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간과의 숨바꼭질

류귀숙 2014. 1. 16. 19:15

            시간과의 숨바꼭질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일, 본 일, 들은 일, 배운 일들이 어디로 갔을까?

 분명 지난 세월동안 기억하고 있던 많은 일들이 작은 머릿속에서 넘쳐 났으리라.

 흘러넘친 그것들이 간 곳을 추적해 본다. 그들은 용케도 망각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가버린 시간들 중에는 정말 중요한 것들도 많다. 내 머릿속에 남아서 나를 지켜줘야 할 아름다운 추억도 더러는 그 곳으로 가 버리고 없다. 나의 주위를 맴돌던 소중한 이름들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갔다.

 요즈음엔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수십년을 공부한 나의 지식들이 또 나의 재능들이 나를 거부하고 허무 속으로 가버렸다. 가는 길목을 두 손으로 막아보지만 두 손에 잡히는 건 허공뿐이다.

 돋보기에 확대경까지 동원해서 어렵게 공부한 한자, 한문, 중국어 능력이 가장 빨리 그 늪으로 빠져 들었다. 꼭 다이빙 잘하는 수영 선수 같다.

 내가 자주 이용했던 글귀나 글자들이 낯선 모습으로 나를 외면한다.

 역사공부라면 나를 따를 자가 없을 것이라 자만했는데, 그것마저도 희미한 가로등이 되어 방향을 가늠하기가 어렵게 됐다.

 비교적 장기적으로 남아 나와 같이 생을 마감해야할 어린 시절의 기억들도 이제 나를 버리려나 보다.

 초등학생 시절에 외웠던 시구(詩句)가, 중학생 때 자나 깨나 길을 가다가도 밥 먹다가도 머릿속에 담아 두고자 애를 썼던 영어 단어가 흔적이 없고, 수학 공식도 생소한 모습이 되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정철'의 사미인곡을 모두 욀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는데, 지금은 몇 줄 밖에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작별인사도 없이 무에 그리 바빠 황망히 떠났는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네거리에 걸린 현수막이 눈을 끌기에 무심코 봤는데, 그게  아찔한 두려움이 되어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작고 마른 체형의 치매 할머니를 보신 분 연락 주시면 후사하겠음" 이라는 글귀와 함께 병원 복을 입은 할머니의 사진도 함께 게시 되었다.

 이 노인의 기억 속엔 사랑하는 자녀 이름도, 자신이 살던 동네도,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단 말인가! 이보다 더 큰 형벌이 어디 있을까!

 요즘 들어 금방 쓰던 물건도 못 찾아 헤맬 때가 많다. 매일아침 휴대폰 찾느라 아까운 시간 다 보내고, 금방 쓰던 안경을 못 찾아 집안을 온통 들쑤시고 다닌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오늘따라 집나간 할머니의 영상이 머릿속을 맴돈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12월만 되면 큰 달력을 구해서 안방 벽에 걸어놓고는 도망치는 기억들을 붙잡아 본다. 1년간 집안 행사나 정기 모임을 표시하고 가족 생일과 각종 기념일, 여행 날짜들을 표시해 두고는 그래도 못 미더워 스마트폰 일정에 저장해 놓고야 안심을 한다.

그 외 여러 가지 행사는 연락이 오면 즉시 표시해 두고  내용까지 기록 못할 때는 그 통지문을 호치키스로 찍어 달력 끝에 붙여 놓는다. 이렇게 철통같이 수비를 하지 않으면 도망치는 기억을 막을 수 없다.

 

컴퓨터가 또 말썽이다. 꽤 오랜 시간 나와 함께했는데  이것도 나를 닮아 기억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세계 곳곳을 다니며 담아 두었던 위대한 문화재며, 놀라운 자연 풍광을 담은 사진들, 그리고 손자들의 귀여운 모습들을 분명히 저장해 두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심혈을 기울여 창작한 기행문, 수필들도 어디로 달아났는가?

 집에 있는 USB를 모두 동원해서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다.

 이들이 간 곳은 또 어디란 말인가?  달아난 내 기억과 한통속이 된 건 아닐까? 

 남아 있는 작품도 불안하다. 언제 또 망가져서 달아나 버릴지 알 수 없어 새 USB 사서 저장해 두고 나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하지만 그 USB도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달력을 쳐다보니 하루도 빈 날 없이 빡빡하다. 깨알같이 적힌 글자들을 보니 내가 꼭 달력에 지배되는 느낌이다.

달력이 제시한 일정 속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니, 내가 꼭 세월 속에 묻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세월이 내 생활 속에 묻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다 행사 기록 없이 비어있는 날은 왠지 보너스를 받은 날처럼 기쁘다. 이때는 친구와 함께 훌쩍 세월 속에서 빠져나간다.

이 날이 내가 해방되는 날이고 내가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며칠 안 되는 날이다.

이때를 알고 언제든지 대기하고 있다가 동행해 주는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망각의 늪을 휘저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낼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나의 실수 ,나의 부조리, 내가 휘두른 횡포, 내가 뱉은 막말 과 거짓말들이 수면위로 떠올라 나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건 생각할 수 도 없는 끔찍한 일이다.

그런 것들은 그 곳에 있어야만 내가 평강을 얻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망각의 늪이 나에게 해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그곳으로 도망치는 기억들을 적당히 눈감아 주는 아량을 베풀어야겠다.

 그 많은 일들이, 시간들이, 내 작은 머리에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과욕이다.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모든 기억 붙들고 허둥대는 나를 도와주려 한 것이라 생각하니 달아난 시간들이 오히려 고맙다.

 다시 달력을 바라본다. 나는 달력 속에서 세월을 만난다. 그리고 그 속에 내가 서 있는 것도 찾아냈다.

 달력 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어쩔 수 없이 희. 로. 애. 락을 함께한 많은 사람들을 되살려 본다. 아직도 마음 한복판에서 나와 동행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 본다. 멀리 떨어져 이름조차 가물거리는 사람들, 일찌감치 망각의 늪으로 빠져버려 되돌릴 수 없는 사람들, 눈앞을 스쳐가는 파노라마를 붙잡으려 허공을 휘젓는다.

 결국 시간은 사람들의 만남이요, 사람과 부대낀 발자취에 불과하다.

 미워했던 사람도, 원망했던 사람도, 결국 넘겨지는 달력 뒤에 숨었다가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겠지.

 나를 붙들고 있는 지금의 만남이 무게로 다가온다.

 이젠 달아나는 놈들에게 적당히 길을 터 줘야겠다. 몽땅 붙들어 두려했던 욕심을 살며시 내려놓는다. 그리움도 원망도 내려놓고 그가 떠날 길에 불을 밝혀 줘야할까 보다.

 등에 가벼운 배낭 하나 지고 가볍게 떠나면 되는 인생 아닌가. 내가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들만 담아서 콧노래 흥얼거리며 떠나가련다. 그러나 내가 누군지는 기억할 수 있는  정신 하나만은 꼭꼭 챙겨서 밑바닥에 감춰둬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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