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의 소망
<라오스 여행>:불상공원 "왓 씨앙쿠앙"
손끝의 소망
미래의 소망을 손끝으로 담아낸 섬세한 솜씨 앞에 섰다. 공원에 발을 들이밀 때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 괴기함이 흐른다. 다양한 모습을 한 조각상들을 보며 크기의 장대함에 놀라고, 많은 양에 놀란다. 양적으론 6840여개의 불상이 운집해 있으며, 크기 면에서도 대단하다. 와불의 크기는 길이만 40여m라고 한다.
이 공원은 1958년 태국 승려인 '루앙분르아 쑤리랏" 이라는 조각가가 힌두교와 불교의 원리를 형상화해서 만들었다. 위대한 봉탑이라는 뜻의 "왓 씨쿠앙"이라는 불상 조각 공원이다.
특이한 모습의 불상 하나하나가 사연을 담고 있다. 이들 조각품들은 단순한 예술품의 경지를 넘어 생명이 느껴지고 있다. 여러 모양의 부처가 설법을 하고, 복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하고,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는 와불은 무슨 임무를 수행 중인가? 중생의 고통을 모두 품에 안고 억겁의 시간 속에서 안식하고 있는가? 팔이 여러 개 달린 악신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다. 밤에 보면 무서울 것 같다.
이곳 승녀들은 아침에 탁발해서 그날의 끼니를 해결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사원에는 주방이 없다. 탁발승이 줄지어 거리로 나오면 신도들은 그들의 그릇에 먹을 것을 공양한다. 이 스님들은 제공 받은 음식을 4등분해서 그 한 몫만 먹고는 세 몫은 가난한 자, 탁발하지 못한 스님을 위해 나누고 자신은 한 끼 식사로 하루를 난다고 한다. 그들의 살신성인 정신은 고도의 정신세계다. 탁발승들은 한 끼 식사로 배고픔과 싸워야한다. 이런 탁발승의 모습이 이 공원에도 있다. 바가지를 든 탁발승 조각과 나도 나란히 서 본다. 그들 조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그 마음도 찍는다.
이 조각공원에는 힌두교의 정신세계를 그린 신화적인 조각상도 있다. 악마의 신 "나바나"가 왕비를 납치하는 장면은 그리스 신화를 보는 듯하다.
또 여기는 4차원의 정신세계가 존재하고 있다. 손끝으로 담아낸 라오스의 정신세계 앞에서 정신을 차려본다. 불교와 힌두교의 정신세계는 다분히 형이상학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긴 온통 신들의 세상이다. 신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이 신이 되기도 하고,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곳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에는 신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조각가는 손끝으로 백성들의 안위를 빌고, 미래의 소망을 이곳에 담아 넣었을 것이다.
이 공원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3층으로 된 호박 탑(사리탑)이다. 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높이 만들어졌다. 전체 모양은 둥근 호박의 형상이고 그 꼭대기에는 높다랗게 나무를 만들어 놓았다. 입구는 험상궂게 생긴 악마가 입을 벌리고 있다. 그 입 속으로 몸을 동그랗게 구부리고 들어가 본다. 1층은 지상의 군상들을, 2층은 지옥, 3층은 천상을 형상화했다. 올라가는 계단이 가파르고 계단 사이의 간격이 멀어 혼자 올라가기가 힘이 든다. 윗사람이 손잡아 주고, 아래 사람이 떠밀어 줘야만 오를 수 있다.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정상에 오르니 공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둥근 호박의 등짝이 둥글기 때문에 편하게 서 있지를 못하고 내려 와야 했다. 그래도 제일 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나무 형상은 안아 보고 내려가야 하지 않겠나! 이 나무는 다음 생을 결정하는 열매가 열리는 생명수라고 한다.
라오스의 밑바닥에 뿌리박힌 정신문화 속을 들여다보며 4차원의 정신세계를 엿 본 셈이다. 공산주의 국가라 외면했던 라오스에 대한 내 마음도 이제 내려놓는다. 글로벌 시대가 아닌가! 베트남 왼쪽에 붙어 있는 라오스도 이제는 친하게 다가갈 수 있는 나라다. 여행자다운 자세로 이곳 '비엔티엔'과 '방비엥'을 천천히 둘러본다. 다시 본 그곳은 전혀 새로운 모습이다. 낮은 건물들과 아직도 포장되지 않은 도로들을 둘러보니 고향마을에 온 듯 포근하다. 내 어릴 적 뛰놀던 산천도 이와 비슷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작은 체구를 가진 현지인들도 남 같지 않다. 어린 시절 개울에서 온종일 물고기 잡던 개구쟁이들이 바로 이런 피부 색깔이었다.
이곳 라오스엔 이미 한국인들이 진출해서 자랑스런 태극기를 휘날리며, 한글 간판을 당당히 내 걸고 살아가고 있다. 길거리에는 현대차와 기아차들이 달리고 있고, 호텔 방에는 삼성 TV가 깔끔한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여행 온 우리 한국인들의 어깨가 살짝 올라가고 있다. 여행지 곳곳에는 단군의 후손들로 넘쳐난다. 한국인들이 한국말을 쓰며 곳곳을 누비고 있으니 여기가 한국인 듯 착각할 정도다. 우리 삶의 밑거름이 되어준 조상의 노고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