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
'100세가 되었어도 장가계에 못가봤다면 늙었다 말할 수 없다(人生不到張家界百歲豈能稱老翁).'는 말이 중국에 있단다.
그곳이 얼마나 좋기에? 그 신비의 비경이 하필이면 중국에? 넓고 넓은 땅을 이미 받았는데, 그런 비경까지 숨어 있다니 부러울 뿐이다. 다녀온 사람들 모두가 입에 침을 튀기며 자랑을 해대니 나도 한 번 가봐?
처음 외국 땅을 밟은 곳이 중국 아니던가! 그곳은 붉은 깃발을 든 중공이 아니고 그저 이웃에 있는 나라였다. 그곳엔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첫 여행지로 상하이, 항주, 소주를 다녀온 후로 멀리만 느껴졌던 중국이 성큼 내 앞에 다가왔다.
'그래, 이번엔 제대로 중국말을 배워서 간다면 감칠맛 나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여성회관 중국어 반에 등록했다. 이제 배우는 목표가 분명해졌으니 공부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중 고등학생처럼 읽고, 쓰고, 외우며 열심을 냈다. 주방에서 일할 때도 테이프를 틀어 놓고 회화 연습을 했다. 같은 반 급우들과도 친분을 가지며 배움에 박차를 가했다. 다음으로 한 일은 중국어 반 급우들끼리 중국 여행계획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 목적지가 바로 장가계였다.
여행계획을 세워놓고 나니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어 가슴이 설레었다. 수학여행 날짜를 받아 놓은 학생과 같은 심정이었다.
여행팀의 리더는 대만 출신의 원어민 교사 鄧麗君(등리쥔)선생님이었다. 그분은 원래 중국 사천 성이 고향이었는데, 부친이 장개석을 따라 망명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보다 더 간절히 본국에 가고 싶어 했다. 등 선생님의 깃발아래 우리 중국어 반 14명은 2005년 5월 12일 드디어 대구공항에서 상하이를 향해 장도에 올랐다.
이제 귀와 입이 열렸으니 동방항공 기내에서부터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기초적인 언어지만 이미 입이 열렸으니 승무원을 불러 이것저것 물어봤다. '도착지까지 몇 시간이 걸리느냐?' 더운 물을 좀 주면 안 될까?' 어떤 친구는 '멀미약을 주세요.' 등 준비한 말들을 한마디씩 끌어냈다. 신기하게도 중국인 승무원은 우리들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우리들은 처음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상하이 푸동 공항에 내려 간단하게 상하이 시내 구경을 하고, 다음 날 국내선을 타고 장가계 공항에 도착했다. 장가계 가이드와 미팅 후 곧장 장가계 국가삼림공원으로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달렸다. 큰 기대를 안고 창밖을 응시했으나 우리나라의 풍경과 별로 다를 게 없어 실망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참아보는 수밖에…. 몇 시간을 달려 삼림공원 풍경구로 들어오고부터는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산의 종합세트를 보는 듯했다. '어쩜 바위의 모양이 이렇게 기묘할까?' 또 그 기묘한 바위들이 장대한 모습으로 넓게 펼쳐져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곳은 지상이 아니고 천상이 아닐까? 산꼭대기에서 굽어보는 풍경도 절경을 넘어 신비경이다. 마침 안개가 끼었다 사라졌다 하니 신비감이 한층 더했다.
내 친구는 말문이 막혀 "뭣이 이런 게 있노?" 했고, 등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며 감탄했다. 이곳이 자신의 조국이라는 생각에 감동이 눈물을 끌어냈나 보다. 그러나 난 좀 달랐다. 중국이 공산당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기독 신자들을 박해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복은 내리시는 것은 가당치 않다.'라고 생각했다. 기암괴석 몇 점이라도 우리나라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금강산이 있고, 만물상의 기암괴석도 만만치 않다고 위로해 보았지만 부러움을 덜어낼 수는 없었다. 장가계, 원가계에 펼쳐진 기암괴석의 장대함은 도저히 따를 수가 없다. 카메라를 꺼내 풍경을 담아보려 가로로 펼쳐서 담아보고, 세로로 세워 잡아봤지만 바위 하나도 온전히 잡을 수 없다.
천자산 케이블카를 타고 2.1Km길이를 700m 높이로 떠서 올라가는데 단 7분이 걸렸다. 케이블카 안에서 두 눈과 가슴 머리 등 담을 수 있는 곳은 모두 이 절경을 담아가고 싶었다. 이렇게 복 받은 중국이 부럽다 못해 얄밉기까지 했다. 이 절벽은 3억 8천 년 전부터 2억 년 전까지 솟아오르는 데만 꼬박 2억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게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걸작 품이 아닌가?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이런 복을 부어 주셨을까? 의문표들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100년도 못 사는 인생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 대자연 앞에서 벌레보다 더 작은 나 자신을 돌아보니 초라하기 그지없다.
산 하나가 통째로 우렁껍질이 되어 깊은 곳에 보물을 간직한 황룡동굴은 또 어떻고? 우리의 성류굴에서 석회암의 오묘한 변화에 감동했는데, 이곳은 또 거대함으로 기를 죽인다. 배를 타고 굴속을 다니며 석회암의 오묘한 모습에 또 감탄사를 연발했다. 기묘한 모습을 한 종유석들의 이름을 가이드로 부터 들으며 이 또한 수억 년에 걸쳐 생성된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계곡의 절경과, 동굴의 신비경에서 벗어나 산꼭대기에 있는 보봉 호수로 향했다. 바다 같이 넓은 호수에서 배를 타고 한 숨 돌려 본다. 이 높은 곳에 호수가? 이도 자연 호수란다. 산모롱이를 돌면 느닷없이 소수민족 아가씨들이 나타나서 노래를 부른다. 마치 물의 요정이라도 된 것처럼 청아한 목소리다. 중국 정부에서 관광객 유치에 힘쓰는 점이 보였다.
원가계, 백장협, 십리 화랑 등 절경을 보고 감탄하는 것도 이제는 면역이 생겼다. 너무 많은 자연을 보니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것인가? 이젠 눈길이 절로 소수민족들의 삶으로 향했다.
이곳은 토가족이라는 원주민의 마을인데 원래 산적이었다가 중국 공산당에 의해 해방됐다고 한다. 장가계, 원가계라는 이름도 장씨와 원씨들이 사는 집단 마을이라는 뜻이다. 장가계는 한나라 유방의 신하 '장량'의 고향이란다. 이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고유의상을 입고 한국 노래를 부르며 사진 모델이 되고 있었다.
우리 대원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이들에게 접근해서 중국말로 물어봤다. '너희들은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으니 행복하지 않느냐? 대답은 부(不)였다. 자신들은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이 너무 답답하단다. 한국 관광객들을 보니 한국에도 가 보고 싶다고 했다. 이때 한창 유행하던 장윤정의 '어머나'를 배워달라고도 했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중국어 실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젠 자연의 감탄에서 벗어나 중국인에게 중국말로 실전 경험을 해 보는게 또 다른 재미로 다가왔다. 길에서 물건 파는 소수민족들은 한국인을 상대로 많이 팔아보겠다고 호객 행위를 했다. 서툰 한국 말로 '사모님 천원, 천원 하며 손수 만든 슬리퍼를 흔들어 댔다. 한 친구가 천원을 내고 슬리퍼를 샀는데, 글쎄! 한 짝만 주는 게 아닌가? 그들은 한 짝만 들고 천원 했으니 한짝만 준다는 것이다. 또 모자를 파는 상인은 천원, 천원 두 번 외쳤으니 천원을 두 번 달란다. 참 황당한 속임수다. 이것도 민족성인가? 가이드가 돈을 미리 주지 말라고 당부하기에 염두에 두고 알밤 파는 곳으로 갔다. 그 중 가장 많이 담긴 소쿠리를 가리키며 달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면서, 손에 쥔 천 원짜리를 냉큼 낚아챘다. 그리고는 반 소쿠리의 알밤만 봉지에 넣어 주었다. 그게 바로 천 원어치라는 것이다. 웃기는 속임수도 다 있다. 우리들은 속으면서도 신이 났다. 중국말로 물건값을 깎고 항의도 했으니 이만하면 성공이지 않은가?
이렇게 여행은 자연 외에도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하니 얼마나 신명나는 일인가? 이제 여행 재미에 푹 빠져들었으니 앞으로는 여행이 목표가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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