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버려진 양심

류귀숙 2014. 9. 2. 08:47

           버려진 양심

 서쪽 하늘에 드문드문 보이던 작은 구름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무슨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일까?

 아님 태양을 향해 시위라도 벌이려는 것인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기세가 드세어진다. 급기야 이글이글 불타던 태양빛을 제압하고 말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바람까지 나타나서 구름의 위세에 부채질을 하더니 구름 조각들을 휘몰아 온 하늘을 헤집고 다닌다. 으르렁대던 하늘이 장대 같은 물줄기를 퍼부어댄다. 찬란히 빛나던 태양이 자리를 내준 건 순식간의 일이다. 이렇게 40주야로 비를 퍼부어 세상을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노아 홍수' 때도 이랬을까? 하늘의 진노를 보는 것 같아 베란다 쪽 창문을 닫아걸고 숨죽여 기다렸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아파트가 방주가 돼 주리라 믿는 마음이 생기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설마 이 아파트까지 잠기진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애써 바깥을 외면하고 잠을 청했다.

 어둠과 불안을 품고 있던 밤이 가고 아침이 되니, 그렇게도 기세 등등 설쳐대던 폭우가 태양의 재 석권을 허용했나보다.

 밤새도록 퍼부었으니 앞개울이 어찌됐을까 궁금해 산책로를 끼고 앉은 냇가로 갔다. 가는 도중 머릿속엔 '개울이 뒤집혀 산책로가 쓸려가지 않았나?'하는 걱정이 앞서고,  이참에 더러운 것들이 확 쓸려가 버렸으면 하는 기대가 뒤따랐다. 예상대로 앞개울은 개벽을 한 듯 시뻘건 물줄기만 마라톤 선수마냥 휙휙 내달리고 있었다. 매일 아침 산책하던 길과 징검다리, 농구장, 게이트볼장도 보이지 않는다. 강 한복판엔 넘실대는 물줄기 따라 부러진 나뭇가지만 오르락내리락하며 힘겹게 잠수하는 모습만 보일 뿐  바닥은 짐작도 안 간다. 우리 인간들이 넘보지 못할 자연의 힘에 한층 더 작아진 나를 다독여본다.

 자연의 힘에 눌려 이틀 동안 산책도 못하고 빈둥거리다 사흘째 날 산책로가 안전한 지 볼 겸 운동채비를 하고 나섰다. 시뻘겋게 위세를 부리던 물줄기는 안정을 되찾았고 맑은 수면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코로라도 강'이나 '도나우 강'의 아름다움에 비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튼튼하게 놓였던 징검다리는 그 풍파를 겪고도 끄떡없이 강을 가로질러 떡 버티고 있었다. 개울 가 산책길엔  물줄기를 견디다 못해 이리저리 쓰러진 풀들이 널브러져있었다. 부러진 나뭇가지와 나무토막들은 징검다리를 붙들고 안간힘을 썼는지 군데군데  징검다리 주위로 몰려있었다. 징검다리 여기저기엔 개울 속에서 자라던 수초나 개울 곁에 붙어있던 잡풀들이 떠 내려와 거름 무더기처럼 쌓여있었다. 시뻘건 황토 물속에서 제자리 지키려 안간힘 썼을 것을 생각하니 안쓰럽다. 그래도 이것들은 자연물이라 자연스러움을 담고 있어 그런대로 봐 줄만했다. 강바닥에 있던 것들이 쓸려 내려가고 또 위에서 떠 내려와 자리바꿈이 이루어졌으니 이것 또한 자연의 순리가 아닌가?

 이런저런 변화를 보며 아래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정말 보기 흉한 것들을 보고 말았다.

 

 나를 포함한 이 동네 사람들은 이 팔거천을 사랑한다. 강 양옆으로 훤칠한 산책로가 자전거도로와 나란히 누워있고, 길옆엔 잘 다듬어진 잔디밭과 영산홍을 비롯한 각종 꽃나무와 들풀까지도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적당히 배치된 운동시설마다 아이 어른 모여들어 건강 지키려 애쓰는 모습이 활기가 넘친다. 그런데 오늘 본 것은 차라리 눈을 가리고 싶다. 물고기 뱃속에서 터져 나온 창자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큰 물줄기 따라 떠내려 온 쓰레기들이 가관이다. 등산화 한 짝, 우산 부러진 것들, 폐타이어들, 양말짝, 옷가지, 찌그러진 냄비까지 눈뜨고 볼 수없는 오물들이 산책로를 어지럽히고 있다. 모두가 인간이 쓰다버린 것들이다. 인간이 만든 물건들이 자연 속에 버려지니 이렇게 추한 몰골이 된다는 것을 실감나게 했다. 타이어는 자동차에 붙어있을 때 제구실을 하고 신발은 신발장에서 보기 좋은 법이다. 자신의 처소를 떠나면 빛나는 인간의 창조물도 한낱 볼품사나운 찌꺼기가 된다.

 강 옆 넓은 장소에 인간쓰레기들을 모아놓았다. 아마 오며가며 자신들이 한 일을 되짚어 보라는 암시인 것 같다. 이것들을 자연 속으로 팽개친 인간은 그 애용품과 같이 자신의 양심까지 버린 셈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얻고 그 속에서 위대한 창조를 이루어 지금까지 생을 이어왔다. 그런 자연에다 자신의 찌꺼기를 버린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 

 오랫동안 함께하며 자신에게 편의를 제공했던 물건들이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하듯 강 속에 버려졌다. 이 오물을 버린 자의 마음속엔 정작 버려야 할 것이 가득 들어 있지 않을까? 몰염치, 이기심, 비양심 몰이해 등등의 온갖 나쁜 언어를 동원해야 설명이 되는 모든 것들을 신주 모시듯 끌어안고 있는 게 아닐까?

 저 반짝이는 강물의 뱃속에서 엄청난 오물이 쏟아져 나왔듯이 우리 인간들의 마음속을 헤집어 본다면 어떤 것들이 들어있을까? 양심, 사랑, 배려 심 등등의 선량한 마음도 없지는 않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오물이 속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선량한 가면을 쓴 자의 마음을 뒤집어 본다면 산더미를 이루고 있는 쓰레기들 보다 더한 오물들이 들어앉아 있을 것이다. 버려진 신발이나 타이어 우산 등의 오물보다 더 고약한 악취가 풍길 것 같다.

 

  어떤 한 지방관이 온 몸에 살을 덕지덕지 붙이고 산 길을 가다 호랑이를 만났다. 호랑이는 입맛을 다시며 오늘 저녁거리로 안성맞춤이라며 좋아했다. 며칠을 굶었는데 살까지 띠룩띠룩 쪘으니 오늘은 재수 좋은 날이라 했다. 행인은 호랑이에게 살려 달라고 빌었다. '나는 이 지방을 다스리는 지방관이라 아직 할 일이 많으니 제발 살려 달라.'고 했다. 그 때 호랑이가 말했다.

 "이 뚱뚱이야 빨리 가버려라."

 행인은 살려줘서 고맙다고 절을 꾸벅하고 돌아서려다 살려 준 이유가 궁금해서 호랑이에게 물었다. 그 때 호랑이는 말했다.

 "우리 선배들이 그러는데 탐관오리의 고기는 몸에 아주 더러운 독이 들어있어 먹지 말라고 했어."

 "그래서 우리 호랑이들 사이에서 금하는 음식이 바로 탐관오리야."

 백성을 돌보지 않고 욕심으로 배를 채우려는 지도자를 호랑이인들 좋아할 리 있겠나! 

 그 탐관오리가 지금의 정치권에도 더러 있다는 생각이 든다. 뉴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전의 탐관오리와 한 저울에서 팽팽히 맞설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쓰레기 같은 존재가 되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만 붙들면 다른 것은 좀 느슨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름다운 자연에 버려진 인간의 양심들을 이제는 추스르고 다독여야하지 않을까? 

 마지막 남은 양심은 어떤 경우에도 붙들겠다는 다짐을 지금 이 시간에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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