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네바 강은 흐르고

류귀숙 2017. 9. 12. 16:42

          네바 강은 흐르고∼

 네바 강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 중간을 가로 질러 흐른다. 도도한 물결 위에 역사는 흐르고, 유람선 위에 몸을 실은 나도 흐른다. 넘칠 것 같이 넉넉한 양의 강물은 많은 양의 시간과 사연을 담고 있다.

 표트르 대제는 이 강을 허투루 보지 않았다. 이 강이 서방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점도 놓치지 않았다. 이 도시가 서방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할 것이라 굳게 믿었다. 대제는 급기야 네바 강과 함께 서쪽으로 쭉쭉 뻗어나갈 발판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버려진 이 땅을 재건한 표트르 대제시여! 그대는 러시아를 중흥시킨 위대한 인물이로다! 그의 손은 갯벌로 버려진 이 땅을 간척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었다. 네바 강도 지금까지의 보잘 것 없는 모습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게됐다.

 표트르는 이 강을 발판으로 스웨덴과의 전투에서 승리의 깃발을 날렸다. 이를 기념해 궁전을 지었는데, 네델란드의 건축기술을 도입해왔다. 당시 유행하던 로코코 양식으로 우아하고 웅장한 여름 궁전을 지었다.

그래서 여름궁전은 러시아의 자존심이 됐다.

 그는 서방으로부터 선진된 문화를 받아들였고, 산업을 받아들였다. 또 모스크바에서 정부를 이 도시로 옮겨 놓았다. 이 도시는 모스크바에 이어 러시아 제2의 도시가 됐다. 다음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모두 네바 강에 부려 놓고 러시아의 중심도시로 발전시켜 나갔다.

 모스크바의 크렘린 요새와 붉은 광장은 이전까지 러시아를 대표했다. 영화의 중심에 섰던 '성 바실리 성당'과  3대 성당, 이반대제의 종탑, 수도원, 궁전들은 그 영화를 살짝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넘겨주게 됐다.

 잔잔한 물결 위로 유람선이 미끄러져 나간다. 물결 위에 서니, 그때 이 도시에서 시를 읊고 작곡을 했던 문학인과 예술인이 한 사람씩 떠오른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삶의 시를 읊었던 푸시킨과 좌와 벌을 지은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도 보인다. 그 유명한 차이코프스키도 이 도시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니, 이 강물은 모두 알고 있으리라. 그들의 고뇌와 그들의 슬픔까지도….

 오늘따라 찬란한 태양이 물결위에 부서진다. 정오에 가 보았던 여름궁전의 분수에서는 '레닌그라드의 눈물'이라는 웅장한 선율에 맞춰 힘차게 물줄기를 뿜어댔었지? 또 겨울궁전은 어떻고! 표트르의 뒤를 이은 예카테리나 2세 때는 어마어마한 겨울 궁전을 건립하지 않았나! 로코코 양식의 건물은 연둣빛과 흰색의 조화로 산뜻한 느낌을 준다. 여제가 이렇게 큰일을 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러시아에서 이름 난 여제로 예카테리나 1세와 2세가 있는데 이 겨울궁전은 예케테리나 2세 때 지은 것이다. 그 규모가 대단해 세계적이다. 지금은 '에르미타쥬'라는 이름의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여기에 소장된 소장품이 230만 점이고 회화 작품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 

 넵스키 대로변에 우뚝 선 푸른색의 청동 돔형 지붕이 돋보인다. 이 아치형 성당은 로마의 베드로 성당을 본떠 만들었다는 '카잔' 성당이다. 이곳에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트로피와 탈취한 군기들이 있다. 그래서 이 성당은 러시아 군의 영광을 상징한다.

 아름다운 외관과는 달리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진 사원이 있다. '피의구원 사원'(그리스도 부활 사원이라고도 한다)이라고 모스크바 '성 바실리 성당'의 아름다움에 버금간다. 이곳에서 알렉산드로 2세가 피격됐다. 그때 흘린 피의 자리가 아직도 보존 돼 있다. 알렉산드로 2세는 본격적으로 러시아 근대화를 추진한 임금으로 농노를 해방시킨 공적이 크다. 이곳은 알렉산드로 2세의 생전 치적을 기리고 암살범의 속죄를 위해 국민 헌금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또 2월 혁명과 10월 혁명으로 죽어간 수많은 영혼을 기리기 위해 꺼지지 않는 등불이 세워지고부터는 사원 앞 광장을 피의 광장이라 부른다.

 이 도시엔 피의 역사와 전쟁의 역사만 있는 게 아니다. 그와 못지않게 러시아는 예술이 발달한 나라다. 1800년대에 발레 학교를 설립했다. 이어서 국립대학과 음악 학교도 설립했다. 차이코프스키도 이 음악학교 출신이다.

 예술의 광장에는 푸시킨의 동상이 단상 위에 높이 서 있다. 모스크바에서는 아르바트 거리에서 아내 '곤차로바'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여기서는 대 문호다운 모습이다. 오른 팔을 쭉 펴 들고 시민들에게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듯하다. 알렉산드로 푸시킨은 모스크바에서 태어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근대 러시아 문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유람선을 타고 한 바퀴 도는 동안 강 주변에 늘어 선 많은 문화재를 조망할 수 있다. 궁전과, 성당, 사원들이 죽 늘어서 있어 네바 강 가가 박물관이다. 여기에는 200여년의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는 곧 전쟁과 피의 역사다. 그러나 남겨진 문화재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능청스럽게 서 있는 건물 속에서 피바람이 일어났던 일을 이 강은 알고 있으리라.

 표트르 대제가 수도를 옮긴 지 200년 후에 또다시 피의 폭풍이 일어난다. 니콜라이 2세가 왕위를 빼앗기고 결국 죽음을 당하게 된다. 1905년 1월 9일 이를 '피의 일요일'이라 한다. 2월, 10월 혁명을 거쳐 왕조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한 '레닌'은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을 열었다. 그는 다시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겼다.

 이 네바 강은 200년 동인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안고 묵묵히 흘러가고 있다. 이들이 사라져 간 뒤 남은 것은 건축물과 예술이다. 그 중 푸시킨이 남긴 문학작품 '삶'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은 이 네바 강과 함께 영원하리라!

한 바퀴 돌아 선착장으로 가려는데,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 도시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이 강도 '비창과 같은 마음일까? 모스크바로 영광을 넘기려니 아쉬움도 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