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난 섬(海南島)
하이난 섬(海南島)
저녁 7시30분에 출발하는 하이난행 비행기는 '케세이퍼시픽'과 연결된 港龍(항룡 항공) 즉 드레곤 항공이다. 꼬리 날개에 시뻘건 용이 그려져 있어 촌스러움을 주고 있다. 이 비행기는 체크인도 어렵고 게이트도 쉽게 알 수 없다. 게이트가 별관(신청사)에 있다기에 지하철로 이동했다. 애들 말로는 구린 항공은 모두 신관에 있단다. 인천에서 케세이퍼시픽을 탈 때도 신청사로 이동해서 탔다.
시간이 넉넉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예쁘장하게 생긴 청년이 말을 걸어오기에 대화가 됐다. 이름은 林睿(Lin rui 임예)이고 고향은 하이난인데 미국에서 대학을 마쳤고, 직장생활 1년차라고 했다. 서툰 중국어 보다 영어가 낫겠다 싶어 애들을 붙여줬다. 애들과 제법 잘 통해 우리의 하이난 여행을 돕겠다고 했다. 이메일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받아냈다. 이래서 여행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수확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홍콩에서 1시간 반 만에 섬에 도착했다. 미리 약속해 둔 '하이난 이야기'여행사에서 호텔까지 픽업해 주었다. 숙소는 '데이지 리조터'라고 바닷가에 위치해 있었다. 야자 숲과 수영장이 어우러져 하와이에 온 듯한 느낌의 A급 리조트다. 둘째가 간 크게도 하루저녁 숙박비가 80만원이 넘는 호텔을 예약한 것이다. 2일에 165만원을 지불하려니 아깝긴 했는데, 시설은 지금까지 투숙해 본 호텔 중 가장 으뜸이다. 애들 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 현관문을 열지 않아도 수시로 옆방을 드나들 수 있다. 욕조에서 목욕을 즐기며 T,V시청도 할 수 있다. 멋진 가구며 창밖으로 바다가 한마당 펼쳐져 용궁에라도 온 듯하다. 비싼 값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아깝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이것도 여행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날 그 청년과 연락하려니 핸드폰이 없어 컴퓨터에서 이메일로 연락하려했는데 이용료가 30분에 우리 돈 6,000원 가량이다. 너무 비싸 속는 기분이 들었고, 그 청년도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포기하고 우리끼리 부딪쳐 보기로 했다.
애들은 또 늦장을 부리고 있다. 어제 픽업해 준 여행사 직원이 낮에 놀고 있으면 밤에 야경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단다. 이 아까운 시간을 호텔에서 빈둥거릴 수는 없기에 애들을 다그쳐 밖으로 나왔다.
아롱만(亞龍灣)을 목표로 정해 놓고 차편을 알아보려는데 택시 운전사들이 먹이 감을 발견한 승냥이처럼 달려들었다. 아롱만까지 1,000원이라 했다. 우리 돈 20만원이다. '어림 없는 소리!' 비싸다고 중국말을 했더니 '홍콩 사람이냐?'고 물어왔다. 난 당당히 한국 사람이라고 밝히고 비싸서 타지 않겠다고 했더니, 반을 뚝 잘라 500원 달랜다. 그래도 거절하고 서 있었더니 공공 버스가 오고 있었다. 손을 들어 세우고는 아롱만 가느냐고 물으니 타라고 했다. 꼭 60년대 우리들의 시골버스와 흡사했다. 버스 안내양이 있고, 손을 들면 세워주고, 요구하는 장소에서 내려 줬다. 요금을 물었더니 일인당 10원이란다. 우리 돈 2000원이다 4명이니 8000원 아닌가! 10만원 이상 지불하고 갈 곳을 8,000원에 가게 되니 10만원을 번 기분이다. 안내양에게 아롱만에서 내려 줄 것을 당부하고 자리에 앉으니 바깥 풍경이 아름답다. 해변 가를 버스를 타고 달리는 기분을 만끽하고 1시간 쯤 걸려서 아롱만에 도착했다. 이곳은 세계적인 관광지답게 인산인해다. 대부분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고, 포장집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수영복을 준비하지 못한 우리들은 포장집 앞에 줄을 섰다. 꼬치도 여기서는 생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개 10원, 15원짜리다. 가까스로 생선꼬치를 샀다. 맛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꽤 맛이 있었다.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양념인데 입에 맞다. 복잡해서 더 사 먹을 수 없어 옥수수 좌판에서 옥수수를 샀다. 옥수수는 쉽게 살 수 있는 걸보니 이건 비인기 품목인가 보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겨울 속의 여름을 맛보는 것도 이번 여행의 장점이다. 이때 한국에는 구정 추위가 닥쳐 눈보라가 휘몰고 있다고 어제 조선족 가이드가 말했다. 우리만 따뜻하게 지내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이 곳 사람들은 눈보라 휘몰아치는 추위를 알기나 할까? 눈보라도 어찌 보면 이들에게는 이색 풍경이라 관광 상품이 될 것도 같다.
돌아오는 길도 물론 저렴한 버스를 이용했다. 이젠 중간 중간에 내려서 구경하면서 점심도 사먹고 자유여행다운 여행을 하기로 맘먹었다. 안내양에게 부탁해서 식당 많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거의 중간 지점에서 내렸는데, 이곳은 각종 놀이기구들이 있고 사람들로 붐볐다. 점심을 먹어야겠기에 수족관들이 죽 늘어서 있는 식당주위를 보며 사전 답사를 했다. 앞서서 주문하는 사람들을 관찰했더니, 여기는 메뉴판이 있는 정식 식당이 아니고 관광지의 간이 포장집 정도의 수준이라 생선을 직접 고르고 있었다. 우리들도 수족관의 생선 한 마리를 손가락질하고 조개도 약간 달라고 했다. 얼마냐고 물으니 답은 않고 생선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차! 또 속았구나 생각하고 왜 가격을 말하지 않느냐고 따졌더니 화난 얼굴로 생선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무서워서 보고만 있었더니 패대기친 생선을 저울에 달고 있었다. 그제야 안도했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생선은 기절 시켜야 맛있다는 기억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뒤통수에다 대고 향차이는 빼 달라고(不要香菜) 외쳤다. 생선요리랑 조개요리, 밥, 밑반찬 약간 그리고 생수를 시키니 모두 45원(우리 돈 9만원)인데 요리는 맛있었다. 특히 조개요리는 특유의 양념을 해서 우리들에게 생소한 맛인데도 꽤 맛있었다. 뭘 더 시켜먹고 싶었으나 표현이 어려워 포기했다. 여기서 나의 중국어 능력의 부족을 느낄 수가 있었다. 좀 더 공부했더라면 식당에서도 마음대로 요리를 시켰을 텐데….
다음 날은 저녁 비행기로 홍콩공항으로 가서 밤 시간 동안 인천으로 이동해야한다. 그러니까 호텔 체크아웃은 오전에 해야하니 낮 시간을 이곳에서 못 다한 구경을 해 보기로 했다. 이젠 합승버스 정도는 마음대로 탈 수 있고, 오토바이 옆에 리어카 비슷한 것을 매달고 가는 탈것이 신기해서 최대한 저렴하게 흥정했다. 인력거 비슷한 탈것을 타고 해변을 달리니 꼭 시골에서 경운기를 타고 가는 기분이었다. 근처의 슈퍼에 들러서 과자랑 생선 조림 같은 것을 샀는데 맛이 괜찮았다. 이 나라는 맛보기가 없어 생선 조림의 맛을 알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살 걸 하고 후회했다. 와이키키 해변을 걷듯 하이난 해변을 걸으며 모래위에 발자국을 찍어도 보고, 바닷물에 발도 담그면서 여유롭게 한나절을 보냈다.
공항까지는 택시를 타려다 지난 번 픽업해 주었던 가이드에게 부탁해서 이동했다.(40원을 팁으로 주고 )
하이난 공항은 아주 멋스러웠다. 고전미가 넘치고 고급스러웠다. 이번에도 드레곤 항공으로 홍콩까지 가서 환승하는 코스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중국인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다. 앞 뒤 좌석에서 밀고 당기면서 다투는 것 같더니 급기야 패싸움이 벌어져서 치고 박고 한참 난리가 났다. 경찰과 앰뷸런스가 오고 사건이 확대됐다.
문제는 조사를 위해 승객 모두가 공항버스에 갇히게 됐다. 인천행 비행기 환승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애를 태우다 체크인 시간에 임박해서 도착했다. 그러나 이게 웬말인가! 좌석이 매진되고 없단다. "이런 경우가 있나?" 비행기 표는 이미 예약됐는데 자리가 없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애들은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이 비행기로 못가면 낭패다. 케세이 항공 측에서는 호텔 비를 줄 테니 내일 가라고 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두 아이가 실력을 발휘할 때다.
막내와 아빠는 화를 버럭 내며 안 된다고 만 했고, 둘째는 외국인들은 화를 내고 윽박지르면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내 생각에는 둘째 말이 맞는 것 같아 알아서 처리해 보라고 했다. 만약 안 되면 내가 중국말로 나서볼 작정이었다.
둘째는 조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상대방의 잘못을 꼬집고(좌석표를 과다하게 매매한 점) 우리의 입장은 어떻게 하든 오늘 가야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이 항공사는 비슷한 시간에 출발하는 아시아나 항공과 대한 항공을 오가며 교섭하고 있었다. 책임자가 정중하게 사과하며 진행사항을 알려 왔다. 잠시 후 승무원이 우릴 대한항공 비지니스 석에 예약했다고 정중하게 안내했다. 물론 사과도 받았다. 항공료 아끼려고 이코노미 석을 그것도 저가인 케세이퍼시픽을 예약했는데 그 몇 배의 가격인 대한항공 비지니스 석이라니! 놀라운 반전이다.
이때 언어능력이 빛을 발하는 거다. 둘째랑 막내 모두 미국과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보낸 것은 잘 한 일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비행기 좌석도 성수기에는 늦게 체크인하면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때가 구정 성수기라 우리일행이 늦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 준 모양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중국인들의 싸움 구경도 했고, 위기에서 차분하게 대처하는 법도 배웠다. 또 다시 가족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희망하며 비지니스 석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홍콩 하이난 여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