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며
이제 와서 또 다시 무슨 말을 할까? 해마다 당하는 일이지만 언제나 아쉽다. 할 수 있는 언어는 다 동원해서 붙잡아 본다. 때로는 달콤하게 또 은근하게….
은근한 눈빛을 비췄지만 아쉬움의 그림자만 언뜻언뜻 비친다. 시간이 흐를수록 회유책이 먹혀들지 않으니 이번엔 더 강하게 나갔다. 당돌하게, 위협적으로, 악을 쓰며, 반 강제적으로 붙잡아도 봤다.
그러나 한 줌 남은 햇살은 시간과 함께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허망하게 떠나보낸 일 년을 돌아보며 남은 것을 계수해 본다. 그것이 일 년 동안 쌓은 공적 중 가장 눈에 뜨이는 게 나이다. 고루고루 한 살의 나이를 더해놓았다. 놀라우리만치 공평하게 베풀어 준 은총에 감사해야 하나? 그 다음은 후회와 미련, 허망 등의 단어들이 줄을 잇는다.
연 초에는 푸른 깃발을 내 걸고 희망을 노래했다.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두 손을 모우고 보람찬 한 해를 약속했다. 그러나 그 다짐 또한 공수표가 되어 날아갔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한 해는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푸른 양의 꼬리만 쳐다보는 꼴이 됐다.
아쉬움과 허망함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은 송년회를 생각해 냈다. 끼리끼리 모여 한바탕 가는 해와 맞서 보자는 게 아닐까. 그 속에는 여럿이 모여 서로의 허전함을 함께 해 보자는 마음이 주를 이룰 것이다. 또 더러는 지난해를 깨끗이 포기하고 미래에 희망을 걸어보자는 뜻도 있을 것이다.
이미 사람들은 잡을 수 없는 세월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됐다. 세월의 흐름은 늙음이요 적멸로 한
발짝 내 디딘 것이니까.
잡을 수 없다면 잊어야 한다는 진리 또한 터득했다. 그래서 망년회(忘年會)라는 이름 아래 모여 지난 일을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다. 술을 먹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광란의 블루스를 쳐 댔다. 그렇다고 후회와 미련이 잊혀질까?
많은 사람들은 또 이것을 알아냈다. 어차피 잡을 수 없다면 고이 보내자고. 그래서 미리 선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름부터 송년회라고 고상하게 바꿨다. 다음은 받을 상처를 좀 더 부드럽게 하려고 12월이 시작되면 곧바로 보낼 준비를 했다. 당연히 송년 모임도 앞당겼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자물쇠로 걸어 잠그고, 이중 삼중으로 바리게이트를 쳐 보겠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다.
왜 이렇게 연말이 되고 새해가 오면 온 세상이 술렁일까? 평소에 무심하던 사람들도 이때만은 나서서 연하장을 보내고 카드를 보낸다. 이 일을 이젠 카카오톡이 대신하게 됐다. 카톡으로 보내온 무수한 송년, 신년 메시지들이 우리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어제의 태양이나 내일의 태양이 같다.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 또한 같다. 다만 숫자의 개념으로 새 옷을 입히고 이름까지 그럴듯하게 붙여줬을 뿐이다. 흐르는 세월을 토막 쳐서 연도라 정하고 거기다 인간의 뜻에 맞는 이름을 붙이고 깃발까지 달았다. 그 깃발에는 숫자가 달리고 12마리의 짐승 중 하나가 매달린다. 이 짐승이 한 해 동안 인간의 지주가 된다. 심지어는 거룩하고 신성한 옷을 입기까지 한다.
올해의 이름은 병신년(丙申年)이란다. 그러니까 원숭이 해이다. 올해만은 원숭이의 장점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다. 丙자가 뜻하는 것도 붉은 색에다 밝음을 뜻한다. 또 음양오행으로 보면 火(화)를 뜻하니 따뜻한 기운이다. 申은 펴다는 뜻과 원숭이란 뜻이 있다.
종합해 보면 붉은 색의 원숭이는 성공과 번창을 나타낸다. 중국에서는 붉은 색은 악을 막아주는 색으로 귀히 여겼다. 또 원숭이는 꾀가 많은 동물이며 사람과 가장 많이 닮았다. 이전부터 사람과 흡사한 원숭이를 사람의 조상이라고 한 설(說)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물원에서나 원숭이를 볼 수 있지만 중국에서는 흔한 동물이다. 옛 소설 '서유기'에서도 손오공이라는 원숭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사람과 친한 동물인가 보다.
시간을 잡을 수 없다면 무모한 짓은 그만두고 새 이름으로 높이 걸린 깃발을 따라가 보는 거다. 올해는 원숭이의 재능을 본받아 자기 안에 감춰진 재능을 꺼내서 발전시키는 해이다.
후회와 허물의 더께는 벗어서 가는 해에 딸려 보내고 새해에는 불기둥을 바라보듯 따뜻한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쫓아가 보자.
지금은 계절적으로도 겨울의 한가운데 서 있다. 가는 해를 아쉬워하기보다 이웃을 돌아보는 귀한일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어떨까? 이 추위에 가난에 떨고 무관심에 시린 마음을 돌아본다면 더욱 보람된 일일 것이다. 추운 겨울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나?
보내는 아쉬움과 이루지 못한 후회가 없다면 미래의 희망도 있을 수 없다.
보낸 세월도 중요하고 다가오는 새해도 중요하다. 과거를 따라 현재가 있고 또 미래로 이어지는 사간의 끈이 바로 인생사요, 살아있는 역사가 아니겠는가? 어느 것을 끊어버리거나 벗어날 수 없음이 또한 세상사의 이치일 것이다.
이왕 병신년의 깃발이 걸렸으니 이 깃발아래서 두 손을 맞잡아 보자. 한 해가 지나면 또 후회가 남겠지만 그 후회 또한 미래의 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에겐 봄이 있다.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다. 추운 겨울의 떨림이 없다면 무슨 수로 화사한 봄꽃을 피우며 또 꽃은 무엇으로 향기를 내겠나?
이 겨울 온 몸을 녹이는 따뜻한 방이 있음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헐벗은 자를 포옹하는 사랑의 꽃씨 하나 간직하는 겨울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