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술 권하는 세상

류귀숙 2012. 12. 21. 17:19

         <술 권하는 세상>     

  귀를 찢을 듯한 음악 소리에 맞춰  흔들흔들 춤을 춘다. 번뜩이는 조명 불빛이 그들의 정수리에 내리꽂힌다.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안간힘을 쓰며 입과 몸을 움직인다.

  훤한 대낮에 나이트클럽처럼 조명시설을 갖춘 관광버스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이다.

  술이 꼭지까지 오른 자들은 점차 이성을 잃어가고 '띵까띵까'의 리듬만 시끄럽게 울린다.

  지켜보는 자와 춤추는 자들은 각자 딴 세상 사람이다. 춤추는 자는 지켜보는 자를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 들이려 안간힘을 쓴다. 그 매개체로 알콜이라는 극약을 쓰면서......

  그들은 무슨 영웅이나 된 것처럼 어깨를 들썩대며 으스댄다. 이 이상 더 즐겁고 가치 있는 것은 없노라 입으로 지껄이며, 몸으론 한껏 신이나 죽겠다는 춤사위를 벌이고 있다. 그 눈빛은 지켜보는 자를 애석해서 못 봐주겠다는 눈빛이다. 아무 낙도 없이 사는 무미건조한 인간을 구제해야하는 사명을 띤 자처럼 동정을 가득 담은 다정한 눈빛이다. 급기야 구제의 사명을 띤 자가 소주잔을 들고 와서는 '원샷! 원샷!'을 연발하면서 권하고 또 권한다.

우리나라 음주 문화는 아주 독특하다 두 세 사람만 모여도 어김없이 소주잔이 오간다. 권하고 또 권하고......

상대가 거절하면 억지로 먹인다. 심지어 상대방이 건강이 좋지 않다거나 차를 운전해야하기 때문에 거절하면  '딱 한 잔만!' 하면서 하고 또 권한다. 곳곳에서 이성을 잃어가는 자들의 횡설수설 소리가 들린다.

  다음에 대기하고 있는 코스는 노래방이다. 여기는 취한 자들이 실력을 발휘하는 곳이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있는 힘을 다해  춤추다. 나중엔 어깨동무하고 콩닥콩닥 뛰기만 한다. '발광의 소나타'는 밤 깊은 줄 모죽기 살기로 흔들고 또 흔든다.

얼마 전 남편친구 아들의 결혼이 있어 ,부부 동반해서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 까지 갔다. 갈 때는 그래도 순조롭게 잘 갔으나, 돌아오면서는 술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술 권하는 사명을 띤 자가 책임 완수를 위해 술잔을 돌린다. 병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돌아온 잔은 마셔야 된다. 뜻대로 안되면 들이 붓겠단다.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술판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우리의 찬란한 문화다. 그 중 최근에 일어난 사건만 해도 지면이 모자란다. 특히 바다 건너 타국에서도 문화 공연을 했으니 참 볼만했다.         

 용감한 우리의 주당들이 지구촌도 불사하고 실력 발휘를 한 현장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부부 팀 24명이 중국 황산을 갔는데, 첫째 날은 버스로, 비행기로, 목적지 까지 가느라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갔고,째 날도 삼청 산을 돌며 여행을 잘 했다 싶었는데, 그날 저녁 드디어 일이 벌어졌다.

'진달래'라는 한국 식당에서 식사가 끝나자 중국산 배갈을 주문해서 마시기 시작했다. 남녀로 편을 가르더니, 남자들은 한 마음이 되어 "건배" "위하여" "깐빼이"를 고래고래 외치며 마셔댔다. 국제 망신이라 부인들이 들고 나섰지만 막무가내다. 억지로 호텔로 옮겼더니 또 못 다한 회포를 거기서도 풀었다.

 급기야는 정신 줄 놓고 호텔 복도에서 밤을 새운 사람과 속이 아파 하이라이트인 황산을 보지 못한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황산을 구경하려고 벼르고 별러서 중국까지 날아와서는 황산 행 케이블카 입구에서 낙오자가 됐다.

 패잔병처럼 어슬렁거리며 입구에서 휴식하는 조가 생겼는데 남편이 바로 그 조원이 됐기에 나도 어슬렁거리는 조에 끼게 되어 약이 바싹 올랐다. 중국말을 전혀 모르는 남편과 몇 명의 술꾼을 그냥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국제 미아가 되는 건 막아야하지 않겠나. 상벌은 집에 가서 논하기로 하고.

 참 희한한 광경이다. 건강을 해치는 술을 그렇게도 간절하게 권하고 마시는 자는 무슨 생각으로 그럴까? 그저 마시는 게 좋아서 일까? 아님 술이라는 힘에 지배당한 것일까?

거기에는 마시는 게 좋아서 마시는 자도 있겠지만 처음엔 마시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것을 보면 술 권하는 자의 압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술 권하는 자는 혼자서는 외로우니 같이 가자는 것인가? 아님 술을 먹여 다음 순서에서 실력 발휘하라는 것일까? 아마 같이  미쳐보자는 속셈일 것이다.

  난 이런 음주 문화가 싫다. 마시고 또 마시고, 이성을 잃고  발광하는 것이 놀이의 전부인양 생각무리와 짝하기 싫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이들 무리와 어울리지 않을 수 없다 사회란 취향의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술 권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고 도리어 즐기는 자들이 더 많으며, 싫어자가 더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거절하는 자를 소외 시키고 놀이도 즐거움도 모르는 무  

 취미 자, 꽁생원 등몰아 부친다.

  술로 인해 일어나는 폐해는 교통사고나 갖가지의 범죄는 말할 것도 없고 대장암 간암 위암 등발병 율을 증가 시키고 있다. 그러나 술자리에서는 병도 잊고, 걱정 근심도 잊고, 오로지 마시고 취하는 일만 남았다. 마시고 또 마시고........

 斗酒不辭(두주불사)란 말도 있지 않은가? 자신의 육신이 꺼져가는 마지막 순간도 술과 함께 할 것인가? 묻고 싶다.

  나는 여기서 우리의  문화 중 가장 나쁜 문화가 술 권하는 문화라 생각한다. 왜 이렇게 술 인심이 후한지 이해가 안 간다. 언제 부터 이런 술 인심이 생겼는지도 정확치 않다.

 술 마시는 자들을 살펴보면 모두가 좋아서 마시는 것은 아니다. 건강 때문에. 또는 운전 때문에 등의 러 이유로 마시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 하지만, 권하는 자에게 걸려들면 마셔야한다. 거절하는 한계가 있고, 권하는 데는 한계가 없다꼭 한 잔만 마시라는데, 먹어도 안 죽는다는데, 어찌

 하겠는가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석잔 되니 그게 문제인 것이다.

 며칠 뒤 남편 동창 모임에서 망년회가 있는데 또 어떻게 거절하나 걱정이다. 이런 부담을 가지니 망년회도 모임도 즐겁지 않고 걱정만 앞선다. 우리 사회에서는 친교의 수단이 술이니 술 때문에  빠질 수는 없는 것이다.

 술 먹고 노래하는 광란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그들은 그만 둘 기색이 아니다. 아마 끝까지 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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