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곰삭은 맛

류귀숙 2015. 2. 8. 18:48

    곰삭은 맛

 갑년을 훌쩍 넘긴 나의 삶을 돌아보니 신통한 구석을 찾을 수가 없다. 언제나 어스름한 달밤처럼 안개 낀 새벽처럼 희미하기만 하다.

 감나무에서 우르르 떨어지는 도사리가 문득 떠오른다. 내 걸어온 길이 꼭 도사리가 되어 떨어지는 풋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고향집엔 감나무가 많았다. 온통 감나무에 둘러싸여 멀리서 보면 집은 보이지 않고 감나무만 보였다. 감나무는 봄부터 시작하여 단풍이 떨어지는 늦가을까지 내 삶의 공간을 수채화로 만들어갔다.

 감꽃 피는 봄엔 튀밥 같은 감꽃을 매단 감나무의 재잘거림이 화폭에 담겼고, 여름엔 짙어지는 녹색과 함께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열매의 풍성함이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가을엔 주황빛 등불을 단 듯한 익은 감은 단풍잎과 함께 환상의 빛깔을 만들어 나갔다. 이런 감의 향연은 내 어린 시절의 시들지 않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런 아름다운 추억 귀퉁이에는 태풍으로, 또 다른 이유로 중간 크기로 살이 오른 풋감이 와르르 쏟아지기도 했다. 이렇게 가다간 가을에 주홍감이 몇 개나 남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익지 못하고 지레 떨어지는 도사리를 보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앞섰다. 꼭 꿈을 이루지 못하고 소용가치가 없는 인생살이 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풋감이 떫은맛을 감추고 달콤한 맛으로 거듭나게 됐다.

 어머니는 단지에 풋감을 담고 물을 부어 적당히 삭혀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주셨다.

 여름이면 우리 집에는 감 삭히는 단지가 세 개 정도 줄지어 앉아있다. 첫 번째 단지에는 금방 주운 떫은 풋감을 물에 담근 것이고, 두 번째 단지에는 담근 지 하루 이틀이 지난 감. 즉 한창 삭고 있는 감들이다. 세 번째 단지에는 완전히 삭아 맛을 내는 감이다.

 난 수시로 세 번째 단지에 손을 집어넣어 삭힌 감을 꺼내 먹었다. 비록 시큼털털한 냄새가 났지만 물에 씻어 껍질을 벗겨 먹으면 달고 맛있는 간식이 됐다. 다 먹은 세 번째 단지는 새 물과 갓 주운 감을 담고 첫 번째 단지와 자리바꿈을 하게 된다. 먼젓번의 첫 번째는 두 번째로 두 번째는 세 번째가 된다. 이렇게 몇 바퀴를 돌면서 긴긴 여름날 맛있는 간식이 됐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주홍빛의 탐스러운 감이 가끔은 진홍빛의 홍시를 선물하기도 했다.

 곰삭은 음식은 감뿐만이 아니었다. 감자를 수확하다 보면 먹을 수 없는 새끼 감자가 생산되는데, 이것도 버리지 않는다. 큰 단지에 물을 붓고 적당히 삭혀서 그 앙금으로 감자떡을 만들었다. 나는 이 감자떡을 가장 좋아한다. 콤콤한 냄새가 어머니의 냄새 같기도 하고 어릴 적 고향 냄새 같기도 했다. 이제 삭힌 감과 삭힌 감자떡은 영원히 맛볼 수 없는 추억의 맛이 됐다. 지금도 그 맛이 그립다. 이렇게 쓸모없던 식 재료들도 적당히 삭히면 훌륭한 먹거리가 됐다.

 우리 조상은 도사리 같은 인품을 적당히 삭히고 가꾸었다. 곰삭은 김치처럼, 된장처럼 은근함을 간직하려 했다. 그 수준 높은 인품이 음식 속에도 녹아들어 곰삭은 맛의 음식이 됐다고 본다.

 이래서 우리의 전통 음식은 발효된 음식이 주를 이뤘다. 김치를 선두로 된장, 고추장, 간장, 장아찌 등은 숙성 음식의 대표가 됐으며 세계에서도 우리 김치의 진가를 알아주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간장 된장 고추장도 세계무대에서 그 효능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삭힌 음식만 보면 우리 어머니가 그립다. 어머니의 삭힌 음식솜씨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어머니가 만든 등겨장의 비법을 전수 받지 못한 게 후회로 남아있다.

 내 어릴 적 기억으로 어머니는 길이가 긴 무 <倭(왜)무라고 불렀음>를 잎이 달린 채로 몇 개씩 다발로 묶어 담벼락에 걸쳐두었다가 시들하게 반 건조 정도가 되면 무지를 담았다. 쌀겨와 소금. 치자 물 우려 낸 것 등을 적당히 버무려 말린 무를 넣고 무지를 담았다. 이른 봄 푸성귀가 귀하던 철에 이걸로 도시락 반찬을 하면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요즘에야 공장에서 만든 단무지가 지천으로 있지만 그때 시골에서는 단무지를 구할 수가 없었다. 이 단무지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우리 동네에서 어머니 한 분뿐이었다. 이 기술은 일본에서 배웠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비법을 가르치는 어머니가 자랑스러웠다.

 버려질 감이나 감자, 무 등이 삭힘의 과정을 그쳐 색다른 맛으로 거듭나는 것은 순전히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 이루어 진 것이다.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적당하게 곰삭아야 인간미가 풍긴다. 겉모습은 별로 아름답지 못하지만 속맛이 깊은 사람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인간상이 아닐까.

 곰삭은 인간이 되려면 살아가는 과정에서 떫은 맛, 매운 맛, 쓴 맛, 짠 맛을 적당히 다스려 구수한 단 맛, 떫지도 짜지도 않는 은근한 맛을 낼 수 있어야한다. 그게 바로 곰삭은 인간이 아니겠는가?

 이런 맛을 내는 인품을 간직하려면 삶의 과정에서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하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해야 할 것이다.

 요즈음엔 불안감이나 불신의 먹구름을 이불인 양 덮고 있는 사람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아마 곰삭은 음식을 멀리하고 인스턴트 음식을 즐기는 까닭이 아닐 런지….

 오랜 된장이나 묵은 지에서 나는 맛처럼 은근한 고향 냄새를 풍겨야 하는데, 나는 세월 속에서 욕심을 내려놓고 아집을 버려 곰삭은 상태에 가까워졌는가? 자문 해 본다.

 아직은 뻣뻣함이, 매운 맛이, 살아있는 것 같다. 얼마나 더 삭아야 묵은 지의 은근한 맛을 낼 수 있을까?

 나 같은 덜 삭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세상이라  세월이 흘러도 까다롭거나 맵고 짠 맛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시대에는 더욱 더 그 옛날의 곰삭은 맛이 그립다.

 

 

*도사리: 자라는 도중에 떨어진 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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