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그날의 함성

류귀숙 2019. 3. 18. 17:41

         그날의 함성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인의 시구가 다시 한 번 가슴을 울리는 시간이다. 어느새 마음은 100년 전으로 날아가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목구멍이 꽉 막힌다. 눈물 콧물도 들락거린다. 그 설움, 그 고통을 생각하며  울분을 삼켰던 지난날을 더듬어 본다.

 번쩍번쩍, 우르르 쾅쾅 노한 하늘이 천둥 번개로 변해 이 땅을 치던 날. 엎드려 숨죽이던 민족이 일제히 일어났다. 폭풍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태극기의 물결을 어찌 막으랴!

 대한독립만세! 함성은 지축을 울리고 하늘을 갈랐다. 아무리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쳐도 얼음장 아래에 있던 씨앗은 죽지 않는다.

 그렇다! 빼앗긴 들에도 분명 봄은 올 것이다.

 우리민족은 일제의 발자국에 짓밟히고, 수탈당하고, 강제 징용에, 굶주림에, 몸부림쳤다. 나라를 찾겠다고 나서면 쾌도난마로 애국지사의 목숨을 거둬갔다. 그러나 일제가 급기야 민족의 뿌리를 뽑고자 고종황제를 독살했다는 소식엔 분연히 일어났다. 참고 참았던 울분이 폭탄처럼 터져 나왔다. 대한독립만세! 목청이 찢어져라 외치고 또 외쳤다.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방방곳곳에 태극기의 물결이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전국을 뒤덮은 태극기의 물결은 실로 장관이었다. 이 소식은 세계 각국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물론 일제도 함부로 범하지 못할 민족임을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위정자들이 빼앗긴 나라 그 나라를 찾으려 민초들이 일어선 것이다.

 평소 일본은 우리 땅을 탐내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를 지켜야할 위정자들은 안전 불감증 환자가 되어 무기력했다. 왜적을 물리치고자 지혜를 동원하고, 민족이 하나로 뭉쳐 철통 같이 방어를 해야 함에도 정부는 무기력하고 벼슬아치들은 사리사욕만 찾았다. 급기야 삼천리금수강산이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5000년 사직이 물거품이 되고 일제는 민족 말살 정책을 시행했다.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도 전에 백성들은 맨 몸으로 벼랑 끝에 섰다. 어떤 이들은 좌절하며 체제에 순응했고, 또 어떤 이들은 이국땅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떠돌이 신세가 됐다. 그 중에서도 횃불을 높이 든 애국자가 있었으니 그분들을 일러 애국지사가 부르며 칭송하고 있다.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았을 때가 눈에 선하다. 이 뜻 깊은 날에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다.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팻말이 우리 한글로 왼쪽 기둥에 새겨져 있고 오른쪽에는 중국어로 쓰여 있었다. 그때 그대로의 낡은 건물 앞에 서니 가슴이 찡하다. 짐작만할 때는 멀리 느껴지던 그 설움이, 울분이 바로 지척에서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다.

낯설고, 물선, 중국 땅에서 나라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온 세월이 이 건물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정부청사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초라한 3층 목조 건물 앞에서 입장표를 샀다. 20위안이라고 적혀있는 입장표를 손에 쥐니 묘한 전율이 일어난다. 내 나라를 빼앗기고 남의 나라에서 셋방살이 했던 민족 지도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청사로 들어가는 데 중국 돈으로 셈을 하고, 중국인의 설명을 들어야한다는 사실에 눈물이 찔끔 난다. 이나마도 이 거리를 재개발하면 역사에 길이 남아야할 이 건물이 헐리게 되는데, 두 나라 정부가 잘 타협해서 지금까지 개발을 미루고 있다. 아울러 거리도 모두 옛날 그대로다. 이 점은 중국 정부에 감사한다.

 안내원을 따라 1층으로 들어가 10분간 임시정부의 활약상과 청사 복원에 관한 비디오를 시청했다. 애국자들의 노고에 눈을 껌벅이며 깊이 고개 숙인다. 삐꺽거리는 좁은 나무계단을 밟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집무실로 이용했다고 한다. 이승만, 박은식, 이동영 등의 애국지사가 사용했던 사무용품들이 그때를 증언하고 있다. 그분들의 손때 묻은 책상이랑 사무용품들을 만져보며 그때를 상상해 본다. 지금 이분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분들의 노력이 이 땅에 봄을 불러 들였다는 생각이다. 이분들이 계셨기에 오늘 날 우리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체제하에서 자유를 누리며 이렇게 해외여행까지 다니고 있지 않은가. 모두가 나라위해 몸 바친 분들의 공로라고 생각한다. '상하이 시 마당 로 306동 4호' 이 주소지에 우리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청사가 있다. 이 건물을 통째로 우리나라에 옮길 수는 없을까?

 3.1운동 이후 세워진 임시정부는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다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마저도 1932년 윤봉길의사의 폭탄투척 사건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의 감시를 피해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충칭 등 중국 여러 지역으로 옮겨 다녔다고 한다. 그분들의 노고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올해가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고 한다. 그간 한반도에 몰아닥친 격동의 시간들이 이젠 한시름 놓고 안도의 숨을 쉬고 있다. 다시 찾은 나라를 재정비하고 식민지의 치욕을 벗어버리려고 노력했던 조상들 또한 그 공로를 조명해야 할 것이다. 이젠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10대 경제대국에 올랐다. 100년 동안 쌓아올린 금자탑을 굳건히 지키고 더욱 발전된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지금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앞으로 몇 백 년을 이어갈 이 땅을 위해 그날의 함성과 울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은 특별히 시간을 내서 딸아이와 같이  대구의 만세운동 현장을 찾았다. 후손들에게도 가르쳐야할 고난의 역사가 아닌가! 지상철 3호선을 타고 서문시장 역에서 내렸다. 바로 옆 동산병원이 자리 잡고 있는 동산으로 걸어 올라가며 그 옛날의 함성을 떠 올려 본다. 여고시절 이 언덕을 넘어 모교인 신명여고에 다녔던 그 옛길을 딸아이와 같이 걸으니 감회가 새롭다. 이 동산의 모습이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그때는 제일교회 자리에 신학교가 있었고, 동산에는 선교사 주택이 여러 채가 있었다. 빨간 벽돌로 지은 선교사 집 담장에는 줄장미가 담장 너머로 늘어져 있었고, 담장을 기웃거리며 안을 들여다보면 노란 머리의 귀여운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 청라언덕도 꽤나 높았다는 생각이 난다. 숲이 우거진 동산에 그림 같은 집들이 있어 이 길을 오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곳이 독립만세의 출발 지역이라니! 그때는 몰랐다. 청라 언덕에서 생각 없이 90계단을 오르내리곤 했다. 이곳이 이렇게 중요한 역사 현장이라니!

 늦은 감은 있지만 대구시에서 역사의 현장을 복원하고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을 해 낸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자칫 역사 현장이 소멸될 뻔했다.

 90계단의 가장 윗부분에서 한 계단 한 계단 밟으며 독립만세 외치던 그 당당함을 생각한다. 그 때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고등학생들을 생각하면 안쓰럽고 눈물이 난다. 그때 대구에서는 3월8일로 만세운동의 거사를 결의했다. 민족대표 이갑성이 서울에서 밀명을 가지고 내려왔다. 그는 대구 교계의 지도자인 이만집 목사, 김태련 조사, 박남채 선생 등을 만나 만세운동의 의지를 모았다. 1908년 건립된 제일교회와 대구고보, 계성고등학교, 신명여고, 성서학당 등이 주체가 됐다.

 20세도 채 못 된 어린 학생들의 활약은 실로 컸다. 학생들은 미국 선교사 아담스 목사 사택의 지하에서 독립선언문을 등사했다고 한다. 

 지금의 어린애 같은 고등학생들을 보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얼마나 용감하고 당당한 학생들이냐! 또 그들에게 두려움인들 없었겠나! 오로지 나라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누르고 목숨도 내 놓으려는 자세였다. 계단 벽면에 그날의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그들은 20세 미만의 꽃다운 나이었다. 아직도 솜털이 보송보송한 앳된 얼굴인데 어디서 그런 용기와 결기가 일어났을까? 학생들 중앙에 키 큰 외국인 부인의 모습도 보인다. 이 분은 선교사 브루엔 목사의 사모로 신명여고를 설립한 분이시다. 남의 땅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미국 선교사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이들이 전한 기독교로 인해 독립 운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민족 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고, 천도교인이 15명, 불교인이 2명이다. 이로 볼 때 종교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청라언덕에서 시작해서 90계단을 내려가 길을 건너면 이상화시인의 생가와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었던 서상돈선생의 생가가 있다. 이분들이 태어나고 자란 이 땅 대구를 더욱 발전시켜야 함도 당면한 과제다.

 많은 사연과 희생을 딛고 우뚝 선 이 나라가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 나라 백성 됨에 긍지를 느낀다. 해외여행을 좋아해서 세계 곳곳을 다녀보면 한국 관광객이 넘쳐난다. 어딜 가나 한국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 국민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옷차림과 용모다. 그러니 세계인들이 더 이상 우리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대한민국은 잘사는 나라라는 인식이 박혀있다. 특히 동남아에 가 보면 젊은이들이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어느 가이드는 자신의 목표는 한국어학원을 차리는 것이란다.

 이런 좋은 나라에 언제부턴가 내부에 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바 갈등이다. 뒤따라서 불신과 거짓이 난무하고 남을 비밯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서 가장 큰 갈등은 이념의 갈등이다. 우리나라의 특성상 피할 수 없는 갈등이지만 자신과 다른 의견에는 귀를 닫는 게 문제다. 이를 조장하는 주체세력은 바로 위정자들이다. 국민을 하나로 아울러야할 지도자들이 자신의 사리사욕 때문에 반목하고 이를 위해 거짓 선전을 일삼고 있다. 국민들도 어느 듯 그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이념, 소득 격차, 계층, 남녀, 세대간, 빈부 등 많은 갈등의 요소들이 코브라가 목을 치켜들 듯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모두가 정신차려야할 때다. 나라가 망하는 건 외부의 적으로부터가 아니라 내부 갈등이 원인이라는 걸 인식했으면 좋겠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이때, 그날의 함성을 살려보자. 온 국민이 하나 되어 단결된 힘을 보여주자. 모두가 태극기를 높이 들고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질러보자.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