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을 박으면서
만약 나에게 투시의 능력이 있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보고 싶다. 마음 밭을 품고 있는 심장엔 어떤 것들이 들어있을까?
가쁜 숨 몰아쉬며 삶의 고개를 넘으면서 흘린 땀은 얼마며, 흘린 눈물은 또 얼마겠는가. 빗물이 흘러 모여 개울이 되듯 살다가 부대낀 자국들이 옹골지게 들어차 있지 않겠나.
어차피 인간이란 사람인(人)이란 한자가 말해 주듯이 혼자가 아닌 최소한 둘은 있어야한다. 혼자서는 두려워 떨며 엄두도 못 내던 맹수도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다.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사냥한 맹수를 어깨에 둘러메고 돌아오는 원시인들을 상상해 본다. 한 사람의 미미한 존재가 힘을 합치니 원시적인 방법으로도 맹수를 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인간의 모임은 거대한 자연도 정복할 수 있다. 산을 무너뜨려 길을 만들고 거대한 빌딩도 짓는다. 그러니 인간은 단체의 매력을 진즉에 알고 연합을 중시했다.
가장 작은 연합인 가정을 이루어 평안을 얻고, 이웃과 연합하여 힘과 신뢰를 얻었다. 이런 모임들이 점점 커지면서 나라가 되고, 나라의 일원이 되면서 더욱 굳건한 단체의 보호를 받게 됐다. 그러나 이런 인간관계 중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대끼고 부딪히는 사이에 나의 가시가 상대를 긁고 지날 때가 많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의 가슴은 나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한다. 또 사랑의 이름으로, 우정의 이름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무수히 많은 못을 박아왔음도 돌아본다. 어떨 때는 말에 비수를 품고 상대의 심장을 과녁인양 찔러대곤 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모든 사람들의 가슴마다 몇 개의 못쯤은 기본으로 박혀있지 않을까? 또 어떤 이의 가슴엔 시꺼멓게 타버린 숯덩이도 들어있을 것이고, 참는데 이력이 난 사람의 가슴엔 곪아 터질 것 같은 고름 주머니도 더러 있을 것이다.
중국 고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불효를 밥 먹듯 하는 망나니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다. 이 아버지는 아들의 못된 버릇을 고치려고 지혜를 짜냈다.
뒤뜰 벽면에 나무판을 붙여 나무 벽을 만들어 놓고는 아들을 그 곳으로 데리고 갔다. 아들에게 못 한 자루와 망치를 주면서 불효했을 때마다 못을 박으라고 했다.
얼마 후 뒤뜰 벽은 고슴도치 등처럼 빽빽이 못이 박히고 자루의 못도 바닥이 났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못이 박힌 벽을 보며 말했다. " 저 벽이 바로 이 아버지의 가슴이다." "네가 박은 대못이 내 심장을 찔러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구나!"라고 말하자 그제야 아버지의 의도를 알아차린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이번엔 빈 자루와 장도리를 주며 효도할 때마다 못 하나씩을 빼서 자루에 담으라고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아들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못 자루를 들고 아버지 앞에 나타났다. "아버지! 드디어 못을 다 뽑았습니다." 이제 가슴이 시원하시지요?" 라고 말했다.
다시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벽 앞에서 말했다.
"장하다! 내 아들아!" "그런데 저 못자국은 네 눈에 보이지 않니?" 지울 수 없는 못자국을 바라보며 아들은 자신이 저질은 죄가 무엇인지 똑똑히 깨닫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점을 살펴보자. 먼저 아버지의 교육 방법을 눈여겨 봐야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아들 스스로 뉘우치게 하는 방법이다. 또 못을 박았다가 빼는 것보다 처음부터 못을 박지 말아야한다는 무언의 교육을 실행한 아버지의 지혜다.
뒤돌아보니 내 아이들에게 부모라는 이름으로 모진 말로 상처를 주면서 교육이라는 이름을 걸었던 일이 후회로 다가온다. 또 이 아들 못지않게 나도 많은 못을 박으며 살아왔음을 깨닫게 됐다. 이 망나니 아들처럼 부모의 가슴에 불효의 굵은 대못을 수없이 박았다. 자식의 가슴엔 사랑의 이름을 앞세우고 욕심이 가득차서 못을 박고 또 박았다. 또 친구의 가슴에도 질투의 못과 빗나간 말투의 대못을 박았다. 이웃에겐 어떤가? 그들에게는 싸늘한 눈빛과 냉정한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못을 박았다.
이제는 오른 손엔 장도리를 들고, 왼 손엔 사랑의 묘약을 들고 나서야한다. 촘촘히 박힌 못을 빼고 그 상처의 흔적을 사랑의 묘약으로 치료할 임무가 주어졌다. 지금이라도 빼야할 못이 있다면 상대를 찾아가 사과하며 용서를 빌면서 그 못을 빼야할 것이다. 후속 조치로는 사랑의 묘약을 들고 나가야 한다. 부드러운 말로, 따뜻한 눈빛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이 바로 사랑의 묘약이 아닐까 한다. 또 내 몸 어디에도 못이나 가시, 비수는 품지 말아야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할 것이다. 그러면 내 가슴에 박힌 대못은 어찌할거나? 부모, 남편, 자식, 친구들이 뽑아주기를 기다리면 어떻게 되겠나? 아마 가슴이 타서 숯덩이가 되고 종기가 곪아터져 내를 이룰 것이다.
부모 때문에 박힌 못은 내가 불효하면서 내 스스로 박은 못임을 알고 내 자신이 해결해야할 것이다. 이제 와서 고인이 된 부모님께 못을 빼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식이나 친구, 이웃 때문에 박힌 못은 어찌할까? 그것도 자식이나 이웃이 박았다고 단정지울 수 없다. 그들에게 내가 먼저 박았던 못이 되돌아왔다는 생각을 하면 아주 간단하다. 내가 먼저 못을 박지 않으면 돌아와 내 심장을 겨냥하는 비수나 못은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대부분은 내가 찌른 비수가 메아리 되어 내 가슴으로 돌아온 것이 대부분일 테니까.
그래도 기어코 내 가슴에 못을 박는 자가 있다면? 그건 나의 의지로 빼내야 되지 않겠나.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준다면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꽃 한 송이가 피어나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으로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