야기 속이나 화면 속에 등장하는 극장들이 있었다. 젊은이들이 홍수를 이루며 술렁대는 속을 걸어본다. 중국풍의 '맨스차이니스'극장 앞 광장에는 200여명의 영화계 인사들의 손과 발자국이 찍혀 있다. 그 속에 우리의 배우 이병헌과 안성기의 것도 있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이 광장을 가득 메우며 떠들썩하게 들썩였다. '코닥'극장은 2002년부터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고, 이때 레드카펫이 펼쳐진다고 한다. 이 거리에는 괴상한 복장을 한 젊은이들과 구경하는 젊은이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그 중 마린 먼로의 형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할리우드는 원래부터 영화의 거리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1923년 부동산 업자가 이곳을 개발해서 분양하려고 '할리우드 랜드'라는 간판을 걸었다. 분양이 잘 되지 않자 영화제작사가 13명의 배우를 캐스팅해서 '13명의 여자'라는 영화를 만들게 됐다. 이때 캐스팅 받지 못한 여배우 한 명이 간판위에 올라가 떨어져 자살하게 됐다. 이때부터 13이라는 숫자를 금기시하게 됐다. 공교롭게도 할리우드 랜드의 알파벳도 13개다. 이래서 랜드를 빼고 할리우드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또 이곳은 지중해성 사막기후라 영화 촬영이 적합하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선택 관광인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관람하지 않고 한인 타운 골목을 거닐며 이 땅에 뿌리 내린 교민들의 노고를 생각해 본다. 마트에 들어가 과일을 종류대로 사고 내일을 위해 에너지 충전에 들어갔다.
*둘째 날(16) <LA, 몬트레이 17마일>
우리 팀 23명과 타 여행사에서 모집한 인원에다 현지에서 모집한 인원까지 합쳐서 53명이 서부 투어에 나섰다. 55인용 대형 버스에 한자리만 비고 꽉 찼다.
모여든 한국인 관광객들은 같은 투어 일정이라 여행사와 상관없이 함께했다. 이런 여행은 처음이라 처음엔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가이드의 설명은 저렴한 가격의 상품이라 인원이라도 많지 않으면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한다. 일정이 먼저 끝난 사람은 하차하고 또 같은 일정의 사람이 타고를 반복했다.
서부투어는 캘리포니아 주가 중심이다. 어제 한인 타운을 시작으로 오늘도 LA투어는 계속됐다. 오늘은 덴마크 인들의 집단 마을인 '솔뱅'(양지라는 뜻)을 관광했다. 이 마을은 1911년부터 덴마크 이주자들이 모여 만든 마을이다. 덴마크풍의 가옥과 풍차가 특이했다. 미국에서도 이들은 고향을 그리며 덴마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아기자기한 모습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서 점심을 먹었는데 덴마크 전통 음식이라고 한다. 돈까스 비슷한 고기와 감자를 으깨 만든 요리와 샐러드 그리고 감자튀김이었다. 괘 맛이 있었다. 이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과 요리를 팔고 있었다.
다음 코스는 '산 호세 마을'로 이동하는 길에 '몬트레이'17마일 드라이브 코스를 대형 자동차로 드라이브했다. 몬트레이는 바닷가에 자리 잡은 마을로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했다. 넓은 들판 길도 나오고 탁 트인 해변 길도 나왔다. 넓은 농지엔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또 포도밭, 아몬드 밭도 줄을 이어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먹던 캘리포니아 산 오렌지와 아몬드가 바로 여기서 생산되고 있었다. 해변
가에 유명 골프장이 있었는데 18번홀 주변이 바로 바다와 접해있어 그 경관이 수려했다. 우리들은 여기에 내려, 걸어서 20분쯤 거리를 산책하고 사진도 찍었다. 가는 길에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별장도 지나쳤다.
*셋째 날(17):샌프란시스코
오늘은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온전히 관광하는 일정이다. 해변을 낀 이 도시는 캘리포니아 제일의 도시다. 버클리 대학과 스텐포드 대학 등 명문대학이 둘씩이나 있어 교육의 중심지가 됐다. 경제적으로는 실리콘벨리가 조성돼 있어 과학 또한 발달했다. 특히 애플사의 스티브잡슨이 살았던 도시이기도 하다.
명소로는 '금문교' '피셔맨스워프 광장' '예술의 전당' 예술인 마을 '소살리토'가 있다. 또 이 도시는 동성연애가 허용되는 곳이다. 식당이나 쇼핑센터 앞에는 무지개색깔 깃발을 내 걸고 그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공공연하게 길거리에서 애정표시를 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주립대인 버클리 대학을 방문했는데 일요일이라 조용했다. 박사 학위를 받은 학생들 몇이 가운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 중 중국이나 인도인으로 보이는 동양학생이 눈길을 끌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차이나타운을 비롯한 시내 중심가를 돌았다. 케이블카라면 공중에 매달려 가는 것만 생각했는데 여기는 케이블이 지하에 있어 전차를 타고 가는 것 같았다.
*피셔맨스워프 선착장에서 쿠루즈를 타고 '알카트리즈'섬을 한 바퀴 돌고, 금문교 다리 밑으로 나오는 단거리 코스다. 30불을 내고 선택 관광을 했다. 별로 볼 것도 없는데 비싸기만 했다.'피셔맨스워프 광장'을 낀 부둣가에는 식당가와 기념품 가게 커피숍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광장에서는 수시로 거리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8불을 받고 자유로이 점심을 먹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햄버그만 사 먹었다.
*금문교는 샌프란시스코와 북쪽 맞은편 마린 카운터를 연결하는 다리다. 총길이가 2789m이고, 높이는 227m라 어떤 배든지 통과할 수 있을 정도다. 금문교를 도보로 걸으며 탁트인 바다와 많은 보트가 있는 해안을 구경했다. 금문교는 '죠셉스트라우스'가 만들었으며 다리 색깔이 검붉은 색이라 특이했다. 안개가 잘 끼는 곳이라 선박이 들어올 때 안개 속에서도 잘 보이게 하려는 것이란다.
*예술의 전당은 건축 양식이 독특했다. 스페인 '살라망카'성당을 닮은 종탑과 건물 기둥을 볼 수 있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흔적이란다. 이곳에서는 각종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소살리토: 예술인들이 해변의 경치 좋은 이곳에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해변의 언덕에다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앞은 푸른 바다가 있고, 그 위에 금문교가 가로 놓여 있다. 그리고 수많은 요트들이 백조처럼 사뿐히 앉아 있다. 공예품 가게와 커피샵 기념품 가게들이 앞줄을 지키고 있다.
*넷째 날(18):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요세미티란 인디안 부족의 이름으로 '죽이는 자'라는 뜻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4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다. 북쪽에서 중부로 가는 길인데, 가는 길에 끝없이 펼쳐진 넓은 벌판이 나타났다. 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둥그스름한 민둥산이 넓은 영역을 차지했다. 누르스름한 풀들로 봐서는 가을이 다가오는가 싶었지만 여기는 건기와 우기가 우리와는 반대다. 겨울이 더 강수량이 많으므로 겨울이 도리어 더 푸르단다. 얼핏 보기엔 평지가 많아 농사가 잘 될 것 같지만 바위가 지반을 받치고 있어 목초밖에는 자랄 수 없다고 한다.
목초지를 중심으로 소떼들이 풀을 뜯고 도로 옆 낮은 지역에서는 주로 아몬드가 자라고 있었다. 우리들이 즐겨 먹는 아몬드가 바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캘리포니아 산 아몬드란다. 또 여기서 오렌지, 포도 등이 많이
생산된단다. 부러운 일이다. 자연의 축복을 듬뿍 받은 나라다.
*요세미티는 캘리포니아 중부 '시에라네바다산맥' 서쪽 사면에 위치한 산악지대로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절벽이다. 빙하가 만들어 낸 기암괴석과 특이한 절벽이 장관을 이룬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이 많아 암벽
등반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곳은 18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자연그대로 보존함을 원칙으로 한다.
차를 타고 오르는 공원길 양 옆에는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소나무와 '세코아야'라는 나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아담한 우리 소나무와는 확연히 다르다. 쭉쭉 벋은 나무들은 목재로 쓰면 좋을 것 같다. 마침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힘차다. 맑은 물이 넘쳐흐르는 군데군데 폭포가 있는데 그중 요세미티 폭포의 규모가 가장 크다. 폭포 높이도 903m이다. 폭포 주위로 다가가니 그 흐르는 힘으로 세찬 물보라를 일으킨다. 폭포가 쏟아내는 물세례로 옷이 흠뻑 젖었다. 산꼭대기에서 이렇게 맑고 시원한 물이 쏟아질 수 있을까? 그 신비를 알 수가 없다. 온통 맑은 공기라 목과 코가 뻥 뚫리는 기분이다.
중국 관광객도 우리보다 한술 더 떠서 골짜기마다 넘쳐난다. 그중 청도에서 온 중국인 부부와 중국어로 대화했는데 아직도 나의 중국어 실력이 한참 못 미침을 깨달았다.
두 사람 모두 이곳이 중국의 장가계나 구체구 보다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섯째 날(19)"라스베이거스
환상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도시 전체가 테마공원 인 라스베이거스는 밤이 되면 관광객으로 성황을 이루어 '불야성'이라는 별명이 붙은 도시다.
밤이 낮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 유혹이 물결치는 도시 라스베이거스!
유명 호텔마다 카지노장을 갖춘 세계적인 도박의 도시이기도 하다. 여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 공연이 있고 그 외 여러 가지 볼거리가 줄을 잇는다.
호텔 안팎으로는 쇼핑몰이 들어차 있으며 호텔마다 특색 있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휘황찬란한 가스베이거스에서 족적을 정확히 찍기 위해 카지노장에도 갔다. 남편에게 10$의 자금을 줄 테니 한번 시도해 보라고 했다. 친구 남편과 둘이서 카지노 게임기 앞에서 도박 연습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남편은 게임기에서 35$을 땄고 현금 교환 티켓이 나왔다. 나는 얼른 그걸 돈으로 바꿨다. 그리고는 끝내자고 졸랐다. 내일 일정을 소화하려면 휴식이 필요하니까…. 옆의 친구남편도 5$정도를 잃고 있어 더욱 끝낼 이유가 됐다.
이 도시는 요세미티에서 오려면 줄 곳 모하비 사막을 지나와야한다. 중국의 고비사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모래와 돌로 이루어 진 것이 사막이라는 고정 관념을 씻게 해줬다. 강수량이 일정 정도에 미치지 못하면 사막이 된단다. 이 사막은 어느 정도의 강수량은 확보되기 때문에 '덤블트리'라는 풀들이 죽 깔려 초원같이 보인다. 그러나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사막은 사막이다.
이 사막의 오아시스가 바로 라스베이거스다.(스페인어로 초원) 이곳은 옛날부터 오아시스 마을로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1847년 모르몬교가 전도를 목적으로 이 도시를 세웠다. 또 이곳이 도박장이 된 것은 1931년 네바다 주가 도박이 합법화 되면서 마피아조직들이 이 도시를 관리하게 되면서 부터라고 한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플라밍고(홍학)'호텔로 최초의 현대식 호텔이다.
옆에 있는 '베니스 호텔' 광장은 천정이 꼭 실제의 하늘을 닮았다. '프레스코'기법으로 천정을 색칠한 것이란다. 호텔 앞 연못의 분수 쇼는 환상적이었다.
*여섯째 날(20): 그랜드캐니언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그랜드캐니언을 투어 하는 날이다. 기대와 흥분이 살짝 일어난다. 이곳은 애리조나 주 북부에 위치한 거대한 협곡으로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곳 중 1위를 차지했단다. 그만큼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약 20억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전 세계의 관광객이 모여 북적거리는 속에서 한국말이 가장 크다. 곳곳마다 한국 관광객이 넘치는 가운데 이곳은 더욱 더 한국인이 많다. 거대한 미국 땅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우리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진 것인가! 그랜드캐니언의 기묘함도 기적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국인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그것이 바로 기적이라는 생각이다.
미국의 식량 원조로 겨우 굶주림을 면했던 우리민족이 아니던가! 지금 우리민족이 이 땅에서 돈을 뿌리고 있다. 이곳은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경비행기를 태우기 위해 해설 채널 2번에 한국어 해설을 실었다. 돈벌이하려는 미국인의 속셈이 보인다. 경비행기를 한 번 타는데 경비가 160$이니 우리 돈 20만 원 정도다.
수신기 채널을 2번에 맞추고 헤드폰을 쓴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나!
라스베이거스를 출발한 투어 버스는 모하비 사막을 지나면서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났다. 서부영화에서나 봄직한 사막이 양 옆으로 펼쳐지며 돌무더기 속에서 불쑥 인디언이 나올 것 같다. 우리나라의 남북한을 합친 것 같은 넓은 면적이 인디언 자치구역이란다.
라스베이거스를 품고 있는 네바다 주에서 콜로라도 강을 만나면 그랜드캐니언이 있는 애리조나 주(옹달 샘이란 뜻)가 나온다. "애리조나 카보이∼∼"라는 노래 가사를 흥얼거려 본다. 옛날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말을 달리던 서부의 사나이 카우보이가 인디언들에게 습격당하던 장면이다.
이제는 콜로라도 강 주위를 달리고 있다. 음악교과서에 실려서 즐겨 부르던 노래의 콜로라도 강이 여기 있다고? 꿈만 같다. 이 모든 것들을 가까이 볼 수 있다니….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노래 가사에 나오는 지명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러나 노래만큼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시나 노래는 한껏 그 모습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마술을 지녔나 보다. 이 강물을 막아 우프 댐(1931 건립)을 건설해서 경제공항을 타개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고 한다. 지금은 댐 위에 다리를 놓아 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콜로라도란 붉은색이라는 뜻이니 콜로라도는 붉은 강이란 뜻이다. 그런데 내 눈에 띈 콜로라도는 초록색깔이었다.
신비의 그랜드캐니언이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사막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달라졌다면 덤블트리에서 침엽수림이 보일 뿐이다. 작달막한 침엽수들이 군락을 이룬 평범한 낮은 산들만 지나간다. 기대가 살짝 실망으로 바뀌려는데 버스는 이미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리들은 신비의 포인트를 향해 10분쯤 걸어올라갔다. 기대했던 관경을 찾으려 온 사방을 휘둘러보는데 가이드가 말해준 전망포인트(Matrer Point)가 눈 안에 들어온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위에 올라 앉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진다. 과연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 내고 있었다. 놀랍게도 신비롭게 생긴 돌들의 단면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길이가 20마일이나 된다고 한다. 불그스름한 색깔의 지층들이 작은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며 펼쳐져있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이 신비 속에 임하시는 것 같다.
녹색의 작은 줄기로 보이는 콜로라도 강의 지류도 신비 속에 묻혀있다. 콜로라도가 여기서는 붉은 빛이 아니었다.
다음은 경비행기를 타고 자세히 살펴봤다. 그 모습은 처음에 본 모습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가까이 밀착해서 보니 현미경을 통해서 보듯 더욱 또렷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의 첫 번째 순위에 도전했으니 여한이 없다. 벼르고 벼른 뒤의 만남이라 그 의의가 자못 크다.
*일곱째 날(21)
6일간의 서부 투어를 마치고 동부로 가기 위해 LA로 향했다. 네바다 주를 거쳐 캘리포니아 주로 가야 LA가 있다. 양 옆으로 펼쳐진 모하비 사막은 사막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군데군데 풀들이 듬성듬성 나 있고
농작물이나 양떼는 보이지 않는다. 이 부근은 덤블트리 외에 특이하게도 목화송이가 피어난 듯 윗부분이 꽃잎처럼 펼쳐진 '코튼' 선인장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그나마 지루함을 덜 수 있었다. 또 하필 이 사막 부근에도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다. 왜 인디언 보호구역이 모두 척박한 사막 땅 이어야할까? 그들은 농사짓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정부에서 지원해 주기 때문에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면 고마울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할일 없는 인디언들은 카지노, 마약, 무기력증에 빠져 범죄의 소굴로 빠져든다고 한다.
가는 길에 은광 촌을 관광했는데 은광촌은 1881년 은을 채굴하던 광부들이 살았던 마을이다. 한창 때는 3500명의 광부가 채굴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1907년 은값 하락으로 은광촌은 폐쇄됐다.
이 폐광촌을 '월터낫'이란 사람이 매수해서 카운티 정부에 기증했다. 정부에서 이 폐촌을 꾸며 민속촌으로 만들었다.
여기에는 광부들이 살아온 흔적이 남아 있고 카우보이 복장을 한 사람과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광부들의 가옥과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있다. 역사가 얕은 나라라 은광촌은 중요한 민속 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여기 저기 특색 있는 가옥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울렛 매장에 들러 코치가방 하나를 겨우 샀다. 관광객 한 사람이 가방 두세 개는 평균적으로 샀다. 특히 중국 관광객은 여기서도 싹쓸이를 했다.
서부 투어를 마치고 LA에 와서 서부 투어로 투어를 마치는 사람과, 동부 투어로 투어를 계속할 사람들이 구분됐다.
*여덟째 날(22)
LA호텔을 마지막으로 내일은 동부 뉴욕으로 갈 것이다. LA공항에서 09:00에 출발하는 아메리칸 항공기AA2를 타고 뉴욕 케네디 공항에 내려 15:20분 가이드 미팅을 하고 동부 투어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 일행 23명은 LA공항으로 가기 위해 6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받아서 공항으로 향했다.
다시 가이드 없이 스스로 짐을 부치고 비행기 표를 받아야한다. 영어를 잘 못하는 우리끼리 외국 항공기를 타려니 또 불안하다. 짐을 부치려는데 짐 값을 개당 25불 내라고 한다. 23Kg이 넘으면 추가 요금도 내야한다. 모두들 여행 계획서를 꼼꼼히 읽어보지 않아 당황했다. 더러는 큰 짐은 부치고 작은 짐은 기내로 가져가게 됐다. 이때 일행 중 문제가 생겼다. 짐 값을 내라기에 아까운 마음에 작은 짐이니 부치지 않고 기내로 가져가려고 검색대에 왔는데 가방을 열어보란다. 그분은 짐을 부치려고 액체류를 가방에 넣었는데 깜박 잊고 짐 값을 절약하려다 그렇게 됐다. 실랑이하다 겨우 그 액체류(스프레이)를 버리기로 하고 겨우 통과했다.
23명 중 7명은 항공 시간이 8시라 먼저 들어가고 우리 16명은 한 시간 기다렸다가 보딩하기로 했다.
우리 16명은 보딩 시간이 돼서 죽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시간이 10분이 지났는데도 직원은 보이지 않고 비행기도 대놓지 않았다. 방송은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전광판을 보고 겨우 알아냈는데 4시간 지연돼서 오후 1시에 출발한단다.
참 어이가 없다 거기다 게이트도 바뀌었다. 이로 인해 밤늦은 시간에 뉴욕에 도착했는데 짐을 찾을 때 또 문제가 생겼다. 계속 짐이 안 나오기에 당황해 할 때 같은 비행기를 탔던 외국부인이 가르쳐줬다. 세상에 짐은 이미 먼저 와서 보관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큰 나라의 횡포를 흠뻑 덮어쓰고 세계적인 도시 뉴욕에서 짐을 풀었다.
*아홉째 날(23) :뉴욕
이곳 동부에서는 '푸른 투어'가 우리들은 맡았는데 이인호 가이드가 서부처럼 다른 여행객을 모아 37명을 만들었다.
먼저 뉴욕에 대한 이름부터 설명했다. 그 당시 제독 이름이 '요크'였다는 설도 있고, 영국의 지명을 땄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뉴욕은 미국의 첫 번째 수도였다.
시내를 끼고 흐르는 강은 '허드슨'강과 동강(이스트리버)이다. 남북 전쟁 때 중간지점을 찾아 지금의 워싱턴DC로 옮겼다. 워싱턴은 정치를 담당하고 뉴욕은 경제, 물류 등을 담당하게 됐다.
*맨해튼: 세계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맨해튼은 세계 무역과 금융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연극, 음악, 미술 등 예술과 문화의 창조지다. 뉴욕은 다양한 인종들이 펼치는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Melting pot 도시다. 그 대표적 상징물로 자유의 여신상을 들 수 있다. 배를 타고 주위를 돌며 하이라이트인 자유의 여신상 가까이 다가갔다. 각 나라의 관광객들이 먼저 여신을 보기 위해 오른 쪽 뱃전에 붙어 여신상을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이 여신상은 프랑스에서 미국 독립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운송을 쉽게 하려고 분리 후 조립을 했는데, 조립은 에펠탑을 만든 에펠이 했다고 한다.
뉴욕시는 맨해튼을 중심으로 5개 구로 나눈다. 맨해튼은 그 중심도시이며 세계 제1의 도시다.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을 내쫓고 네덜란드 인이 들어와 건립했다. 그래서 뉴 암스테르담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 영국이 지배하면서 뉴욕이 됐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102층 건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지금은 3위로 떨어졌지만 세계적인 건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먼저 86층에서 시내를 조망하고 꼭대기에서도 시내를 내려다 봤다.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많은 건축물들이 빼곡히 들어찬 뉴욕시가 한 눈에 들어왔다. 꼭 인간이 만든 위대한 건축물의 전시장 같다. 9.11테러 후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붕괴된 후 다시 복구됐다.
뉴욕에는 세계적인 건축물과 기관들이 줄지어 있다. UN본부도 그 하나이다. 이 건물은 '미드타운' 동쪽에 위치해 있다. 이는 유럽에서 오는 사람들의 접근성 때문이다. 약 200여 나라의 정부 대표단이 외교 문제로 토의하는 곳이다. 1945년 창설됐으며 지난 2006년 12월 제8대 유엔 본부장으로 반기문 총장이 아시아 두
번째의 총장이 됐다. 건물 앞 국기게양대에는 유엔 가입국 국기가 게양된다.
이 UN본부 건물은 석유 왕 '록펠러'의 지원으로 지어졌다. 록펠러는 독점으로 번 돈을 유익하게 쓰고 있다. 또 록펠러 센터를 만들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와 연방준 은행들이 밀집해 있는 이곳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다. '파이낸셜 디스트릭트'라고 불리우며 1792년 증권거래소가 들어서면서 금융의 중심이 됐다.
건물 앞에 멋진 뿔을 머리에 이고 돌진하는 소의 동상이 용맹스런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뿔을 만지면 운수 대통이라는 말을 듣고 뿔을 만지기 위해 중국인, 한국인이 뿔 잡기 경쟁을 벌였다.
*타임스퀘어: 47번 거리와 브로드웨이를 타고 내려가는 길로 수많은 영화의 광고에 등장하고 있는 뉴욕 대표거리다. 뉴욕타임즈지 본사가 있는 곳이라고 '타임스퀘어'라 불린다.
높은 빌딩들이 즐비하고 극장, 레스토랑 등이 있어 바쁘게 움직이는 거리다. 또 이곳은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이 허드슨 강 입구에 서 있다. 오른 손에는 세계를 비추는 횃불을 왼손에는 독립선언문을 들고 있다.
*열째 날(24) :워싱턴DC
전 세계 정치의 중신지인 워싱턴을 방문하는 일은 역사적인 일이다. 그래서 그 감동이 크다. 우리의 살림살이가 세계 중심도시를 직접 볼 수 있게 됐으니 그것 역시 감동이다. 세계 어느 관광지를 가나 한국 사람들이 넘쳐난다. 요즈음은 중국인들까지 관광에 열을 올리니 더욱 복잡하다. 뉴욕을 출발해서 4시간 만에 워싱턴에 도착했다.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이 보이고 국회의사당도 보인다. 워싱턴 기념비(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해서 중요한 기관들이 1Km남짓한 거리에 모여 있다.
2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기념관은 버지니아 주와 워싱턴 주 사이 인공호수 옆에 자리하고 있다. 마주보는 곳에 링컨 기념관, 한국전쟁 기념관 등 역사적인 건물들이 밀집해 있어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관람할 수 있다.
*국회의사당은 1800년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으로 수도가 옮겨진 이래 미국의 상징적 공간이 됐다.
1793년 죠지 워싱턴이 주춧돌을 놓았고, 1797년부터 의회가 개시됐다.
*백악관 :화이트하우스라는 이곳은 미국대통령이 머무는 곳이다. 백악관은 재건축 후 건물의 외벽을 흰색으로 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링컨 기념관은 16대 '에이브라햄 링컨'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본 뜬 건물로 36개의 도리아 식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기둥은 당시 36개주를 의미한다. 기념관 중앙에 링컨의 거대한 대리석 좌상이 있다. 좌상의 왼쪽 벽에는 링컨의 연설문이 적혀있다.
*스미소니언박물관: 1846년 설립해서 역사, 우주항공, 자연사 등 15개의 개별 박물관과 미술관 동물원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다. 많은 것을 다 볼 수는 없고 역대 영부인들의 장식품들만 훑어봤다. 내일 폭포를 보기 위해 '해리스버그(펜실베니아 주 의주도)'에 투숙했다.
*열한째 날(25)
미 동부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나이아가라 폭포가 아닐까? 새벽에 일어나 6시 15분에 나이아가라를 향해 달렸다.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주 요크 지방을 출발하여 캐나다 쪽으로 갔다. 펜실베이니아 주는 영국 헨리 8세의 아들이 이곳에 도시를 세웠다. 원래 원주민들이 부르던 이름이 실베이니아였는데 그의 이름을 앞에 붙여 펜실베이니아가 됐다. 미 서부엔 로키 산맥 동부엔 아팔란드 산맥이 주를 이룬다.
나이아가라는 빙하기가 끝나고 형성됐다고 한다. 미국과 캐나다에 걸쳐있는 이리호와 몬테리오호의 물이 나이아가라 강으로 흐르고 이 물이 폭포가 됐다. 높이 54m 폭 67m인 이 폭포는 1초당 백만 통의 욕조에 담기는 물의 양이다. 현재 이 자리에 있는 이 폭포는 400년 전 형성됐으며 쏟아지는 힘으로 폭포가 옮겨졌다고 한다.
잔뜩 기대를 걸고 6시간 주행 끝에 캐나다 국경을 넘어 나이아가라에 도착했다. 듣던 대로 거대한 물 폭탄이 쏟아져 내렸다. 접근해서 사진을 찍으려니 물세례를 퍼 부으며 섣부른 접근을 막았다. 폭포 건너 쪽에 서서 바라본 모습은 천지를 삼킬 것 같은 태초의 울음이며 범의 포효였다.
그 많은 물들이 도움닫기 하듯 전 속력으로 달려오다 언덕에 부딪쳐 낙하하는 장대함이라니! 폭이 넓은 강인데도 수량이 많고 속도 또한 빠르다. 울분을 터뜨리듯 세상을 삼킬 듯한 물의 위대함 앞에 한 발짝 물러서서 테이블락에서 바라봤다.
오늘 저녁은 전망대 레스토랑에서 특식을 즐기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폭포를 아래로 굽어봤다
*열두째 날(26) 나이아가라, 월풀
어제는 원거리에서 폭포를 조망하고 오늘은 가까이 접근했다. 혼블러호(안개 속 숙녀 호)를 타고 폭포 쪽으로 바싹 다가갔다. 우리들은 캐나다 쪽이라 빨간 우의를 입었고, 미국 쪽에서는 파란 우의를 입었다.
폭포에서 부서지기 위해 달려가는 많은량의 물 위를 배를 타고 미끄러지듯 다가갔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 규모가 기대치에 미치지 않아 살짝 실망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모습은 기대치에 어긋나지 않았다.
그 엄청난 양의 물들이 어디로 가려는지 급히 서두르고 있다. 낭떠러지를 향해 울분을 토해내며 하얗게 부서지는 물 폭풍의 장대함을 본다. 물이라는 자연도 역시 두려운 존재다. 산을 무너뜨려 지형을 바꾸고 사람까지 휩쓸어버리는 위대한 힘!
나이아가라의 역사를 담은 IMAX영화를 관람했다. 마침 수신기에 한국어 채널이 있었다. 이도 선택 관광이니 그런 것이고, 더군다나 여긴 캐나다 아닌가! 뉴욕 엠파이어에서 한국어 해설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니 아직도 씁쓸하다.
폭포가 언제 생성됐으며 어떻게 발전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시간이 전설이 되어 전해질 뿐이다. 추장의 중매로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게 된 소녀이야기다. 그는 결혼을 거부하고 뛰쳐나와 폭포에 몸을 던져 신이 됐다는 전설이다.
약 2000년 전 프랑스의 탐험가'카베리'에 의해 폭포가 베일을 벗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더러는 죽었고, 용케 살아남은 사람도 있다. "시간은 전설을 만들고, 인간은 기적을 만든다."
토론토 가는 길에 폭포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또 한 번 몸부림쳤던 '월풀(소용돌이)'을 만났다. 강을 따라 5.2Km내려온 곳에 또 거대한 소용돌이가 있다.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호수를 만들고, 깎아지른 절벽과 협곡을 만들었다.
다음 코스는 토론토시의 중요 기관과 관광지를 둘러보는 코스다. 이 시는 바다 같이 넓은 온타리오 호수가 감돌아 흐르고 있다. 차를 타고 구 시청과 신 시청이 있는 곳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다. 이 시에도 차이나타운과 한인 타운이 있었다. 세계 곳곳에 자리 잡은 우리민족이 위대하다는 생각이다.
구 시청은 오벨리스크 양식으로 오른 쪽에 뾰족한 시계탑이 있고 웅장하면서도 고풍스럽다.
신 시청은 높이가 99m인 이스트 타워와 79m인 웨스트 타워로 돼 있는데, 두 건물이 마주 보고 있다. 가운데는 반 구 모양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이 두 건물이 마주보고 있다. 건물 주변에 작은 호수까지 있어 피크닉하기 좋은 곳이다.
*열세째 날(27)
5시 50분에 가이드가 준비한 김밥 도시락을 가지고 천섬으로 향했다. 우리 교민이 만들었다는 김밥 도시락은 맛깔스러웠다.
킹스톤을 지나 세인트로렌스 강을 끼고 천섬을 향해 달렸다. 캐나다 인디언들의 말로 '조용한 영혼의 마당'이라 불리는 천섬은 호수와 섬들이 만들어 낸 지역으로 경치가 빼어났다. 또 아름다운 별장 건축물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여행자들이 킹스톤을 찾는 이유도 바로 천섬 때문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인 세인트로렌스 강위에 이름대로 천개의 섬이 떠 있는 모습은 그림 같다. 이 강은 줄무늬 홍합이 살 정도로 맑다.
천섬에서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은 대표적 사람으로 '죠지 볼트'가 있다. 이는 여기에다 아내를 위해 집을 지었다는데 별장이 아니라 캐슬 수준이다. 강의 아름다움까지 더해져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꼭 마을을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섬마다 아름다운 별장들이 있다.
유람선 선착장 식당에서 양식 뷔페를 먹고 곧바로 국경을 넘어 뉴욕으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세계적인 아울렛 매장인 우드버리 커먼 프리미엄 아울렛에 들렀다. 여기는 저렴한 물건들이 많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특히 미국 메이커인 코치 가방과 폴로T샤쓰는 인기 품목이다. 나도 코치가방과 양산 그리고 폴로 티셔츠 2장을 샀다.
이번 일정은 여기서 끝이 나고 우리 일행은 새벽 0시50분 대한항공 KE086을 타기 위해 뉴욕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수속을 하면서 대한항공 직원들을 보니 내 집에 온 듯하다. 그간 영어를 못해 이곳에서 받았던 설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13일간의 관광 일정을 끝내고 비행기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날짜는 이미 하루가 지나가 있었다. 떠날 때 벌었던 그 시간이 다시 떠나가 버렸다.
새벽 3시 20분에 드디어 인천에 도착했다. 우리말이 통하고 우리 음식이 있는 내 나라의 품에 안겨 그간 쌓였던 피로를 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