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

꺼지지 않는 민족혼 (조정래 작 '아리랑'을 읽고)

류귀숙 2011. 7. 30. 19:27

 조정래작 '아리랑'  *1996년 영남일보주최 독후감 공모 수상작

             <꺼지지 않는 민족 혼>

반만년의 우리 한반도 역사는 약소민족이기 때문에 많은 시련을 겪어 왔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를 수난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어느 민족보다 끈기가 있어 국난을 당할 때마다 의연하게 대처 해 왔다. 또 오늘의 역사를 토대로 미래의 역사 창조를 위해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에 소설 '아리랑'은 우리의 수난 역사 중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의 한 자락을 펼쳐 고고히 흐르는 우리 민족혼을 일깨워 주었다고 본다. 아리랑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생의 지표를 열어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12권에 걸친 방대한 양과 장엄한 구성 앞에서 살아 숨 쉬는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서문에서 작가가 말했듯이 우리 민족이 처절하게 죽어 갔던 그 현장을 재조명하고 그 때의 그 만행을 세상에 폭로하여 왜곡된 진실을 밝히고자 했다. 우리 후손들은 목숨 버려 투쟁한 그들의 영령을 위로해야 한다고 본다.

올해로 광복 50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아리랑'은 온 국민이 필독해야 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지리산의 웅장하고 방대한 봉우리를 힘겹게 등산하다가 중간 중간 쉬어가며 가재 잡고 콧노래 흥얼거리는 평온함도 맛보았다. 질펀한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 넘치는 인간미를 잘 표현한 곳에서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일제와 그 앞잡이가 우리 민족을 눈뜨고 볼 수 없이 처참하게 살해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화가 치밀었다.

왜 침략자의 편을 들까?  배신자!  반역자!  밀정. 친일파.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모르는 멍청이!  이런 단어들이 목구멍을 맴돌았다.

방영근이 김참봉에게 진 빚을 갚고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하와이로 노예 이민을 떠나는 슬픈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일본의 패망을 눈앞에 두고 만주로 이민 갔던 동포가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중국인의 손에 무참히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이야기의 끝을 맺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전 편에 걸쳐 우리 민족이 나라 잃고 타 민족에게 짓밟힌 역사가 작은 가닥을 이루다가 그 가닥들이 모여 큰 강을 이루고 있다.

18세기 개화 바람을 타고 거세게 밀려온 외세의 물결은 걷잡을 수 없이 이 땅을 강타했다.

지배 계층의 무능과 그릇된 가치관으로 인해 국력이 쇠퇴 하자 그 틈을 타 일제가 한반도에 상륙 했다.

이 때 우리민족은 세 가지 형태로 반응을 나타내고 있었다. 즉 나라를 되찾아 옛 왕권을 회복하자는 부류와, 적당히 일제에 빌붙어 자신의 이득을 취하고자 라는 부류, 그리고 과감히 일제와 투쟁 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는 부류이다.

여기서 가장 바람직한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상민 출신이었다. 그러니까 양반이 잃은 나라를 상민이 찾겠다고 의연히 일어선 것이다. 이들은 손수익 같은 개화된 양반들과 더불어 한 목숨 아끼지 않고 의병이라는 칼날을 들고 집을 떠나 산 속에서 은신 하며 외로운 투쟁을 한다.

때로는 밀정에 의해 참혹히 살해당하기도 하고  굶주림과 추위로 목숨을 잃기도 하면서 만주와 연해주까지 피신하며 투쟁한다.

남아 있는 백성들 또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토지조사라는 미명 아래 농민의 토지를 강탈해서 자국민에게 넘겨주어 우리 농민들을 알거지로 만들었다.

원한에 사무친 가슴 안고  우리 민족들은 살 길을 찾아 만주로 일본으로 하와이로 슬픈 아리랑의 곡조가 되어 타향살이를 하게 된다.

헐벗고 굶주린 우리 민족은 곳곳에서 짓밟히고 수탈당하면서도 길가의 민들레처럼 처연한 꽃을 피우며 침략자의 발아래서 도도히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가 무참히 처형되는 장면을 목격한 차득보와 옥녀 남매의 피맺힌 한은 복수의 칼날이 되어 일제에 항거했다. 양반으로서 의병장을 한 송수익은 오로지 조국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만주 벌판을 헤매며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의연한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 때도 시신을 한 맺힌 만주 벌판에 한 줌의 재로 뿌려 달라고 했다.

공허 스님 또한 어린 시절 일제에 의해 부모를 잃고  떠돌이 되었던 원한을 의병들에게 연락 임무를 충실히 함으로써 일제에 맞섰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밟아도, 밟아도 다시 돋아나는 잡초처럼 강인하게 긴 세월을 버텨나갔다.

이렇게 우리 동포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해방의 날을 기다리며 인내하고 있을 때 자신의 안일만을 생각하는 독버섯이 돋아나고 있었다.

이름 하여 '친일파'! 친일파의 대표로 벡종두, 장덕풍, 이동만 등을 들 수 있다.

백종두는 아전 출신으로 일제의 관리가 되어, 농민들의 땅을 뺏는데, 한몫을 했고, 장덕풍은 장사꾼으로 의병이나 애국자 들을 잡는데 혈안이 된 사람이다.  이동만 역시 일본인의 마름이 되어 조선인 소작인들에게 권력의 칼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서 소작이 떨어져 원한을 산 사람이 그 얼마인가?  이들은 또 대를 이어 민족의 고혈을 빨아 먹는 독충이 되었다.

전쟁에 광분한 일제가 2차 대전을 일으켜 패망이 눈앞에 왔는데도 지식인 들은 앞다투어 일제의 앞잡이가 됐다.

특히 문인들은 필을 놀려 일제를 찬양함으로써 자신의 영달을 꾀했다. 그들의 잘못 놀린 문필은  젊은이들을 징용, 학병, 위안부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다.

젊은이들이 무참히 죽어가던 그 시간 일제는 '일억 총 옥쇠'라는 희한한 단어를 만들었다. 즉 일인 7천만과 조선인 3천만이 다 같이 싸우다 죽자는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이제까지 당한 것도 억울한데  다 같이 죽자니!  누굴 위해!

과욕은 자멸을 부를 뿐 그들의 앞에는 패망의 날만 남았고......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민족의 도도한 물줄기를 보았다. 짓밟히고  살해당하는 아수라의 현실에서도 나라를 찾겠다는 물줄기는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황무지를 개간하며 중국인과 일인의 이중 적들과 대치한 상황에서도 독립군의 양식과 은신처와 무기를 제공한 우리 동포들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 잡초 같은 생명력이라 할까?

그건 결국 반만년 역사와 우리의 혈관을 흐르는 우리민족이라는 피 때문이 아닐까?

열두 권에 걸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 대로의 특징이 뚜렷하고 역사적 배경을 둔 소설이지만 문학성이 뛰어났다. 이런 거작을 남긴 조정래 선생님의 노고에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