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香港)
홍콩(香港)
여행도 가지가지다. 그 형태나 구성원에 따라 패키지여행, 자유여행, 무전여행, 가족여행, 신혼여행, 맛집여행, 테마여행 등 등 갖가지 이름표를 단 여행이 다가온다.
언제부턴가 가족여행을 계획하게 됐다. 딸애 둘이서 홍콩 쪽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 했다. 그 속셈이 뻔히 드러나지만 못이기는 척 그 장소에 동의했고, 쇼핑여행으로 끝내기엔 너무 아쉬워 하이난 섬(海南島)까지 넣어서 가기로 정했다.
이번엔 전적으로 아이들의 계획에 따르기로 하고, 우리 부부는 돈만 들고 따라가는 정도로 하자고 결정을 내렸다.
홍콩은 아이들에게 쇼핑 욕심을 채워 줄 것이고, 하이난 섬은 생활 속에 달라붙은 찌꺼기를 바닷물로 말끔히 씻어 줄 것이다. 지금까지 가이드의 깃발아래 병아리처럼 오종종 모여서 문화재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여행이 아닌 특별한 여행이다. 20대로 접어든 아이들이라 언제 둥지를 떠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혹시 이번 여행이 애들과 같이 떠나는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일어난다. 하지만 자유여행은 여러 가지 어려운 점도 따른다는 것을 알기에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출발일은 2009년도 1월 23일이란다. 날짜 맞추기가 어려워 구정연휴로 정했단다. 직장 사정상 이때가 적기인 것 같다. 또 여행지가 남쪽이니 겨울이라도 상관이 없다.
2년 전 캄보디아 여행 때도 경험했듯이 겨울에 더운 나라로 여행가면 4계절 옷을 모두 챙겨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며칠 사이에 4계절을 모두 경험할 수 있어 장점만 보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둘째는 비행기 티켓이며 비자 등 전체 계획을 맡았고, 막내는 홍콩에서 쇼핑과 여행을 안내하기로 했다. 나는 가방 챙기기와 환전 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출발하는 날 둘째가 선두 주자가 돼서 인천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게 됐는데 한 걸음 뒤에 서서 다 자란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밤늦은 시간에 홍콩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슬슬 긴장되기 시작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숙소를 찾아야 하는데… 갑자기 불안감이 스멀거린다. 시계는 12시를 향해 바삐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도 공항은 넓어 버스 타는 곳도 못 찾겠고, 공중전화도 걸 수 없고, 버스 티켓도 어디서 끊어야 할지 막막했다. 주위 사람에게 물으니 12시가 넘으면 버스가 끊어진단다. 막내가 잽싸게 안내데스크에 물어 '옥토피스 카드'를 사는 데 성공했다. 1인당 150불하는 이 카드를 사야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둘째는 어디서 물었는지 버스 타는 곳을 알아왔고, 공중전화용 동전도 바꿔왔다. 여기서 영어 실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12시 10분전이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안도의 숨을 내 쉬는 순간 버스가 왔다. 우리가 내릴 곳은 치엔사쥬에이(尖沙咀)역이다. 이때는 나의 중국어 실력을 보여줄 때다. 전광판에 한자로 역 이름이 나오고 또 영어로도 나왔다. 난 역 이름을 보면서 바다가 가까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래 사(沙)자가 들어가는 지명이니 바닷가를 뜻하지 싶었다.
목적지 정류소에 마중 나온 필리핀 가정부를 만나 숙소를 안내 받았다. '미라도 빌딩'으로 안내됐다. 번화가에 위치한 이 거대한 건물은 낡은 건물이라 음침했다. 몇 몇 흑인들의 눈초리가 우리를 노리는 것 같아 조심해서 올라갔다. 이때 막내가 하는 말이 이 건물은 외국 영화에 자주 나온다고 했다. 마약 중독자들의 생활 근거지로…. 오싹 소름이 돋는다.
8층 엘리베트에서 내리니 '우리 하우스'라는 한글 간판이 나오고, 귀에 익은 우리말이 들린다. 우리가 안내 받은 방은 가족 4인이 묵을 수 있는 7호실이다. 밖과는 달리 안옥하고 정결했다. 또 곳곳에 성구와 성경책이 놓여있고, 달력도 홍콩 동신교회에서 제작한 것이다. 이래서 애들이 이곳을 택했구나!
식사도 순수한 한식으로 준비했고 객실 서랍 속에는 성경책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전도에 힘쓰는 주인의 믿음이 보여서 기도로 응원해 주었다.
이튿날은 막내가 인도하는 대로 쇼핑천국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많은 명품 매장이! 어디다 눈을 고정시켜야 할지 모르겠다. 드디어 애 둘이 전광화석처럼 가방 매장으로 달려갔다. 눈빛을 반짝이며 가방을 고르는 애들의 눈은 마치 병아리를 낚아채려는 매의 눈이다. 아주 짧은 시간에 한 아이가 가방 2개씩 낚아챘다. 내가 계산을 담당했는데 별로 비싸지 않았다. 이번엔 구두 가게, 옷가게, 주얼리 가게, 이렇게 지칠 줄 모르고 돌아다닌다. 애들 아빠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서울에도 많은데 왜 여기서 사냐?'며 볼 부은 소리를 했다. 난 요즘 아이들은 상품가치 보다는 기호 가치를 쫓는다고 유식한 말을 해줬다. 그건 상품의 질 보다는 메이커의 가치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금 정신을 차린 애들은 방치해 뒀던 부모가 생각났나보다. 막내가 세계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트로 인도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재래시장에도 갔다. 여기서 아빠 도장을 새겼는데 값을 깎아서 그런지 찾고
보니 음각으로 성의 없이 파 놓았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속임수다. 속이는 데도 급수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중국말로 물건 흥정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곳 홍콩은 오랫동안 영국령이었기에 영어가 기본이고 어른들은 중국어를 더 잘했다. 명품 매장에서 미처 구입하지 못한 선글라스도 하나 샀다. 또 빨간 색 2층 버스를 타고 해변을 달리니 그 풍경도 멋졌다.
셋째날도 애들은 못 다한 쇼핑을 하고 싶은 눈치라 애 둘만 쇼핑으로 가고, 우리 부부는 시내를 돌면서 관광하기로 했다. 이날 저녁 무렵에 홍콩을 떠나 하이난 섬으로 가야하는데, 그 시간까지 애들과 어른들이 분리됐다. 홍콩에는 마지막 날 하이난 섬에서 돌아와 인천행 비행기를 갈아타면 된다. 그러니 남은 몇 시간이 홍콩 여행의 마지막이다.
쇼핑하느라 정신없었던 시간이 지나니 이제 겨우 시가지가 눈에 들어오고 이곳의 거리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에서 관리했던 탓으로 이 도시는 서구 문명과 중국 문명이 녹아 있는 곳이다. 거대한 이슬람 사원에서는 마침 주일 예배 드리는 신도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그 옆 구룡공원에는 먼 곳에서 온 이슬람 인들이 가져온 도시락을 먹으며 예배에 참석하고자 했다. 휘잡을 두른 그들 속에서 사원 안을 기웃거렸더니 들어오란다. 이슬람의 이질성 대문에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만 맴돌았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양 꼬치랑 튀김을 사 먹는 재미는 한국과 별다른 점이 없다.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도 그 이전과 별로 다른 점이 없고 다만 중국 본토인들이 많이 이주해 왔다고 한다.
몇 시간 후면 떠나게 될 곳이라 아쉬움을 달래며 애들이 좋아했던 명품거리와 백화점을 둘러보니 여긴 중국이라고 말할 수 없겠다 싶다. 화려한 장식에 자유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었다. 중앙 백화점의 벽면을 온통 독차지한 한국 배우 송혜교와 아모레 '라네즈'의 광고가 눈길을 끌고 있다.
다양한 중국 땅을 체험하면서 중국 속의 영국을 보고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