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 유람선
서호 유람선
중국 냄새가 진하게 묻어 있는 선착장에서 중국풍의 유람선에 올랐다. 호수라고 부르기엔 너무 큰 규모라 차라리 강이나 바다라고 불러야 맞지 않겠나 싶다. 둘레가 15km라고 하니, 어제에 이어 또 크기가 나를 놀라게 한다. 중국은 땅이 넓으니 사람들의 사고도 크게 만드는데 이력이 났나 보다. 이 호수도 인공 호수라고 한다. 이렇게 모든 건축물의 크기가 우리와는 비교도 안됐다.
유람선에 몸을 싣고 이틀 동안의 피로를 씻어 본다.
첫 날 임시정부청사 관람 후 숙연한 맘으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은 물의 도시 소주를 거쳐 이곳 항주로 왔다. 춘추전국시대 때 오나라, 월나라였던 고도라 역사적인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소주, 항주를 주마간산하듯 휘∼이 둘러보며 규모의 크기에 놀라고, 이국적인 향취에 흠뻑 취했다. 입시 공부하는 고등학생처럼 한산사, 영은사, 육화탑 등을 관람하며 메모지를 들고 가이드의 설명을 한마디도 빼먹지 않고 모두 기록했다.
특히 소주의 졸정원에서는 한 개인의 정원이 우리나라 경복궁의 두 배가 된다는 말에 기가 팍 죽었다. 거대 중국의 크기와 힘에 질려 주눅이 들었을 조상들 생각도 난다. 그래도 우리 조상들의 현명한 대처로 오늘의 경제대국을 이룬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만리장성 다음으로 중국의 자랑거리인 경항 대운하를 이 항주에서 만났다. 이곳 항주가 대 운하의 남쪽 끝이다. 이는 수나라 때 시작해서 명나라 영락제 때 마쳤다고 한다. 베이징에서 항주까지 1750Km의 장거리 대 운하다. 이는 5개의 강들을 이어서 만들었는데 지금도1500Km 정도는 사용하고 있단다.
수나라는 고구려와 전쟁시 이 수로를 이용해 전쟁 물자를 날랐을 것이다. 그러나 수나라는 이로 인한 국력 소비로 37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거대한 운하를 보면서 중국인의 대형 스케일에 감탄할 뿐이다.
이틀 동안 내 머리 안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를 잠시 접어 두고 천 년의 세월 저편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갔다.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땅이었던 그때로 돌아가 4대 미인 중의 한 사람인 서시(西施)를 만났다.
오늘따라 눈이 올 런지 날씨가 흐리다. 흐릿한 안개 속으로 월나라의 미인 서시가 걸어오는 듯한 그윽한 호수다. 서시는 무너진 월나라를 다시 세운 의로운 여인이다.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 왕 '부차'에게 포로로 잡혀 치욕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를 일러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시기라고 했다. 풀숲에 누워 쓸개의 쓴 맛을 본다는 뜻으로 재기할 날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견딘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월나라의 책사 범려의 지혜로 서시를 오나라 왕에게 보내게 됐다. 계획대로 오나라 왕은 서시의 미모에 홀려 정사는 멀리하고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월나라를 다시 찾게 됐다는 이야기다.
당나라 양귀비와는 대조적인 미인이다. 당나라는 양귀비로 말미암아 멸망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갔지만 월나라는 서시로 말미암아 잃었던 나라를 구하게 됐다. 이렇게 미모의 여인이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 한다는 걸 실감나게 했다.
유람선에 앉아서 이 아름다운 호수를 거니는 서시를 상상해 본다. 서시의 아름다움에 물고기마저도 유영을 멈추고 물밑으로 가라앉았다고 하니 (浸魚), 그 아름다움이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의 절경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시간이 남아서 둘레 길을 걸으며 멋에 취해 본다.
서호에는 두개의 제방이 있는데, 소제와 백제다. 소제는 송나라 때 소동파가 지방관으로 있을 때 축조한 것이고, 백제는 당나라 때 백거이가 지방관이 돼서 축조한 것이다. 이 두 제방 위를 걸으며 송과 당, 오나라의 시간들을 깔고 오늘 내 발자국을 포갠다.
저녁엔 이 지방 요리인 '동파육'을 먹으며 소동파 시인을 떠 올려 본다. 이 요리는 소동파가 실수로 술을 부어 조리한 것이 예상 밖으로 유명한 요리가 됐단다. 비개가 두툼한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인데 우리나라 장조림과 비슷해서 맛이 있었다. 또 거지 닭이라는 흙에 구운 요리도 먹고, 서호에서 바로 잡은 생선으로 요리한 것도 먹었다. 이렇게 여행은 자연 경관과 역사, 문화, 요리까지 현지인과 어우러져 여행객을 즐겁게 했다.
막내딸이 첫 번째 여행 장소로 이곳을 택한 건 잘한 일이었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에게 오, 월, 송, 당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최상급이었다. 거기다 요리도 받쳐주니 금상첨화였다.
우리가 자주 쓰고 있는 고사 성어도 이곳에서 비롯 된 것이 더러 있어 신기했다. 오월동주, 와신상담, 동병상련 등이 바로 이 지방이 무대가 돼서 생겨난 말이란다.
3일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머리에는 지식을, 가슴에는 감동을 가득 채울 수 있어 좋았다. 이를 계기로 내 여행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