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하늘의 뜻이었다. 태초에 하늘이 열릴 때, 땅이 하늘을 만나 신비한 하늘 연못을 만들었다.
맑고 푸른 하늘 연못이 짙은 안개로 가려져 있었다. 몇 번을 벼르고 별러서 찾아간 곳이었다. 지금은 중국 령이 되어 이름도 장백산(장바이 산)이란다. 지름 길 두고 남의 땅 북경을 거쳐 연변으로 통하는 길로 간 것이 원망을 자초한 것인가.
60년 세월 동안 그리움에 지쳐 원망이 되었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 모습 선뜻 내 비치기엔 사무친 그리움을 삭힐 기다림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내 이미 그 속내를 알았기에 서두르지 않았다.
발걸음도 조심조심 숨죽이며 다가가 겸손한 마음으로, 속죄의 심정으로, 신비를 바라보았다. 애타는 그리움 하나로 버텼다.
이윽고 새색시의 수줍음 같은 속살을 내 비쳤다. 그 신비의 베일을 벗는 순간은 만남의 환희로 가슴 떨리는 설렘으로 다가왔다. 흥분한 관광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두 팔을 번쩍 들어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 주위에 모여든 외국인들의 표정이 야릇했지만 우리민족은 거기서 한 민족임의 표를 내고 기뻐하며 얼싸안았다.,
몇 번을 가도 천지를 못 본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는 단 한 번의 발길에서 태고의 신비를 거머쥐게 됐다. 아마 겸손한 자세로 납작 엎드려 조심조심 올라온 우리들을 어여삐 본 모양이다.
벅찬 감동으로 태고의 신비를 품은 하늘 연못을 응시한다. 안개 저 쪽에서 도포자락 펄럭이는 단군 할아버지가 보인다. 광야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들도 보인다.
그들의 한과, 분노와, 눈물이 녹아든 연못이다. 고난의 역사를 지켜 본 하늘 연못은 우리가 나아갈 길도 알고 있으리라.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신령스런 물이 폭포 되어 내리 꽂힌다.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굉음은 하늘의 소리다. 저 엄청난 물을 누가 제압할 것인가?
인간을 꾸짖으려는 소리인가. 울분을 토하는 함성인가. 태고 때부터 있어 왔을 저 몸짓의 당당함과 천둥처럼 큰 울림 앞에서 현기증이 났다.
피 묻은 반만년 역사를 깨끗이 청소하려는가. 온통 물보라를 일으키는 저 운무는 하얀 여과지다.
장백 폭포에서 분노의 굉음을 지르던 천지의 물은 잔잔한 흐름이 되어 남으로, 남으로 흘러내린다.
우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도, 천둥을 앞세운 폭우도, 모두 끌어안고 아래로만 흘러내린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실개천이 모여모여 강에서 만나듯 너울너울 손잡고 춤추지 않겠나.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깊어지는 강물 위에 누워 환희의 찬가를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메마른 땅을 흠뻑 적셔주는 단비가 될 수만 있다면 죽은 나무뿌리에도 새싹을 틔울 수 있겠지.
남과 북이 물이 되어 만난다면, 숯이 된 두 동강의 뼈다귀가 하나의 뭉침이 되어 한 곳으로 흘러 갈 수만 있다면 누군들 좋아하지 않겠나.
내 마음 어디쯤인 듯 한곳에서도 끝없는 강물이 흐른다. 이 강물위에 종이배 하나 띄우고 바다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겠다.
백두산 천지에서 만난 물은 이전의 평범한 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태고의 신비며 천상에서 내려온 신의 선물이었다.
천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우리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의 생명을 태동시킨 모태가 됐다. 무한정의 물을 담은 하늘 연못 천지에서 아래로 뿌려주는 젖 줄기는 우리 한반도의 역사를 쓰게 했다.
바른 길 가지 못하는 못난 후손들을 응징이라도 하듯, 장백 폭포에서 내리 꽂히는 굉음이 못난 후손을 향해 호통 치는 소리로 들린다. 폭포를 거친 물은 격정을 가라앉히고 잔잔하게 흘러내린다. 꼭 한반도의 평화를 예시하는 소리 같다.
중국의 성인 '노자'도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하며 물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해 주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고 했다.
예로부터 인간은 물을 중심으로 모여 취락을 형성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4대 문명의 발상지를 보더라도 모두 강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오늘날에도 산업 발달의 중요한 조건으로 물이 풍부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배산임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 선조들은 이 조건에 맞추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물은 인간에게 무한한 가르침을 준다. 낮은 데로 흘러서 높아지기만 바라는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세류든, 빗물이든, 흙탕물이든, 시궁창 물이든, 모두를 아우르는 강물에서 용서를, 포용을 배울 수 있다. 또 장애물을 만나면 에둘러 가고, 낮은 곳에서는 쉬어 갈 수 있는 지혜도 준다. 어떨 때는 분노한 물줄기가 민가를 덮치고, 다 지은 농작물을 휩쓸어 가면서 인간에게 자연 파괴의 결과를 경고하기도 한다.
'노자'는 또 '천하에 물보다 부드러운 것이 없으니 강한 것을 공격하기로는 이 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물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라고 했다.
우리 류가(柳家) 가문의 조상들도 이 물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아 집성촌을 이룰 때도 그 지명에서 물을 뜻하는 곳으로만 이주해서 살았다고 한다. 버드나무를 뜻하는 류(柳) 라는 성씨는 물과 같이 살아야 번성 한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진주(晋州), 전주(全州), 인천(仁川), 하회(河回) 그리고 나의 고향 하빈(河濱)이라는 동네도 물과 관련된 지명이며 마을 앞엔 내가 흐르고 있다.
정말 우리 조상의 믿음대로 류가(柳家)들은 앞서의 지명을 가진 지방에서 취락을 이루어 가문이 번성하는 은혜를 입었다.
이와 같이 물의 고마움을 아는 조상의 가르침과 물이 주는 은혜로 지금껏 살아왔음에 감사드린다.
나라의 임금님도 치수를 잘 해야만 그 나라를 굳건히 지킬 수 있다고 믿었으며, 실지로 치수에 힘쓴 임금님의 치세에서 나라가 부강했다고 한다.
강변에 반짝이는 자갈을 만져 본다. 매끈한 감촉이, 둥근 모양이 앙증스럽다. 태고 적부터 스쳐간 물의 흐름이 모가 나고 비뚤어졌던 마음들을 깎고 깎아서 둥글둥글 예쁜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나의 모난 성격도, 욕심도, 부드러운 물의 교훈으로 깎여져서 강가의 자갈처럼 예쁜 모양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