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송아지만한 누렁개 한마리가 네 다리를 쭉 펴고 성문 앞에 널브러져 있다. 완전히 무장해제하고 오수를 즐기는 저 배짱! 저 여유! 개조차도 나라마다 다른 성향을 나타내나보다.
6시간이란 여유시간 때문인가? 그 6시간을 끌어안고, 2700년의 시간을 등에 업고, 단잠에 빠져있는 에페스의 개를 본다.
한국은 지금쯤 어둠이 땅거미처럼 내리깔리는 저녁 시간이다. 거리마다 퇴근길 북새통을 이루겠지….
여긴 한낮 정오다. 6시간을 벌어들인 우리 일행도 늙은 개의 여유 앞에서 잠시 질주를 멈춰 본다.
뒹구는 돌 하나, 풀 한포기, 흙 한 줌도 사연을 담고 있는 이곳 에페스!
성문을 들어서는데 대문 두 기둥이 우리를 감시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리스 최대 영웅이자 제우스의 아들인 헤라클레스다. 그래서 이 문을 헤라클레스 문이라고 한단다. 정교하게 조각된 부조에서도 위엄이 뚝뚝 흐른다. 입구에서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20세기를 훌쩍 넘긴 성문 기둥인데도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우리도 옛날에는 동구 밖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장승을 세워놓고 마을을 지켰다. 부정한 것을 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는 동과서가 다를 바 없다.
서서히 문으로 들어선다. 그 옛날의 영광이 금싸라기처럼 반짝인다. 이 넓은 땅에 가득 찼던 사람들은 모두가 역사 속으로 가 버리고 그들이 기거했던 집터랑 다니던 길은 그 때를 말해 주는 것 같다.
돌이 흔한 이 나라는 건축자재가 대부분 대리석이라 3천년이 다 된 지금도 가닥가닥 그 줄기가 남아있다. 무수한 세월동안 비바람에 부대끼면서도 증인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무너진 기둥, 흩어진 돌무더기, 한줌 흙조차도 그날을 증언하고자 증언대에 올랐다.
확 트인 넓고 긴 도로가 그 옛날 번화가였다고 말한다. 이름 하여 크레터스 도로란다. 빛나는 대리석으로 바닥을 장식하고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수놓은 이 도로를 누가 2천 년 전에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나! 너비도 지금의 왕복 2차선 도로는 족히 됨직하다. 지금의 아스팔트 도로보다 훨씬 고급스럽다. 그 때의 번창했던 거리를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번화가의 저만치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셀수스 도서관이 그 때 모습으로 복원중이다. 입구의 현관 정문은 복원이 되었고 앞으로 머지 않은 날 복원이 완성되면 이곳에서 공부한 학자들이나 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책을 소장했다고 하니 당시의 발전상을 증언해 줄 것이다.
도서관 맞은편엔 유곽 터가 남아있다. 윤락가는 예나 지금이나 필요악인가 보다. 집은 허물어졌지만 입구에 광고 판이 있고, 손님을 맞이했던 수부도 남아있다. 특이할 일은 대리석으로 된 평평한 돌 판에 발 모양을 그려놓고 출입자에게 발을 갖다 대보게 했다. 그려진 발보다 작은 사람은 출입을 제한했단다. 그러니까 요즈음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미성년자 여부를 가리는 것과 비슷하다. 비과학적이긴 해도 나름대로의 거름 장치가 있는 것을 보면 유곽도 조금의 양심은 지키고 있었다고 본다.
옆길로 들어서니 히드리안 신전이 있다. 이곳은 에베소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아름답게 보인다. 몇 세기가 지나갔는데도 이 정도의 아름다움을 유지했다면 그 당시는 최상급이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곳에 모셔진 다양한 신들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않고 어디로 갔을까? 신이라면 적어도 자신의 동네, 자신의 집은 지켜야하지 않겠나!
넓게 펼쳐진 대리석 도로를 따라가면 항구가 나온다. 그 옛날 에베소는 항구 도시로서 영화를 누렸다. 각 지역에서 모여든 사람과 물건으로 흥청거렸을 것이다. 개중에는 말을 타고 들어오는 장군도 있었을 것이고, 봇짐 진 장사꾼과 공부하러 찾아오는 학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또 목욕탕이나 유곽을 찾는 귀족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이 길을 밟았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큰 길을 돌아가니 목욕탕 터가 나온다. 이 목욕탕이 이 도시가 멸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 놀랄 일은 공중화장실이다. 하수구로 물이 흘러가고 그 위에 대리석 뚜껑을 덮어놓았는데 군데군데 구멍이 뚫어져있다. 사람들이 이 대리석 판에 앉아 구멍으로 변을 보내면 아래로 흐르는 물에 씻겨 내려가게 했다. 지금의 수세식 화장실의 원조 격이다. 이처럼 이 도시는 완벽하게 도시의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전의 로마식 목욕탕은 지금의 찜질방과 비슷했다. 여기서 운동하고 흘린 땀을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며 씻고, 커피도 마시고, 책도 보고 하면서 하루 종일 놀다가는 곳이었다. 이로 인해 주변 산의 나무가 연료로 쓰임에 따라 벌거숭이산이 됐다.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항구를 막고 바다가 메꾸어지면서 늪지대가 생겼다. 이 늪지대는 모기 유충의 서식지가 돼서 이 도시에 말라리아가 창궐했단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도 다녀갔다던 아고라 시장터를 지나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원형극장에 갔다. 이곳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무대를 제외한 객석은 그대로 남아있다. 2만4천명을 수용했다니 놀랍다. 더욱 놀라운 것은 웅덩이 모양의 우묵한 원형이라 이곳에선 마이크가 필요 없단다. 그대로 스테레오가 되어 울리게 된다. 이 소리를 들은 성악가 한 분이 시험 삼아 우리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열창했는데 그 울림이 신비스럽다. 금강산을 그리는 우리 마음이 에베소 고도에 울려 퍼졌으니 그 울림이 머지않은 날 북쪽으로도 전해지지 않을까.
이들의 지혜에 박수라도 쳐 주고 싶다. 그러나 곧이어 뒷덜미를 잡는 무섭고 잔인한 이야기는 차라리 귀를 막고 싶다. 이 장소에서 기독교인의 박해가 이루어지기도 했단다. 열광하는 관중들 앞에서 굶주린 야수의 밥이 되어야했던 기독교인들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돌아 나오는 등짝 위로 오후의 태양빛이 내리쬔다. 이 도시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아마 인류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역사의 증언대에서 증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서의 문화가 시대를 오르내리며 만들어 놓은 잔해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이곳은 후손들에게 영원히 자양분이 되리라. 우리의 고대 왕조들은 주춧돌만 남겨놓고 그 문화재는 거둬들인 것을 생각하니 이 나라가 부럽다. 3천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또 앞으로 나아가 시루떡처럼 포개 올릴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