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태 작 <징 소리> 를 읽고
<실향민의 슬픈 노래>
고향은 영원히 아름답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무게 중심인가?
내 유년의 고향은 온통 푸름 이었고 아늑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품을 느끼게 했다.
'문순태'의 (징소리)는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실향민들의 슬픈 노래가 가슴을 두드리는 징소리로 변하여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슴에 찡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현대 문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향이 뿌리 채 뽑혀진 수몰민의 실향 기를 '징'이라는 구체물을 통해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때로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또는 목구멍에 불잉걸이 일어나듯 울컥 치미는 울분으로 다가선 실향민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칠복'이 두드리는 징소리에 실려 구성진 노랫가락으로 들려왔다.
산업시회 건설이라는 미명아래 무참히 침몰 당한 방울재 수몰민이라는 한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었다.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참담한 실향 기는 역사적 수난기 6.25의 살육현장을 대비시킴으로써, 주변 환경에 의한 인간성 상실과 한의 역사를 한 층 더 심도 있게 다루었다.
농사 밖에 모르는 '칠복'의 가정은 수몰로 인해 철저히 파괴된다. 도시로 떠나온 후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가출하고 무일푼이 된 칠복은 딸을 데리고 떠돌이 신세가 된다.
그는 실향과 아내 잃은 설움을 징을 치며 달래고자 했다.
또한 방울재 주민 또한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 졌으나 외지에서의 정착을 거부하고 다시 수몰된 고향으로 돌아와 낚시꾼을 상대로 매운탕을 끓여 팔며 수몰의 아픔에 온 몸으로 맞서고 있다.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단어조차 모르는 순진한 주민들이 6.25라는 주변환경 때문에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의 살육을 저지르게 되어 이들은 정신적 고향 즉 인간성을 상실하게 됐다.
수몰로 인한 고향 상실과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을 대비함으로써 인간이 환경에 의해 철저히 파괴됨을 보여 줌과 동시에 인간은 환경 요소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음도 보여준다.
6.25의 비극을 화해와 용서로 극복한 현명한 방울재 주민은 수몰로 인한 실향의 고통을 고향 주변에 모여 살며 고향의 문화를 지킴으로 극복 했다고 본다.
또 방울재 주민의 눈물겨운 실향기와 상반된 남창리 주민의 탈 농촌 현상은 또 다른 상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들은 돈 때문에 농사를 팽개치고 남창 방죽에서 순채 채취에 열을 올리며 기회만 있으면 농촌을 떠나고자 했다. 이들을 통해 현 시점의 이농 현상과 농촌의 피폐화 그리고 배금주의 사상의 확대가 적절히 배치 돼 현실의 농촌 문제점을 제시했다.
고향을 지키려는 방울재 주민과 고향을 팽개친 남창리 주민의 묘한 대비, 또 죽음으로 고향을 지키려는 강촌댁과 방울재 사람들. 고향을 등지고자 하는 맹계장과 박천도사장 등의 공방전도 상반된 가치관을 대비시킴으로써 참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고자 했다.
군데 군데 독특한 비유법과 방언을 섞은 유머러스한 언어의 사용으로 독자의 흥미를 돋우었다.
이 소설은 '허 칠복'이라는 현 시대와 동떨어진 순진한 인간을 등장시킴으로 혼탁한 인간성 상실의 늪을 정화하는 청량제 역할을 했다고 본다.
내 유년의 시절에 많이 보암직한 인물이라 훨씬 더 정감이 갔다.
그는 변심한 아내도 포용 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졌다. 그가 소중히 품고 다니는 '징'은 바로 고향의 포근함과 어머니 같은 넓은 마음의 상징 이었으니까?
마지막 부분에 칠복의 아내 순덕이 잘 못을 뉘우치고 장성호에 몸을 던졌다. 또한 그 시신은 인간성을 되찾은 '손판도'가 건져 올리고, 칠복이 징을 울림으로 이들의 영혼은 하나가 됐다. 이 장면에서 이들이 고향으로 회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실향민의 슬픈 노래는 화해와 평온의 수면 위로 밝은 햇살이 비치듯 희망가로 변할 것이다.
칠복의 징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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