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평초 날다
“핑핑! 한국어 공부한다며?”
“일상 회화는 가능하겠지?”
S 교수가 부르기에 갔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다. 한국어 공부는 평소에 꾸준히 하고 있던 터라 자신 있게 대답한다.
“네,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언제부턴가 한국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 중 무역을 통해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한 중 문화교류에 일익을 담당하고 싶었다.
대학에서 무역학과를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운동과 겸해야 하는 실정이라 깊은 공부는 할 수 없었다. 기회만 된다면 한국으로 유학 가고 싶은 마음도 한 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고부터는 많은 한국 유학생을 만나게 됐고, 인터넷으로도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어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내 머릿속에서 용트림하고 있는 한국은 작지만 잘 사는 나라, 기회의 땅이다. 그러나 왕조시대 때는 우리 중국의 지배를 받던 나라였다. 그러니까 한국이라는 나라 앞에 기가 죽을 필요는 없다. 그곳에서 자존심 세우고 당당하게 의지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다니는 남경 공대의 한국 유학생을 보면 외모부터가 세련됐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한국어 실력을 쌓아 그들을 친구로 삼아야겠다는 작은 목표도 세워놓았다.
S 교수가 한국어 이야기를 꺼내다니!
하늘 높이 떠 있던 달이 내 품에 안기는 기분이다. 운명처럼 다가온 이 기회는?
“핑핑 한 달만 있으면 졸업이잖아, 졸업하고 6개월 후면 한국에서는 신학기가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3월이 개학이거든, 우리의 9월과는 6개월 차이가 있어. 이 기간에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렴.”
마침 구미시에 있는 한국공대에서 유학생을 모집하고 있는데, 총장 추천서만 있으면 4년간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고, 1년간 기숙사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특혜를 준다고 한다.
한국공대는 중소 도시인 구미시에 있으나, 학교의 명성은 세계에서 이름났다고 한다. 교통이 편리해서 기차 타기나 버스 타기가 아주 편리하단다.
“그동안 소프트볼 하느라 수고했어. 우리 대학을 위해 많은 공을 세웠으니 총장님 추천은 쉽게 받을 수 있어.”
“마침 친구인 C 교수가 연락해 왔네.”
‘이게 꿈은 아니겠지? 내가 바라던 그 조건에, 꿈에 그리던 한국으로 유학 갈 수 있다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체육회가 열렸는데,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내 키는 체육 선생님의 눈길을 끌 만했다. 또 학반 대표 달리기 선수로 나가서 2위 주자를 반 바퀴나 따돌리며 결승점에 들어오는 나를 본 관중들은 영광했다.
선수 발굴에 목말랐던 체육 선생님은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그 선생님은 소프트볼 지도 선생님이었고, 나를 선수로 키우려고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나를 부르시더니 키가 얼마냐? 고 하시면서 나의 신체를 자세히 관찰하셨다.
다음 날 선생님은 우리 아버지를 만나 나의 장래를 의논했고, 아버지가 승낙하셨다.
이후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남경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니며 운동선수로 활동했다.
처음엔 체력 단련으로 육상부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 낯선 곳에서 울기도 많이 했다.
고등학교 소프트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어 남경 공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됐다.
대학에 들어가고부터는 전국에 이름은 날리게 됐다. 그러나 전공과목인 무역학 공부는 소홀하게 되어 다시 공부하고 싶었다.
“교수님! 부탁합니다. 총장님 추천서 좀 받아 주세요.”
“넌 소프트볼로 이 학교를 빛냈기 때문에 쉽게 허락하실 거야.”
“친구에게도 부탁해서 외국 생활에 불편 없도록 도와줄게.”
그동안 인터넷 쇼핑으로 모은 돈을 계산해 보니 30만 위안이 좀 넘었다.
한국 돈으로 2,000만 원을 환전해서 비상금으로 봉투에 넣어두고 또 10만 위안은 각종 비용으로 쓰려고 남겨 두었다.
나머지 10만 위안을 찾아서 난주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갔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곁을 떠나 독립한지라 부모님의 표정은 담담했다. 한국에서도 건강 조심하고 잘 살아야 한다고 격려해 주셨다.
드린 돈은 통장에 넣어두겠으니 언제든지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하셨다.
2월 중순쯤 한국공대에서 입학허가서가 왔다. 입학일은 3월 2일이고 기숙사는 일주일 전부터 개방하고 있다고 한다.
2월 26일에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남경 공항에서 부산 김해공항으로 가는 표다. 구미시는 비행장이 없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 중간중간 연결해야 할 부분은 택시를 타면 될 것이다.
전국을 돌며 소프트볼 경기를 해 본 경험을 살린다고 해도 긴장은 된다.
‘길을 잘 찾을 수 있을까? 언어가 틀린 곳이니. 내 말을 알아듣기나 할까?’
이때, S 교수가 오셨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면 도와주겠다고 하신다. 또 봉투 하나를 주시면서 여기에 친구 교수 C에게 소개장을 썼으니까 보여드리라고 했다. 전화번호도 적어뒀으니 급하면 전화하면 될 거라고도 하신다.
“고맙습니다. 성공하고 돌아올게요.”라고 인사하는데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진다.
처음으로 중국을 벗어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눈앞에 열릴 새 하늘이 기대된다. 창밖엔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있다. 그 위로 무지갯빛 꿈을 실어본다. 마음 한구석에선 불쑥불쑥 불안이 고개를 든다. 지긋이 그 불안을 누르며 창밖으로 눈길을 고정한다.
방송실에선 김해공항에 곧 도착하겠으니 안전띠를 매라고 한다.
희망의 땅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도 가까울 수가!
남경에서 출발해 2시간 만에 도착했다. 고향인 난주로 가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한국은 바로 곁에 있었구나! 갑자기 낯설지 않은 친근감이 몰려온다. 목울대를 타고 한국말이 기어 올라온다. 옆에 앉은 한국인에게
“구미에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나요?”
인터넷을 통해 조사했지만, 한국말을 하기 위해 물어본다.
“일단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부산역으로 가세요.”
“고맙습니다.”
한국말이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이 풀리듯 술술 잘도 나온다. 이제 불안감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그 자리에 들어앉는다.
캐리어 2개를 끌고 출구로 나오니, 택시가 줄지어 들어온다. 택시 한 대가 내 앞에 서더니 기사가 내려와 내 짐을 트렁크에 싣는다. 친절하기도 하네!
“어디로 갈가요?”
“부산역으로 가 주세요. 구미로 가야 해요.”
기사가 친절하고, 미터기도 이미 켜져 있다. 믿음이 간다.
중국 기사 중에는 미터기를 켜지 않고 요금을 속이는 기사가 더러 있다. 특히 외국인에게는 지름길로 가지 않고 삥삥 둘러서 바가지요금을 받기도 한다.
한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산뜻하다. 한국 돈이 든 지갑을 꺼내 미터기에 적힌 대로 15,000원을 기사에게 주며 고맙다고 했다. 기사는 얼른 나와서 짐을 내려주고 캐리어를 역 입구까지 끌어다 준다.
기차표 파는 창구에서도 구미라고 말하자 가장 빠른 시각에 출발하는 표를 건네준다. 모든 일이 착착 잘 진행되고 있다. 시간이 좀 남기에 C 교수에게 전화 드린다. 그 교수님은 반가운 목소리로, S 교수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도착시각을 알려 드렸더니 구미 역에 마중 나오겠단다.
기차 타는 곳이라 적힌 곳으로 가서 기차를 탄다. 모든 일에 대한 기대가 가슴 가득하다.
구미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C 교수를 만나 순조롭게 구미 생활이 시작된다. 짐을 끌어 내가 배당된 기숙사에 넣어두고, 학교 안내랑 제반 행정업무를 맡아서 하신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한국에서 당장 필요한 휴대폰 개설과 통장 개설, 의료보험 가입 등 어려운 문제를 도와주신다.
S 교수와는 스포츠로 맺어졌다고 하신다. 또 C 교수는 한국 야구협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도 고교 때는 인기 있는 야구선수였단다.
여기 와서 알게 된 사실은, C 교수는 이 대학에서는 시간 강사이고, 자신의 직장은 인근 중학교의 체육 교사였다.
나에게 정해진 기숙사는 외국인 기숙사인데 4인 1실로 운행되고 있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부터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기숙사는 낯설지 않다. 룸메이트에 따라 분위기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1학년 학부생 1명은 중국 서안에서 왔고, 학부 2학년인 2명은 같은 고향 친구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 학생은 나와 같은 경영학 전공이고 우즈베키스탄의 2명은 같이 디자인 공학을 전공한다고 한다.
이 학교에는 무역학과가 없어 경영학과를 택했다. 여기서는 내가 가장 언니다. 나는 경영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느니 왕언니로 방장이 됐다.
한국공대는 중국 남경 공대보다 규모 면에서는 많이 떨어지는 수준이다. 구미라는 도시도 남경보다 훨씬 규모가 작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새로운 나라에서 한국어로 전공과목의 학위를 따야 한다는 부담은 크다.
중국에서 학부를 마쳤다고는 하지만 체육을 겸했기 때문에 학문적으로는 많이 부족한 편이다.
이제 한국에서 전문 경영인 수업을 마치고 한 중 무역의 주역이 되는 꿈을 이루고자 한다.
‘한국인 교수의 수업을 받으려면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 어떻게 하지? 아직은 겨우 초급을 넘겼을 정도인데….’
수업 중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돌아와서 반복하고, 미리 예습하는 등 열심히 공부에 임한다.
교수님도 외국인 유학생에게는 특별히 말을 천천히 하고, 쉽게 가르치려 노력하신다. 하루 이틀 날짜가 가면서 이해력도 차츰차츰 늘어만 간다. 이젠 눈치만 보고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
거리 곳곳에서, 마트에서, 한국인의 말이 귀에 들어오게 됐다. 이게 바로 새로운 발견이요, 신천지가 열린 것이다.
신비롭다. 도서실에서 마음껏 공부해 보고 싶다. 늦은 나이에 학문의 깊이에 빠져들게 됐다.
이 학교는 공과대학이라 남학생 수가 여학생의 3배가 된다. 그나마 여학생은 주로 인문학부에서 수학하고 있다. 룸메이트인 중국 유학생은 올해 처음 입학했기에 서툰 한국어를 극복하느라 열심히 노력 중이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2명은 돈은 벌겠다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공부는 뒷전인 것 같고, 그저 한국 생활을 즐기려는 것 같다.
늦은 시간에 돌아와서는 곯아떨어진다. 안쓰럽기도 하고.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루하루 생활에 탄력이 붙는다. 수업시간에도 긴장 속에서 학문에 매진하고 있다. 수업을 마치면 친구도 사귀어야 한다.
이 학교는 유학생 유치를 위해 많은 장학제도를 두었기 때문에 특별히 외국인이 많다. 그래서 외국인 친구를 자연스럽게 사귀게 됐다. 그러나 여기는 한국이니 현지인인 한국인을 친구로 두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숙사에서 제공해 주는 한국 음식이 내 입맛을 즐겁게 한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음식의 장벽, 언어의 장벽을 넘으면 외국에서 별다른 장벽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일찍이 이 두 장벽을 넘어섰다. 이제는 전진만 있을 것이다.
한식이야말로 웰빙 음식이다. 담백하고 칼로리가 적은 음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나는 한국 음식 중 된장국과 김치, 미역국 등을 좋아한다. 특히 중국사람이 싫어한다는 깻잎 요리도 좋아한다. 김밥이나 삼계탕, 감자탕 등은 중국에 보급해 보고 싶은 음식이다.
수업이 없는 날이라 학교 도서관을 찾는다. 전공과목 외에 교양에 관계되는 책의 표지를 살펴본다. 소설집, 시집, 한국판 삼국지 등을 살펴보고 있는데, 한 청년이 다가온다.
“이번에 입학했어요?”
외모부터가 동양인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말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은 분명하다. 푸른 눈동자에 하얀 피부의 서양인이다.
“네, 저는 이번 3월에 경영학과에 입학했어요. 석사 과정입니다.”
“그렇구나! 보기에도 학부생은 아닌 것 같네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중국이에요. 남경 공대 졸업했고요.”
“저는 러시아에서 왔어요. 모스크바 대학 졸업했고요, 석사 과정도 마쳤고, 이 학교에서는 박사과정이어요.”
“저는 저수지나 강에서 일어나는 녹조 현상이나 홍조 현상을 해결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을 번갯불이‘번쩍’하고 지나간다.
‘우리 중국에는 물이 좋지 않아 물 문제가 심각한데, 저 청년을 잘 사귀면 좋겠구나! 그래! 이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겠다.’
나의 DNA 속에는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사업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실크로드의 기점인 난주에서 낙타 타고 무역을 했던 대상이시다. 난주 시의 역사에도 기록될 정도의 거상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또 어떤가?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이 발표되고부터 발 빠르게 움직였다. 부동산 쪽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단독 주택을 짓고, 아파트를 짓고, 돈이 되는 부동산이라면 사고, 팔기를 반복했다.
당시는 한 가구 한 자녀 낳기 정책이었는데, 맏이인 나를 낳고 보니 딸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낳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나를 외가에 맡겨 두고 다시 둘째를 낳았다. 또 딸이었다. 아버지는 딸이라도 호적에 올리지 않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거액의 벌금을 지급하고 딸 둘을 호적에 올렸다. 아마 한국 돈으로 2,000만 원쯤 될 거라고 한다. 여기에서 또 두 딸을 친가 할머니께 맡기고 셋째를 낳았는데, 또 딸이었다. 이제부터 아버지는 오기가 생긴 건지, 벌금을 물면서까지 넷째를 낳고, 다섯 번째에 드디어 아들이 태어났다. 그것도 아들 쌍둥이로!
쌍둥이는 벌금을 한 아이 것만 내면 된다. 이래서 아버지는 6남매를 두셨고, 벌금을 4번이나 물었다.
중국에서 말하는 검은 아이 (黑兒子)는 아들을 낳기 위해 한 자녀 낳기의 규정을 어기고, 첫아이가 딸이면 호적에 올리지 않는다. 2번째 3번째도 딸을 낳게 되면 이 또한 호적에 올리지 않아 정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버려진 아이를 뜻한다.
중국에는 이 검은 아이인 딸이 몇 명인지 추산이 어려울 정도로 그 숫자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6남매는 모두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이는 아버지의 재력과 양심의 결과다.
남동생은 과외까지 해서 북경 대학과 청하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 여동생 셋은 모두 서안 대학을 졸업했고, 둘째는 시청에 셋째는 우체국에 그리고 넷째는 은행에 근무하고 있다.
나도 공무원을 하려고 했으면 쉽게 할 수 있었으나, 꿈이 너무 커서 이렇게 한국으로 유학 온 것이다.
나는 이 청년에게서 나의 미래를 보고 있다. 이 청년과 장래를 같이 할 수 있다면 중국으로 데려가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
깨끗한 물 문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나 적용되지만, 중국은 더욱 심각하다.
아주 친절하게 그에게 접근한다.
“언제부터 한국에 왔어요?” 내가 물어본다.
“난 작년에 왔어요. 수질 개선에 관해 연구하고 있어요. 전자 IT융합을 전공해서 그 방면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어요.”
두 사람 모두 한국말은 서툴렀지만, 이방인이라는 공통점까지 작용하니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그는 자기 이름을‘아미르’라고 소개한다. 아버지는 엔지니어고, 어머니는 중등학교 음악 선생이란다.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아직 대학생이라고 한다.
그는 현재 남자기숙사 동에서 생활하고 있다. 룸메이트는 독일에서 온 학부생 3명이다. 전자공학부 학사 과정인 독일인 룸메이트 3명에게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그도 방장으로 동생 셋을 돌보며 그들의 논문 쓰기 등도 도와줄 것이란다.
지도교수님도 아미르를 조교처럼 곁에 두고, 논문 쓰기와 환경정화에 관해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나는 아미르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와 가까워지기 위해 어떤 노력이라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친절은 기본이며 양보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
아미르도 나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졌는지, 무척 호의적이다.
나는 여기서도 돈 버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한국의 질 좋은 화장품을 사서 중국에 파는 작업이다. 이 일은 자칫하면 세관에 걸릴 수도 있으므로 용량, 횟수, 등을 적당히 조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게가 비교적 가벼우면서 가격이 많이 나가는 품목으로 립스틱, 아이섀도, 색조화장품 등을 취급한다. 보내는 곳은 내 여동생 3명에게 골고루 보내서 팔게 하고, 각 성에 떨어져 있는 친구도 이용한다. 나중에 발전하게 되면 나의 6촌 언니한테도 팔아보라고 할 것이다. 대금은 나의 중국 통장에 넣으면 외국인 송금의 번거로움도 없다.
이 일로 수입은 짭짤하다. 나의 화장품을 받은 동생이나 친구들도 얼마간의 수입이 생기게 된다.
이 일을 아미르에게 맡겨 택배 업무를 돕게 했다. 그는 보낼 곳의 리스트를 뽑아서 골고루 또 중량도 생각하면서 보내고 있다. 둘이 손발이 제법 맞다. 어느 날 아미르는
“핑핑은 돈 버는 일을 잘하니 나는 연구에만 힘쓰면 되겠네.”라고 한다.
중국 세관에서는 장사하는 물건을 잡으려고 혈안이다. 선물로 보내는 것인지? 아님 장사하려고 보내는 것인지? 를 판단하는데 주로 화장품이나 옷, 액세서리 같은 사치품을 골라내고 있다. 또 물건 가격도 아주 적게 잡고 품목도 다양하게 말해야 한다.
보내는 사람도 한 사람 이름으로 자주 보내면 주의 대상이 된다. 여러 이름과 여러 주소로 보내고 있다. 아미르는 치밀하여 이런 일에 실수하지 않는다.
아미르는 이런 내가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한다. 공부 머리보다 돈 버는 머리가 더 발달한 것 같다고도 한다.
“넌 돈을 잘 버니 곧 부자가 되겠다.” 아미르가 웃으며 말한다.
“난 어서 돈을 벌어 한국에서 집을 살 거야.”
“그럼 한국에서 계속 살려고?”
“그건 아니야.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무역을 해야 하니까 한국에도 집이 있어야지.”
이제 우리 둘은 부부처럼 짝꿍이 되어 붙어 다닌다. 교내에서도 소문이 났다. 매일 만나서 밥 먹고 사업 이야기하고, 애정도 키워나갔다.
나는 요즈음 아미르와의 무지갯빛 미래를 꿈꾸고 있다.
‘아미르는 환경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겠고, 유명한 교수가 되면 연봉을 많이 받을 것이다. 난 무역을 통해서 많은 돈을 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금방 부자가 되겠다.’라는 꿈이 날개를 단다.
C 교수가 찾아오셨다.
“핑핑! 아르바이트 자리 소개하려고 해. 수업 끝나고 나랑 같이 가자.”
C 교수를 따라간 곳은 그분이 근무하고 있는 Y 중학교다. 그 교수는 교장실로 나를 데려간다.
교장 선생님의 첫인상이 아주 좋다. 잘생긴 이목구비에 인자한 표정이 아버지 같다. C 교수는 나를 소개하며 나에 대해 과분하게 포장하고 있다. 중국에서 유명한 소프트볼 선수며, 코치도 잘 할 것이라 했다.
C 교수의 말이 끝나자 내 손을 잡으며
“만나서 반가워요. 최 선생(C 교수)과 세부적으로 이야기하고 계약서를 쓰도록 해요.”
“최 선생의 권유로 우리 학교 교기를 소프트볼로 정했어요. 잘 지도해 주세요.”라고 했다.
이래서 난 Y 중학교에서 소프트볼 코치가 됐다.
이건 순전히 최 선생의 공이다. 한국 학교에서는 한 학교에 한 가지 종목의 운동을 장려하고 있다. 이걸 교기라고 한다.
학교 나름대로 운동 종목은 정하면 된다. 이때 최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을 움직여 교기를 소프트볼로 하도록 제안한 것이었다.
나는 어떤 일이든 사양하지 않는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일은 많은 한국인과 만나 인맥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프트볼 코치의 자리는 돈을 버는 수단뿐만 아니라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로 인해 교장 선생님이라는 인맥이 생긴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곧장 Y 중학교 선수들을 모아 훈련에 들어간다.
소프트볼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을 상대로 기초부터 가르치기 시작한다. 내가 처음으로 선수 생활을 했을 때를 상기하며 열심히 노력한다.
훈련을 마치면 아미르가 기다리고 있다. 공부와 일, 그리고 연애까지 3중으로 바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이게 바로 내가 바라던 일상이다.
중국에 화장품을 보내는 일은 대부분 아미르가 맡게 됐다. 외국 생활이 따분하지 않고 기계에 기름 친 듯 바쁘게 움직이니 나의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것 같다.
Y 중학교에는 토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출근한다. 그때마다 교장 선생님은 교장실로 불러 이야기도 나누고 커피 한 잔을 권한다. 녹차와 보이차를 주로 마시다가 커피를 마시니 달달한 맛이 입에 당긴다.
‘이러다 한국 사람 되는 게 아닌가!’
이게 바로 내가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증거가 아니겠나?
교장 선생님은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분의 막내딸도 나와 동갑이고 부인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그분은 가까운 대구에서 살고 있으며 자동차로 출퇴근하고 있단다.
“핑핑 주말에 시간 나면 우리 집에 가자.”
정말 반가운 말이다. 내가 바라던 바다. 한국 가정을 방문하여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시간 있어요. 다음 주도 괜찮겠어요.”
“그래. 그럼 담 주 금요일 훈련 마치고 곧장 가자.”
한국 가정은 어떨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그 부인이나 딸은? 교장 선생님의 인상으로 봐선 좋은 가정인 것 같은데….
부인이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니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어디 있겠나? 또 교장 선생님은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한다.
한국에 와서 C 교수도 만나고 교장 선생님까지 만났으니 인맥이 쌓이고 있다. 특히 미래의 남편이 될 아미르를 여기서 만났으니, 한국은 바로 기회의 땅이 된 셈이다.
나에게 행복을 안겨준 한국에서 행복한 미래를 펼치리라.
가슴이 설렌다. 그분의 가족과 교류하며 친정을 오가듯 자주 만나게 되면 가족처럼 친하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금요일 날 운동을 가르치고 교장 선생님의 차에 오른다. 퇴근길에 나를 데리고 가면 부인이 좋아할까? 궁금해진다. 나의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핑핑, 나보다 우리 집사람이 핑핑을 더 좋아할 거야. 중국인과 이야기할 기회가 왔다고 좋아했거든.”
이제야 마음이 편해진다. 구미에서 대구까지는 중국 기준으로 하면 바로 이웃이다.
작은 강가의 아담한 아파트다. 초인종이 울리자 부인과 딸이 반갑게 맞이한다.
와! 이게 무슨 조화람?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엄마 같은 포근함이 느껴진다.
이심전심인가? 부인께서 나를 꼭 안으면서 잘 왔다고 어깨를 토닥여 준다. 하마터면 입 밖으로 ‘엄마!’라고 부를 뻔했다. 딸은 나보다 몇 개월 먼저 태어났다고 자신을 언니라고 부르란다. 그런데 꼭 아기 같다. 막내라 그런지? 몸집이 작아서 그런지 어쨌든지 언니라고 부르긴 하지만 언니 같은 느낌은 나지 않는다.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다.
“한국 음식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휘~ 둘러본 집안 풍경은 무릉도원처럼 아늑하고 화사하다. 이런 분위기는 어디서 왔는가? 근원을 찾아본다.
사모님이 주방으로 간 사이 거실을 한 바퀴 둘러본다.
그렇구나! 크림색 벽지가 풍기는 아늑함인 것 같다. 색깔뿐 아니라 고급 벽지에서 우아한 품위를 자아내고 있다. 거기다 작은 꽃무늬 벽지를 포인트로 주방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가구의 색깔은 채리 색 계통이고 바닥도 연한 오렌지빛으로 조화를 이룬다. 케텐은 민트색과 핑크색이 조화를 이룬 물방울무늬다.
방이 모두 네 개에 화장실이 두 개다. 화장실의 타일 색깔도 고급스러우며 우아한 색으로 이루어졌고, 한쪽 벽은 포인트를 주어 그림 타일을 이용했다. 방 하나는 부부 방이고, 다른 하나는 언니 방이다. 그리고 방 하나는 서재로 꾸며놓았다.
그렇다! 벽지부터가 중국과 다르다. 페인트를 칠한 중국 벽과는 격이 다르다. 색상도 어쩜 이렇게 아름답고 우아하게 낼 수 있을까? 한국의 붉은 색은 중국의 붉은 색과 다르다. 색상 배합이 뛰어난 나라 같다.
식탁, 그릇, 수저 등 이국적인 모습에 배고픔도 잊고 탐색 중이다.
“빨리 밥 먹자.”
사모님이 재촉할 때 비로소 식탁을 본다. 차려진 식탁엔 외국인을 위해 자극이 비교적 적은 음식을 준비한듯하다.
미역국에 쌀밥은 주빈처럼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뒷줄엔 떡볶이, 배추김치, 깻잎 김치, 생선조림, 거기다 잡채까지 차려 놓았다.
이 음식 모두가 내 입맛에 맞다니! 나의 대단한 적응력은 자랑할만하다.
언니 곁에 내가 앉고 마주 보는 자리에 교장 선생님 부부가 앉았다. 이 그림은 두 딸과 함께 식사하는 부모! 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합이냐!.
“핑핑! 넌 우리 집을 네 집이라 생각하렴. 그러니까 너도 우리 가족이지. 우리 두 사람이 엄마 아빠가 돼 주면 안 되겠니?”
오! 이 말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이다.
“네 좋아요. 지금부터 엄마, 아빠라고 부를게요.”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오렴.”
전화번호부에 전화번호를 입력한다. 엄마는 가족 톡에 나를 초대한다. 나는 중국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위챗으로 한국 엄마 아빠를 초대하려고 마음먹는다.
중국에는 유튜브니, 구글이니, 카톡이니 이런 매체는 통하지 않는다. 중국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바이두’ 위챗 등으로 소통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너무 폐쇄적이라는 생각이다.
지칭은 한국 엄마 아빠, 중국 엄마 아빠라 하고, 호칭은 그냥 엄마 아빠라 부르기로 했다.
“핑핑! 여기가 네 방이야.”
시집간 언니가 쓰던 방을 내방으로 정해주신다. 공주님 방처럼 꾸며져 있다. 장롱과 침대, 화장대까지 갖춰져 있다.
“여기서 자고 싶으면 자고 언제든지 와서 이용할 수 있어.”
엄마 아빠에 방까지 푸짐한 선물을 받았다.
‘혹시,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든 게 아닐까?’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쉽게 부모 자식의 인연을 맺을 수 있겠는가?
저녁에 중국에 전화해서 한국에서 받은 복을 얘기했더니 중국 엄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사람은 처음 만나는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 신뢰가 쌓이려면 쌍방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혹시? 무슨 불순한 의도가 있는지’ 조심하라고 한다. 그렇지만 내가 직접 만나보니 단번에 믿음이 간다.
내 입에서는 신기하게도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라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다음 날 엄마는 나와 언니를 데리고 백화점으로 간다. 처음으로 한국 백화점에 갔는데, 옷이나 모든 물건이 아름답게 진열돼 있고, 점원들이 친절하다. 엄마는 단골집이라며 숙녀복 매장으로 우리 둘을 데려간다. 가격표를 보니 꽤 비싸다. 엄마는 나와 언니에게 코트 한 벌씩을 고르라고 한다. 언니는 열심히 고르고 나는 서먹하게 서 있는데, 엄마는 코발트 색깔의 코트를 골라 나에게 입힌다. 맞춤옷처럼 잘 맞는다. 안목이 대단하다. 언니는 귀여운 디자인의 보라색 코트를 골랐다.
엄마는 핑핑은 옷이 별로 없으니, 특별히 받쳐 입을 옷을 더 사야 한다며 연한 베이지색 스웨터를 고른다. 그리고 청바지도 골랐다.
엄마는 내가 가져온 낡은 가방을 보더니 저렴한 가방이 있다며 가방 집으로 간다. 연한 오렌지 색의 예쁜 가방이다.
“엄마!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어떻게 해요?”
“괜찮아 모두 비싼 것이 아니야. 이렇게 멋진 딸이 생겼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가 주는 것은 그냥 받기만 하면 되는 거야.”
둘째 날 저녁엔 중국으로 전화해서 영상으로 중국 엄마와 한국 엄마를 대면시켰다. 한국 엄마는 중국 말을 좀 알기 때문에 쉽게 소통됐다.
다음 날 위챗 대화방에는 한국 엄마 아빠, 중국 엄마 아빠와 나 그리고 언니까지 초대해서 국경 없는 가족이 됐다.
3박 4일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아빠 출근길에 같이 구미로 돌아왔다. 대구에서 한국 엄마를 만났던 미담도 가지고 왔다.
기숙사로 돌아와서는 천국에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으스대며 엄마 아빠가 생긴 이야기를 자랑하고 다녔다.
“넌 복이 많아! 행운아야!”
부러운 눈초리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특히 룸메이트 3명은 자신에게도 그런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한다.
내 이야기를 듣고 아미르도 엄마 아빠를 만나고 싶단다. 아미르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래의 사위 자격으로 가면 되니까!
이제는 한국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엄마 아빠에 언니까지 생겼으니 어깨가 저절로 올라간다.
Y 중학교에 아르바이트 갈 때도 아빠가 있으니 든든하다. 먼저 교장실에 들러 아빠와 커피 한 잔을 먹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일하게 된다.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고 애를 먹일 때는 아빠에게 일러바친다. 그러면 최 선생님(C 교수)까지 합세해서 나를 도운다.
친구들의 부러움 속에서 내 생활에는 탄력이 붙는다. 공부, 사랑, 사업, 모두가 순풍에 돛 단 듯 순행하고 있다.
이후 대부분의 주말은 아빠를 따라 대구로 간다. 내 집에 온 듯 자연스럽게 내 방으로 들어간다. 속 옷이랑 세면도구, 화장품은 엄마가 미리 준비해 둔다.
어떤 주일은 언니 따라 교회 청년부에 가서 한국 기독 청년들을 만난다. 중국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일이다. 청년들은 내 주위로 몰려들며
“중국에서 예수를 전하는 전도자가 되길 바란다.” 라고도 한다.
경쟁이라도 하듯 또 어떤 주일은 엄마 아빠를 따라 대 예배에 참석한다.
목사님의 설교가 딱 와닿지 않아 졸릴 때도 있다.
말씀의 내용은 잘 모르겠으나, 찬송과 기도 소리는 내 마음을 안정시킨다. 교회에 다녀오면 엄마는 나에게 더욱 잘 해준다. 성경 말씀도 알기 쉽게 조금씩 가르쳐 준다.
나는 별천지를 만난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도 한 사람씩 알아가게 된다.
이제야 깨닫는다. 한국의 엄마 아빠와 언니는 신앙이 깊어 외국인 등 약자를 도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Y 중학교에 갔더니 아빠가
“이번 주말이 핑핑 너 생일이라며? 남자 친구가 아미르라고 했나? 걔도 데려와.”
“내일 토요일 날 아미르와 같이 기차 타고 오렴.”
“사위가 오는 데 정식으로 맞아야지.”
난 곧장 아미르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린다. 아미르는 기뻐하면서도 부담이 되는 모양이다.
“정말 내가 가도 될까?”
“물론이지. 우리 엄마 아빠 좋은 사람이야. 만나보면 알 거야.”
아미르는 신중한 성격이라
“폐가 되면 어떡하지?”라며 망설이는 눈치다.
“그러면 선물이라도 하나 사서 가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더니 좋다고 한다. 두 사람은 뭘 사서 가면 좋을까? 생각 끝에 엄마에게는 다리 안마기를 사고, 아빠 몫으론 포도주 한 병을 샀다.
아미르는 나보다 먼저 한국에 와서 그런지 대구행 기차 타는 법도 잘 알고 있다. 대구에서 면허시험을 치른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 두 사람은 점심때가 돼서 엄마 집에 도착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언니는 정중하게 아미르를 맞이한다. 사윗감을 맞는 자세다.
이미 식탁이 차려져 있고, 생일 케이크도 준비해 두었다. 정말 한국 엄마가 나의 진짜 엄마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한국에서는 생일을 맞으면 찰밥과 미역국은 기본이란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준비됐다.
아미르는 입맛에 맞지 않는지 별로 먹지 않는다. 이를 눈치챈 엄마가 아미르를 위해 식빵을 굽고 우유와 커피를 가져온다.
5명이 생일 케이크를 자르며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다.
엄마는 아미르가 한국 음식이 맞지 않은 것 같으니 저녁엔 식당에 가서 먹으라고 한다. 어른 둘은 빠지고 언니와 나, 아미르 이렇게 젊은 사람끼리 마음껏 즐기고 오라고 언니한테 카드를 준다.
마침 언니는 영어를 잘해 아미르와 소통이 잘 되고 있다. 나보다도 더 잘 통하는 것 같다. 언니는 대학 시절에 1년 반 동안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받았다고 한다.
이 나라에 와서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워 웬만한 젊은이는 기본 영어를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체제가 달라 영어를 배우지 못했다. 외국어로는 일본어 정도를 조금 알 뿐이다.
언니와 아미르가 잘 어울리는 것을 보니 나도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배울 게 너무 많다.
엄마는 잠깐 앉으라고 하더니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아미르와 나는 한국 영화를 보지 못했다. 구미는 중소 도시라 극장 시설도 대구만 못하다. 그보다도 한국 영화에 흥미가 없고,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저녁은 양식으로 사 먹고 극장에 가서 영화 한 편 보고 오렴.”
뒤이어 엄마는 요즈음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아버지’라는 영화의 내용을 알려주었다. 내용을 알고 가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했다.
영화의 내용은 한국 전쟁 때 밀려오는 중공군을 피해 피난민들이 흥남 부두에서 미군 함정을 타고 피난 오게 된 이야기다. 부산으로 피난 온 한 가정이 갖은 고생을 하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중 주인공인 아버지가 겪은 고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엄마는 각오라도 한 듯이 아미르와 나에게 질문한다.
“너희들 한국 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고 있니?”
우리 둘은 모른다고 했다. 엄마는 그 원인이 중국과 소련에 있다고 말한다. 소련이 김일성을 사주해서 한반도를 공산화하기 위해 일으켰다고 한다. 또 유엔군의 참전으로 다 이긴 전쟁인데, 중공군이 개입해서 이렇게 남과 북이 갈라지고 두 체제가 한 나라에 공존하면서 전쟁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했다.
우린 금시초문이라 어리둥절했다.
“이건 감정이 아니고 역사다. 역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니?”
엄마의 설명을 들으니 저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뒤이어 이 땅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던 배경과 경과도 설명한다. 엄마는 역사를 많이 알고 있구나! 아님, 이 나라에서는 자신의 나라에 불리한 부분까지도 가르치고 있구나!
“너희 조상님은 공산 혁명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니?”
이때 아미르가 말한다.
“우리 할아버지는 지주였었는데 나라에서 땅을 뺏어갔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 할아버지도 교장 선생님이었는데, 하방이 돼서 시골로 쫓겨났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다 등소평 집권하에서 신원이 회복돼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몫의 연금을 받게 됐다고 했다.
역사는 우리 세 나라의 인연을 말해주고 있다.
“나의 설명을 듣고 영화를 보면 이해가 쉬울 거야.”라고 엄마가 말한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물어보자. 한국이 잘살게 된 원인이 무어라 생각하니?”
나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얼른 대답한다.
“그건 미국이 도와서 그렇죠.”
엄마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처음 어려울 때는 미국의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라 한다. 그건 굶지 않을 정도의 원조였고, 지금의 발전은 훌륭한 지도자와 국민이 노력한 결과라고 한다.
‘한국 엄마는 정말 똑똑하구나! 이제는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정말 배울 것이 많다.’
내가 한국에 온 이후 선거하는 모습을 보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엄마한테 물은 적이 있다.
“왜 한국에서는 돈과 시간을 들여 선거하는 거예요? 저렇게 상대를 비방하고, 보기가 좋지 않아요.”라고 말했더니
“그래 네가 보기엔 그럴 수도 있겠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는 과정이다. 물론 문제점도 있겠지만 국민의 의사로 지도자가 뽑히게 되고, 잘못하면 탄핵이 돼서 끌려 내려오기도 하지.”
아미르의 나라는 그래도 완전하진 않지만, 민주주의가 도입됐으니 선거에 대한 이해가 나보다 나았다.
난 아직도 선거로 혼란한 정국을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 세 사람은 양식집에 들러 아미르가 좋아하는 것을 시켰다. 나는 동양인이라 그런지 한식이 좋고, 특히 한국의 감자탕이 좋다. 다음에 나 혼자 올 때는 감자탕을 사 달라고 해야겠다.
극장 앞에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언니가 용케도 인터넷으로 예매를 해 놓았기 때문에 쉽게 입장할 수 있었다.
한국 전쟁의 참혹함이 화면 가득 비친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피난 가려는 사람들이 미군 함정에 오른다. 미군은 이를 용납하고 함정에 실린 무기를 버리면서까지 피난민을 싣고 남으로 향한다.
미국에 대해 나쁜 감정만 있었는데 미국인들은 인도주의 정신을 가졌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등에 업은 여동생은 바닷속으로 빠지고 그 여동생을 찾기 위해 아버지는 남고, 엄마와 주인공 그리고 동생들만 남쪽으로 내려온다. 이곳에서 고생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난다.
이 일에 중국이나 소련이 개입했다니 조상의 일이지만 미안하다.
지금은 역사를 과거에 묻고, 한국, 중국, 러시아는 이웃 나라답게 잘 지내고 있다. 정치적인 일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과 중국의 정서는 너무 닮았다. 앞으로는 서로 도우며 왕조시대 때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발에 바퀴라도 단 듯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세월은 저만치 흘러가 있었다.
한국에 온 지가 벌써 1년을 훌쩍 넘기고 2년 차에 들어선 지도 한참 됐다.
공부도 그런대로 성적이 나오고, 수입도 짭짤하다. 거기다 애인과 부모까지 생겼으니 성과가 크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이제 안정기로 접어들게 됐다.
그러나 순탄대로 만 걷던 나에게 태산준령이 앞을 막고 있다. 석사 논문이다.
중국에서라면 어떻게 써 보겠는데, 여기서는 한국어나 영어 중 택일이다.
아미르는 박사 논문을 영어로 쓰면 문제없다고 한다. 난 자존심 때문에 논문 쓰는데, 도와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나의 무식이 탄로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한테는 자존심을 세울 필요도 없고, 중국인이 한글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기죽을 필요가 없다.
나는 한국어로 논문을 쓸 수밖에 다른 선택은 없다.
요즈음은 인터넷의 발달로 표절 논문은 검사기에 넣으면 귀신같이 잡아낸다고 한다.
납덩이 하나가 가슴 밑바닥에 쿵! 하고 내려앉는다.
논문이란 논설문 아닌가? 논리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부분이라 엄두가 안 난다. 그것도 A4용지 50매 이상 분량이란다.
교수님께 연구 주제와 참고 자료, 설문조사 문항 등을 지도받았다. 그러나 문장 만드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회화는 좀 되지만 한국어로 문장을 작성하는 일이라 아무래도 엄마한테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며칠을 끙끙대며 몇 자 적어서 주말에 대구로 향한다.
엄마한테 걱정 보따리를 풀었더니 도와주겠단다. 내가 한글로 대충 생각을 써 가면 엄마가 바르게 고쳐주는 작업이다. 주말에 한 번씩 만나는 일이라 몇 달이 걸릴 것 같다.
엄마와 내가 책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앉는다. 꼭 과외수업 받는 학생 같다. 엄마도 솔직히 논문을 써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수필가로 등단까지 하고 수필집도 냈으니 기본 필력은 있을 것이다.
먼저 나보고 논문 주제를 말로 해 보란다. 설명을 듣더니 내가 쓴 글을 보자고 한다. 일주일 동안 밤마다 끙끙대며 쓴 글을 엄마에게 내민다. 엄마는 내가 쓴 글을 읽어보더니 포복절도한다.
“아이고! 우스워라! 이렇게 우스울 수가! 코미디가 따로 없네.”라고 한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였더니, 한글은 점 하나도 찍는 위치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진단다.
예를 들면 내가 발전을 발정이라 썼단다. 이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뜻이란다. 또 한글 문장은 간단하게 써야 주술 관계가 잘 드러난단다.
특히 논설문은 분명하게 뜻을 전해야 하므로 더욱더 그렇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담 이거 큰일 아닌가? 산 넘어 산이다.’
“나도 쓰려니 힘이 드는구나. 우리 일주일에 10쪽씩 써 나가자.” 엄마가 말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논문을 쓴다. 그걸 가지고 주말에는 대구로 가서 엄마의 지도를 받는다.
옆에서 이를 보고 있던 같은 과에 다니는 언니가 논문집 한 권을 주면서 참고하라고 한다. 이 언니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데 사업하는데, 도움이 될까 봐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라고 한다.
내 생각과 논문집을 참고해서 주말에 엄마에게 점검받고, 이런 일을 너덧 번 반복했다. 이러다 보니 80% 정도를 쓰게 됐다. 이제 마무리만 잘 하면 된다. 막막하던 앞이 조금 훤하게 밝아지는 기분이다.
이래서 내 속에 교만이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엄마한테 가지 않고 마무리는 선배가 건네준 논문집을 참고해서 마무리 지었다.
‘설마 선배가 준 논문이 인터넷 검색에 걸릴까?’라는 생각에 노트북에 저장해 놓고 출력해서 지도교수님께 제출했다.
교수님은 수고했다고 칭찬하신다.
“핑핑 졸업하고 무슨 일을 할 거야?” 지도교수님이 물으신다.
“저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경험을 쌓을 거예요.”라고 답하며 졸업이 눈앞에 다가와 성취감과 해방감으로 마음이 들뜬다.
아미르도 이미 논문 작성이 끝났다. 아미르는 나와는 달리 학문적인 면에서는 우수하다. 나는 원래부터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거기에는 운동선수로 활약한 탓이 작용했을 것이다.
“핑핑! 논문을 마무리 지어야지. 언제 올 거니?” 엄마가 전화로 묻는다.
“엄마! 논문 다 써서 제출했어요. 교수님도 잘 했다고 칭찬했어요.”
“그럼 잘 됐다. 논문이 통과됐으면 이제 졸업식만 남았네. 졸업식 때 아빠랑 갈게. 무슨 선물을 사 갈까? 졸업식 끝나고 아미르랑 금오산 부근에서 외식하자.”라고 하며 기뻐했다.
그러나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졸업식을 3일 앞둔 날이었다. 방송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내 귀를 의심했다.
“알립니다. 이번 논문 심사에서 표절 논문이 있어 졸업이 취소되는 학생이 있습니다. 장핑핑, 진 태진…. 이상 3명입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여러 사람 앞에서 이렇게 창피를 당하다니!
‘난 이 진흙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정신을 차리자.’
내 옆에는 우리과 학생 몇 명과 은숙 언니가 옆에서 내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하려 한다.
난 의연한 태도로 표정도 밝게 연기하며,
“괜찮아. 언니 걱정해 줘서 고마워. 논문은 끝부분만 마무리하면 되고 한 학기 뒤에 통과하면 돼.”
“오히려 잘 됐어. 이젠 학점은 다 땄으니 일할 시간이 많아서 좋아.”라고 말하며 그들이 보는 앞에서 엄마에게 전화한다.
“엄마, 졸업식 날 오지 마세요. 한 학기 더 공부하게 됐어요. 다음 주에 갈게요.”라고 했다.
이 모습을 본 이은숙 언니는
“와! 너 배짱 한 번 좋다. 대단한 아이야!”
“핑핑 나랑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나 여행사를 만들려고 하거든. 나랑 같이하자.”
이럴 때 전화위복이란 말을 써야 할 것 같다.
이은숙 언니는 나를 큰 인물로 보고 같이 여행사를 운영하자고 한다.
“언니! 난 자본이 없어.”
“걱정하지 마. 여행사는 내가 차릴게. 사무실 얻고, 사업허가 내는 일 등 제반 업무는 모두 내가 하고, 넌 중국에서 손님만 끌어오면 돼.”
이래서 은숙 언니와 나는 여행사 설립에 동의하게 됐고, 언니는 제반 행정업무와 사무실 꾸미는 일에 전념했다.
한 달 후 회사 설립 허가가 나왔다고 한다, 사업에 대해 의논해야겠으니 사무실로 오라고 한다. 나는 혹시! 하는 생각에 엄마 아빠를 불렀다.
회사 이름은‘㈜투어 에코월드’이고 주요 업무는 골프 관광, 의료관광, 쇼핑관광, 스포츠선수들의 교류전 등 중국을 상대로 하는 여행사다.
나의 직책은 국제부 부장이다. 사무실에는 대표인 언니 책상과 내 책상이 나란히 놓여 있고, 나머지 책상 두 개는 사무원의 것이다. 내 책상 위에는 국제부 부장 장핑핑이라 새긴 명패가 놓여 있다. 언니는 내 이름의 명함을 건네주며 잘해 보자고 한다.
이제 나도 사업을 시작하게 됐구나! 꿈만 같다.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하다.
이때 엄마가 계약 조건을 문서로 작성하자고 한다. 이익 분배의 비율을 정하고, 핑핑의 업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이때 엄마가 한마디 거든다.
“그럼 수입이 없을 때도 핑핑에게 기본급을 주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했더니
“처음이라 수입이 없는 상태가 계속될 수 있어요. 이 점은 양해하기 바래요. 핑핑에게는 거처할 원룸은 제공할게요. 관리비와 월세, 그리고 보증금은 회사에서 부담할게요.”
그래서 난 졸지에 여행사 부장이 됐다.
부장이라는 직책을 감당하기 위해 머릿속에 저장해 둔 인맥을 촌 동원해본다. 친동생 5명, 아버지, 삼촌 2명, 그리고 많은 6촌 형제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노트를 꺼내 인맥을 적어본다. 이제야 나에겐 친인척 등의 인맥이 누구보다도 촘촘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게 모두 나의 재산이다. 더군다나 이 인맥들은 각 성시에 고루고루 흩어져 있다. 이것도 좋은 점이다. 물론 대학 동창이나 친구들은 주로 남경 주위인 남쪽에 살고 있고, 많은 친척은 북경과 서안, 난주 등 북쪽에 있다. 이 점도 아주 좋은 점이다.
남경대학에는 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시는 교수님도 몇 분 계신다.
다음 단계는 이 인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거대한 중국을 무대로 한국이라는 날개를 달고 한번 힘차게 날아보련다.
이제 사업을 구상하며 인맥을 점검해 본다.
6촌 중에 창주 시에서 교사직을 맡은 오빠가 있다. 그 오빠에게 당장 전화해서 첫발을 내디딘다.
“오빠! 창주 중학교 교장 선생님 좀 연결해 줄 수 있어? 한국 학교와 교류할 일이 있어서 그래.”
“그래 교장은 내 친구야. 공산당 간부 샤오밍도 친한 사이야.”
일은 쉽게 잘 진행될 것 같다. 얼마 전 한국 아빠한테 중국 학교와 자매결연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을 때 좋다고 했다. 이 일을 추진하고 싶은 것이다.
이날 창주 중학교 교장 선생님께 전화해서 한국 학교와 자매결연에 대해 의논했더니 좋다고 한다. 계획서를 이메일로 보내라고 한다.
계획서는 아빠랑 의논해서 세밀하게 세운다.
대사관에 전화해서 초대에 관한 절차를 조사했고, 참가 인원, 일시, 비용 등, 세세하게 계획을 세웠다.
학생은 희망자에 한해서 30명으로 하고 지도 교사는 5명으로 정한다. 입출국 시의 항공료와 교통비는 자국에서 부담한다. 또 숙식과 관광은 초대국에서 책임진다. 홈스테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친분을 쌓는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중국 학교에서 35명에 대해 초대장이 왔다. 이것으로 중국 비자를 쉽게 낼 수 있다.
출발 준비사항과 중국에서의 일정표를 한국 학생에게 나눠 주어 미리 중국을 공부하기로 한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학생들과 선생님 모두 설레고 긴장되는 모양이다. 나도 통역과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하니 설레면서 긴장된다.
드디어 출발 날이다. 한국 학생 30명은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는 학생이 대부분이라, 이런 계기를 만들어 준 일은 잘한 일이라는 자부심이 생긴다.
이 일이 바탕이 돼서 한 중 교류 사업이 잘되길 빈다.
나는 35명의 지도자가 되어 붉은 깃발을 높이 든다. 처음엔 북경 공항으로 가서 환승한 다음 창주 공항에 도착했다.
중국에서는 교사 몇 명과 학생 몇 명이 플래카드를 들고 공항에 나왔다. 한국 Y 중학교를 환영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내 역할이 중요하다. 먼저 한국 교장, 교감 선생님을 소개하고 세분 선생님도 소개했다. 다음으로 중국 직원이 중국 교장 선생님과 공산당 간부인 샤오밍을 소개했다. 나는 여기서 통역을 맡아 해야 한다.
한국에서 엄마가 걱정하는 나에게
“한국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적당하게 넘어가면 돼.”라고 하던 엄마 말이 생각 나서 중국에 대해 좀 길게 소개했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공산당 간부가 교장보다 더 위의 자리에 있다는 걸 설명했다. 중국에는 모든 단체의 가장 윗자리는 공산당 간부다.
승합차는 예약해 둔 만찬장으로 가고 있다. 내가 처음 계획한 일이 결실을 이루게 되어 가슴 뿌듯하다.
만찬장에서는 건배가 이루어진다. 아빠는 엄마한테 중국말로 인사하는 법과‘건배’라는 말을 배워왔다.
청중을 향해 일어서서 大家谢谢(따지아 시에시에!) 모두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한 후 잔을 높이 들고 为我们的友谊. 干杯! (웨이 워먼더 요우의, 간배이!) 우리들의 우정을 위하여 건배!
와! 감동이다! 참석한 중국인들은 한국 아빠의 중국 건배사에 감동한 분위기다. 손뼉으로 환호한다.
분위기가 너무 좋다. 모두 한국과 중국의 정서가 너무 닮았다고 한다. 음식도 한국인을 배려해서 향차이는 뺐다고 한다.
학생들의 분위기도 너무 좋다. 여기저기서 나를 부른다. 언어의 소통을 위해 내가 필요하다는 것에 긍지를 느낀다. 한국어를 안다는 것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 몰랐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서먹했으나 그들 나름대로 영어라는 공통어로 소통하고 있다. 이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다. 요즈음은 중국에서도 기본으로 영어를 배우고 있으니 쉽게 소통되고 있다. 천만다행이다.
첫째 날은 호텔에서 자고, 다음 날은 학교 시찰과 수업 참관이 있고 둘째 날은 가까운 명승고적 관람이 일정에 잡혔다.
셋째 날과 넷째 날은 각 가정에서 한 명씩 데려가 홈스테이를 하게 돼 있다. 이미 친하게 된 아이들이 좋아하며 부모와 함께 한 명씩 가정으로 데려간다.
어른들만 남게 됐다. 이 중에서 최 선생(C교수)은 공산당 간부인 샤오밍이 여자분인데도 잘 소통하고 있다. 그들도 영어로 소통하고 있었다. 두 학교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은 내가 옆에서 통역한다.
처음엔 소통에 대해 많이 염려했었는데, 모두 기우가 됐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최 선생과 샤오밍이 가까워져 두 사람이 이미 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선생의 딸은 중국으로 유학 보내고, 샤오밍의 아들은 한국으로 유학 가는 일이다. 서로가 상대의 자녀를 맡아서 숙식을 제공하기로 한다. 물론 대학 학비는 본인이 부담하고, 숙식과 유학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맡기로 합의한다.
최 선생의 딸은 그해 9월에 창주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고, 샤오밍의 아들은 그 이듬해 3월에 구미 한국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샤오밍은 최 선생 딸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중국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다.
최 선생도 샤오밍 아들의 후견자가 되어 한국에서의 생활에 도움을 주고 있다.
홈스테이를 마친 학생들은 처음으로 외국인 친구를 사귀게 되어 상기된 얼굴로 친구의 손을 잡고 돌아왔다. 2일간의 홈스테이로 부쩍 가까워졌으니 자매결연의 목적을 이미 이룬 셈이다.
호텔에 남은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도 한층 깊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시장을 구경하고 같이 밥 먹으면서 선물도 서로 주고받는다.
처음으로 한 중 교류에 대해 추진했는데 예상 밖의 성과를 이루게 됐다. 이제 자신감이 붙는다.
한국팀은 돌아와서 구미가 떠들썩하도록 자랑하고 다닌다. 여기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들은 다음 기회엔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약속대로 2달 후 중국 친구들이 한국으로 왔다. 공항에서부터 서로 이름을 부르며 끌어안고 난리다. 거기다 학부모들까지 합세해서 중국 방문객을 환영하고 있다. 특히 샤오밍은 최 선생과 남매라도 된 듯 정답다.
어떤 학부모는 자신이 관광 차를 대여해서 이들을 태우고 구미로, 서울로 동해안으로 다니겠다고 자처하고 나선다.
첫날 Y 중학교 견학을 마치고는 서울로 가서 경복궁을 비롯한 문화재와 백화점 등을 구경시킨다. 특히 어린이 대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 본 학생들은 흥분하고 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한류 열풍을 힘입은 걸그룹의 공연을 볼 기회가 주어져 이들은 또 행운을 거머쥐게 됐다.
이렇게 한 중 두 학교 간의 자매결연이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구미에서 나에 대한 소문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나서지 않아도 한국의 여러 분야에서 중국과 교류하기를 원했다. 한국인도 거대한 나라인 중국에 진출하는 꿈을 꾸고 있다.
다음 사업으로 남경대 야구팀과 인천 K 대학 야구팀과의 교류다. 먼저 인천 K 대학이 남경대학의 소개로 남경에서 겨울 전지훈련을 시작하는 계획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아는 분야라 쉽게 추진할 수 있다.
한 달간 남경에서 전지훈련 할 계획을 짜고 중간중간에 남경대 야구팀과의 교류전도 넣었다.
겨울이 따듯한 남경에서의 훈련을 한국인들이 선호하고 있다. 외국학교에서 훈련하게 되니 자신의 나라에서보다 더욱 고무되는 모양이다. 쉬는 날에는 관광도 하고 중국 학생들과 만나는 시간도 갖게 되어 시야도 넓어지고 성취감도 배가 됐다.
처음에는 음식이 맞지 않느니, 지저분 하느니, 하더니 1주일이 지나니 적응하게 됐다. 중국 학생들도 외국 학생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기회가 됐다.
이번엔 이은숙 사장이 원하는 일인데, 의료관광을 하면 이문을 많이 볼 것 같단다. 나는 북경을 맡고, 은숙 사장은 서울을 맡아서 해 보자고 한다.
사실 몇 년 전부터 한국 성형이 중국이나 홍콩 등 동남아에서 인기가 높다. 한국인 배우들이 중국인들의 이상형이 된 지도 오래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양국 여행사가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나도 한몫 끼게 됐다. 북경에서 괜찮은 여행사를 찾아 의료관광 회원 모집을 부탁했다.
의료관광과 함께 한국의 명승지와 동해안 코스를 넣으니 더욱 인기리에 상품이 팔리고 있다.
은숙 사장은 병원을 섭외해서 우수 의료진을 확보하고 사후 관리도 책임질 수 있게 계획을 꼼꼼히 짰다.
성형 수술은 수술 부위에 따라 수술 2일째부터 가까운 곳으로 관광하는 것은 가능하다. 주로 서울 시내에서 쇼핑하고 공연을 보는 일이다.
그다음 날부터는 음식 관광도 하고 동해안에 가서 바다 구경을 하는 것을 중국인은 좋아한다. 내륙지방에서는 바다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상처가 아무는 시기인 6일째 정도면 강릉 경포대에서 일출 구경을 시키면 아주 완벽히 만족해한다.
이렇게 잘 해야만 입소문이 나기 때문에 은숙 사장과 나는 특히 이점을 유의하고 있다. 이들은 성형과 관광, 쇼핑의 3가지를 잡아서 가게 된다. 나는 또 여기서 화장품을 팔아 이익을 보게 된다. 중국으로 택배를 통해 보내는 일은 위험을 안고 있다. 여기에 송료도 만만찮다.
그러나 관광객을 상대로 하면 더욱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중국인들은 중국인인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성형과 쇼핑을 마음 놓고 하는 것이다.
의료관광에 재미를 붙인 이은숙 사장은 이제는 부산을 통해서도 해 보자고 한다. 남경에서는 부산 김해공항이 가깝고 부산은 바닷가라 관광지로도 서울보다 더 낫다.
나는 남경을 중심으로 회원을 모으고 사장은 부산에 있는 병원을 물색해서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추진하게 됐다. 이제는 경험이 쌓이니 순조롭게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
부산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섬을 여행하는 코스는 중국인에게는 더없이 좋은 여행이다. 여기서도 쇼핑은 인기가 있다. 부산은 한국 제2의 도시니 서울보다 뒤질 게 없다.
우리 여행사는 설립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상승 물결을 타고 있다.
나는 여기서 골프 관광도 추진하게 됐다. 중국에서는 골프장 이용 비용이 저렴하므로 한국에서 골프 관광 회원을 모집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최 선생의 소개로 시작했는데, 이를 계기로 많은 인맥을 쌓게 됐다. 전직 대구시장, 국회의원, 사장님들, 굵직굵직한 인사들이 회원이 돼서 수시로 중국으로 가서 골프를 치게 됐다.
욕심 많은 이은숙 사장은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나와는 중국과 관련된 관광이지만 이 외에도 많은 것에 손을 댄 모양이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표정이나 분위기로 봐서는 뭔가 의심쩍은 분위기가 감지 된다. 나에게 지급하겠다던 배당금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 눈치만 보다가 용기를 내서 물어보면, 아직 시작 단계라 수입이 별로 없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좀 수상쩍은 생각이 들어 내가 추진한 여행사에 전화했더니, 사장님이 하는 말이
“핑핑 요즈음 어디 갔다 왔어?”
“며칠 전에 의료관광팀을 보냈는데, 핑핑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어.”
그랬구나! 이제 내가 구축한 거래처에 나를 빼고 자기가 더 많은 이익을 보겠다 이거지! 정말 그 언니를 믿었는데, 배신감에 온몸이 떨린다.
이걸 어쩌나? 이렇게 된 이상 여행사에서 나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좋아! 그럼 좋은 경험 했다 치고 이제 인연을 끊어버리자.’
“언니, 지난주에 북경에서 의료관광객이 왔다면서요? 난 다 알고 있어요. 나의 지분도 제대로 주지 않고 이제 나를 따돌리네요. 여행사를 그만둘게요. 밀린 돈이나 주세요.”
“너한테는 이미 방값과 관리비로 매달 나갔잖니? 그리고 생활비도 나가고. 그거면 충분하잖아?”
난 할 말을 잃고 여행사를 박차고 나왔다. 곧장 한국 엄마를 찾아가 억울함을 이야기했다. 엄마도 은숙 사장에게 어떻게 할 수 없는지. 신중하게 생각해보자고 한다.
“핑핑 좋은 경험 했다. 생각하고 다른 일을 하면 되잖니? 그 사장으로선 처음에 수입이 없을 때도 방값과 생활비를 지급했으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속이는 걸 보니 함께할 사람은 못 된다.”
엄마의 말을 듣고는 이은숙 사장이 나에게 잘 해준 것만 생각하고 분한 마음을 접는다.
이제는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 또 이 일을 아미르에게 말했더니 한국 엄마와 비슷한 생각이라 한다.
“핑핑 미처 말을 못 했는데, 나도 구미를 떠나야겠어. 미국에서 내 논문을 보고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자고 하네. 내가 자리 잡으면 우리 미국 가서 살게 될지도 몰라.”
느닷없는 그 말에 당황했다. 설핏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나를 떠나려는 건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데? 미국에서 살려고?”
“아니, 1년 계획으로 떠나는 거야. 잘 되면 미국에서 살면 좋잖아?”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동경하고는 있지만, 그곳에서 살기는 싫다.
첫째로 난 영어를 못한다. 둘째로 내가 꿈꾸던 한중 간의 무역을 할 수 없다. 셋째로 거리가 너무 멀어 중국과 한국을 마음대로 오갈 수 없으니 자칫 고립되기 쉽다. 넷째로 미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미르를 끝까지 믿어야 하나? 머릿속에선 의문표가 떠다닌다. 그래도 지금까지 쌓은 정으로 둘 사이는 해어질 수 없는 끈으로 연결돼 있다.
그렇다면 아미르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끌면 되잖을까? 미국에서 제안한 자리보다 더 좋은 자리를 마련하면 될 것 아닌가?
나의 꿈은 아미르를 중국으로 데려가 결혼하는 거다.
아미르는 연구원이 되든지 아니면 교수가 돼도 좋다. 그러면 나는 여전히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무역을 하면 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걱정할 게 없어졌다.
한국에서 몇 년 지내는 동안 나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의 인맥과 수완이 남다르다는 소문이….
구미의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한 사장이라고 소개한 그는 이번에 의료기를 발명했는데, 중국에 진출하면 돈을 많이 벌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인체를 거울에 비춰보기만 하면 그 사람의 건강상태를 알 수 있는 건강기구라고 한다.
“핑핑은 중국에 인맥이 넓으니 중국에서 생산해 팔면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을 거야. 그동안 생활비는 내가 줄 테니까 넌 추진만 잘하면 돼. 이게 잘 되면 주식의 20%를 줄 거야. 계약서에 사인하렴.”.
한 사장은 본사가 수원에 있으니, 수원으로 가서 일을 추진하잔다.
나는 어차피 은숙 사장이 방을 빼 달래서 수원으로 원룸을 구해 집을 옮겼다.
이제 구미를 떠나 수도권에서 나의 꿈을 펼쳐보려 한다.
수원은 수도권이라 구미와 달리 방값이 비싸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가 50만 원 그리고 관리비가 최소 5만 원이다.
주거비를 내가 감당해야 한다. 통장에서 500만 원을 인출해서 집 주인에게 주고 한 달 방세도 선불로 지급했다.
여기서는 한국 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주일마다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반찬이랑 생필품도 지원받았는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됐다.
아미르도 어제 미국으로 떠나고 나 혼자 귀양 온 죄인처럼 원룸에 들어박히게 됐다.
이튿날 한 사장 사무실을 찾았다. 몇 명 되지 않는 직원에다 뭘 하는지 잘 알 수 없다.
한 사장도 이 회사에 얼마 전에 스카우트 된 듯하다. 자기들 말로는 발명품을 연구하고 있단다. 이번에 발명한 의료기의 판로를 모색하던 중 나를 점찍은 것 같다.
판로가 개척되면 대량 생산을 하고 공장이 활기차게 돌아갈 것이라 했다. 나에게 거는 기다가 크다고도 했다. 이들은 나를 통해 중국 시장을 개척하고자 한 사장이 중간에 끼게 된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알고 있는 인맥을 동원해 판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먼저 중국 S N S에 들어가 검색한 회사에 전화를 걸어 보기도 하고 인맥을 활용해 백방으로 알아본다.
모두 반응이 시큰둥하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인은 의심이 많은 민족이라 상대방을 믿지 않는다. 그러니 중국인과 신뢰를 쌓으려면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그러나 한 번 쌓인 신뢰는 끝까지 유지한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구미가 그립고, 한국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 이은숙 사장을 원망했는데, 이제는 은숙 사장도 그립다. 여기서는 방세나 관리비, 생활비 모두를 내가 부담해야 한다. 한 사장은 약속한 생활비를 주지 않는다. 아직 수입이 없어 그러니 양해하란다.
부업으로 중국인을 상대로 화장품 파는 일도 못 하게 됐다. 관광객이 없으니 판매 대상이 없어졌다. 간혹 택배로 보내기는 하는데, 그도 여의치 않다. 이 일은 아미르가 잘 하는데, 아미르가 보고 싶다. 매일 카톡 동영상으로 영상통화는 하고 있지만, 곁에 있는 것에 비할 수는 없다.
건강 거울 제작과 판매에 참여할 중국 업체를 찾기 위해 밤을 새우며 연구해 본다. 어떤 사람에게 연락해야 먹혀들어 갈지….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보려 하지만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세월만 흘러간다.
한국 엄마한테 전화로 고민을 얘기했더니
“내 생각엔 건강 거울이라는 게 허황한 기구인 것 같다. 병원에 가면 MRI, MRA, CT, 초음파 촬영 등 자세하게 검진할 수 있는 기계가 있는데, 거울에 비춰보고 건강을 체크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그 한 사장이라는 사람과는 인연을 끊는 게 나을 것 같다.”라고 엄마가 말한다.
나도 생각해보니 엄마 말이 맞는 것 같다. 중국에 전화했을 때도 대부분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도 엄마와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인맥을 동원하고, 인터넷에 접속하고, 직접 중국에 전화도 해 보고, 여러모로 투자자를 모으고 있으나 결과는 없고, 시간만 끌고 있다.
내가 한국에 대한 무지갯빛의 꿈을 꾸었듯이 한국인도 중국을 향한 무역의 꿈을 꾸고 있었다. 거대한 나라니 잘만하면 대박이 터질 것 같은 허황한 꿈을 꾸는 자가 나를 발판으로 삼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한다.
사무실에 나가면 한 사장은 중국과의 거래에 관해 묻는다. 나도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지만, 회사 자체가 소규모라 열악하므로 중국인의 신뢰를 얻을 수가 없다. 고 대답했다.
나 역시 한 사장이 믿음직스럽지 않다. 처음엔 대단한 발명이라도 한 것 같았는데, 한국 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거울로 인체를 꿰뚫어 본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걸 믿고 어떻게 몸을 맡기겠니? 병원이 더 신뢰할 수 있잖니?” 엄마의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세주처럼 박 사장이 찾아왔다. 박 사장은 한국 아빠의 소개를 받고 왔다. 아빠가 소개한 사람이니 인간성은 믿을 수 있겠다.
박 사장은 일찍이 공직에 있다가 퇴직하고 지금은 회사원이다.
특수 페인트를 개발한 회사 직원인데, 이 페인트는 전봇대에 칠해두면 광고지를 붙일 수 없게 된단다. 전봇대에 지저분하게 붙어 있는 광고지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더 붙일 수 없으니 깨끗하게 된다고 한다.
아빠는 나의 사업이 어떤지? 생활은 어떤지? 전화로 물어 온다. 친아버지보다 더 관심이 많다.
박 사장은 아빠랑 같이 만나 직접 페인트를 칠해 보자고 제안해 온다. 날을 잡아 아빠와 같이 만나기로 했다. 한 사장과의 일에 진전이 없으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한 사장에게는 대구 엄마 집에 간다고 말해놓고 박 사장과 아빠를 만나러 갔다.
첫인상이 좋다. 키도 크고 멋있게 생겼고, 젊은 분이다. 아빠랑은 오랫동안 문인 동아리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준비한 페인트로 전봇대에 실험해 봤더니 말대로 광고지가 붙지 않는다. 또 회색의 전봇대가 다양한 색깔로 칠해지니 거리 미관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사업은 개인 회사끼리 합작해서는 안 되고, 정부 차원에서 시행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단체장에게 이를 선전해야 할 것 아닌가?
박 사장은 선전 팜플랫을 가지고 중국에 직접 들어가 보라고 한다.
이건 중국이나 한국 모두 그렇겠지만, 인맥이 없고는 시청 문 앞에서 거절당하기 일쑤다.
중국 아빠한테 전화해서 공무원 중 아는 사람이 없느냐고 문의했더니 뜻밖에도 아빠의 고등학교 동창 중에‘염성시장’이 있다고 했고, 전화해서 부탁해 보겠다고 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한 사장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사무실에 와서도 페인트에 대한 생각으로 하루를 연다.
‘일단 공무원을 움직여야 한다. 특히 고위직 공무원을….’
염성 시는 작은 시지만 그래도 강소성에서는 알아주는 도시다.
남경보다는 작을지라도 시작이 반이라고 이곳에서 출발해도 중국 전 지역으로 져나갈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건 돈방석에 앉는 것 아닌가!
여기는 중국 아버지한테 부탁했으니 길이 보인다. 그렇다고 거기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다. 그다음으로 남경시를 생각한다. 만만한 S 교수에게 전화해서 남경시장과의 조우를 부탁한다.
남경시장은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소프트볼로 시의 명예를 높였으니 당연히 나를 신뢰할 것이라 믿는다.
S 교수가 시장에게 부탁했다는 말을 듣고, 끊임없이 광고물을 이메일로 보낸다. 전화로도 도와달라고 부탁했더니 생각해보겠단다.
중국에서 생각해보겠다는 말은 거절의 의미다. 체면상 거절을 못 할 때 핑계 대는 말이다.
어느 사회나 사업장에는 로비가 따르고, 리베이트가 끼어들기 마련이다. 특히 중국은 그 상태가 매우 심하다. 그 시작은 말단공무원이다. 간단한 거류증 하나 발급받는데도 웃돈을 주어야 빨리 처리해 준다.
시장 개방 이후 돈의 매력을 체험한 중국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양심을 팔고 있다.
이를 알고 있기에 S 교수에게도 적정량의 로비 자금을 주고 부탁해야 한다. 그분도 윗선에 로비해야 부탁할 수 있으니까!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얽기 설기 얽혀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
이런 일을 박 사장과는 의논하기 어렵다. 박 사장은 공무원 출신이라 매사에 빈틈이 없다. 신뢰는 가지만, 융통성이 없어 답답하기도 하다.
내가 우선 거래를 터놓은 뒤에 로비 자금에 대해 논해야 할 것이다. 이건 전적으로 나의 능력에 달렸다.
여름날 파리 떼 몰리듯 중국 시장을 노리는 한국 사장족들이 모여든다. 나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는지 하루에도 한두 건 전화가 오고, 직접 찾아와 만나자는 제의도 한다.
어떤 사장은 화장품 샘플을 가져와 중국에 팔아보란다. 지금 중국은 한국 화장품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지만, 이름 없는 메이커는 선호하지 않는다. 유명 메이커는 이미 백화점이나 마트를 통해서 들어가 있으므로 이건 아니다 싶다. 그러나 야박하게 거절할 수 없어
“샘플이나 놓고 가세요. 알아볼게요.”라며 돌려보낸다.
또 어떤 사장은 마사지용 팩을 만드는 기계를 들고 와서 중국과 교류하면 좋겠단다. 이 기게는 내가 쓸 수 없어 한국 엄마에게 보내서 실험해 보라고 했다.
그 후 한국 엄마는
“핑핑! 내가 실험해 본 결과 이 기계로 팩은 만들 수는 있는데, 이렇게 힘들게 만들 필요가 있겠니? 시중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잖아. 이건 비전이 없어.”
나도 엄마 말에 동의한다. 저렴한 가격에 각종 팩을 살 수 있는데 굳이 기계까지 사서 우유랑 재료 사서 넣고 팩을 만들어 쓰려는 사람이 있겠나? 싶다. 이분에게도 알아보겠다며 얼버무렸다.
또 어떤 사장은 옥이 든 헤어드라이어라며 손에 들기도 묵직한 걸 가져와, 옥이 들어있어 인체에 유용하단다. 이게 가격이 만만찮다. 시중 가격보다 2배나 비싸다. 시장성이 의심된다.
여기저기서 손짓하는 곳은 많은데, 영양가는 없다. 수입 없이 어영부영 지낸 지가 일 년이 다 됐다.
한 사장도 이젠 지치는 모양이다. 수입 없이 사무실 임대료나 관리비 지출도 버거운 눈치다. 이렇게 둘 사이도 멀어져갔다.
그래도 박 사장의 페인트는 추진해 보려 한다.
‘차라리 여행사에 몸담고 있었으면 골프 관광이나 야구 교류전은 쉽게 추진할 수 있었을 텐데….
지출만 있고, 수입이 없으니 돈 한 푼 쓰는데도 손이 오그라든다
‘여행사에서 나온 게 잘못이었나?’라고 때늦은 후회를 해 본다.
지금은 수입 없이 매달 55만 원이 지출된다. 여기다 식비 교통비를 합하면 100만 원은 기본으로 있어야 한다.
그간 벌어놓은 돈을 곶감 빼먹듯 다 까먹게 되면 어떡하나? 불안하다.
그래도 나에게는 희망이 있다. 아미르가 내 곁에 있지 않나?
이번에 미국에서 좋은 연구 성과를 내면, 그 실적을 바탕으로 남경대학에 교수 자리를 알아볼 생각이다.
박 사장의 페인트 일과 같이 겸하면 괜찮을 것 같다. 괜히 욕심스럽게 이것저것 손대기보다 한길로 나가는 게 훨씬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
희망을 가득 싣고 물보라가 되어 밀려오던 한 중 무역의 꿈이 서서히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다. 바람 빠진 풍선 꼴이 됐다. 현실을 너무 모르고, 무모하게 덤벼들었다는 생각이다.
중국 고사에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성어가 있다.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뜻으로 자기 힘은 생각하지 못하고 강자에게 함부로 덤빈다는 말이다.
몇 년 동안 사마귀가 되어 거대한 수레바퀴의 중국을 점령하려 했다.
나 혼자의 힘으로 한중 교류를 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수일 내로 남경대 S 교수를 직접 찾아봐야겠다.
두 어깨에 페인트 무역과 아미르의 교수 자리를 메고 남경으로 향한다. 남경은 나에게는 제2의 고향이다. 친구도 많이 있고, 나를 아끼는 교수님도 많다. 특히 S 교수님은 나의 든든한 지지자다.
한국에서 준비한 홍삼 세트와 사모님을 위해 한국산 일류 화장품 1세트를 선물로 가져갔다.
연구실로 찾아갔더니 S 교수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사업은 잘 되고 있냐? 자상하게 물으신다. 그동안의 고생이 생각나 갑자기 울컥 서러움이 솟는다.
이 모습을 본 교수님은 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무슨 일이든 도와주겠다고 하신다.
차 한 모금을 마신 후 마음을 가다듬고 아미르 이야기부터 꺼낸다. 아주 똑똑한 러시아 청년을 사귀게 됐고, 장래를 약속했다고 운을 뗀다.
아미르의 장래성과 중국 정부에 끼칠 영향에 대해 차분히 얘기한다. 중국이 안고 있는 맑은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알고 있는 아미르의 가치에 대해 성심껏 홍보한다.
그다음으로 페인트에 대해 도움을 청한다. 이 문제는 남경시장을 움직여야 하는 문제라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잘만 되면 교수님께도 이익을 배분하려 한다.
두 가지 이야기를 듣고 난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핑핑, 그동안 많은 일이 진행됐구나! 어린 나이에 많은 경험을 했네.”
“아미르의 교수 자리는 내가 직접 아미르에게 연구문제에 대해 의논해 보고 교수 자리에 추천해야 하거든, 한번 데려오렴.”
나는 고맙다고 대답하고 미국에서 돌아오는 대로 찾아뵙겠다고 했다.
페인트 문제는 하루속히 시장에게 부탁해 보겠다고 했다.
S 교수는 아미르의 석사, 박사, 논문과 지금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연구 실적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돌아오는 대로 중국으로 한번 데려와야 한다고 못을 박는다. 직접 만나보고 면접 겸 실력 테스트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이번 중국 방문을 시작으로 아미르 일과 페인트 일이 잘 됐으면 좋겠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아미르에게 이 메일로 자세한 설명을 했다. 또 영상통화로 하루 속히 돌아올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핑핑!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지. 연구가 거의 끝나고 있어. 담 주에는 한국으로 갈게.”
모든 일에 날개가 돋친 듯, 순풍에 돛을 단 듯, 나의 인생 항로에 탄력이 붙는다. 그동안 고생했던 일이 봄눈 녹듯 사라진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았는가? 힘든 일을 겪었으니, 이제 좋은 일만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꼭 1년 만에 아미르가 돌아왔다. 연구 실적도 가져왔다고 한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는 질문에 아주 잘 지냈다고 답한다.
다행이다. 아미르의 중국 비자가 나오는 대로 중국에 들어가기로 했다.
아미르는 중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까? 만약에 싫어한다면 큰일이다.
이건 내 기우에 불과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아미르의 반응은 아주 좋다.
1년 만에 아미르가 돌아왔으니, 그 간의 설움을 딛고 다시 도약해야 한다. 곁에 든든한 조력자가 있으니 행복에 젖는다. 보랏빛 꿈은 날개를 활짝 펴고 중국으로 날아간다.
아미르는 남경대학의 교수가 되고, 나는 자유롭게 한중 교류를 한다. 우리 두 사람의 언어능력도 대단하다. 한국어, 중국어, 영어 능력까지 합치면 이 세상에서 못할 것이 없다. 몇 달 후 신학기가 시작되는 9월까지 답을 준다고 했으니 믿어볼 수밖에….
S 교수에게 최대한 빨리 추진하라 부탁한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자금을 모두 쓴다 해도 이 일만은 꼭 성사시키고 싶다. 그래야만 결혼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소식이 연이어 밤송이 떨어지듯 툭~ 떨어진다. 거처할 집이 굴러 들어온 것이다. 거처할 집을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이 일이 해결됐으니, 한가지 짐은 덜게 됐다.
평소 나를 아끼던 H 교수가 아프리카 쪽으로 교환교수로 가게 됐는데, 3년간 자신의 집을 맡아달라고 한다. 그 교수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정원이 꽤 넓은 단독 주택이었다. 수목과 화초가 잘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에 부러워했다.
3년 동안 세를 놓기도 그렇고, 수목과 화초관리도 문제가 있어 나에게 맡긴다고 했다. 어제 전화로 그 제안을 듣고 즉시 응답했다.
“핑핑! 너는 수목과 화초관리만 잘 하면 돼.”
“방 2개와 거실, 주방. 화장실 1개를 사용하렴. 열쇠를 너에게 맡길게. 곧 중국에 온다고 했지?”
교수님은 방이 3개인데, 방 하나에 짐을 모아두고 나에게 방 2개를 쓰라고 했다.
우리의 신혼집도 생기게 됐으니 이런 복이 어디 있겠나?
한국 엄마 따라 교회에 갔고, 또 언니가 다니는 교회 청년부에 가서 새 친구로 소개하고 환영도 받았다. 여름 방학 때는 교회 수련회 참석차 남이섬에도 갔다.
그 이후 구미에서는 주일날 점심 해결을 위해 교회에 나갔다. 그때 목사님이 기도법을 가르쳐 주셨고, 또 교회 홍보지에 내가 한국에 와서 예수를 믿게 된 동기를 글로 써서 발표했다.
이 글을 읽은 교인들이 핑핑이 누구냐고 묻는다.
엄마는 대구에 갈 때마다 성경 이야기를 해 주신다. 특히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다. 외국 생활이 어려울 때는 기도하면 용기가 생긴다고도 했다.
나는 제대로 된 기도는 못 했지만, 어려울 땐 하나님을 불러 어려움에 부닥친 나를 도와달라고 했다. 엄마는 성경 말씀의 한 부분에 줄을 긋고, 나에게 이 구절을 묵상하라 했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이 말씀이 내게 와닿았다.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을 불렀으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이런 복을 받았나? 아니면 이렇게 한꺼번에 복이 굴러들어올 리가 없잖아!
특히 남경대학과 H 교수님 집은 위치가 아주 가까워 걸어서도 출근할 수 있겠다. 아직 차를 구입할 형편이 못 되는 줄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집을 주신 것일 거야. 모든 일이 이렇게 맞아떨어지기가 쉬운 게 아니다.
아미르가 때맞춰 돌아왔고, 교수 자리도 희망이 보인다. 거기다 집까지 얻었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랴!
중국 비자를 받아들고 아미르와 중국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아미르는 각종 서류 준비를 완벽히 하려고 컴퓨터에 앉아있다.
남경대학에 가서 S 교수를 만나고, H 교수님 댁에 가서 집 열쇠랑 집 관리에 대한 주의점을 들어야 한다. 물론 H 교수님의 선물도 준비할 것이다.
그 일을 마치고, 난주에 계시는 부모님을 만나러 갈 예정이다. 부모님께 드릴 선물도 아미르의 이름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제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또 면접 때 입을 아미르의 양복과 남방셔츠, 구두도 사야 한다.
그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두었기 망정이지 돈이 없었으면 눈앞에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중국행은 많은 의미가 있다. 아미르의 일이 첫 번째고, 그다음이 나의 사업이다. 세 번째는 부모님께 아미르를 보이고 결혼 승낙을 받아내는 일이다. 외국인이라 부모님이 선뜻 허락하실지도 의문점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염성 시장을 만나 페인트 일도 의논해야 한다. 남경시장은 일단 아미르 일이 성사되고 나면 추진할 예정이다.
또 한국 최 선생(C교수)이 중국 가는 나에게 부탁한 일이 있다.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잘해 준 것을 생각하면 도움이 돼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번 중국행 때 최 선생 딸이 잘 있는지 살펴보라는 부탁이다. 중국 공산당 간부 샤오밍에게 최 선생은 딸을 맡겼고, 샤오밍은 최 선생에게 아들의 한국 유학 생활을 도와달라고 했다.
드디어 아미르를 대동하고 중국 남경을 향해 날개를 편다. 아미르도 긴장되는 모양이다. 중국은 처음이란다.
서로 손을 마주 잡으며 이제 우리의 희망찬 미래가 다가오고 있으니, 좋은 생각만 하자고 약속한다.
아미르는 남경에서 S 교수님을 만나고, 난주 부모님을 만나고 나면 다시 우리의 보금자리인 남경에 머물면서 남경대학의 S 교수님과 긴밀히 연락하며 신학기에 교수 임명이 이루어지길 기다려야 한다.
아미르는 시간을 내서 중국어를 공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남경에는 중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이 많이 있으니 그건 쉬울 것이다. 아미르는 총명하므로 중국어도 쉽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남경은 지척이라 순식간에 남경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우리의 보금자리가 될 H 교수님 댁으로 갔다. 마침 교수님은 출발 준비를 하고 계셨다. 나와 아미르가 남은 짐을 옮기는 데 도우며 친분을 쌓아갔다.
꼭 필요한 짐만 케리어에 담고, 남은 짐은 방 한 칸에 정리해 두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김과 건강식품 세트를 선물로 내놓았다.
정원의 수목과 화초에 대해 주의 사항을 듣고 아미르는 메모해 둔다.
“집을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을 잘 관리할게요. 아프리카에서 건강 잘 챙기시고 돌아오세요.”
정중하게 인사드렸다.
내일 아침 출발할 때 아미르와 나도 짐을 들고 공항으로 나갈 예정이다.
아침에 아미르에게 목욕을 시키고 한국에서 준비한 새 양복을 입힌다. 하얀 피부에 푸른 눈동자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양인이 볼 때, 서양인의 모습은 좀 더 세련돼 보이고, 지적으로 보인다. 물론 나도 그 점에 아미르와 가까워진 것 같다.
교수님과 시간 약속을 하고 남경대학으로 향한다. 묵직한 서류 가방을 들고 아미르와 내가 S 교수님의 연구실에 도착한 시간은 점심때가 다 돼서였다.
첫인상에서 서로가 통하는 것 같은 눈치다. 먼저 학문적인 분야의 이야기가 오간다. 영어가 많이 섞이고 전공 분야라 내가 알아듣기는 불가능하다.
교수님의 표정으로 봐서 아미르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학문적으론 통과된 것 같다.
일상적인 이야기로 돌아와 나에게 중국 말로 말한다.
“핑핑! 꽤 괜찮은 청년이야. 내가 적극적으로 힘써 줄게. 마침 외국인 강사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상황에서 아미르의 등장은 고무적이야. 강의도 영어로 진행한다고 하네.”
휴우~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미르는 중국 말을 모르니 교수님과 나와의 대화는 내가 통역하지 않는 한 알아듣지 못한다.
“핑핑! 결혼 약속도 했다고 했나?”
“네! 교수님, 이번 일, 꼭 성사되도록 도와주세요. 두고두고 갚을게요.”
세 사람은 점심으로 고급 식당을 찾았다. 이건 기본이다. 이 교수님께는 무리하더라도 대접을 잘 해야 한다.
식사 중 대화는 영어, 중국어, 한국어가 방안에 떠돈다. 나는 한국어로 아미르에게
“일이 잘 되고 있으니 긴장 풀고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에 관해 얘기해요.”
“교수님 칭찬도 좀 하고, 점수 따는데 적극성을 보여봐요.”라고 했더니 아미르도 알았다고 한다.
점심을 마치고 모처럼 우리 두 사람은 데이트를 즐긴다. 이미르가 중국과 가까워지도록 최대한 도울 예정이다.
「손문」 유적지에 가보고, 시장에도 가본다. 손문의 신해혁명 발상지가 바로 남경이었음을 말하고, 남경은 북경 다음의 대도시라 잘만하면 이곳에서 남부럽잖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희망을 준다.
이튿날 고향 난주로 향한다. 부모님께는 미리 얘기해 뒀다. 아래 동생 둘이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형편이니 나의 결혼은 웬만하면 승낙할 것이다. 러시아인인 것이 걸리기는 하지만….
지난번 한국인 사장 한 분이 나를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의 며느리로 삼겠다고 아주 좋은 조건을 내건 일이 있었다.
좋은 아파트에 외제 승용차에, 매달 생활비 제공에, 파격적인 조건을 내 세웠다. 마음은 이미 아미르에게 가 있었지만 거절할 수 없어 초대에 응했다. 초대된 곳은 광주광역시의 어느 호화로운 아파트였다. 진수성찬이 차려지고 고급 화장품이랑 액세서리 세트를 선물로 내놓았다.
엄청 부담스럽다. 그래도 한 가닥 기대감이 스멀거린다. 식사자리에 주인공인 아들이 등장한다. 사장인 아버지가 나를 소개한다. 그리고 아들의 소개도 아버지가 한다.
아들이 직접 나서지 못하고 수줍어하는 모습이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일어선 모습에서 한가지 답을 얻는다.
키가 작다. 오히려 나보다 더 작다. 다음으론 용기가 없고 남자답지 못하다. 부모에게 의존하는 형이다. 내 마음속에는 이미 결론이 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부족한 부분을 물질에 의존해 번듯한 며느리를 얻고 싶은 것이었다.
이때 중국 아버지께 한국에 신랑감 자리가 있다는 것을 대충 말했더니, 아버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셨다. 그렇담 아버지는 외국인에 대해 편견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마 아미르도 쉽게 승낙할 것이야.’
몇 년 만에 찾은 고향 난주는 그대로 묵묵히 거기 있었다. 어린 시절에 고향을 떠나 떠돌이 생활은 했지만, 고향은 항상 마음속에 무게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도착시각을 미리 알렸기에 많은 가족이 모여있다. 할머니까지 오셔서 맏손녀의 신랑감을 맞이하신다. 동생 5명과 동생 남편 둘, 조카 둘 그리고 두 분 삼촌 가족들, 또 서안에 사는 6촌 오빠 두 명. 이렇게 한눈에 넣기도 힘든 숫자의 가족이 환영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예상 못 한 광경에 아미르는 어리둥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미르는 겨우 한다는 소리가 “시에 시에(감사합니다)”다.
몇마디 할 수 있는 중국어 중 하나다. 가까스로 친척들을 진정시키고 방으로 들어가서 부모님을 앉게 하고 아미르에게 인사를 시킨다.
부모님의 표정은 좀 생소한 모습의 외국인이지만 받아들이는 듯하다.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막힌 사람은 아니니까, 글로벌 시대에 맞게 사고도 발전한 모양이다.
호기심 가득한 친척들 앞에 내가 당당히 선다. 그리고 아미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이름은 아미르,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의 석사 출신, 한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미국 주립대학에서 연구 프로젝트 성공.
가족은 부모님과 여동생 1명, 아버지는 엔지니어, 어머니는 중등학교 음악 교사, 동생은 대학생.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아미르의 신상에 관해 설명했다. 조용히 호기심 어린 눈동자만 굴리던 친척들의 입에선 탄성이 터진다.
아~! 그렇구나!
그다음엔 아미르가 가진 최고의 카드를 제시한다. 좀 뜸을 들이고, 고개를 한 바퀴 돌린 후.
“아미르는 물 정화 분야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유했어요. 그리고 환경문제에 관한 연구도 계속 중이에요. 남경대학에서 교수로 채용될 듯해요. 어제 이력서랑 모든 서류를 제출했어요.”
여기서 친척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몇 명이 박수하니 청중이 크게 박수하며 환영한다. 집안은 축제 분위기다.
양을 잡고, 돼지를 잡고, 이웃 사람들까지 모이고, 잔칫집같이 떠들썩하다. 한국이나 러시아에선 이런 친척 간의 교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란다.
중국 특히 내 고향 난주에는 아직도 대가족 문화가 살아있다.
명절이나 결혼식 때는 먼 친척까지 모두 모여 몇 날 며칠 동안 잔치한다. 특히 우리 집은 공장 건물 바로 앞에 단독 주택이 붙어 있다. 그러니 공장 마당과 주택 마당이 어깨를 맞대고 있어 넓은 공간이 있다.
아버지는 일찍이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부동산에 손을 대서 적잖은 돈을 벌었다. 그때 마련한 집이다.
공장에서는 화장지와 장갑 양말 등의 잡화를 생산하고 있다. 작은 공장이지만 생활비는 넉넉히 벌고 있다.
이곳에서 명절 파티가 열리고 결혼식이 열린다. 동생 2명도 우리 집 넓은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오늘은 마치 나의 결혼식이라도 하는 듯하다.
아미르도 분위기는 생소하지만, 자신이 환영받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으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나도 하루속히 중국어를 배워야겠어. 중국은 인정이 많은 나라야.”
라며 감동한다.
며칠을 그렇게 잔치 분위기 속에서 보내고 아미르만 남경으로 돌려보냈다.
S 교수와 자주 연락하며 임용 상황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룻밤 더 엄마 곁에서 자고 창주로 가서 샤오밍을 만나야 한다. 최 선생의 간곡한 부탁도 있고, 나도 샤오밍을 만나고 싶다.
샤오밍에게 전화했더니 목소리에 힘이 없다. 집에 있으니 집으로 찾아오란다.
샤오밍을 본 순간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통통하던 얼굴이 깡 말라 다른 사람 같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대수술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무슨 수술이냐는 물음에
“간암이래! 간의 절반을 떼어 내고, 항암치료 중이야!”
샤오밍을 안으며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설움에 젖어 한 참 소리 내어 울었다. 한국에는 의술이 발달해 암 치료도 잘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이분을 한국으로 데려가 치료받게 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어렵다.
한참 숨 고르기를 한 후 샤오밍은 조용히 입을 연다.
“최 선생 딸 문젠데, 핑핑에게 부탁하고 싶어.”
나는 샤오밍에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얘기하라고 주문한다. 표정으로 봐서는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
이야기의 내용은 처음에 양가에서 자녀를 교환하여 유학시키자고 했을 때는 좋은 점만 생각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별문제가 없었다. 샤오밍 딸과도 자매처럼 잘 지냈다. 최 선생 딸도 열심히 중국어를 배우며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문제는 최 선생이 둘째인 아들도 샤오밍 집으로 보낸 것이다. 거절할 시간도 없이 느닷없이 아들을 보내겠다고 통보해 왔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최 선생의 아들은 중국어를 못한다. 또 사춘기에 접어든 남자아이와 한집안에서 생활하려니 샤오밍의 딸과 사사건건 부딪치게 됐다. 화장실 사용이나, 옷차림 등 신경 쓰이는 게 한둘이 아니다. 샤오밍 입장에선 딸이 불편하니 자신도 속이 상한다. 음식 제공도 샤오밍이 해야 할 일이고, 학교 수업 준비도 도와야 한다.
최 선생 아들은 공부는 뒷전이고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편이다.
이런 상황을 전화로 알리면 오해를 살까 봐 속앓이만 했다고 한다. 이 속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아들을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옮기고 최 선생에게는 그동안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고 도움을 끊었다.
최 선생은 눈치 없이 여전히 두 아이를 맡기고 있다. 샤오밍은 스트레스가 차올라 병이 난 것이라 한다.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최 선생에게 잘 이야기할게요. 서로 오해하지 않도록 잘 해 볼게요.”
이 일은 지체할 수 없어 오늘 당장 전화하기로 마음먹는다.
전화를 받은 최 선생은 그러지 않아도 궁금하던 터라 반가운 목소리다.
“선생님! 창주에 와 보니, 샤오밍이 많이 아파요. 암 수술을 하고 치료 중인데 아주 힘들어요.”라고 오해사지 않게 조심조심 말한다.
“핑핑! 그랬구나! 정말 미안하네! 우리 애들은 당장 옮기도록 할게. 샤오밍에게는 미안하다고 전해줘.”
“한번 찾아가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고맙다는 인사를 할게.”
이렇게 나의 중재로 샤오밍과 최 선생 관계는 오해 없이 잘 해결됐다.
한국 사람과 중국사람의 정서 차이인가? 문화 차이인가? 아님, 남녀 성 차이인가?
최 선생이 남매를 샤오밍 가정에 맡긴 것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 가정 나름의 패턴이 있는데, 남의 식구 두 명이 같이 산다는 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일 것이다.
샤오밍은 처음부터 아들을 최 선생에게 부탁했지만, 생활은 기숙사에서 하도록 했다. 남남끼리는 최소한의 거리 두기는 해야 할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중국에서 구하지 못하는 항암치료 약을 구해볼 생각이다. 한국에서는 암 치료 기술이 우수해서 완치율이 높다고 하니 무슨 방법이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픈 사람을 뒤로하고 나오는데, 발걸음이 천근이다.
한국에 온 첫해 한국의 Y 중학교와 창주 중학교를 자매로 연결해서 교류를 추진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때 인연이 됐던 최 선생과 샤오밍이 자녀를 교환하며 가깝게 지냈다. 이 사이에도 내가 많은 역할을 했다. 이 일로 샤오밍과도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두 사람 사이가 처음처럼 회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 중 간에 이런 유의 친분 쌓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 선생도 샤오밍의 사정을 알았으니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다음 코스인 염성시로 향한다. 이 시의 시장님이 아버지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니 친척 아저씨를 만나러 가는 듯 발걸음이 가볍다.
염성시는 강소성에서 큰 도시 중 하나다. 남경과 같은 성이라 가깝기도 하고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라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 있다. 처음 찾은 곳이지만 뭔가 가까운 느낌이 든다.
시 청사 입구에서 이름을 대고 시장님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곧바로 들어오란다.
시장실에서 만난 시장님의 인상은 푸근하다. 이웃집 아저씨 같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고 하시며 반갑게 맞이하신다.
이렇게 장성한 친구 딸을 만나서 기쁜 날이라며 식당으로 안내한다. 고급 식당에서 조용히 얘기하자며 작은 방 하나를 예약해 두셨다.
가져간 선전물을 내놓으며 시장님께 차분하게 페인트에 관해 설명한다.
시장님은 페인트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고,
“핑핑! 우리 사업 파터너가 될까?”
만면에 웃음을 띠며 이렇게 어린 나이에 사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청년은 처음 봤단다. 친구가 딸을 잘 길렀다고 아버지를 칭찬한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몸 둘 바를 몰라 머뭇거렸더니,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우리 잘 해보자. 난 말이야. 청년 사업가를 모집 중이었거든.”
핑핑 같은 청년이 많으면 중국은 금방 발전할 것이라고 한다. 이어서 시장님은 염성시가 가진 조건을 말한다.
첫째로 염성시는 넓은 평원이 있고, 물이 많은 도시라 공업 하기에 입지 조건이 좋아.
둘째로 한국과는 지척에 있어 바다만 건너면 곧바로 도착할 수 있으니 물자 운반은 선박을 이용하면 비용이 저렴하지.
그래서 내가 핑핑에게 제안하는데, 한국의 사장들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하니 아주 조건이 좋아.
“만약 한국 기업이 염성시로 들어와 사업한다면 여러 가지 편의를 줄 거야. 공장 용지나 허가 문제, 세관 문제를 쉽게 해결해 줄 수 있어. 또 소개한 너에겐 적지 않은 배당이 가게 될 것이야.”
“한국으로 돌아가거든 중국 진출을 꿈꾸고 있는 사업체를 소개하렴. 물론 페인트도 생각해볼게.”
뭐가 뭔지 머리가 어지럽다. 내가 어찌 큰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게 아닐까?
“핑핑, 착수금으로 일만 위안을 네 계좌에 넣어 둘게. 계좌 번호 적어봐.”
나를 인정하고 돈까지 준다니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이제 페인트 일과 한국 기업을 유치하는 일도 병행해야 할 것 같다.
‘이게 또 하나의 기횐가?’
점점 어깨가 무거워진다. 나의 역량이 미칠 수 있을까? 자신감과 불안감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한다.
‘일단 해 보자. 할 수 있다. 어려우면 하나님을 부르자.’
두 손에 주먹을 불끈 쥐어 본다.
남경으로 돌아오니 아미르가 정원수에 물을 주고 있다. 역시! 아미르는 무슨 일이든 철저히 처리하니 믿고 맡길 수 있다.
“핑핑! 내일부터 중국어를 배우기로 했어. 남경대학 어학당에 등록했거든. 중국어도 재미있어. 한국어와 비슷해.”
‘아이구! 하나님! 나에게 어찌 이리 한꺼번에 많은 것을 주십니까?’
난 이제 중국에 더 머무를 수 없다. 속히 한국으로 돌아가 사업 구상을 해야 한다. 내 주위에서 나를 흘끔거리던 사장족들을 점검해야 한다.
그들 중에 염성시로 진입할 사업체가 있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아미르에게는 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마트를 소개해 주는 것밖에는 내가 할 일이 없다. 무슨 일이든 철저하게 잘 처리하고 있으니까.
이제 내 인생의 황금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인가!
다시 바람 빠진 풍선에 바람이 충전된다. 실패를 거듭할수록 더 굳건해지는 게 아니겠나?
한국에 돌아와서는 중국 진출 기업을 찾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내가 알고 있는 인맥은 모두 동원해야 한다. 그동안 골프 관광을 통해서 유명 정치인이랑 기업인을 알고 있다. 이들에게 염성시의 조건을 홍보하고 진출하도록 돕는 일이다.
첫째로 물망에 오른 기업은 대구에서 섬유 공장을 하는 조 사장이다. 그도 나와 함께 골프 관광을 한 후 알게 됐고, 특히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라 최 선생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를 만나려고 최 선생께 부탁해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분은 나에게 많은 호감을 느끼고 집안 아저씨처럼 대해 준다.
한 사람 더 지원군이 생겼다고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자금이 부족해 중국에 진출해 공장을 짓는 일은 못 하겠고, 자신의 제품을 중국에 팔아달란다. 또 자기 아들을 소개해 주면서 중국과의 무역에 도움을 달라고 부탁한다. 인맥은 넓히게 됐으나 염성시와는 초점이 맞지 않는다.
그렇담 좀 더 큰 회사를 공략해야 할 것 아닌가? 대 기업은 아는 사람이 없으니 정치인을 이용해 알아보려 시도한다. 골프 관광 때 받은 명함을 이용해 연락한다.
시장을 지낸 적이 있다는 이분은 대기업의 이사를 알고 있다고 한다.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했더니, 저녁 만찬 자리를 마련해 준다.
문제는 식대다. 최 선생이나 아빠의 소개로 만날 때는 신경 쓰지 않았던 일인데, 지금은 부탁하는 처지라 내가 부담해야 할 것 같다.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다. 음식값이 얼마나 나올까? 염성 시장님이 주신 돈이 공짜가 아니라는 걸 지금에야 깨닫는다. 중국에서 받은 돈은 한국에서는 몇 번 식삿값 밖에는 되지 않는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돈을 투자해 중국으로 가는 큰 사업인데 로비 자금도 그에 걸맞아야 하지 않겠나?
이제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며 투자하라고 하는 것은 접고, 한국 기업 스스로 나를 찾아 중국 진출의 발판으로 삼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저기 연락해서 좋은 조건으로 투자할 곳을 알선하겠으니 생각 좀 해 보라는 식으로 말을 흘렸다.
부지확보나 세금 등 제반 중국 진출에 필요한 서류 작성과 통역 등을 해 주겠다고 선전하고 다녔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하루에 한 건 정도로 연락이 왔다. 이런 만남은 내가 식사비 부담은 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필요로 나를 만나는 것이니 내가 갑이 되는 것이다.
중국 진출의 꿈을 안고 나를 찾은 사장들에게 공장 용지 문제를 설명한다. 위치와 가격, 건축비 등 다양하게 설명한다. 세관 문제도 도와야 할 큰 문제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열심히 설명했더니, 사장 한 분은
“만약 중국에 공장 건립 조건이 맞아서 성사된다면 몇 년까지 보장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는 말문이 막힌다.
몇 명의 사장은 나의 설명을 듣고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떠났다.
며칠 후 한 명의 사장이 나와 같이 염성시로 가자고 한다. 통역을 맡고 안내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분은 유통 분야에 진출하려 한다. 중국에 인기 상품을 생산할 공장을 짓고,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중국 전역에 판로를 넓히려고 계획하고 있다. 이 분야는 좀 생소하지만 일단 부딪쳐 보기로 하고 같이 떠나기로 했다. 염성 시장님과 만날 약속을 잡고, 비자 문제 등 내가 중간역할을 해서 떠나게 됐다.
시장님과는 인근 식당에서 만났다. 한국 사장은 자신의 사업을 설명하며 공장 용지는 기본이고, 전국 판로에도 도움을 달라고 한다.
여기서 염성 시장님의 생각과 이견을 보였다.
한국 사장은 판로 문제도 염성시에서 해결해 달라고 했고, 염성 시장은 자신은 전국적인 판로는 책임질 수 없으며 공장 용지나 염성시에 지급해야 할 세금 문제, 세관 문제밖에는 책임질 수 없다고 한다.
뭔가 삐꺽거리는 소리가 난다. 한 번에 성사될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이건 첫 만남부터 의견이 맞지 않으니, 이 일도 쉽지 않음을 느낀다.
한국 사장은 이곳에 온 김에 구경이나 하고 가잖다. 나도 그러마 하고 나서려는데
“핑핑! 아직 염성 시내 구경 못 했지? 차를 내줄 테니 구경하렴.”
비록 일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나에 대한 시장님의 배려가 고맙다.
시내를 한 바퀴 돈다. 기사가
“여기는 유럽풍 거리입니다.”라고 설명하며 화려하게 꾸며진 거리를 지난다.
염성시는 소금의 도시요, 물의 도시라고 할 만큼 호수가 많다. 특이한 것은 산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태리 베네치아를 본떠 만들었다는 유럽풍의 거리가 인상적이다. 연못에는 연꽃까지 띄워 놓았다. 큰 다리 위를 지나가는데, 다리 아래에는 보트가 다닌다.
다음으로는 이 도시의 특징인 소금 박물관으로 향한다. 이곳이 옛날에는 소금 생산지로 유명했음을 말하고 있다. 해염 역사문화구역을 지나는데, 지붕이 청기와나 유리 기와로 된 집이 있어 신기하다.
다음으로 염두 공원으로 향한다. 크기가 엄청 크다. 큰 호수를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으로 호수 가에는 관광객과 놀이를 즐기는 인근 주민들로 붐비고 있다. 넓은 공원 터엔 잔디와 꽃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맞이하고 있다.
한국 사장은 중국은 장가계를 다녀온 게 전부인데, 이곳도 장가계 못지않게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낸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중국과 조건이 맞는 사업을 가지고 오겠단다. 중국이 낯설지 않고 친근한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지만, 소득 없이 또 세월이 흐른다. 한국 사장들은 중국이라면 모든 게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이 또한 나처럼 유아적인 생각이다. 사업은 현실이며 먹고 먹히는 생존의 현장인 걸 아직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꼭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장들이 내 주위로 몰려오는 것 같다.
한껏 부풀었던 꿈도 이제 조금씩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남경대학에 전화를 넣는다.
“핑핑 일이 잘 될 것 같아. 처음엔 전임교수로 만족해야 할 것이야.”
“교수님 좋아요. 처음엔 그렇게 시작하는 것 아니겠어요.”
“이번 학기부터 수강 신청을 받으라고 할 거야. 연구 실적에 관한 서류는 통과됐는데, 아미르의 거류증이 좀 늦어지네, 이게 끝나면 전임으로 임명할 거야.”
“교수님 감사합니다. 한국 일 마무리 짓고 찾아뵐게요.”
가장 바라던 소망이 이루어졌으니 이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겠나?
아미르와 영상으로 통화해서 기쁜 소식을 알린다. 아미르도 이제 일이 잘 됐으니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 했다.
다시 박 사장을 만나 페인트에 대해 의논한다. 남경시에 샘플을 보낼 수 있도록 추진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S 교수가 남경시장에게 운을 떼 놓았다고 하기에 시장님 연락처를 알아두었다. 중국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서두르지 않는다. 한국 사람이 보기엔 좀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박 사장은 내가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찾아와서 부탁한다.
S 교수님은 아미르 일로 힘을 많이 썼다. 그래서 자꾸 조르기가 미안해서 내가 직접 부딪쳐 보기로 한다. 근무 시간을 피해서 점심시간쯤에 시장님께 직접 전화한다.
전화를 받은 시장님은 친절하게 답한다.
“핑핑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 페인트 사업도 S 교수의 설명을 들었어. 생각해 봤는데, 남경에 샘플을 가져와서 기술자가 직접 전봇대에 칠해 보면 좋겠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가 비자 나오는 대로 찾아가겠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중국에서 전화가 왔다. S 교수님이다.
그 목소리가 이상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분노에 찬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한다.
“핑핑! 이 일을 어쩌나! 넌 아미르에게 사기당했어.”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너, 아미르와 결혼한다고 했잖아? 이미 아미르는 결혼 한 사람이야!”
“오늘 거류증이 도착했기에 내가 찬찬히 살펴봤어. 분명히 작년에 결혼한 여자 이름이 적혀 있어. 아직 아미르에게 아는 체를 하지 않았으니 네가 속히 중국으로 와야 할 것 같다.”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나! 눈앞이 깜깜하고 머리가 어지러워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쩜 이럴 수가 있나? 지금까지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믿을 수가 없다. 뭔가 오해가 있을 것이다. 어제도 통화했는데, 냄새도 못 맡았다. 내가 감각이 둔해서인가? 너무 남을 잘 믿는 바보라서 그런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지. 환란 날에 하나님을 부르라고 했지.
엄마에게 전화한다. 아직 아미르의 일은 말하지 않는다.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다.
“엄마 나 이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원룸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았는데 어떻게 하죠?”
“엄마도 그 생각을 진작부터 했어. 여기서 수입이 없으면서 매달 100만 원을 지출해야 하는 널 보고 마음이 아팠어.”
엄마는 중국에 가서도 페인트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면서 생각 잘 했다고 한다. 특히 나의 취업 비자가 만기 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핑핑 모든 것 나에게 맡기렴. 기한이 안 돼도 방을 내놓으면 돼. 방세가 나가면 보증금을 받을 수 있어.”
“내가 내일 일찍 수원으로 갈게. 짐 정리랑 한국에서 처리할 것을 도와줄게.”
역시 엄마였다. 한국 일은 엄마한테 맡기면 된다. 한국에 온 지도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러니까 엄마와의 인연은 6년이 되는 셈이다.
막상 떠나려니 아쉬움이 남는다. 엄마와 헤어지는 것은 가슴 한구석에 아픔을 남긴다.
도깨비집같이 어지러운 집안에 엄마와 아빠가 도착했다. 작은 집 구석구석에 추억이 쌓이고 먼지까지 쌓여 있다.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엄마가 기지를 발휘한다.
‘핑핑! 꼭 필요한 것만 챙겨서 캐리어에 넣으렴. 그리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우리 집에 가져갈게. 다음에 부쳐줄 수도 있고, 네가 와서 가져갈 수도 있잖니? 그 나머지는 모두 버려야 한다.“
그동안 손때묻은 물건들을 바라본다. 그들에게도 이별을 고하게 됐구나! 어떤 것은 선물 받은 것이고, 또 어떤 것은 적잖은 돈을 지급하고 산 것이다. 그중에는 아미르와 같이 산 것도 있다.
내가 가져갈 캐리어에는 중요한 서류와 (석사학위증 등) 당장 필요한 속옷과 화장품을 챙겨 넣는다. 정신없는 나에게 엄마가 다그친다. 여권은 잘 넣었니? 그리고 비행기 표는 핸드백에 넣어야 해. 노트를 챙겨봐 중요한 메모가 있으면 가져가야 해.
엄마는 될 수 있으면 가볍고 중요한 것을 챙기라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경험의 축적은 중요한 것이다. 엄마는 이런 와중에도 일의 가닥을 잡는다.
두 번째로 중요한 물건이 엄마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엄마의 손에 뽑힌 물건은 큰 가방에 담긴다. 선택받지 못한 물건은 폐기물 처리 업체에 부탁해서 처리하면 된다고 한다.
가구며 이불, 책 등 그동안 많이도 모아두었다. 꼭 부엉이 집 같다. 엄마는 재빨리 주방으로 들어간다. 먹다 남은 음식물들이 붉은빛을 토해내고 있다. 더러는 썩은 냄새까지 풍기며 강하게 저항한다.
종량제 봉투를 사서 엄마가 씩씩하게 나선다. 정리정돈도 못 하고 음식을 썩혀버리는 딸을 탓하지 않고 그저 떠나는 딸이 안쓰럽다는 표정이다.
이런 와중에도 나의 건강을 생각해서 감자탕을 먹으러 가잖다. 생각해보니 어제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잠도 못 잔 상태에서 아침 일찍 엄마 아빠를 맞은 것이다.
“핑핑! 너 감자탕 제일 좋아하잖아. 두 그릇도 좋으니 실컷 먹어.”
가슴이 북받쳐 눈물이 난다.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얼굴을 만지고 태연함을 가장한다. 그래도 엄마 아빠가 있으니 조금은 안정된다.
‘에라!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고 하늘이 무너진 것도 아니잖아. 결혼하고도 남편의 배신으로 이혼할 수 있는데, 남자 친구의 배신은 아무것도 아니야.’
흔들리는 마음에 쐐기를 박는다. 내 성격은 부모님의 좋은 유전자를 받아 소탈하고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래도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단정 짓지 말자. 부모님의 강권으로 서류 상에만 결혼이 된 것일 수도 있잖아. 그렇담 이혼하는 방법도 있잖아.’
아미르와의 인연도 7년인데, 그 7년이 허공 속에 맴돈다.
원룸 보증금에서 밀린 방세, 그리고 관리비를 제한 돈은 엄마가 보관하기로 하고, 부동산에도 엄마가 가서 방세를 놓아 달라고 하면 된다.
7년 전 캐리어 두 개를 끌고 한국에 왔는데, 이젠 한 개의 캐리어와 그리움, 아쉬움을 끌고 남경행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솜털 같은 흰 구름에 보랏빛 꿈을 실었는데….
이제 패잔병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간다. 손은 빈손이고 가슴은 청양고추를 먹은 듯 아리다.
‘돌아가서 무엇부터 해야 하나?’
‘H 교수님이 빌려주신 우리의 보금자리로 느닷없이 찾아가야겠지?’
오만가지 생각이 실타래처럼 엉켜있다.
배신감! 불안감! 아직도 믿고 싶은 마음!
이 마음 저 마음이 쌈박질이라도 하는 듯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어찔어찔하다.
대문 앞에서 심호흡하고 대문을 연다. 내 잘못이 없는데 내가 위축될 필요가 없잖아! 용기를 내자.
집안이 쥐죽은 듯 조용하다. 수목은 때깔 좋은 잎을 반짝이고 있다. 그 간 복숭아 꽃과 벚꽃은 피었다 지고 장미랑 붓꽃, 배롱나무꽃이 피어 반긴다. 그동안 관리를 잘 한 모양이다.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썰렁한 바람이 분다. 가지런히 놓여 있어야 할 아미르의 구두가 없다. 거실을 둘러 보고 주방으로, 또 방 두 개의 문을 열어본다. 아무도 없다. 냄새조차 남기지 않았다.
‘중국을 이미 떠난 것인가?’
캐리어를 두고 남경대학으로 달려간다. 먼저 교수님을 만나야 할 것이다.
숨이 턱에 닿게 달려왔다. 한숨 돌리고 교수님의 연구실 문 앞에 선다. 마침 교수님은 거기 계셨다.
뻘겋게 상기된 내 얼굴을 보신 교수님은 따뜻한 차 한잔을 권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라고 한다.
“핑핑! 놀라지 말고 내 말 잘 들어. 우리 큰맘 먹고 이 일을 처리하자.”
이어서 교수님께서 서류 한 장을 보여주신다.
그 서류는 거류증이라고 중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신상에 관한 서류다. 한국의 주민등록등본과 비슷한 것이다.
윗 칸에는 아미르의 부모 이름이 적혀 있고, 아미르의 이름 아래쪽에는 부인의 이름이 적혀 있다. 괄호 안에는 결혼일도 적혀 있다. 작년 아미르가 미국으로 떠난다고 간 후 일주일 만이다.
‘그렇담 아미르는 작년에 미국으로 간 것이 아니고 곧장 러시아로 가서 결혼한 것이 된다.’
이런 배신이 어디 있나? 양심도 없는 몹시 나쁜 놈이다. 남녀가 사귀다가 헤어지는 일은 다반사인데, 이건 아니다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내가 싫었으면 작년에 이미 이별을 고하고 떠났어야지!
매일 동영상으로 사랑 고백도 하고, 연구 잘하고 있으니 성공하고 돌아가겠다는 말은 무엇이냐!
사랑이 식으면 헤어질 수는 있지만 이건 인간적인 배신이며 사기다. 한국에 있을 때 생활비는 마땅히 내가 댔고, 교수 자리 얻으려 로비한 자금도 모두 내가 댔다. 양복, 신발, 가방 등 내가 사 주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오만 정이 떨어진다. 한 가닥 미련도 휴짓조각이 됐다.
‘그럼 아미르는 어디 있나? 러시아로 떠났나?’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직 교수님이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거류증에 적힌 주소를 자세히 본다. 남경대 근처다.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적힌 주소지로 찾아가니 허름한 빌라가 나온다. 열 집 정도 사는 것 같다. 이웃 가게에서 조금 전에 이사 온 집을 물었더니,
“아! 신혼부부 집이요? 맨 꼭대기예요.”
뭐라고! 신혼부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이것들을 만나면 어떤 욕을 퍼부을까? 아님, 그 여자의 머리채라도 잡아채야 하나?
그 집 앞에서 두 주먹을 쥐어 본다. 이어 문을 두드린다. 대문을 열고 아미르가 목을 삐죽이 내민다.
“이 사기꾼아!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
밖이 시끄러우니 안에 있던 아미르 부인이 내다본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말을 주고받는 듯하다.
그래도 난 아미르의 입에서
‘핑핑! 미안해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어. 밖에 나가 있어 곧장 따라갈게. 내가 다 말할게.’
적어도 이런 말은 할 줄 알았다. 부인보다 나와 사귄 세월이 더 많았으니까 당연히 정은 아직도 내 쪽으로 기울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넌 뭐야 나가버려. 여긴 왜 왔어. 난 이 여자가 좋아 넌 필요 없어.”
자기 부인 들으라고 큰 소리로 미친 사람 쫓아내듯 한다.
“너 같은 머저리는 이제 필요 없어.”
악담이란 악담은 다 쏟아낸다.
“그럼 뭣 하러 날 따라 중국에 왔어. 이 사기꾼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고소할 거야!”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여긴 중국이야! 착각하지 마! 널 고소하겠어. 외국에서 감옥에 갇혀봐. 어떤 고통인지.”
나도 마음에도 없는 악담을 퍼붓고 그 집을 나왔다.
S 교수님을 다시 찾는다.
교수님은 나에게 큰맘 먹고 현명하게 이 일을 처리하자고 한다. 교수님이 하실 일은 교수 임용을 취소하고 중국에서 추방하도록 조처하는 것이란다.
“교수님 저는 그 벌로는 분을 풀 수 없어요. 반드시 감옥에 넣을 거예요.”
분한 마음에 어떤 벌을 내려 그에게 타격을 줄 수 있나? 밖엔 생각나지 않는다.
가까운 친구와 한국 엄마에게 전화했다.
친구는 그를 고소하란다. 사실혼이었고, 금전적 손해도 봤으니 죄는 충분하다고 한다. 사실혼 증명은 한국 엄마와 한국공대 학생 중에서 증명해 줄 사람을 찾으면 된다. 엄마는 이 말을 듣고
“사실혼 증명은 해 줄 수 있어. 내가 그간의 사연을 중국어와 한국어로 작성해서 이메일로 보내 줄게.”
엄마도 분하다며 무엇이든지 도울 수 있는 건 돕겠다고 한다. 내가 그래도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구나! 하고 스스로 위로한다.
제발 이 일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한 인간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할 수가 있나! 며칠 전까지도 영상통화 하며 애정을 확인하지 않았나!
그렇담 나와 통화할 때 이미 자신의 아내를 데려왔다는 것 아닌가? 나에게 솔직히 말하고 헤어졌으면 이렇게 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나를 따라 중국에 왔나? 얼마 전 일자리가 생겼다고 돌아오라니까 기꺼이 오지 않았나? 옷을 사 주고, 가방을 사 줄 때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었단 말이지?
그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한마디 변명도 없다. 내 가슴은 관솔 빠진 소나무의 가슴처럼 옹이가 군데군데 박힌다.
밤을 밝히며 울었더니 눈이 퉁퉁 부었다. 그래도 변명 한마디는 해야 인간이라는 이름을 달지….
한 번 만나 변명이라도 들어볼까? 아님, 그 여자를 만나볼까? 그 여자와는 대화할 수가 없지! 언어의 장벽이 두껍다. 아미르와도 서툰 한국말로 소통했으니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휴대폰을 들고 번호부 1번에 올라있는 아미르의 번호에 클릭하려다 그만둔다.
부질없는 일이다. 자존심 내려놓고 그에게 매달릴 수는 더욱 없다. 어제까지도 복수심에 불타 당장이라도 고소하려 펄펄 뛰었는데, 그 열정이 조금씩 식어간다.
법적으로도 아미르를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 국적이 틀리고 한국에서 벌어졌던 일이니. 중국 경찰이 조사하기도 힘들다.
엄마가 보내 준 사실혼 증명 메시지도 별 쓸모가 없게 됐다.
S 교수가 불러서 갔더니,
“핑핑!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처리해 보자.”
“돌이켜 생각해보면 결혼하기 전에 이 일이 터졌으니 망정이지 너와 결혼 후에 이 일이 일어났다면 어찌할 뻔했어?”
라고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나도 동감이다.
‘만약 결혼하고 애라도 낳은 후에 러시아 아내가 찾아왔다면!’
생각조차도 하기 싫다. 이만하기도 다행이다 싶다. 한국 엄마도 전화로 위로하며 교수님과 비슷하게 이야기한다.
“핑핑! 널 위해 기도할게. 하루속히 아미르를 잊고 새 출발 하자.”라고 한국 엄마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다음 날 S 교수님이 아미르에게 교수 임용 취소 통보를 했다고 알려 왔다. 또 중국 정부에서는 그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제 그도 중국을 떠나고 나는 혼자서 이별의 아픔을 치료해야 한다. 친구가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병이 난다고 하며 먹을 것을 해 왔다. 주위에서 위로하고 도와주니 나도 일어나야 할 것 같다. 나답게 씩씩하게 일어서 보자.
아침 일찍 일어나 공원주위를 조깅한다. 몇 바퀴를 뛰고 또 뛴다.
한숨 돌리려 공원 벤치에 앉는다. 좌우를 둘러 보니 가을이 살며시 앞발을 내밀고 있다. 녹색 잎사귀 속에 숨어있는 노란빛이 언뜻언뜻 고개를 내민다. 봄에 핑크빛 희망을 안겨줬던 벚꽃 나무도 이제 붉은 물감을 풀려고 한다. 머잖아 고운 단풍이 들 것 같다.
7년간을 뒤돌아본다. 파랑새의 꿈을 안고 한국을 향했던 그때는 20대의 푸른 인생이었다. 그간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배우면서 여기까지 왔다.
엄마 아빠 언니를 얻었고, 교수 부인이 되겠다던 꿈을 잃어버렸다. 이제 나를 돌아보며 차분하게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일어나자. 힘을 내자. 나쁜 일은 한바탕 꿈을 꾼 것으로 생각하자.’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집으로 향한다.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이곳은 내 나라 내 땅 아닌가? 꿇릴 게 뭐가 있겠나?
“핑핑! 일어났어?”
S 교수님의 전화다.
“오늘 남경 시내 고교 소프트볼 대회가 있어 너도 구경 오렴. 네가 달리던 운동장 아니니?”
그래! 난 운동장에서 힘을 얻었지? 후배들의 경기를 보러 가자. 거기서 힘을 얻자.
거울을 본지도 한참 지났다. 거울 앞에서 나를 본다. 아직도 풋풋한 젊음이 살아 숨 쉬는 30대 초반의 아가씨다.
한국에서 가져온 꽤 비싼 화장품으로 화장하고 엄마가 골라줬던 원피스를 입는다.
이렇게 입은 내 모습을 보면 나를 아는 사람들이 놀라겠지? 운동선수인 나는 항상 운동복 아니면 케주얼한 옷차림만 했다.
오늘은 최대한 우아한 자태를 뽐내리라. 하이힐은 싣고, 핸드백을 든다. 여기에 챙 넓은 모자까지….
나의 모교 선수가 출전한다. 손에 땀을 쥔다. 득점할 때마다 함성이 절로 나온다. 달리는 선수들 볼에 복사꽃이 핀다. 과거의 내가 뛰고 있다.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죽을 힘으로 달린다. 목소리 높여 팀원들을 격려한다.
와! 드디어 우리 팀이 이겼다. 감독 선생님이 달려와 나를 안아 준다.
주장 선수로서 아주 훌륭했어. 이번에도 우리 팀이 우승했어!
우승기를 흔들며 필드 안을 삥삥 돈다. 관중을 향해서 손을 놀이 흔든다.
“핑핑! 배고프지? 우리 밥 먹으러 가자.”
S 교수님이 나를 잡아끈다.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어. 얼굴색이 다시 살아났어. 오늘따라 화사한 모습이 보기 좋아.”
“내가 멋진 남자 한 명 소개해 줄까?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사람이 치유해야 해.”
아직은 남자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그래서 교수님께는 천천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핑핑! 이리 나오렴. 여기 카페야. 야구 경기장에 입고 나왔던 옷 입고 나와. 그리고 예쁜 구두도 신고, 핸드백 들고, 화장도 예쁘게 하고 나오렴.”
마음속에 짐작하는 바가 없진 않았지만, 짐짓 모르는 체하고 카페로 갔다.
교수님은 이미 도착해서 어느 청년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무리 눈치 없는 나지만 이쯤 되면 교수님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다.
나도 하는 일 없이 빈둥대자니 울컥울컥 치미는 분노를 어찌하지 못한다.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다.
청년이 일어서서 나에게 인사하며 교수님께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우리 함께 잘 해 봅시다. 한국에서 쌓은 경험으로 같이 사업해 봐요.”
“전 당분간 사업은 안 하려고요. 좀 쉬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큰 사업이 아니고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는 자신의 이름을‘왕 진명’이라 소개한다.
자신은 화장품 판매와 마사지샵을 운영하고 있다며 자신을 도와 달라고 한다. 사무실이 넓으니 한 공간을 막아서 핑핑의 사무실로 이용하면 되겠다고 한다.
단지 나는 화장품 사용법과 마사지 손님을 관리하면 된다고 한다. 화장품은 한국제품이 대부분이기에 핑핑이 한국 화장품을 취급해 봤으니 적임자란다.
생각해보니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직장도 없고 혼자서 빈둥대면 잡생각만 날 것이고 사무실에 나가 소일하면 되겠다는 생각이다.
이제 일자리가 생겼으니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한다. 제2의 고향인 남경은 나의 뼈가 굵은 곳이다. 초등 5학년에 와서 한국에 가기 전까지 살았으니 내가 태어난 고향보다 더 친근하다. 포근한 고향의 품에 안겨 중국인이 경영하는 가게로 간다.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아미르의 세련된 모습에 거품이 잔뜩 든 내 마음 때문이었다.
상대의 허상을 보지 못한 건 순전히 내 탓인 것 같다.
문화가 다르고 국적이 다른 외국인을 사귄다는 건 항상 복병이 노리고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한편의 마음 구석엔 으쓱대고 싶은 마음이 깔려있었을 것이다. 멋진 외국인과 결혼한 아가씨, 교수 부인, 한국에서 성공한 사업가.
이런 이름을 붙이고 나를 알고 있는 친지에게 뽐내고 싶었던 그 물거품이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은 안정을 되찾는다.
이 매장에서 하는 일은 젊은 여성들의 얼굴 마사지와 메이컵을 주로 하고 있다. 물론 목적은 화장품 판매다. 매장에는 한국제품인 화장품이 여러 종류 진열돼 있다.
직원으로는 마사지 사와 메이컵 담당자 이렇게 2명이 있고, 옆쪽 칸막이 너머 왕 사장 사무실에도 직원이 2명 있다.
내가 한국에서 보던 낯익은 화장품이다. 화장품 대리점에서 60%에 가져와서 정가에 택배비까지 얹어서 중국으로 팔았던 제품이다.
여기 있는 제품은 중국 공장에서 바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다. 모두 다 중국에 진출한 화장품이니까?
언제부턴가 중국 여성들은 한국 화장품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일본 화장품과 비교해도 질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색조화장품은 오히려 더 질이 좋으며 가성비는 착하다.
이렇게 한국 화장품이 지천으로 들어와 있는데도 중국 친구들은 나에게 한국 화장품을 사서 보내라고 성화다.
“중국에도 그 제품 있잖아.”라고 하면
“중국서 만든 것은 믿을 수 없어.”라고 한다.
중국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그만큼 신뢰를 잃고 있다. 내가 한국에서 느낀 것은 한국 사람은 중국사람보다 정직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한국 엄마 집에 갔을 때다. 엄마가 마트에 반찬거리를 사러 나갔는데, 돌아올 때는 빈손이었다.
“왜? 시장은 안 봤어요?”라고 했더니
“배달시켰어. 좀 있으면 배달해 줄 거야.”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믿고 배달시켜요?”
“그걸 왜? 못 믿어?”
‘한국은 정직한 나라구나!’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중국 남동생에게 초콜릿을 택배로 보낸 적이 있다. 택배를 받은 동생은
“누나(지에지에) 왜 초콜릿을 반 통만 보냈어? 그것도 먹던 거로.”
기가 찬다! 배달원이 배달 도중 꺼내서 먹은 것이다. 이러니 중국인이 중국인을 믿지 못한다.
같은 메이커의 화장품도 한국에서 생산하는 것과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첫째로 물이 다르고, 기타 재료가 한국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이용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제품관리를 철저히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장에는 젊은 여성들이 4~6명 정도, 어떨 때는 7~8명 정도로 매장에서 북적댄다. 마사지 받는 사람과 메이컵 받는 사람은 직원이 맡아서 하고, 화장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 내가 제품 설명을 하고 판매한다.
나의 존재가 딱 필요한 건 아닐 것이다. 아마 S 교수의 권고로 나를 채용한 것 같다.
칸막이 너머는 왕 사장의 사무실이다. 여기도 직원 2명과 무슨 일을 하는 것 같은데, 내용은 잘 모르겠다. 매장이 넓어 칸막이로 또 한 칸을 만들어 나의 사무실로 만들어 주겠단다.
지금은 내가 따로 사무실이 필요한 게 아니니 다음에 필요할 때 해 달라고 했다.
직원들이나 주위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왕 사장 아버지가 큰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고 한다. 아들의 독립과 기업 능력을 기르기 위해 사무실을 따로 내주었다고 한다.
왕 사장의 성격은 소탈해 보이고, 인간성도 좋아 보인다. 특히 아버지가 부자라니 더욱 관심이 간다. 점심시간이 되면 나를 불러내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한다. 그때마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눈치다. 한국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한국인의 사업성향이며, 한국인이 선호하는 것들을 묻는다.
또 한국인은 중국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내가 알고 있는 대로 한국에 관해 얘기해 준다.
왕 사장은 한국에 대한 물음으로 나에게 접근한다. 이후로는 단둘이서 점심을 먹는 기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는 조금씩 그 틈을 좁혀가고 있었다.
정말 인간에게 상처받은 것은 인간이 치료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점차 이미르에게 받은 상처가 치유되고 있음을 느낀다.
왕 사장은 몸은 뚱뚱한 편이고 피부 색깔도 붉은빛이다. 아미르의 외모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좀 세련되지 못했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다. 한국 남자들보다도 촌스러우니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양복 한 벌을 사다 주고 싶다.
사람 사이란 만남이 잦아지면 신뢰가 생기고, 정도 쌓여가기 마련인가 보다. 첫인상에서 세련되지 못했던 부분도 이제 눈이 흐려진다. 눈에 콩깍지가 쓰였는지 좋은 점만 보이게 된다.
어느 날 나를 찾는 한국인이 있다고, 직원이 나를 부른다.
‘누가 나를! 한국 사람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나?’
어쨌든 나를 찾는다니 안 나가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예요. 핑핑! 하면서 찾아온 사람은 ‘김한수’라는 사람으로 한국 있을 때 나를 찾아와서 같이 사업을 하자고 했던 사람 중 하나다.
반갑기도 하고‘무슨 꿍꿍이가 있나?’‘이제는 속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으로 옆 사무실인 왕 사장 사무실로 인도한다. 왕 사장과 김한수 사장에게 서로 소개한다.
두 사람의 대화에 내가 통역을 한다. 이야기의 내용은 자신들의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말하고, 서로가 상대 나라에 대해 의문점을 묻곤 한다.
왕 사장은 김한수 사장에 대해 무척 호의적이다. 김 사장의 하얀 피부와 날씬하고 세련된 옷차림은 왕 사장과 비교할 때 단연 돋보인다.
왕 사장은 김 사장의 외모와 말솜씨에 점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제법 그럴듯한 식당으로 김 사장을 안내한 왕 사장은 한국에서의 사업에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술이 몇 차례 오고 가더니 얼굴이 불그레하게 복사꽃이 핀다.
여기서 김 사장은 자신의 회사 장면을 동영상으로 담아와 왕 사장에게 선전한다.
“젊은 분이 대단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네요!”
왕 사장이 격앙된 목소리로 칭찬한다. 이날 분위기가 썩 좋았다. 헤어지면서 김 사장은 며칠 후 다시 한번 찾아오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나는 곧바로 김한수 사장의 명함을 한국 아빠한테 스캔해서 보냈다. 이분에 대해서 이 회사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아빠는 명함에 있는 회사 이름을 검색해 보니 회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답해왔다.
“핑핑! 이제 조심해. 사업가는 잘 살펴봐야 해.”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왕 사장에게 전했다.
며칠 후 김한수 사장은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왔다. 그는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데, 투자해 보지 않겠느냐고 왕 사장의 생각을 물어온다.
그 아이템은 한국 고려대학 병원의 연구팀이 암 치료 약을 개발하려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암 치료 약보다 부작용을 줄이고 가격을 낮추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 연구가 성공해서 시판된다면 세계적인 판로가 열릴 것이라고 한다. 이 큰 중국만 해도 암 환자가 얼마나 많으냐? 라고 한다.
왕 사장은 한국에 고려대학교가 있느냐고 묻는다. 내가 한국 인터넷에 접속해 보고 엄마한테도 물어보니 고려대학교는 최일류 대학이란다.
이 말을 들은 왕 사장은 완전히 믿음이 가는 모양이다. 그런 일류 대학에서 연구한다니 연구비를 투자해도 좋을 듯하다고 한다.
이 틈을 노린 김 사장은 지금 계약서를 한 장 써놓자고 한다. 왕 사장도 좋다고 해서 투자계약서를 쓰게 됐다. 금액이 230억이다.
‘와! 왕 사장 돈이 많구나! 이렇게 큰돈을 선뜻 투자하려 하는 걸 보면….’
계약서는 한글과 중국어로 각각 2부씩 작성했다. 기념으로 네 사람이 계약서를 들고 사진도 찍었다.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죽이고 있던 허영심과 기대감이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그날은 왕 사장이 술과 음식으로 융숭하게 대접했다.
‘만약 이 일이 성공하면 나에게도 적잖은 지분이 돌아온다. 그리고 왕 사장과 결혼이라도 하면 완전 돈방석에 앉는 게 아닌가?’
이날 밤 내 마음은 구름을 타고 훨훨 나른다. 한국에서 성공하리라는 꿈이 내 나라에서 실현될 것 같다.
엄마한테 계약서와 사진을 보낸다. 엄마도 기뻐할 줄 알았는데, 엄마의 반응은 싸늘하다.
‘고려대학이라면 믿을 수 있는 대학인데 엄마는 사업을 모르니 무조건 조심만 하라고 하는구나! 왕 사장까지 승낙한 일이니 엄마의 생각이 틀린 것이다.’
마음속에 불안감이 설핏 비치기는 하지만 이 일은 성공 확률이 높다고 결론을 내린다.
투자 시기와 송금 등의 자세한 내용은 한국에 가서 좀 더 살펴본 연후에 결정하기로 하고 왕 사장과 둘이서 한국에 가기로 약속했다.
한국에 가면 아빠 엄마도 만나보고, 쇼핑도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설렌다. 왕 사장이 부자니까 서울에 있는 백화점에서 내 옷과 왕 사장의 옷을 한 벌씩 사 입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 내가 가이드가 되어 동해도 가고, 대구로 가서 엄마 아빠한테 인사도 시키고 싶다.’
일주일 후로 약속 시각을 잡았다.
‘속울음을 삼키며 떠나온 한국인데, 반년 만에 다시 가게 되었다.’
가슴이 뻥~뚫린다. 이제야 기회가 오는구나!
비행기 표를 예매하려 하니 왕 사장은
“이번엔 핑핑이 혼자 가서 보고와. 난 시간이 없어.”라고 한다.
나 혼자서는 뭔가 불안하다. 한국 아빠한테 전화해서 내일 김 사장과 만날 때 동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빠는 기꺼이 돕겠다고 한다.
아빠는 약속 시각보다 일찍 고려대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이어서 김 사장이 고려대학교 건물 안에서 나온다. 뒤따라서 흰 가운을 입은 신사분이 나와서 우리를 안내한다.
김 사장은 흰 가운 입은 사람을 수석 연구원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병원을 한 바퀴 돌며 병원 소개를 한다.
연구실도 보여주겠다며 우리를 안내한다. 그분이 어느 방 앞에 서더니. 여기가 자신이 연구하는 연구실이며 실험실은 안쪽으로 들어가면 있다고 한다. 지금은 연구 중이라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도 한다.
‘저분이 연구원이구나!’ 이쯤 되면 믿을 수 있겠다 싶다.
그날 저녁 호텔을 잡아주며 모처럼 아빠와 회포를 풀라고 한다. 아빠는 나와 단둘이 되니까 느낀 대로 말할 거니까 잘 들어.
“핑핑! 정신 차려야 해.”라고 하시며 자신이 믿을 수 없는 부분을 조목조목 말한다.
첫째: 흰 가운 입은 사람이 이 병원의 직원임을 증명할 수 없다. 흰 가운 입고 병원에서 나오는 일은 쉬운 일이다.
둘째: 지금 세계적으로 많은 항암치료 약이 개발되어 시판되고 있는데, 지금부터 연구한다며? 그러면 그게 언제 연구에 성공할지는 보장할 수 없다. 돈만 받고 연구는 안 할 수도 있다.
셋째: 왕 사장이 참석하지 않는 자리에서 네가 섣불리 결정할 수는 더욱 없다. 모든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
넷째: 고려대학에서 연구한다면 학교의 고위 관계자가 나와서 계약할 것이고, 또 중국인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고려대학의 재정은 중국 개인의 도움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핑핑! 잘 생각해. 큰돈을 날리게 되면 네가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어.”
아빠의 말을 듣고 보니 내 눈이 조금 열리기 시작한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 이 눈으로 무얼 하겠나?
중국 왕 사장은 이미 눈치를 채고 한국에 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았다. 내일 김 사장을 만나면 중국 왕 사장에게 잘 말하겠다고 하고 속히 한국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아빠가 곁에 있으니까 그들이 나를 어찌 못하지 어쩌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아빠는 나를 공항까지 배웅해 주고 돌아가셨다.
중국 왕 사장에게는 내가 본 것과 아빠의 말을 전했다.
이 일 이후 왕 사장이 나를 보는 눈이 전 같지 않다. 하마터면 속을 뻔한 일이 모두 나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네 주위엔 사기꾼만 있구나!’라며 손가락질이라도 하는 듯하다.
며칠 후 한국 김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루속히 후속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조른다. 난 할 말이 없다.
이 올가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핑핑! 약속을 왜? 이행하지 않아?”
“연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면 네가 책임져야 하지 않니? 난 널 믿고 계약했잖니?”
하루속히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나와 왕 사장을 고소하겠다고 윽박지른다.
“난 왕 사장과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왕 사장도 사무실을 옮겼고, 나도 그 사무실에 나가지 않아요. 고소할 테면 해 봐요.”
김 사장은 지지 않고 중국으로 찾아와 왕 사장을 만나야겠다고 한다.
내가 여기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왕 사장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왕 사장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으니 사무실을 옮기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나와 왕 사장의 관계도 끝나게 됐다.
김 사장은 나에게 끈질기게 전화하고 협박한다. 손해 배상을 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한다. 그래도 왕 사장에게는 접근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중국인이라 김사장이 중국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다행이다.
한국 엄마한테 도움을 청했더니 얼마나 손해를 입혔느냐고 묻는다.
김 사장이 계약을 이행할 수 없으면 손해 배상을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엔 피해 입힌 게 없어요.”라고 엄마한테는 말했다.
“내가 김 사장에게 무슨 손해를 입혔나요?”라고 김 사장에게 말했더니
한국 갔을 때 호텔 잡아준 돈과 식대 그리고 왕복 항공료 등을 계산하면 500만 원이라고 한다.
“뭐라고요? 항공료를 왜 내가 물어야 하나요?
“네가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에 두 번째로 중국에 간 것 아닌가?”
참 어처구니가 없다. 자신이 먹었던 식대랑 자신의 항공료를 내가 부담해야 한단다.
그렇담 네가 중국에서 왕 사장에게 대접받은 식대는 얼마가 되는지 아느냐? 중국에서 호텔 잡아준 비용도 만만찮다고 했더니 그 말의 대답은
“그건 네가 낸 돈이 아니잖아! 왕 사장이 당연히 내야 하는 돈이지.”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이건 고소감도 안되고 한국인이 중국인을 고소하려면 국제법을 따라야 하니 핑핑은 응답하지 말라고 한다.
난 그런 배짱은 없나 보다. 매일 같이 시달리는 게 너무 힘들다.
정말 아빠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금쪽같은 돈 500만 원을 김한수 사장에게 넘겨 줬다.
이제는 전화도 하지 말고 찾아오지도 말라고 일렀다.
또 한고비 태산준령을 넘는다.
난 왜 이렇게 바보 같은가? 실패의 원인이 뭔가?
몇 날 며칠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다.
여행사 이은숙 사장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순전히 이은숙 사장의 배신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의 무능도 한몫했다.
한 사장의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믿고 수원으로 올라갔던 일도 잘못 판단한 내 잘못이다.
아미르의 일은?
이 일도 내 잘못이었을까?
외국인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문화를 너무 몰랐다.
물론 내가 너무 속없이 잘 해줬던 일도 잘못이라면 잘못일 것이다.
왕 사장과 김 사장의 계약 건은 나와 왕 사장 두 사람의 잘못이다.
너무 상대방을 쉽게 믿고 치밀하게 알아보지 못했던 점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 아빠는 사업을 하지 않았어도 예리한 감각으로 그들의 사기성을 알아냈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500만 원으로 마무리 짓게 된 것도 불행 중 다행이다.
창공을 향해 비상하던 날개는 폭풍우를 맞아 찢겨 힘을 잃었다.
오갈 데 없는 비 맞은 새처럼 날개 접고 단풍으로 물든 정원수를 바라본다.
가을꽃인 국화꽃이 아름답다.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느티나무 우듬지에 앉았다 날아간다.
이제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허영을 날려 보낸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던 못된 마음도 깊숙이 밀어 넣는다.
사업을 소꿉놀이하듯 쉽게 생각했던 나를 어떤 식으로든 징계해야 한다.
또 아둔한 내 판단력은 어떻게 하지?
개선해야 할 내 안의 모든 것을 깨끗이 갈아치울 수는 없을까?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휴대전화가 부르르 떤다.
남경시장님 전화다.
”핑핑! 페인트 샘풀 가지고 시청으로 오렴. 시청 앞 도로변의 전봇대부터 칠해 보자.
“네! 한국에 연락해서 빠를 시일 안에 찾아뵐게요.”
텅 빈 마음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누군가가 나에게 속삭인다.
“핑핑! 넌 소탈한 성격을 가졌고, 선한 마음을 가졌잖아.”
“이제 작은 행복을 찾아봐!”
“날개를 살짝 접어봐.”
그래도 입속에선 중얼거린다.
‘언젠가는 접은 날개 펴고 다시 창공을 나는 날이 오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