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뒷모습

류귀숙 2013. 8. 31. 18:00

             <뒷모습>

 오늘 아침엔 내가 가장 먼저 가야지!

 알람이 5시30분에 요란한 소리로 깨워주었다.

 내리깔리는 눈꺼풀을 애써 치켜들고 옷을 찾았다. 너무 일러서 불을 켜야겠다.

 더위도 이젠 끝장이 났는지 제법 선듯해서 긴 옷으로 챙겨 입었다.

 잰 걸음으로 산책로에 도착해보니 아차! 또 한발 늦었다. 개천가의 게이트볼 장에서는 이미 경기가 시작됐고, 신문 배달부와 우유 아줌마도 이미 우리 아파트를 거쳐서 다음 코스로 가고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오늘따라 산책로엔 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이미 막다른 길까지 갔다가 U턴해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고, 내 앞줄에는 각양각색의 움직임으로 내일의 건강을 예비하는 자들이 죽 줄을 서서 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의 인품이나 살아온 길이 보인다고들 한다. 평화스런 얼굴, 짜증 섞인 얼굴, 걱정스런 얼굴, 곧 한바탕 울음을 쏟아낼 것 같은 위태로운 얼굴, 주름투성이라 고생 자국만 보이고 마음은 읽을 수 없는 얼굴 등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이와 못지않게 뒷모습으로도 그 사람의 걸어온 길이 보인다.  물론 얼굴에서나 읽을 수 있는 잡다한 감정은 보이지 않지만 나름대로 살아온 인생의 희, 노, 애, 락은  짐작할 수 있다.

 어둑어둑한 여명의 시간에 멀리서 봐도 그 연령은 쉽게 구분이 됐다. 힘없이 어정거리며 걷는 저 모습은 아마 80대의 연령일 것 같고, 오리처럼 엉덩이를 쑥 내밀고 아기작거리며 걷는 주인공은 70대일

 것이라는 것은 단번에 알아보겠다.

 또 황소걸음으로 뚜벅뚜벅 젊잖게 걷는 저 분은 공직에서 갓 퇴직한 분 같다. 절뚝거리며 걷는 사람은 관절이 좋지 않아 보이고, 한 쪽 팔까지 부자유스러운 저 분은 중풍을 앓은 사람 같다.

 개울 건너편 길에서는 까치처럼 종종 걸음을 걷고 있는 아저씨가 보인다. 그 걸음을 보니 왠지 불안하다. 나의 친정아버지도 돌아가시기 몇 달 전 까치걸음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八자 걸음, O자 걸음 등 뒤에서 보이는 걸음걸이 하나만으로도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하다.

 그 중 가장 하이라이트인 걸음은 단연 '펭귄'걸음이었는데, 바로 내 앞에서 양팔을 힘 있게 흔들고 허리는 완전 앞으로 집어넣고, 손바닥까지 땅을 향해 뻗치고는 아기작거리며 걷는 걸음이다. 팔을 힘차게 내젓고 있으나 속도는 그 만큼 따라주지 못했다. 꼭 개그맨의 몸 개그를 연상케 했다.

 옆에 있던 남편이 "저 아줌마는 왜 저리 걷노?"하기에 내가 말했다.

 '아마 허리 굽히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그 허리를 편다고 배를 앞으로 내밀어서 저 모습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라고 대답했다.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는 가을이 쉬 올 것임을 내 귀에 속삭이고 있고, 마지막 남은 나팔꽃은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런 다양한 군상들 속에서 1년 전 먼 길 떠난 친구의 모습도 보인다. 그 친구 몇 년 전 참외 농사짓는다고 귀향하더니, 떠나기 며칠 전 모임에 나왔을 때는 한 층 더 허리가 굽어있었다.

 상체비만에 八자 걸음까지 걸으며, 나지막한 오르막길도  숨이 차다며 평탄 길로 둘러가자던 그 모습 눈에 선하다.

 비닐하우스에서 쪼그리고 앉아 장시간 작업을 했으니 허리와 다리가 성할 리 없다.

 그 친구 생각하니 펭귄 아줌마도 허리 굽은 할머니도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씩씩하게 걷고 있지만 내 눈에는 살기 위한 안간힘으로 보인다.

 '뒷모습'하면,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이는 1940년대 중국을 대표할만한 작가 주자청(朱自淸의)의 작품으로 '뒷모습(背影)'은 그의 대표작이다.

 "까만 천의 큰 마고자와 검푸른 색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뒤뚱거리며 철길을 건너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작가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해서 가정이 완전히 파산 된 상태인데도 빚을 내서 아들을 북경으로 유학을 보낼 때의 장면이다.

 20세의 나이로 혼자 충분히 북경을 갈 수 있었는데, 아버지는 굳이 기차역까지 아들을 배웅하러 온 것이다.

 아들이 배고플까봐 철길 건너 좌판에서 팔고있는 간식거리를 사러 높은 둔덕을 간신히 내려가서는 물건을 사고, 다시 둔덕을 힘겹게 기어오르는 모습을 아들이 기차 창문을 통해 봤다.

 작가는 그때 그 아버지의 뒷모습만 생각하면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오로지 자식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노인들의 뒷모습에서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우리 어머니도 말년엔 관절염으로 몸이 기울어져 절뚝이며 힘겹게 걸었고, 아버지도 그 씩씩하던 모습 어디 두고 까치처럼 종종걸음으로 시집 간 딸집에 오셨을까?

 그때는 이웃보기가 부끄러웠다. 절뚝이는 어머니와 까치걸음의 아버지가 쌍으로 숨을 몰아쉬며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난 반갑기보다는 오히려 난감했다. 남이 볼까 부끄러워 얼른 문을 닫아버렸다.

 시골로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몇 달 후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는 바깥출입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지금 생각하니 그 마지막 걷던 부모님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아버지는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셨나 보다. 우리 집에 다녀가신 후 동생 집에도 다녀가셨다고 한다.

 나의 뒷모습은 어떨까? 앞만 보고 살아왔기에 뒷모습은 생각도 못했는데, 오늘 아침에야 나도 뒷모습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 앞으로만 달려갔던 시점에서 뒤를 돌아보고, 한 번 쯤은 숨고르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앞모습 못지않게 뒷모습도 중요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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