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담을 쌓는 사람들

류귀숙 2013. 8. 24. 16:39

       <담을 쌓는 사람들>

 젊은이들에게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물론 직업과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이컬러'라 불리는 '사'자 돌림 직업을 가진 사람이나 공무원 등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요즈음처럼 취업난이 심각할 때는 더욱 더 그렇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임시직에 종사하거나 아르바이트 정도의 일을 하고 있으니, 직업의식도 없고, 앞날에 대한 희망도 잃은 채 그럭저럭 시간만 때우고 있다.

 이들의 마음은 온통 이 곳을 벗어나 더 좋은 곳으로 가겠다는 마음뿐이라,  자기 개발이니, 창조니 하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가슴엔 불만만 가득 차 있다.

일에 대한  기쁨이 없으니, 하는 일이 힘들 것이고, 자신의 일에 대한 정체성이 없으니, 자신의 일을 하찮게 생각하고 형편없이 깎아내린다.

 이런 시점에서 담 쌓는 노동자 세 사람의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세 사람의 젊은이가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지 못해 건설 현장에서 담을 쌓는 일용직 노동자로 고용돼 담을 쌓고 있었다.

 길 가던 행인이 노동자에게 물었다.

 행인: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노동자 갑: 보면 몰라요? 물을 필요 있나요? 담을 쌓고 있잖아요.

               노동자 갑은 화난 사람처럼 퉁명스럽게 말했다.

 노동자 을: 우리는 빌딩을 짓고 있어요.

 행인: 당신은 빌딩 짓는 일에 무척 만족하시는가 보군요.

 노동자 을: 그런대로요. 만족 못할 게 뭐 있습니까?

 그 때 노동자 병은 일을 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고 얼굴은 웃음으로 빛나고 있었다.

 행인: 실례하겠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동자 병: 우리는 도시를 건설하고 있답니다.

 행인: 당신은 한 평생 건축 노동자로 일하길 원하십니까?

 노동자 병: 건축도 바로 창조 아닌가요?

 10년 후 노동자 갑은 다른 공사장에서 여전히 담을 쌓고 있었고, 노동자 을은 사무실에서 설계도를 그리는 기사가 되었다. 그리고 노동자 병은 앞의 두 노동자의 사장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일에 불만을 품고 자신이 처한 환경을 원망하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건축 노동자란 흔히 말하는'노가다'아닌가!

 하찮게 생각하면 한없이 하찮고 무가치한 일이라 생각하면 아무 가치가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 하찮은 일을 창조의 차원에서 접근한 노동자 병의 태도가 놀랍지 않은가!

 벽돌 한장 한장을 쌓으면서 그는 자신의 꿈을 쌓은 것이다. 벽돌 한 장이 모여 큰 건물이 되고, 그 건물들이 모여 도시가 되지 않았는가!

 그는 벽돌 한 장에서 큰 도시를 바라보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은 희망이 되고 드디어 현실이 된 것이다.

 중국 고사에도 태산은 한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큰 산을 이루었고 큰 바다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버리지 않아 큰 바다를 이루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벽돌 한 장이 큰 도시가 됐고 흙 한 줌이 태산이 되었으며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 큰 바다가 된 것이다.

 자신이 맡은 일을 돌아보고 그 일에서 꿈과 희망을 찾는다면 직업에 어디 귀천(貴賤)이 있겠는가?

 나는 축구 선수 중 '박 지성'선수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 선수는 축구를 하는데 너무나 큰 약점인 평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주위의 비난과 무관심 속에서도 부단히 노력한 결과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히딩크'라는 명감독에게 발탁되어 세계에서 한국을 빛내는 선수가 되지 않았는가?

 지금 대기업이라 손꼽히는 재벌들도 최초엔 하찮은 작은 일에서 시작됐으며 남다른 점은 그 마음에 원대한 꿈을 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흑인 노예 출신인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는 땅콩 하나에서 300여개의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즐겨먹는 땅콩버터, 구두약 등이 모두 그의 발명품이다.

 그는 높은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인류에게 덕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가졌다.

 꿈을 향한 그의 노력은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이었으며 하나님께로부터 영감을 구하고자 기도했다.

그의 업적은 놀라왔지만 특허를 얻어 자신의 영달을 구하지 않았다. 

 지금도 미국에는 그 분의 이름을 딴 학교가 수없이 많고 그가 남긴 유산으로 시작 된 장학재단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니 평소 하찮게 생각했던, '가정주부'라는 나의 직업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건강과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모든 경조사를 주관하는 자로서 긍지를 가져도 좋을 것 같다.

 또 이제부터라도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더 큰 꿈을 꾸어 본다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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