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친구가 보내 준 신기한 꽃의 사진. 그것은 놀랍게도 대나무 꽃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그 꽃은 60년 만에 피는 꽃이란다.
60년을 비바람과 모진 세월을 견디어 피어올린 한 송이 붉은 꽃. 그 꽃의 아름다움을 어느 꽃에 비유할까?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울었고, 산에서는 소쩍새가 울었다. 또한 아름다움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하루든, 1년이든 10년이든 100년이든 참고 기다려야한다.
이렇게 기다림의 참 이치를 깨닫게 해 주는 한 장의 사진을 본다.
기다림은 인내다. 기다림은 꿈과 희망을 향해 가는 길이다. 기다림은 고통이 따른다.
긴 기다림이든 짧은 기다림이든 기다림 속에는 아름다움과 영광이 숨어있다.
어제 초저녁에 반죽해놓은 밀가루가 아침이 되니 붕긋하게 부풀어 올랐다. 이것을 찜통에 붓고 쪘더니 어느 빵보다도 맛있는 찐빵이 됐다.
내가 어릴 적에는 간식이 귀해서 입이 짧은 나를 위해 어머니께서 자주 찐빵을 쪄주셨다. 지금도 어머니의 그 찐빵 맛을 잊지 못한다.
밀가루에 막걸리나 이스트를 넣고 반죽을 한 뒤 강낭콩을 드문드문 섞어, 따뜻한 곳에 놓아두면 그릇 가득히 부풀어있다.
반죽을 수십 번 들여다보고 부풀었는지 확인하면서 침을 삼켰던 어린 날이 떠오른다.
최근 들어 제과점이나 제빵회사의 빵을 끊고 순수 발효 찐빵을 재현해 보고 있다. 여름에는 반나절을 기다리면 되고 날씨가 쌀쌀할 때는 따뜻한 곳에 두고 하루를 기다려야 된다.
기다림으로 완성된 찐빵을 운동하는 친구들에게 가져갔더니 옛날이 그립다며 맛있게 먹고는 있으나, '사 먹으면 될 텐데 무엇 하러 귀찮게 이러느냐'고 핀잔하는 눈치다.
그렇다. 요즈음은 빨리빨리 세상이라 빨리빨리 돌아가야만 현대적이다. 조금만 늦어도, 조금만 기다리래도 참지 못하고 조바심을 한다.
자신에게 조금만 거슬려도 참지 못해 이웃 간에 난투극을 벌이다, 급기야는 살인극을 벌이게 된다.
아내와 다투다 아내를 비롯한 아내 가족을 살해했다는 뉴스가 귓전을 울린다.
조금만 참고 기다렸으면 그렇게 극단적인 코스는 밟지 않았을 텐데…….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잘 하는 아이의 잣대를 자신의 아이에게 대 보고는 조급하게 서두른다. 어린 것을 몇 개의 학원으로 내 몰며 욕심만 앞세워 아이의 고통은 외면한다.
"알묘조장(揠苗助長)이라는 성어가 있다. 이는 어린 싹을 빨리 크게 자라게 하려고 뽑아 올렸더니, 그 싹이 죽어 버렸다는 이야기다.
젊은 엄마들이 우리말도 잘 못하는 서너 살 어린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친다고 영어 유치원이다, 영어 괴외다 하고, 어린 것을 들쑤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조급증 환자들이 점점 늘어나 길을 비키지 않는다고 빵빵 경보음을 울려대는 자, 식당에서는 ‘빨리 빨리’를 외치며 종업원들의 혼을 빼는 자, 줄서서 기다리지 못해 새치기 하는 자 등 곳곳에서 기다림 결핍환자들이 병폐를 나타내고 있다.
이전의 우리 조상들은 그러지 않았다. 음식 문화만 봐도 기다리고 기다려 곰삭은 발효 식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간장, 된장, 고추장, 막걸리 등의 발효 음식은 가히 세계적이라 할 만큼 훌륭하다.
주거 문화도 불을 때서 서서히 구들장을 달구는 온돌 난방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수한 문화다.
그러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이구동성으로 ‘빨리 빨리’를 외치기 시작했다. 빨라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으니까?
때로는 빨리하는 하는 게 유리할 때도 있겠으나, 기다릴 때는 기다려야 하는 일이 더 많다고 본다.
특히 자신의 인생항로를 개척할 때는 더욱 더 이 기다림의 미학이 빛을 발할 때다.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인간 승리는 기다림의 꽃이 아닐까?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를 비롯하여, 빛나는 금메달을 거머쥔 스포츠 선수나 예술가, 법조인, 의사, 정치가 등의 성공한 사람들도 꿈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고, 오래 참으며, 기나긴 기다림 뒤에 영광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기다림은 미학이다.
조급증 환자들은 기다림의 고통만 본다. 그러나 기다림 속에는 고통과 인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또한 즐거움도 있다.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꿈이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혼 초에 누구나가 다 그랬듯이 내 집 마련의 꿈이 있었다. 그 꿈을 향해 허리띠 졸라매고 절약 또 절약을 실행했지만 그 고통은 가벼웠고, 행복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많은 환자들을 본다. 병의 경 .중에 따라 그 강도는 다르지만 이들은 지금의 고통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말기 암 환자도 꺼져가는 생명 줄 붙들고 병마와 싸우는 고통을 감내한다. 그들에게도 꿈은 있고, 희망도 있다. 건강을 되찾게 되는 그날을 향한 긴 여정을 가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자의 최후는 아름답다. 그 길이 마지막으로 내리 닫는 길일지라도 걸어온 길은 숭고한 것이며 기다림 그 자체가 아름답고, 그 과정이 행복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꼿꼿이 지켜온 자존이, 신비에 가까운 걸작을 만들어 놓은 대나무의 긴 기다림이 돋보이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